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존재의 또 다른 면을 마주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단편 다큐멘터리 <꽝>에서 미나리 노점상 주인이라는 완벽한 타인을 응시했던 유소영은 첫 장편 <공순이>에서 가장 가까운 어머니 김공순을 카메라에 담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생산직 노동 여성을 칭하는 속어 '공순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건설 현장을 오가는 김공순의 노동을 따라가다가도, 그를 둘러싼 다양한 주제로 나아간다. 코다(CODA)이자 이혼 여성인 그의 정체성, 부모 관계를 비롯한 내밀한 가정사, 여성 노동에 관한 현대사의 맥락 등. 유소영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존재를 카메라로 담을 때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객관성의 문제 앞에서 탐색자의 역할을 자처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것 너머를 들춰내길 시도한다. 여기서 '탐색'이란 어머니의 삶을 가족이라는 구조 안팎으로 재인식하는 과정이며, 카메라 앞에서 일종의 '연기'를 펼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망설임의 순간을 발견하는 일이다(감독의 말에 따르면 김공순은 카메라 앞에서 펼치는 자신의 말과 몸짓을 '연기'라고 설명한다).
유소영은 <공순이>에 필요했던 것이 무엇보다 '나 자신'이었다고 밝힌다. 누군가의 딸이자 무언가를 꿈꿔온 사람으로서 드러나는 그의 정체성은 단순한 연출자의 시선을 넘어 이 영화를 모녀의 연대기, 혹은 여성의 연대기로 읽히게 만든다. 한편 감독 본인의 개입은 이 영화를 보다 진실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촬영자로서 들고 있던 카메라를 내려놓고 대상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서는 것. 때로는 카메라를 그 대상에게 쥐여줌으로서 발생하는 불확실과 우연을 받아들이는 것. <공순이>는 그러한 내려놓음의 순간만이 줄 수 있는 활력으로 가득하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출발해 부단히 영화제 곳곳을 찾고 있는 유소영 감독을 부산에서 만났고, 관객의 반응에 대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김민세
전주에서의 첫 공개에 이어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났다. 감회가 어떠한가.
유소영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인 만큼 각기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전주 등에서 관객을 만나며 의외로 들을 수 있던 것은 꿈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갈지 응원을 받았다는 식으로 감상을 나눠주는 관객들이 많았고, 이 영화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전주에서의 첫 상영 때 옆 좌석의 20대 남성 관객이 오열을 하더라. 나는 비슷한 삶을 살아온 중년 여성들이 가장 많이 공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20대 남성에게 큰 공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예상하지 못했던 기억이다.
김민세
영화에서 언급하기도 하지만, 많은 길을 거쳐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기까지 다다랐다. 2022년에 단편 다큐멘터리 <꽝>을 연출했고, 첫 장편으로 <공순이>를 공개한 시점에서 본인의 다큐멘터리적 관심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유소영
사실 다큐멘터리보다는 극영화를 좋아했다. 하지만 엄청난 장비와 많은 스태프들이 동원되는 극영화 작업은 20대 시절의 나에게는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근데 다큐멘터리는 캠코더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웃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변영주 감독처럼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감독도 있지 않나.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용기를 얻었다.
김민세
첫 다큐멘터리인 <꽝>은 어떤 영화이고 어떤 과정 안에서 만들어졌을지 궁금하다.
유소영
초록초록한 영화다. 새벽 일찍 미나리 밭에 나와 농사를 하고 그 미나리를 묶어서 한 단에 4천 원 주고 파시는 한 어머님에 대한 영화다. 그의 하루 일상을 담은 28분 분량의 영화였고, 4개월 동안 촬영해서 2개월 동안 편집했다.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제작 지원을 받았고 그때 처음 캠코더 작동법을 배우며 열심히 촬영했다.
