'랑종' 신의 침묵과 신의 분노 사이에서
'랑종' 신의 침묵과 신의 분노 사이에서
  • 이현동
  • 승인 2021.07.19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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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이 묻고, <랑종>이 답한다"

<랑종>(2021)은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라는 장르를 적극 차용한 공포영화다. 파운드 푸티지는 영화의 시점을 3인칭에서 1인칭으로 바꾼 영화 화법의 변화이며 핸드헬드가 가진 역동성과 현장성으로 인해 공포영화에서 주로 활용되는 기술 중 하나이다. 이 기술은 대표적으로 <블레어 위치>(1999)를 통해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이후 <파라노말 액티비티>(2009)의 등장은 당시에 전례 없는 공포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랑종>은 어떤 작품인가. 필자는 보통 공포영화를 두 부류로 분류한다. '쉴 새 없이 달려드는 공포영화'와 '서서히 조여 오는 공포영화'.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영화가 바로 <랑종>이라고 생각한다.

 

<랑종> 스틸컷 ⓒ (주)쇼박스
<곡성>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무당이라는 뜻을 가진 태국어 '랑종'은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6)의 주제의식과 영화적 소품들을 어느 정도 계승한 작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두 작품 플롯의 구성은 악령에게 빙의가 된 자녀인 효진(김환희)와 밍(나릴야 쿤몽콘켓)의 원인을 찾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고, 오컬트적인 측면에 강제될 수밖에 없는 소품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연관성이 있다. 더군다나 <곡성>에서 한국의 '랑종'인 황정민이 귀신을 쫓겨내는 자가 아닌 어떻게 악의 편으로 거듭나는지를 <랑종>에서 보여주는 것만 같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곡성>에서 일광(황정민)과 <랑종>에서의 밍(나릴야 군몽콘켓)이 등장인물 중에 유일한 생존자라는 것을 동시에 관조할 때 발생하는 의미심장한 결말은 초월적이고 영적인 세계에 대한 질문을 야기하는 오브제다. <곡성>과 <랑종>에서 각각 감독과 원안을 구상한 나홍진은 두 영화에서 '선'의 존재를 아주 희미하거나 연약한 것으로 그리지만, 반대로 실체 없는 거대한 '악'을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몽매를 인간의 본질로 그린다. 태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마치 정글과도 같은 이산이라는 지역을 탐색하는 로케이션 과정과 실제 30명 되는 무당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실제적인 분위기를 구현하기 위해 애를 썼다. <랑종>은 이 두 가지의 앙상블과 페이크 다큐멘터리와도 같은 화면구성을 더해 서스펜스를 극대화하고,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한 악령체험을 선사한다.

그렇다면 <랑종>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랑종>은 나홍진 감독의 세계를 이루는 '종교'에 대한 물음, 더 나아가 '신정론'에 대한 지점으로 나아간다. "신의 선택과 결정은 과연 정당할까"라는 신정론의 문제는 <곡성>과 <랑종>의 공통된 테마이자 세계를 추동하는 동력처럼 상기된다. 개신교를 믿는 것으로 알려진 나홍진 감독은 <곡성>의 개봉을 앞두고 관객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 바가 있다. "곡성을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피해자가 피해를 받은 원인이 없으며, 피해자가 되어야 할 이유조차 없다. 이것이 나에게(내 삶에) 충격적인 주제였다"

이것은 딜레마다. 육안으로 파악할 수 없는 신의 존재를 인간이 받아들이는 문제는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믿는다와 믿음이 존재하기 위해선 의심을 해야 하는 역설 속에서 나홍진의 영화는 탄생한다. <랑종> 또한 관측할 수 없는 실체에 부딪히며 신이 침묵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인간의 모습을 포착한다. <곡성>은 '악마'라는 악이 보이는 실체로 등장했다면 <랑종>은 원혼으로 공기와 같이 존재하는 무형의 실체를 다룬다. 무속신앙의 배경에서 악은 산포적이며 다층적이다. 실제로 태국에서 공포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지방마다 믿는 신들이 있고 심지어 귀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을 정도로 귀신 문화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랑종>에서의 악은 어떠한 원한을 지닌 악령으로 존재한다. <곡성>에선 원인과 이유가 밝혀지지 않지만, <랑종>에서는 원인과 이유가 존재한다.
 

ⓒ (주)쇼박스
노이와 밍 ⓒ
노이와 밍 ⓒ (주)쇼박스

결론적으론 <랑종>은 <곡성>이 밝히지 못한 원인과 이유에 대해 대답을 하는 것 같다. 가문 대대로 신내림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연좌제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랑종>의 플롯은 실제 신의 규율을 어긴 자들에게 가해지는 멸절이자 분노다. 노이(씨라니 얀키띠칸)는 신내림을 거부한 인물이자 다른 신인 예수를 믿고 있으며, 부정한 동물인 개를 도축해서 몰래 파는 인물이다. 또 밍은 오빠인 맥과 근친을 저지르고, 신을 무시한 불경죄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무시무시한 악행은 밍의 할아버지가 공장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을 감금하고 불을 질러 학살한 사건이다. 이 공장은 온갖 원혼이 모여 거대한 귀신 공장을 구축하게 된 동기가 된다. 랑종인 님(싸와니 우툼마)도 나중엔 자신이 섬기던 바얀 신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이 영화는 악령의 강력한 힘 앞에 굴복되는 무력한 인간을 조명한다.

<랑종>은 파운드 푸티지와 페이크 다큐라는 촬영 기법을 호기롭게 사용하면서 샤머니즘의 공포를 재현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와 반대로 오컬트 장르가 가진 은유와 서사의 힘을 축소시킨다. 분명히 나홍진과 공포영화 전문가인 반종 피산다나쿤의 콜라보는 관객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한 의도로 본다면 성공적으로 보인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의식이 실패하고 난 후에 펼쳐지는 악령들의 빙의쇼는 기능적으로도 훌륭하고, 미장센으로도 압도적인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아리 에스터의 <유전>(2017)이나 <곡성>을 기대했던 관객들이라면 <랑종>은 그저 B급 파운드 푸티지 영화와 별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오컬트 영화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각 쇼트들이 갖고 있는 의미들을 퍼즐처럼 맞춰 나가면서 이어지는 공포의 흔적들을 쫓고 해석하는데 그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앵글의 제약은 이런 오컬트적인 재미를 희생시키고 반대급부인 '공포'를 얻었다. 필자에겐 아쉽게도 <곡성>이 담고 있는 '신정론'과 같은 진중한 물음을 <랑종>에서는 그저 가볍게 대답하는 영화처럼 보였다. 말초신경은 곤두섰지만, 마음은 요동하지 않았다. 극장에서 들리는 비명들은 그렇게 흘러갔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랑종
The Medium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Banjong Pisanthanakun

 

출연
나릴야 군몽콘켓
Narilya Gulmongkolpech
싸와니 우툼마Sawanee Utoomma
씨라니 얀키띠칸Sirani Yankittikan
야사카 차이쏜Yasaka Chaisorn

 

제작 (주)노던크로스, GDH
배급 (주)쇼박스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31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1.07.14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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