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관] 작고 오래된 러브 스토리
[김종관] 작고 오래된 러브 스토리
  • 김민세
  • 승인 2026.10.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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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감독론 |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부터 <낮과 밤은 서로에게>(2026)까지

2026년은 김종관의 영화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뜻깊은 해이다. <흐린 창문 너머의 누군가>(2025)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코리안 프리미어로 공개되었고,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된 뒤,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두 영화는 어쩌면 각각 <최악의 하루>(2016)와 <더 테이블>(2017)의 속편 격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2016년과 2017년에 차례로 개봉했던 두 영화는 10년의 시간을 거쳐 다른 형태로 도착한다.

김종관의 영화를 다시 돌아보는 일이 필요한 것은 이런 시기성 때문만이 아니다. 동시대의 이미지를 생각할 때, 김종관의 영화가 보여주는 캐주얼한 형식과 남녀를 중심으로 한 작은 서사는 다시 돌아볼 만하다. 그는 필름 시대에 디지털 캠코더로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만들었고, 디지털 시대에는 스마트폰으로 <하코다테에서 안녕>(2019)을 만들었다. 웹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기술 발전의 이미지를 흡수하는 데 보수적인 영화 매체 안에서 그는 동시대의 방식을 일찍이 자신의 형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차를 거쳐 오늘날의 관객에게 노스탤지어로 다가온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의 미디어에는 남녀의 얼굴과 관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관망하는 이미지가 넘쳐났다. 예능 방송과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통해 만남과 사랑이 이루어지는 찰나는 끊임없이 소비된다. 반면 한국영화에서 멜로드라마, 혹은 통속적인 러브 스토리를 지닌 영화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과연 현대 영화는 동시대 사랑의 풍경을 붙잡을 수 있는 매체일까?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연결되는 시대에 멜로드라마는 어떻게 작동할까? 김종관의 영화는 일찍이 그 이미지를 선점했고, 지금까지 그 질문을 따라가고 있다.

 

© 영화 '흐린 창문 너머의 누군가'
© 영화 '흐린 창문 너머의 누군가'
ⓒ 영화 '낮과 밤은 서로에게' (케이무비엔터테인먼트)
ⓒ 영화 '낮과 밤은 서로에게' (케이무비엔터테인먼트)

좁은 공간과 두 사람

김종관의 영화는 캐주얼한 방법론에 기반한다. 여기서 캐주얼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다. 하나는 장소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시간의 문제다. 영화 제작에서 시공간을 변경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돈과 시간이 드는 일이다. 이런 문제 앞에서 김종관은 좁고 양식적인 시공간적 제약을 두는 방식을 택한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한 사무실 공간에서 단지 몇 분의 찰나를 담아내고, <더 테이블>은 카페의 테이블 하나를 두고 30분 남짓한 잠깐의 대화가 네 차례 펼쳐진다. 영화의 제목을 유심히 보면, ‘최악의 하루’나 ‘더 테이블’처럼 영화적 무대가 되는 작고 구체적인 시공간을 지목하고 있기도 하다.

그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적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카페와 바 같은 실내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거리와 공원 같은 야외 공간이다. 그는 2000년대를 통과하면서 수 편의 캐주얼한 단편 영화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세팅으로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형식을 발견한다. 한정된 공간, 그리고 그곳에 놓인 두 사람. 이 최소한의 재료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사실 제한적이다. 한 공간 안에 두 사람이 놓일 때. 촬영자로서의 선택은 두 사람을 한 프레임에 풀샷으로 담고, 각각을 단독숏으로 담는 일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할지라도 말이다.

 

ⓒ 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
ⓒ 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

카페를 비롯한 실내 공간에서 그는 카메라를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다만 홍상수처럼 시간의 연속성 안에서 프레임을 재설정한다는 말은 아니다. 김종관은 마치 모델의 얼굴을 담는 포토그래퍼처럼 수시로 컷을 나누고, 각도를 변경하고, 때론 180도 가상선을 과감하게 넘나들며 어떤 얼굴의 순간을 찾는다. 그리고 그사이를 인서트로 채운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것들, 그들의 손을 비롯한 몸짓들, 상대방과 교환되고 어긋나길 반복하는 시선들, 혹은 창문 바깥의 풍경으로 말이다.

