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차인표'의 진정성
[NETFLIX] '차인표'의 진정성
  • 선민혁
  • 승인 2021.01.06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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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 경의를 표한다.

이 영화를 기다려왔다. 영화를 감상한 직후 '바로 이런 영화를 기다려왔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 <차인표>의 제작 소식을 들은 후, 개봉을 기다려왔다는 의미이다. 배우 차인표가 극 중 '차인표'를 연기한다는 것 이외에 영화에 대한 별다른 정보를 알고 있지 않았지만, 왠지 이 영화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리고 좋은 영화이길 바랐다.

기대가 컸기 때문인지, 영화에서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스토리 전개가 다소 단조로워 몰입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고, 웃음을 유발하고자 하는 요소들이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으며, 반복되는 장면들에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차인표의 대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주장되는 '진정성'이 전달되었기 때문일까, 단점들을 고려하더라도 충분히 좋은 영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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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의 주인공 '실제와 같지 않은 극 중 인물' 차인표는 이미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배우이다. 그는 제안이 들어온 영화의 캐릭터가 자신의 이미지와 맞는지를 고려하고, 광고 촬영을 할 때에도 광고주가 자신의 어떤 이미지 때문에 자신을 선택했는가를 생각하며 촬영에 임한다. 등산을 하며 마주친 팬들을 대할 때는 자신이 가진 이미지에 맞는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한다. 여태껏 쌓아온 이미지에, 그는 진심인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토록 지키고자 했던 이미지에, 위기가 찾아온다.

등산을 하다가 넘어져 진흙 범벅이 된 차인표는 한 등산객(조상구)의 조언으로, 방학이라 학생들이 없는 여고 강당 샤워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게 된다. 그런데 철거 예정이었던 오래된 강당이 그가 샤워를 하던 중 무너져버리고, 차인표는 무너진 건물 속에 갇힌다. 이미지상 진흙이 온몸에 묻은 채로 길을 걸을 수 없어 가까운 곳에서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다,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이 순간에도 그가 걱정하는 것은 목숨보다는 이미지이다.

무너진 건물 밖에서 사람들의 말소리를 들은 차인표는 자신이 갇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소리를 지르다가, 멈춘다. 여고 강당에서 구급대원들에 의해 벌거벗은 상태로 구조되면 기자들에게 둘러싸일 것이고,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크게 손상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매니저 아람(조달환)의 전화를 받을 수 있게 된 차인표는 그에게 다른 사람 몰래 조용히 자신을 꺼내 줄 것을 요구한다.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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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은 차인표가 갇혀 있는 무너진 건물에 도착하고, 이제부터는 무너진 건물과 그 일대를 무대로 한 연극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등장인물은 차인표를 아무도 모르게 꺼내려는 매니저 아람과 그것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이다. 학교 수위(송재룡), 가스공사직원(김한종), 교장(박영규), 굴착기기사(윤대열) 등 개성이 확실한 캐릭터들이 이 연극에 생동감을 부여하며, 갑자기 등장하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재미를 더한다. 아람은 예상치 못한 방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무너진 건물 잔해들을 걷어내고 사람을 꺼내는 일을 혼자 하는 것은 역부족이고 아람은 결국 포기하며 차인표에게 참아왔던 답답함을 폭발적으로 토로한다.

이런 상황에서 알몸을 보여주는 것이 뭐가 대수이며, 구출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차인표는 '어떻게 구출되느냐'가 중요하다고 답한다. 십 년을 쌓아도 한 번에 무너지는 게 이미지라며. 그러자 아람은 지금 차인표의 이미지가 뭔지는 알고 하는 말이냐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낸다. 당신은 젠틀맨이나 왕년의 대스타가 아니라 한물간 배우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제는 차인표 가지고 영화에 투자도 안 된다는 구체적인 일화까지 근거로 제시한다. 무너진 건물에 갇힌 차인표는 이미지가 손상될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이미지를 중요시하느라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위기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탈출을 위해 애쓰다가 자신의 상징인 오른쪽 검지손가락마저 절단되어 버린 차인표는 아람의 말대로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고, 결국 기자들에 둘러 쌓여 구조대에 의해 구출된다. 구조되는 과정에서 차인표는 자신이 갇혀 있던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심한다.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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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차인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야기하고, 중요한 것은 나를 둘러싼 '이미지'와 같은 것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임을 주장하는 영화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극 중 차인표가 그토록 지키고자 하는 그의 이미지는 정말 '무너진 건물'처럼 자신의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만 할까? 이미지란 무엇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차인표가 그 이미지에 '진정성'있게 접근해왔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반부에 출연하는 장 감독(장항준)은 차인표에게 부활을 위해서는 먼저 죽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말대로 영화 <차인표>는 이전에 대중들에게 정형화되어 있던 배우 차인표의 이미지를 부수고, 새로운 차인표를 선언하는 영화로 읽힌다. 나는 이 선언을 매우 흥미롭게 보았는데, 그 이유는 영화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차인표의 기존 이미지'가 한 배우가 진정성 있게 쌓아온 주목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내가 영화 <차인표>의 소식을 접하고, 그것을 보기를 고대해왔던 것은 단지 '차인표'라는 제목에서 오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영화의 설정과 대략적인 스토리를 알기 전에도, 차인표가 '차인표'를 연기하는 영화 <차인표>였기 때문에 보고 싶었다. 기꺼이 자신을 희화화시키며 주저함이 없이 부활을 향하는 배우 차인표에게 경의를 표한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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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

What Happened to Mr. Cha?

감독
김동규

 

출연
차인표
조달환
조상구
송재룡
김한종
박영규
윤대열

 

제작 어바웃필름
제공 넷플릭스
제작연도 2019
상영시간 106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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