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의 촉각적 성질과 창작의 고통
'소울'의 촉각적 성질과 창작의 고통
  • 배명현
  • 승인 2021.02.08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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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고 있는 그들의 대답

픽사는 역시 픽사다. 우리는 기대했고 픽사는 기대에 부응하는 영화를 내놓았다. 흑인과 재즈 그리고 영혼이라는 세 가지 소재를 삶이란 주제와 엮어 멋진 영상을 만들었다. 이들은 애니메이션이란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 환상성과 창의성 그리고 표현력을 응집시켰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삶이란 키워드를 영화에 녹여내어 관객을 감동시켰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라면 아쉬웠을 것이다. 픽사는 단지 표면으로 보이는 것만 잘하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표층 아래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새롭게 재해석할 수 있는 층위를 가진 복합체를 만들어 내는 데 탁월한 곳이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가장 유명한 22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픽사가 만든 스물두 번째 영화가 <소울>이라는 건 영화를 본 후, 검색을 조금만 해봐도 알 수 있는 정보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22번의 설정에 대해. 22가 인간 세계에 관심이 없다. 22는 그저 영혼계에 머무르는 데에 만족하는 존재이다. 그런 22는 조 가드너와의 만남으로 변하게 된다. 몸을 체험한 뒤 삶에 대해 생각의 변화를 느끼고 살고 싶어한다. 22가 몸이 없었을 때도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몸을 경험하고 난 이후엔 분명 지구에서의 삶을 체험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22를 변화시켰을까. 그건 영화에서도 보여주듯 오감으로 느껴지는 감각의 체험이다. 영혼계에서는 감각이란 게 없는 듯 보이지만(시각만 존재하는 것 같다) 신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몸으로 다양한 감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분명한 차이는 이것이다. 영혼계라고 해서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몸, 그러니까 신체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 영혼은 어떤 욕망을 가지는가' 그리고 '얼마나 강하게 열망하는가'에 따라 지구로 갈 자위를 얻게 된다.(여기에서 들뢰즈를 이야기하면서 '기관 없는 신체' 개념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 이야기는 차치하도록 하자. 머리가 아파진다)

그렇다면 이 욕망(지구로 향하는 욕망)은 얼마나 유효한가. 이미 제리가 말한 것처럼 욕망은 일종의 지위일 뿐이다. 지구로 가서 어떤 기능을 발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것은 지구에서 자신이 놓인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바버샵에서 데즈가 말했듯 그는 수의사가 아닌 바버가 되었다. 아마 그의 영혼은 영혼계에서 수의사로서의 욕망을 인정받아 지구로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고, 그리고 못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렇다면 이건 자신의 삶에 대해 회의를 가지지 말라는, 일종의 자기만족적 삶을 예찬하는 영화인가. 그렇진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이 글의 서두에 언급했듯이 22는 픽사가 만든 스물두 번째 영화라는 코드가 아직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속단할 수 없다. 잠시 이 영화에 대한 관점을 바꿔보도록 하자. 관람객이 아닌 창작자의 입장으로 말이다. 헐리우드의 유능한 제작자와 작가 그리고 감독이 만들어낸 '작품' <소울>은 창작자들의 고민이 녹아있다는 것이 역력하게 보인다. 영혼을 작품으로 대치해보자. 수많은 영혼(작품)이 지구로 내려갈 때. 22번째 작품은 절대로 내려가지 않는다. 22는 창작자의 입장에선 영감 자체가 영화가 된 케이스이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이 도식을 한 번 더 밀고 나가보자. 재즈를 향한 조 가드너의 열망은 결국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순간 가드너의 삶은 시시해지고 만다. 삶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될 것으로 생각한 예상은 빗나가고 만다. 공연 이후엔 다시 공연이고 또 다시 공연이 이어진다. 교사시절에 꿈꾸었던 삶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목표를 이룬 이후에 흔히 느끼는 일상성이다. 창작자로 보면 어떨까. 자신의 작품을 낸 이후 다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괴로움 그리고 그 이전보다 더 발전해야 한다는 고통 그리고 이전까지완 다른 것을 창조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그것이 창작의 역설이다. 고통과 시간을 견디며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삶이 바뀌진 않는다. 다시 창작자에겐 창작에 대한 일상성이 펼쳐진다. 이때의 구원은 새로운 것이 아닌, 일상적인 것의 발견이다. 역설이 아닌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상을 위해 필요한 것이 일상이라니. 하지만 여기에서의 구원은 그거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다. 무언가 다른 일상이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더 잘 느낄 수 있는 감각, 기억 속에 있는 편린에 대한 새로운 감각이 그것이다. 이것을 픽사는 묘사로 표현한다. 컷의 연결로 만들어낸 충돌로 기억을 묘사해낸다. 피자의 맛, 바닷물이 파도치며 발끝에 닿았을 때 느껴지는 차가움과 간지러움, 하늘의 색과 그로 인해 느껴지는 심상과 감상, 손 위에 떨어지는 단풍 씨앗의 가벼운 감촉과 생에 대한 이미지들. 그것은 분명 경험했던 것이지만 무심코 지나갔던 것들이다. 다시 말하면 경험은 했지만 감각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했듯 강은 다리가 없어야 드디어 강이 '눈에 띄게' 되는 것과 같다. 거기에 있었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정말 필요한 순간에 인식되는 것이다. 일상의 삶은 필요할 때 다시 감각된다.

이번 작품은 이러한 방식을 경유해 완성되었다는 픽사의 설명을 통해, 그러니까 창작메타 자체를 영화로 만든 동시에 삶을 재인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관객에게 열어준 것이다. 창작자의 고통을 영화화함과 동시에 관객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이 영화는 그야말로 사랑스럽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소울
Soul
감독
피트 닥터
Pete Docter

 

출연(목소리)
제이미 폭스
Jamie Foxx
티나 페이Tina Fey
다비드 딕스Daveed Diggs
필리샤 라샤드Phylicia Rashad
아미어-칼리브 톰슨Ahmir-Khalib Thompson

 

제작 디즈니 , 픽사
수입|배급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07분
등급 전체관람가
개봉 2021.01.20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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