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공간을 이해하려면 인물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한다."
[Interview] "공간을 이해하려면 인물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한다."
  • 함윤정
  • 승인 2024.01.29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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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2023 <여공의 밤> 감독 김건희

부식된 공간과 오래된 시간 사이, 기억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여공의 밤>의 김건희 감독은 어느 날 한 장의 사진에서 친숙하지만 낯선 고향의 풍경을 목격한다. 영등포의 옛 모습 속 이름 모를 얼굴에서 출발한 그의 물음은 도심의 빛에 가려진 개인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시도로 이어졌다. 그의 어린 시절 기억 속 텅 빈 공장의 이미지는, 그렇게 공간과 개인의 역사를 관통하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지난 4일, 장편 데뷔작 <여공의 밤>으로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를 찾은 김건희 감독을 만났다. 올해 같은 작품으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던 그는 물음을 거듭한 4년 반의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큐멘터리 연출자로서 가졌던 고민, 공간과 기억을 보존하는 방식에 대한 그만의 생각을 전해들은 시간이었다.

 

ⓒ 코아르CoAR

함윤정

장편 데뷔작 <여공의 밤>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면서 역사적 공간과 현대의 시간이 교차하는 대목에서 쓰인 비디오 에세이이기도 하다. 감독 본인이 영등포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나고 자란 지역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단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김건희

예전부터 '공간'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처음엔 내가 살던 곳이 아닌, 주로 재개발 예정지인 동네의 풍경을 다큐멘터리로 담는 작업을 해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공간이란 테마를 붙여보자는 생각이 들더라. 그 점에서 전작 <당산>(2017)에서부터 <여공의 밤>까지 연결되는 맥락이 있는 것 같다. 다만, <당산>은 내 개인적 불안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비교적 사적인 작업에 가까웠다. 당시 나의 불안과 내가 보고자란 풍경에 대한 일종의 가설이 있었다. 어린 시절 살던 아파트 근처에 공장이 아주 많았는데, 공장들이 왜 그곳에 뜬금없이 있어야 했을지에 관한 질문이 시작이었다. 자본주의가 가속화되면서 내가 봐온 풍경이 사라졌고, 그 소멸의 과정이 나의 불안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함윤정

사적인 물음에 대한 탐구 과정을 영화로 풀어내려는 결심을 한 계기가 궁금하다.

김건희

사실 영화 작업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이런 주제에 관심 자체를 두지 않았을 것 같다. 영화를 하면서 의식의 수면 아래 있는 것들이 계속해서 올라오는 걸 느꼈다. 나의 질문을 영화로 풀어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늘 질문이 선행하고 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 어떤 가설을 세우고, '왜 이렇지? 이게 맞을까?'하는 식으로.

개인적으로 공간을 잘 포착한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런 작품을 보며 느낀 바가 있기도 했다. 영화의 풍경을 보며 나의 옛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느꼈던 공포가 상당히 감각적이었다. 등하굣길에 공장 앞을 지나곤 했는데, 늘 공장을 지키는 개가 목줄에 묶인 채 짖고 있었고, 인부 아저씨들이 "여기 들어오면 안 돼! 저리가!"하며 소리를 쳤다. 그곳에서 뭔가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상상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무서웠던 건, 이 공장들이 순식간에 사라졌을 때였다. 공간이 없어지니 그곳의 사람들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더라. 그게 너무 이상했다. 빈 공터가 가림판으로 막혀있었는데, 그 틈새로 보이는 텅 빈 풍경이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어린 시절, 당산동과 영등포는 치안이 불안한 동네였다. 살인사건도 많이 일어났었다. 그래서 나의 기억이 좀 더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느낌으로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IMF로 겪은 경제위기가 내 가정의 상황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해서 이를 영화라는 형식으로 연결시켜보자는 생각을 했다.

함윤정

한 장의 사진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를 실제적인 작업으로 발전시킨 과정이 궁금하다. 극영화와 달리, 제작 과정 중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 경험도 했을 텐데.

김건희

과거 영등포의 방직공장에서 일했던 분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공간을 이해하려면 인물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여겼거든. 그 과정에서 혼란스러운 영등포의 풍경에 관한 이해를 도울만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섭외한 인물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전에 한국의 근현대사와 영등포 지역의 역사에 관한 리서치를 많이 하기도 했다. 문제라면, 막상 그들을 만나니 영등포라는 장소보다 ‘강제 동원’이란 주제에 관심이 기울더라. 그래서 영등포를 벗어나 지방 곳곳에서 강제 동원을 당하셨던 분들을 찾아갔다. 각 인물의 경험 사이에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를 탐구하기도 했다.