김민세
다큐멘터리 연출자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촬영 대상과의 유대를 형성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타인을 촬영한 <꽝>과 어머니를 촬영한 <공순이>는 다소 다른 접근이 필요했을 것이다. 내가 잘 아는 혹은 잘 안다고 생각하는 가족을 촬영하는 것은 또 다른 결의 어려움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유소영
사실 <꽝>과 <공순이>는 매우 다른 작품이라 비교가 어렵다. <꽝>의 주인공은 완벽한 타인과 다름없었기 때문에 친해지기 위해 매일 찾아뵙고 점심을 사드리곤 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기 전까지의 과정이 매우 길었다.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도 이야기하고 싶은 것까지만 말했고, 그렇다고 내가 어머님의 속사정을 들쑤실 수는 없기 때문에 어머님이 말씀하고 싶은 것까지만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30분 이상이 될 수 없는 영화였다.
반면 <공순이>는 어머니를 촬영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모든 걸 다 허락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다 보여주고 다 찍으라고 하니까 오히려 뭘 보여줘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 닥친 거다. 집도 공개되고 과거도 공개되고 지금 일하고 있는 현재도 공개되고,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통째로 담고 있는데 과연 어디까지 보여줘야 될지 선택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어머니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걸 다 말하면 그의 미래가 힘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덜어내는 과정이 더 중요했다.
김민세
말한 바처럼 한 대상 주변의 다양하고 광범위한 주제를 건드리고 있는 영화다. 코다이자 이혼 여성인 어머니의 정체성, 내밀한 가정사, 여성 노동에 관한 현대사의 맥락, 감독 본인의 삶에 대한 고민 등. 그 주제들의 균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했을 텐데, <공순이>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축이 있다면.
유소영
<공순이>는 원래 내가 없는 영화였다. 모녀 관계를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촬영자로서만 존재하려 했기 때문에 처음 3년 간은 <꽝>에서의 방식 그대로 촬영을 진행했다. 그러다 이 영화를 장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내가 들어가기로 했다. 원래 내레이션이 있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내가 뭘 보고 있고 무엇을 느끼는지 조금은 드러나야 영화가 끝까지 이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레이션의 선택이 불가피했고, 최소한 줄이려고 노력했다. 내레이션에 있어서는 어머니와 대화할 때만 나오는 내 사투리를 구현하려 노력했다. 전라도도 아니고 부산도 아닌 그 중간 지점의 사투리가 있는데 그 말투를 연구해서 내레이션으로 재현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영화에 개입시키면서 '유소영의 성장 서사'로 마무리되었다.
김민세
긴 시간 촬영과 편집을 진행하며 여러 방향의 수정과 개선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완성까지의 과정은 어떠했나.
유소영
영화는 시나리오 작업이 매우 길지만 다큐멘터리는 반대인 것 같다. 일단 찍어놓고 그걸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인데 그 과정이 힘들고 앞이 안 보였다. 가장 쉬운 선택은 촬영본이 부족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나가 촬영을 지속하는 일이다. 그 과정을 서너 번 반복하다가 뭔가 쉬운 길을 찾고 있다는 생각에 촬영을 멈췄다. 그렇게 편집 작업에 들어가서는 2시간 반 분량의 세 가지 편집본을 만들었다. 내레이션이 없는 버전과 어머니의 내레이션 버전, 나 유소영의 내레이션 버전이 있었다. 그 세 편집본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으며 결국은 나의 내레이션이 들어간 버전으로 정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편집 감독님이 2시간 반 분량을 1시간 반으로 줄여 주셨고, 영화가 완성되었다. 나는 웃음이 많은 어머니의 모습도 결국 코다로 살아온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편집 감독님의 손을 거쳐 코다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 엔딩이 되었고, 그 부분을 짚어주어서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김민세
긴 시간의 촬영에 있어서 스스로 세웠던 규칙이 있을지.