그 위에 쌓이는 것은 인물 간의 대화다. 김종관은 대화라는 형식이 영화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각도로 시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캐주얼한 형식, 변하지 않는 작은 공간에서 가장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이 말이기 때문이다. 카페나 바의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이들은 쉴 새 없이 말한다. 김종관은 이 말에서 어떤 서스펜스가 가능할지 고민한다.

<더 테이블>의 두 번째 에피소드는 그 적절한 예다. 한 남녀가 카페의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 이들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자유로운 영혼인 것 같은 민호(전성우)는 해외여행의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고 경진(정은채)은 계속 답답해한다. 과연 경진을 괴롭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은 어떤 관계이고 어쩌다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까. 전사를 설명하지 않고 테이블 앞의 대화로 무작정 들어가는 영화는 그것을 서서히 드러낸다.

 

ⓒ 영화 '더 테이블'
ⓒ 영화 '더 테이블'

창문 너머의 얼굴

김종관은 대화를 능숙하게 다루는 감독이다. 하지만 영화의 결정적인 순간이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김종관의 영화는 수많은 대사들의 긴장 상태로 이루어져 있지만 정작 뇌리에 꽂히는 것은 대사가 아니다. 그보다 그의 영화가 많은 것을 말하는 때는 모순적이게도 이들이 침묵할 때다. 망설이고, 머뭇대며, 어떤 서사를 간직한 시선을 던질 때다. 이 말과 침묵 사이의 행간이 정서를 드러낸다.

그때마다 김종관의 카메라는 인물 주변의 사물이나 풍경으로 눈을 돌리곤 한다. 화분이나 테이블 위의 컵, 창문 바깥의 풍경이나 거리가 그러하다. 눈여겨 볼 수 있는 것은 그의 영화에서 비가 내릴 때다. 비가 온다는 것은 이들의 마음의 풍경으로 작용하며 영화의 무드를 구성한다. <조금만 더 가까이>(2010)에서 은희(정유미)와 현오(윤계상)가 거리를 걷고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 <최악의 하루>에서 이상한 하루가 끝나가는 시점에 기분 좋은 여름비가 내릴 때, <더 테이블>에서 3부와 4부를 잇는 막간(interlude)에 비가 내릴 때, <아무도 없는 곳>(2021)에서 종로와 을지로를 떠돌던 창석(연우진)이 비가 맺힌 전화 부스에 들어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 때. 이때마다 흘러내리는 비는 정서적으로 충만한 순간을 가져다준다.

 

ⓒ 영화 '최악의 하루'
ⓒ 영화 '최악의 하루'

인물의 말과 침묵, 그 행간을 채우는 미묘한 시선. 그리고 비가 내리는 것. 이 시각적인 리듬을 핸들링하는 김종관의 장기는 <낮과 밤은 서로에게>의 마지막 에피소드 ‘가을 이야기’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 에피소드에서 남녀는 함께 마주 보고 있다. 이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은 카페에서 창문과 가장 가까운 쪽이다. 이별을 직감한 상황 안에서 종수(김동휘)가 끝내 말을 꺼낸다. 이 말을 듣는 나경(전소영)의 눈에 눈물이 고일 듯한 순간. 카메라는 나경의 얼굴에 깊숙이 들어가며 그의 두 눈을 담는다. 종수를 정면으로 쳐다보던 여자는 이내 창 바깥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 작은 운동은 정말 마음을 크게 울린다. 김종관의 클로즈업은 이런 때에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 나경의 시점에 해당할 창문이 나온다. 창문 바깥에서 빗줄기가 흘러내린다. 김종관은 작은 시선의 움직임과 그 시선에 해당할 비 내리는 풍경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이별 앞의 정서를 만들어낸다. 눈물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눈물의 순간을 매우 미니멀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김종관의 영화에서 창문은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는 장소이자 경계다. 창문 바깥은 오즈적인 풍경이 침입하는 곳이고, 나루세적인 정서가 작동하는 곳이기도 하다. 투명한 창문은 그 안팎의 것을 뚜렷하게 볼 수 있게 하지만 동시에 반사상으로 작동하며 그 너머의 얼굴에 무언가를 덧씌운다. 가령, 창 바깥에서 안을 바라보는 카메라 안에는 인물의 얼굴이 있지만, 그 얼굴 위를 창문에 맺힌 빗방울, 반사되어 보이는 바깥의 풍경들이 가로막는다. 마치 필터처럼 작동하는 창문들은 영화의 무드를 형성하고 그 너머의 얼굴에서 미적이고 비밀스러운 순간을 만들어낸다.