 

ⓒ <여공의 밤>

함윤정

인터뷰 섭외 과정은 어땠나.

김건희

우선, 강제 동원을 당하셨던 분 중 생존자가 계실지가 걱정이었다. 각 시도청에 모두 전화를 돌렸고 서울에서는 동 주민센터까지 연락을 취했다. 관련 단체와 기자분들을 통해 인물을 수소문하기도 했다. 바로 개인정보와 연락처를 전달받을 순 없으니,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는 사람이 있고 인터뷰에 응해주실 수 있을지 물어봐 주길 부탁했다. 결국 총 여섯 분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중 두 분이 영등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인물이었다.

함윤정

다큐멘터리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무엇을 담냐보다, 무엇을 덜어낼 것인지에 관해 고민했던 과정이 흥미롭게 다가오더라.

김건희

인터뷰이의 대부분이 아흔이 넘으셨으니 워낙 살아오신 역사가 길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거의 모든 것들이 그들의 삶을 관통하더라. 그래서 편집점을 잡기가 무척 어려웠다. 옥순 할머니의 경우가 특히 그랬다. 원래 이북 출신이셔서, 처음엔 이북에서 영등포로 동원되신 분이었다. 이후 영등포에서 일본으로 옮겨졌고, 결국 고향인 이북으로 귀환하셨다. 그런데 한국전쟁 직전에 다시 인민군에 의해 땅굴을 파는 일에 동원이 되신 거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흥남부대에 가셨고, 결국 피난길에서 남한으로 오셨다고 들었다. 이후 파란만장한 결혼 생활을 겪으시곤 의정부에 정착했는데, 그곳에 또 미군 부대가 있었지 않나. 가히 엄청난 사연의 연속이었다. 이를 100분 남짓의 영화에 모두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너무 많은 이야기를 잘라냈다. 처음 편집했을 땐 인물을 소개하며 이름, 생년월일, 출신 지역을 자막으로 다 표기했었다. 그런데 이북 출신이었던 인물이 고향에 돌아갔다가 어떻게 남한으로 내려왔는지까지 설명하려니 서사의 흐름이 깨져버리더라. 그래서 아예 자막을 없앴고, 처음 기획한대로 영등포와 관련한 이야기에 머무르게 됐다.

사실 자꾸만 생각의 가지를 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어서, 어느 순간 너무 먼 데까지 가버리게 되더라. 결국 이를 하나로 이을 수 있는 주제가 필요했는데, 그걸 정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특정한 결말을 정해두고 시작한 게 아니라,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관점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계속해서 질문과 가설을 세우다 보니 그저 과정의 연속이었다. 뭔갈 많이 찍긴 찍었는데, 그래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픈 걸지 많이 헤맸다. 가지를 잘 쳤어야 했는데. (웃음)

 

ⓒ 코아르CoAR

함윤정

각 인물의 사연마다 유구한 역사가 담겨있는데, 덜어내지 않고선 서사를 갈무리하기 어려우니 결단의 기로에 섰을 수밖에 없었겠다. 영화의 제목이 '여공'이었던 인물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을 거란 기대를 불러일으키지만, 실제로는 이미지의 배열을 통해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에 가깝다. 서사의 중심을 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김건희

감독들 성향마다 다르던데, 나는 붙이는 것보다 덜어내는 걸 어려워한다. 같이 작업한 동료들과도 ‘이게 과연 이 영화에 필요한 대목인가’에 관해 적잖이 토의했다. 감독으로서 어떤 부분을 잡고 갈지 구성하는 단계가 가장 어려웠다. 나는 모든 자료를 너무 많이 봤고, 또 정이 들어서 객관적일 수 없었던 부분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대목이 소중하지만, 흐름에 있어서는 부차적인 장면이 되기도 하니까. 그래도 끝까지 붙여보잔 생각이었다.

