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규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한 번쯤 망해도 괜찮아
'애비규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한 번쯤 망해도 괜찮아
  • 배명현
  • 승인 2020.12.21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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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기억에 남을 한국영화에 대해
'토일'(크리스탈)과 '호훈'(신재휘) ⓒ 리틀빅픽처스

올해 인상 깊게 본 한국 영화를 생각해보았다. 한 손이 남을 정도였다. 코로나 때문인지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요 몇 년 동안 한국 영화계에 이렇다 할 작품이 얼마나 있었는가(영화의 무리가 아닌, 몇몇 작품이 생각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가뭄을 의미하고 있다). 하지만 2020년도가 끝나가는 시점에 흥미로운 영화가 등장했다.

<애비규환>은 분명 흥미로운 영화이다. 최하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데뷔작이긴 하나 데뷔작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감독의 자아과잉이나 뻣뻣함이 없다. 오히려 긍정적 패기와 함께, 연출적 야심까지 느껴질 정도로 훌륭한 컷과 신들이 넘친다.

영화는 러닝타임이 시작되자마자 이야기의 중심으로 달려간다. 아이가 생긴 '토일'(크리스탈)과 '호훈'(신재휘)은 부모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둘 앞에 토일의 부모임이 앉아있다. 여기서 대화의 티키타가를 따라가는 카메라의 리듬감은 눈여겨볼 만하다. 마치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영화를 생각나게 하는 속도감과 유머 그리고 인물들을 대화를 사선 방향으로 다루며 단조로움을 피하고 있다.

대사 또한 사자성어를 섞어 전형성을 탈피하였다. 특히나 보기 쉽고 대화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연상될수록 전형성을 피해가며 설득력을 가지기가 힘들다. 하지만 감독은 인물의 캐릭터를 살리는 방식으로 이 설득력을 가져가는 동시에 인물의 성격 그리고 설정을 드러냈다.

이 장면은 다시 반복된다. 토일과 그녀의 친아빠로 말이다. 무릎을 꿇음으로써 보이는 상호간의 계급과 이를 담은 카메라의 미묘한 각도는 친아빠 그리고 그를 찾으러 간 딸의 잘못이 엮이며 웃음을 유발한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마침표는 어떻게 이 싸움에서 벗어나는가이다. 각본은 다음 장면과 자연스러운 연결을 중요시하는 거처럼 연결시켜두었다. 이 씬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애비'(호훈)를 찾으러 가는 시작을 알린다.

 

ⓒ 리틀빅픽처스

여기서 영화의 후반부가 시작된다. 자신의 기억에서 사라진 '애비'(친아빠)가 아닌, 도망가버린 '애비'(호훈)를 잡으러 다시 한번 이 기행은 시작된다. 그리고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하는 흥미로운 롱테이크가 등장한다. 호훈의 배드민턴 친구들이 등장하고 이 무리를 담은 카메라는 크레킹 위에서 움직인다. 카메라는 좌우로 움직이며 싸움이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보여준다. 호훈의 친구들의 시비에서 시작한 싸움은 토일 일가의 싸움으로 넘어가고 이 이동은 트랙 위에서 카메라가 움직이듯 매우 자연스럽다. 그 매끄러움의 끝에 당황한 한심한 남자들이 있다는 것은 심각한 상황을 다시 한번 유머로 승화시키고 작품의 결을 유지하게 한다.

그리고 대사와 카메라로 주고받는 티키타카가 다시 등장한다. 배드민턴 코트를 중심으로 토일과 두 가족이 선을 그리고 있다. 네트를 미장센의 장치로 사용한 이 장면은 노골적이게 까지 느껴지지만, 이 노골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 두 가족의 막장 콩가루 싸움으로 번지는 이 장면에서 배드민턴채를 들고 있는 토일은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다 망해버렸다는 토일의 말에 가족은 따스하게 위로하기보단 우리는 가족은 망했지만, 그것만이 끝은 아니라고 말한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제시하기 보단, 영화는 그 과정에 집중하려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실패가 있을지라도 그 실패가 '완전히 망한 것'이 아닌 '그 다음'을 찾고자 한다. 발레 학원비를 삥땅 쳐 전축을 산 친아빠와 새 아빠의 지갑에서 훔친 돈으로 CD플레이어를 산 자신에게 공통점을 발견하며 웃음 짓는 것. 조소가 아닌, 동질감을 통한 모종의 용서는 이 영화에서 화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 아닐까.

영화는 끝까지 영리함을 보여준다. 토일은 신부의 손을 잡고 들어갈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엄마라는 가장 영리한 선택을 하는 동시에,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피아노 치는 스님으로 관객과의 소격 효과를 만들어 내더니, '이혼쯤이야'라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소격효과 뒤에 연결되는 쿨한 태도는 영화적 순간이라고 말할만하다. 그 어떤 예술 장르에서 이런 연결이 이어질 수 있겠는가. 이는 마치 감독의 생각을 크리스탈이라는 배우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왜 우리도 잘 살고 있잖아"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걱정하는 엄마에게 말함으로써, 엄마에게 '어쩔 수 없다'와 '그래, 그래도 괜찮지'라는 답을 얻어내고 영화는 끝난다.

<애비규환>은 교훈이나 계몽보단 있는 그대로를 어떻게 더 잘 품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이는 기행의 형태를 가져간 영화의 형태와도 잘 어울린다. 과정 그 자체를 담으려 하고 그 시간동안 겪을 충돌을 피하기보단 직면하려 한다. 특히나 한국 여성서사 영화 안에서 유머러스하지만, 뚝심 있는 직면은 유니크하다. 그리고 신선하다. 나는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엔딩의 렌즈 플레어처럼 환한 괜찮은 길이 있기를 기대한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리틀빅픽처스
ⓒ 리틀빅픽처스

애비규환
More than Family
감독
최하나

 

출연
크리스탈
장혜진
최덕문
이해영
강말금
남문철
신재휘
장햇살

 

제작 아토ATO , 모토MOTTO
배급 리틀빅픽처스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08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0.11.12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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