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좋은 소재라는 아웃핏
'담쟁이' 좋은 소재라는 아웃핏
  • 선민혁
  • 승인 2020.11.13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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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을까?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희생당하는 약자들이 서로 연대하여 가족이 되는 이야기. 시의적절해 보이며 흥미가 생기고 기대가 될 만한 소재이다. <담쟁이>도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이러한 소재는 그저 패션일 뿐이다. 영화는 '좋은 소재와 유의미한 주제를 가진 영화'라는 아웃핏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한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 (주)트리플픽쳐스

어쨌든 영화는 여러 이야기가 하고 싶다. 먼저, 동성커플이 사회로부터 받는 고통을 이야기하고 싶다. 고민이 없기 때문에 방법은 간단하다. TV에서 동성혼 관련 뉴스가 흘러나오게 하고 그것을 보며 혀를 차는 기성세대를 등장시킨다. 주인공이 지나가는 길에는 하필 '동성애=지옥행'이라는 피켓을 든 신도가 서있도록 한다. 그리고 난데없이 교통사고를 만든다. 중환자실에 있는 연인을 만나러 온 예원(이연)은 보호자가 아니란 이유로 면회를 매몰차게 거절당한다.

영화는 또한 직계가 아닌 사람들이 사회가 '일반적'이라고 부르지 않는 모습의 가족을 형성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주제에도 앞서 언급한 교통사고가 큰 도움이 된다. 자매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하고, 딸을 혼자 키우던 언니는 사망하도록 한다. 동생 은수(우미화)에게는 동성 연인 예원이 있다. 이제 남겨진 언니의 어린 딸 수민(김보민)과 이 연인을 가족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살아남은 은수는 걷지 못하게 만들어 장애인이 받는 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까 한다.

 

ⓒ (주)트리플픽쳐스

물론 이들이 '일반적이지 않은' 가족을 형성하는 과정에는 고난과 역경이 따라야 할 것이다. 영화는 가족 구성원이 될 인물들이 서로 겪는 갈등이나 각자 가진 내면의 불안을 이야기하다가 말고, 그냥 빌런을 등장시킨다. 은수가 수민을 입양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회복지사이다. 사회복지사는 갑자기 나타나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수민에게 이모가 같이 사는 언니랑 뽀뽀도 하고 그러냐고 묻는 등의 '검증'을 통해 수민이 은수에게 입양되는 것을 반려하려 한다. 수민은 결국 <명탐정 코난>의 검은조직처럼 검은 정장을 입고 움직이는 사회복지사 무리에게 납치되듯 보육원으로 끌려간다.

영화는 고민하지 않기에, 쉬운 방법만을 선택한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꺼내기 가장 쉬운 사건을 배치하고 그러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조건을 설정한다. 그러다 보니 단지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도구로 소모되는 캐릭터들이 하나둘씩 생기게 된다. 표현은 적절한 절제나 과장으로 리듬을 만들지 않고 직접적으로 한다. 쉬운 선택들로 채워진 이야기를 관객들은 작위적이라고 느낀다.

 

ⓒ (주)트리플픽쳐스

거기에 더해 <담쟁이>에는 근거를 찾기 어려운 장면이나 설정 또한 존재한다. 하려는 이야기들도 많은데 그것들과 관계없어 보이는 장면들까지 나오니, 관객들은 어떤 이야기에도 집중하기가 어렵다. 예원과 은수가 사제지간이었다는 설정과 선생님과 학생이던 시절의 장면은 무엇에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다. 예원이 직장동료와 함께 소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 또한 마찬가지이다.

무엇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을까? 영화가 가진 주제의식에는 문제가 없다. 할 만하고 필요한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영화가 '주제에 대하여 진심인 편'이었다면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했어야 한다. 이 영화가 약자가 세계로부터 받는 고통, 제도의 모순 등 특정 이슈를 다뤘기 때문에 책임감을 더 가져야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소재와 유의미한 주제를 가진 영화'가 되고자 했다면 관객들이 그렇게 느끼게 만들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영화가 꼭 좋은 소재와 유의미한 주제를 다룰 필요는 없지만 그런 영화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 대놓고 티가 나는 이상 책임을 져야한다.) 이것은 자연스러워야 가능하다. '지금부터 중요한 얘기를 할 거고 어떤 주제를 드러내는 겁니다.'와 같은 장면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미 있는 소재나 기획의도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영화'라고 이야기해도 될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야기는 꺼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무책임한 것은 곤란하다.

 

사진ⓒ (주)트리플픽쳐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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