함윤정

비둘기의 귀소본능에 관한 자막이 인상적이었다. "친숙하지 않은 장소를 통해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 올 수 있는 태생적 습성"을 말하는 대목에서, 감독 본인이 관련한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나고 자란 곳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

김건희

지역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늘 그곳을 떠난 후였다. 떠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전에 살던 동네에 애착이 많은 편이었는데, 다른 지역에 살며 그곳을 돌아보니 애착뿐 아니라 여러가지 감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 <여공의 밤>

함윤정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했다고 들었다.

김건희

어려서부터 거의 모든 영상매체를 좋아했다. 그 중 다큐멘터리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내 친구들은 왜 이럴까, 가족들은 왜 이럴까 하는 궁금증이 많았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명될 문제는 아니라고 느꼈다. 사회적인 요소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개인과 사회가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에 관심이 갔다. 사실 원래 방송 다큐를 하고 싶어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했지만, 공부하면서 방향이 많이 달라졌다.

함윤정

학부 실습 수업에서는 주로 어떤 작품을 만들었나.

김건희

그때는 나와 전혀 상관 없는 재개발 관련 지역에 관한 다큐멘터리나,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작업을 했다. 사람들이 영화를 왜 보는지 궁금해서 친구들과 무작정 극장을 찾아가 영화 보고 나오는 관객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첫 기억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인상깊더라. 각자의 삶에 영화가 미친 영향과, 그 경험이 왜 계속해서 영화를 보는 행위로 이어지는지를 살피는 작업이었다.

함윤정

방송 다큐에서 영화로 진로의 방향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거나, 특별한 통찰을 얻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면.

김건희

<약칭: 연쇄살인마(AKA.serial killer)>(1969)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이를 연출한 아다치 마사오 감독이 '풍경론'이란 걸 말했는데, 내용을 요약하자면 개인이 보고자란 풍경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아다치 마사오는 살인마의 시점으로 그가 나고자란 동네를 보여준다. 그리고 몇 년 몇 월 며칠에 그가 거기서 무엇을 했는지, 신문에 나올 법한 뉘앙스로 개인의 사연을 나열한다. 공간과 풍경, 개인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그 방식이 매우 흥미로웠다. 한국 다큐멘터리 중에는 오민욱의 <범전>(2015)을 좋아하고,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2003)도 아주 좋아하는 작품이다.

함윤정

독서를 하며 마음에 드는 구절을 메모해두는 편인가. 인용구 외에도 본인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문장이 영화 곳곳에 자막으로 등장한다.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대신 자막을 선택한 이유도 묻고 싶다.

김건희

책을 읽다 인상적인 구절을 발견하면 에버노트나 노션에 메모해두곤 한다. 사실 처음엔 이를 자막이 아닌 내레이션으로 구성했다. 그런데 목소리는 형체가 있지 않나. 내레이션이 있으면 시각 이미지보다 내레이션이 선행하게 되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개인의 이야기뿐 아니라 역사의 큰 줄기마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구체적인 화자가 있으면 안 되겠단 생각이었다.

 

ⓒ 코아르CoAR

함윤정

"잊혀져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공장"이란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버려지거나 방치되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시선에 가깝다 보니 흥미로운 표현이라 느꼈다.

김건희

영화를 찍으면서 생각한 바이기도 하지만, 편집하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 인터뷰이들이 매우 연세가 많으시니, 시간이 더 지체되면 그들을 인터뷰하지 못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 사람뿐 아니라 건물과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기록하는 사람은 없고 시간은 계속 흐르니, 모든 것이 곧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조급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일수록 어떻게 하면 이들을 잘 기록할 수 있을지 더 고민했다.

함윤정

기억되지 않는 것들과 도시 공간을 은유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이어갈 생각인가. 외에도 관심을 두는 소재나 주제가 있다면 공유해주길 바란다.

김건희

<여공의 밤>의 경우, 사실 촬영본의 절반 정도밖에 쓰지 못했다. 할머니도 네 분을 더 인터뷰했지만 아예 담지 못했다. 그래서 편집 과정 도중 동료들과 이를 다음 작업으로 넘기자는 얘기가 나왔다. ‘강제 동원’이란 주제로 각 지방에서 남겨진 흔적들을 모아 작업할 생각이다. 지방 촬영을 많이 해두기는 했지만, 당장은 아니고 리서치 작업과 추가 촬영을 거쳐 추후 완성할 예정이다.