 

ⓒ 케이무비엔터테인먼트
ⓒ 케이무비엔터테인먼트

맬로드라마의 (불)가능성

그 창문 너머의 대상이 여성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의 영화는 주로 남녀 관계를 다루고 있고, 굳이 그 무게를 따지자면 여성의 시점이 보다 두드러진다. <최악의 하루>는 은희(한예리)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그에게 달라붙는 남성들에 대한 이야기고, <더 테이블>의 여러 에피소드가 따라가고 있는 것은 결국 여성의 정서다. 그리고 김종관은 카메라의 위치를 수시로 변경하면서, 창문 너머로 이들을 엿보면서, 그 여성들에게 깃든 아름다운 순간을 끄집어낸다. 그것을 미추의 관점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지나칠 수 없는 질문은 이러한 것이다. 김종관의 여성은 왜 그리 아름다울까?

생각해 보면 그의 영화는 항상 기본적으로 에릭 로메르의 도덕극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의 영화에서 남성은 여성의 무언가를 자극하는 사건으로 등장하고, 여성을 갈등하게 만든다. 특히 <최악의 하루>와 <흐린 창문 너머의 누군가>에서 남성은 때때로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존재에 가까워진다. 물론 이것이 김종관의 남성을 모두 설명하진 않는다. <아무도 없는 곳>과 <페르소나-밤을 걷다>(2019), <조제>(2020)처럼 남성의 숙고를 중심에 둔 영화도 있다. 다만 그곳에서도 남성의 시선은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인 여성을 향한다. 반면 김종관의 여성들은 관계의 실패와 난감함을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고 숙고하고 질문한다.

김종관의 여성은 항상 남성 앞에서 수치스러운 상황에 처한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의 소녀(정유미)는 짝사랑하는 선배 앞에서 고백하지 못하며 부끄러워하고, <조금만 더 가까이>의 세연(염보라)은 동성애자인 영수(오창석)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자 답답해하며, <더 테이블>의 경진은 여행 끝에 돌아온 하룻밤 상대가 딴청을 피우자 혼란스러워한다. 이런 난감함 속에서 김종관의 여성들은 실패를 예상하면서도 욕망한다. 상처 입고도 무언가를 끝내 욕망하는 그 여성들의 얼굴에는 강함이 있다. 김종관의 여성들이 가진 아름다움은 이런 순간에 새어 나온다.

 

ⓒ 케이무비엔터테인먼트
ⓒ 케이무비엔터테인먼트

<낮과 밤은 서로에게>의 여성들은 그 상태를 향해 나아간다. 1부 ‘한여름 밤의 꿈’의 유진(김민하)은 유학길에 오르지만 사소한 우연으로 연결된 남자와의 2년 뒤를 상상한다. 2부 ‘아직 나인 사람들’의 상미(한선화)는 과거의 상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하지만 모종의 가능 세계를 간절히 믿는다. 3부 ‘이.순.불’의 혜진(심은경)은 후회나 무관심으로 시작했지만, 자신 앞에 놓인 새로운 남자와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 욕망하는 여성을 거쳐 도달하는 4부 ‘가을 이야기’는 지극히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의 서사다. 각자의 현실에 따라 마지막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이별의 서사. 그리고 그 순간에 나경은 눈물을 참는다. 그 강함과 정직함이 지닌 아름다움. 멜로드라마의 불가능성이라는 동시대 혹은 한국 영화가 처한 문제 앞에서 김종관은 클래식적인 서사를 정공법의 연출로 밀어붙인다. 김종관의 영화는 이런 식으로 클래식과 동시대 사이에서 긴장한다. 멜로드라마가 죽은 시대에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파토스를 끌어낼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동시대 사랑의 풍경을 회피하지 않으면서 클래식한 멜로드라마의 힘을 믿는다.

 

본 글은 출간 준비 중인 한국영화 감독 인터뷰집 『나의 친애하는 몽상가들』에 수록될 김종관 감독론의 일부를 선공개한 것이다. 단행본에는 김종관 감독의 작품 세계를 보다 폭넓게 다룬 감독론과 인터뷰가 함께 수록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도서 『나의 친애하는 몽상가들』 (가안)
도서 『나의 친애하는 몽상가들』 (가안)

[글 김민세 영화평론가]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이후, 2024 제5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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