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카> 폭설 속에서
 <아이카> 폭설 속에서
  • 선민혁
  • 승인 2021.03.3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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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하여

<아이카>는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주해온 20대 여성 아이카(사말 예슬라모바)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러닝타임 내내, 아이카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는 눈이 내린다. 도로가 마비될 정도의 폭설로, 곳곳에서는 재난 방송이 흘러나온다. 눈은 사람을 보아가면서 내리지 않는다. 이 도시에서 머무는 이상, 아무도 이 재난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모두에게 공평한 듯한 이 폭설이, 아이카에게는 유난히 더 차갑다.

 

ⓒ 디오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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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카는 재봉가게를 운영하겠다는 꿈을 품고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그러나 꿈을 펼치는 것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타국의 대도시에서 아이카는 갖가지 역경을 겪는데, 영화가 집중해서 조명하는 것은 자본으로 인한 문제다. 아이카는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 빚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카는 출산 직후 병원에 아이를 남겨두고 도망치기까지 한다. 회복이 필요한 몸을 이끌고 폭설이 내리는 거리를 내달려 아이카가 도착한 곳은 닭 공장이다. 그곳에서 아이카는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닭을 손질하는 일을 한다. 좋지 않은 몸상태를 이겨내고 결국 하루의 일을 모두 끝마쳤는데, 아이카와 동료들은 보수를 받지 못한다. 고용주가 도망쳤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일을 한 아이카가 챙길 수 있었던 것은 생닭 한 마리였다.

이 생닭은 아이카의 병원비로 쓰인다. 하혈과 통증이 멈추지 않는 아이카에게, 우연히 만난 다른 이주노동자가 아는 의사가 있다며 진료를 권한다. 그럴 돈이 없는 아이카는 거부하지만, 이 의사에게는 돈을 나중에 내도 된다는 말에 병원을 방문한다. 비공식적인 절차의 낙태수술을 주로 하는 것으로 보이는 의사에게, 아이카는 자신이 유산을 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전문가를 속일 수는 없다. 의사는 아이카가 출산을 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아이카를 진찰하며 링거와 함께 푹 쉴 것을 권한다.

아이카는 물론 쉴 수 없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카는 일자리를 구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그녀의 취업 허가 서류는 이미 만료되었다. 사정없이 내리는 폭설 속에서, 아이카는 피를 흘리며 일자리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주인공에게 계속해서 불행과 불운이 반복되는 영화를 볼 때 우리는 흔히 피로감과 답답함을 느낀다. <아이카>의 러닝타임 내내 아이카는 고군분투한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불행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시선은 이러한 아이카에게 숨이 막힐 정도로 가까이 밀착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관객을 단지 피로하게 만들지 않는다. 아이카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저 답답하기만 한 일이 아니다. 아이카의 삶을 바라보며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고군분투하는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인데, 이 안타까움에 대하여 미안해질 정도로 아이카를 담은 이 영화는 아름다워 보인다.

 

ⓒ 디오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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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뛰어난 부분들 때문이다. <아이카>에는 절묘한 것들이 많다. 카메라는 시작부터 끝까지, 인물에게 바짝 가까이 다가가 있다. 여백이 적은 숏들은 아이카가 살아가는 삶을 더욱 더 타이트하게 느끼게 만들며, 핸즈헬드로 촬영된 장면들은 카메라의 존재를 과시하면서도, 오히려 관객들을 영화 밖에서 머물게 하지 않고 아이카의 삶에 몰입하게 만든다. <아이카>에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쉽게 영화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드는, 강렬한 장면들 또한 존재한다. 대타로 인해 일자리를 빼앗겼던 아이카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대타가 되면서, 일자리를 얻게 된다. 우연히 알게 된 이주노동자 여성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서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아이카에게 자신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대신 일해줄 것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아이카는 그녀로부터 돈을 먼저 받은 뒤 부탁을 받아들인다. 근무 시간 동안 사용하게 될 작은 방에서 아이카는 음악을 틀고 춤을 춘다. 관객들은 처음으로,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누군가의 불행으로 인하여, 아이카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상황을 차지할 수 있는 빈자리가 생긴 것이다.

아이카는 청소부로 동물병원에서 일하게 된다.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과 동물들은 아이카와 대조된다. 잘 차려입은 여유로운 이들이 좋은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동물들을 데려온다. 아이를 병원에 두고 도망친 채로, 몸 상태가 나빠지지 않기 위해 모유를 짜내가며 일을 하는 아이카가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반려견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이 노골적일 수도 있는 장면을 영화는 태연하게 밀어붙이며 결국 관객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촬영기법에서의 절묘함과, 탁월한 아이러니들이 영화에서 효과적일 수 있도록 만들어준 가장 큰 힘은 캐릭터의 매력인 것으로 보인다. 아이카는 단지 무자비한 사회로부터 고통받는 선량한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도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행위를 하기도 하고, 타인의 고통에 관심이 있지도 않다. 그러나 아이카의 행위 중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생존 의지라는 동기가 캐릭터를 선명하게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이주노동자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살아가며 겪는 고통을 모두 표현해내는 이 인물은 평면적이지 않으면서도 명확하다. 또한 이러한 캐릭터를 배우 사말 예슬라모바는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주)디오시네마
ⓒ (주)디오시네마

아이카

Ayka

감독

세르게이 드보르체보이Sergei Dvortsevoy

 

출연

사말 예슬라모바Samal YESLYAMOVA

 

수입 달빛공장

배급 디오시네마

제작연도 2018

상영시간 114분

등급 12세이상 관람가

개봉일자 2021.03.25

선민혁
선민혁
영화를 보는 것은 현실을 잊게 해주기도 하고, 더 자세히 보게 해주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부분들을 기억하고 공유하고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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