<여공의 밤>을 제작한 4년 반 동안, 100년에 가까운 역사와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그 세월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다. 그래서 동시대로 돌아와 새로운 작업을 하고픈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다음 작업으로는 ‘세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디지몬’을 보고자란 또래들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가 될 예정이다. 아직은 러프한 기획이지만, 내년부터 차근차근 시작해볼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디지몬을 특별하게 여기도 하고, 친구들 중에서도 광팬이 많다. 만화에 ‘선택받은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를 보고자란 ‘선택받은 아이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있는지를 담아내고 싶다. 디지몬의 세계관이 사실 어둡고 슬프지 않나. 마냥 밝진 않겠지만, 재밌게 작업해보려 한다. 소위 ‘디지몬 덕후’들과 원작자도 만나 인터뷰하고 싶고. <디지몬 어드벤처>가 1999년에 나왔는데, 텔레비전 등 당시 매체 변화에 관한 주제와 함께 엮어볼 생각이다.

 

ⓒ <여공의 밤>

함윤정

<여공의 밤>에도 등장하듯, 역사적 공간을 카페 등의 문화 시설로 재해석한 사례가 적지 않다. 아카이빙이라는 아이디어에 상업적 측면을 접목한 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건희

요즘 그런 공간이 소위 '힙함'으로 통하는 것 같다.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어쨌든 그런 시도로 인해 형체라도 남아있는 것에 대한 다행스러움도 있지만, 어차피 그곳에 뭐가 있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 역사에 대한 관심보다, 그것을 외형적인 조건 혹은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핵심에 가깝다. 그래서 모순적인 것 같단 생각도 든다. 자본주의가 역사마저도 상업으로 끌어들여서 활용하고 있는 셈 아닌가. <여공의 밤>을 촬영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과,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교차했다.

함윤정

무언가를 다시 들여다보고, 오랜 시간 고민하는 시도가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영화라는 매체와 극장이란 공간에 대한 대중의 호응이 이전과 같지 않은 이유와 맞닿아있다고 느낀다.

김건희

맞다. 그래서 늘 마음이 복잡하다. <여공의 밤>에 등장한 공장도 현재 유일하게 남은 원형의 공간인데, 지금은 개인이 이를 문화시설로 활용해 임대 사업을 하고 있다. 특히 케이팝이나 힙합 뮤직비디오 장소로 아주 많이 쓰이는 곳이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다 우연히 발견할 때마다 "어? 여기 거긴데?" 하며 놀란다. 그 순간 마음이 복잡해진다. 요즘은 그런 느낌의 폐공장이 별로 없으니, 이곳의 이미지가 오히려 힙한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 같다. 패션 화보 배경으로도 많이 쓰이는 것으로 안다. 워낙 큰 부지의 공장인데, 이렇게라도 남겨주는 걸 감사해야 하나 싶다. 확실히 이제는 뭔가를 기억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됐다.

함윤정

끝으로, 영화제 상영을 통해 관객을 만나며 느낀 점을 공유해주길 바란다.

김건희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많이 갈리더라. 제목에 ‘여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많은 분들이 제목에 특별히 기대하는 바가 있었던 것 같다. 분명 여공의 이야기가 있긴 해도 영등포의 역사가 더 포괄적으로 있는 영화여서, 특정 주제에 초점을 맞춰 보려한 분들에게는 실망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제목을 잘못 지었나 싶기도 했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웃음)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는 오로지 창작자의 입장에서만 있었는데, 영화를 상영해보니 창작자보다 관객이 훨씬 중요하다고 느꼈다. 가끔 관객들이 나도 모르는 걸 봐주실 때가 있더라. 영화가 어떤 기록으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되려면, 결국 관객의 몫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관객을 만나며 이런 통찰을 얻은 순간이 좋았다.

[인터뷰 함윤정 영화평론가, badasal2@ccoart.com]

함윤정
함윤정
부산 가덕도에서 생활하며 영화와 바다에 대해 생각하고, 극장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운영하는 꿈을 꾼다. 미학을 공부하러 간 대학에서 영화를 찍은 후로 좋은 관객이 되면 나은 삶을 살게 되리란 이상한 믿음을 갖게 됐다. ‘좋은 관객’이란 무엇일까? 나의 글과 말은 늘 이 물음에서 출발한다. 좋은 관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 영화를 더 아끼게 되고, 지난밤 꿈에서 본 영화에 대해 말할 때 가장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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