유소영
'허세 부리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에 진심이 안 느껴지는 순간 모든 관객이 외면할 거라 예상했다. 그래서 카메라 세 대로 풀샷 단독샷 등을 찍는 감독도 있지만, 나는 캠코더 하나만 촬영하기로 했다. 원래 고정 샷을 좋아하는데 내가 영화 안에 나오기로 결정한 뒤로는 버려두었던 B컷들을 다시 꺼냈다. 카메라의 흔들림 속에서 촬영자로서 나의 마음이 드러나는 것을 모두 모았고, 내가 선호하는 구도들은 포기하게 되었지만 조금 더 진심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김민세
프랑스로 유학을 간 후반부에서는 본인이 홀로 셀프캠으로 촬영한 장면이 등장한다. 다큐멘터리 제작이 중단된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촬영을 이어가고자 했는가.
유소영
아무리 중단되었다고 해도 계속 기록해야겠다는 습성은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도 뭔가 찍어놔야 할 것 같고. (웃음) 프랑스에서도 그런 습관이 이어진 거다. 결과적으로는 휴지통으로 갈 수도 있는 소스들이지만 일단은 늘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나를 촬영했다. 비행기 안에서의 순간도 이렇게 적절한 장면으로 쓰이게 될 줄 몰랐다.
김민세
유학 기간 어머니는 홀로 카메라 앞에 서서 촬영을 이어간다. 감독 본인의 손에 들려있던 카메라가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간 것인데, 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나. 영화에 포함되지 않은 푸티지들도 궁금하다.
유소영
처음 봤을 때는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다. (웃음) 그 장면들을 영화에 넣겠다는 큰 계획은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캠코더 작동법만 알려 주고 갔었는데 이렇게 열심히 찍어놓을 줄 몰랐다. 보통 2시간에서 4시간 분량의 영상을 아침저녁으로 찍어두었는데, '엄마가 이렇게 취미가 없는 사람이었나, 나 없을 때는 이런 표정을 짓고 있구나'를 볼 수 있었다. 나랑 있을 때는 카메라만 들었다 하면 오버하고 말이 많아진다.
근데 내가 없는 카메라 앞에서는 또 다른 모습인 거다. 가끔 중간에 카메라 앞으로 와서 메시지를 툭툭 던진다. '나는 오늘 무슨 일을 했는데 너무 재밌었다', '오늘 시금치를 사 와서 나물을 무쳐 먹을 거다', '이거는 귤이다. 귤을 먹으면서 TV를 볼 거다'하는 사소한 말들 말이다. 그런 것들이 가끔 나오기 때문에 긴 영상을 넘기지 않고 계속 봐야 했다. 처음 몽타주 장면을 편집할 때는 그 영상들 속에서 정말 좋은 메시지만 모았다. 그런데 아직은 촬영이 어설플 단계의 영상들 속에서 뭐라고 해야 할지 망설이는 모습을 모으니 더 좋더라. 최대한 날 것의 모습을 통해 진심을 담아내려고 최선을 다했다.
김민세
어머니가 어렸을 적 살던 집의 터에 가서 과거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내밀한 가정사를 꺼내기도 하고 그것을 재현하기도 한다.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있어 어머니와 어떠한 소통 과정이 있었을지, 그리고 그것을 선택하는 윤리적인 기준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유소영
오히려 어머니에게는 쉬운 부분이었던 것 같다. 본인이 부끄러운 것보다 누군가 힘을 받고 공감하는 좋은 영화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받아들여 주었다.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은 일하느라 바쁘니 영화를 보지도 못할 거라면서. (웃음) 그리고 누군가 본다고 하더라도 영화라고 말하면 된다고 하더라. 영화는 원래 지어내고 연기하는 것이라고.
김민세
<공순이>는 앞으로 어떻게 관객과 만나게 될까.
유소영
개봉 전까지는 영화제 곳곳을 통해 관객을 만날 것 같다. 정동진독립영화제와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등에서 상영이 예정되어 있다. 지금까지 다섯 번의 상영을 했는데 친구나 가족과 함께 N차 관람을 오는 관객들도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인터뷰 김민세 영화평론가]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이후, 2024 제5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