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의 낯선 몸들
이종수의 영화에서 가장 기이한 순간은 낯선 인물이 익숙한 풍경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때다. 고가도로와 옹벽 사이의 틈으로 걸어 나오는 사회복무요원. 영화 촬영 현장의 한쪽 구석에서 강으로 뛰어드는 여자. 문명화된 인간이라기보다는 동물적인 감각을 불러오는 이 몸들은 한국이라는 땅과 한국 영화라는 고정된 풍경을 교란한다. 그 균열의 이미지 끝에 우리는 이 땅이 지닌 트라우마 내지는 스트레스의 기억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지는 알 수 없지만, 끝나지 않는 결핍과 욕망이 서로를 위무하는 광경 속에서 그 몸들은 되돌아온 공포인가, 혹은 단절을 잇는 희망인가?
<나타 근영>은 그 낯선 몸들의 기원을 따라 올라가는 듯한 영화다. 수목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나타'라는 한 남성이 말없이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고정되지 않은 그 몸의 리듬을 따라 자유분방하게 흐른다. 생태적인 삶을 위해 전북 장수와 전남 해남을 오가는 나타는 말 그대로 중심 바깥에서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몸소 질문한다. 그는 조소 작가인 동시에 댄서, 농촌 체험 프로그램 기획자, 막걸리 제조자이지만 정작 영화는 그 정체성을 성실히 축적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이종수가 주목하는 것은 나타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제스처다. 의도적으로 연출된, 혹은 의도와 다르게 불현듯 포착되는 그 제스처의 축적만이 나타라는 한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하지만 언제나 이종수의 영화가 그러했듯, 중심에서 벗어난 혹은 변두리에서 중심에 균열을 내고 걸어들어오는 이 낯선 몸들은 개인을 넘어 동시대의 결핍과 욕망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종수가 따라가는 나타의 제스처에는 한 개인으로서의 실천이 있지만, 그 너머에는 영장류라는 하나의 종족으로서 벗어날 수 없는 인류의 습성 또한 존재한다. 현대인의 가장 반대편에 있는 장소와 몸을 경유하는 카메라가 도리어 현대인이 벗어날 수 없는 공포와 희망을 해부한다. <나타 근영>은 이러한 불안과 낙관성 사이를 진동하는 인류학적 기록이다.
김민세
두 장편 이후 첫 다큐멘터리이고, 2021년에 촬영을 시작해 2025년에 마쳤다고 알고 있다. 앞선 두 장편 작업과 시기적으로 겹쳤을 텐데, 구체적인 타임라인이 어떻게 되나.
이종수
그 이전의 타임라인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다. 2018년에 제주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영화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크숍 등을 다니며 공부하는 과정에서 도리어 영화가 싫어졌다. 이론부터 시작해 영화를 특정한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웠고, 그러면 후회가 안 남을 정도로 내 멋대로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이 와중에 나타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제주에서 알고 지낼 때부터 공산품 없이 오로지 자신의 손으로 집을 지어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2021년에 본격적으로 시작이 된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영화에 대한 고민을 접어두고 그가 집을 만드는 모습을 찍고 싶다고 연락했다. 다큐멘터리처럼 찍다가도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공유하면서 멋있는 걸 해보자고. 나타가 제안에 응하면서 촬영을 시작했고, 저수지를 촬영하다가 <인서트>의 초안을 떠올렸다.
2021년부터 1여 년 동안 나타를 촬영했고, 2022년에는 재정 문제로 촬영을 잠시 중단하면서 서울로 올라와 극영화 작업에 몰두했다. 그렇게 당시 수강하던 영화 수업에서 단편을 만들었는데 다들 그 영화를 추상화에 비교하더라. 리얼리즘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추상화를 해야 하는데, 당신은 추상화만 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그 말에 오기가 생겨서 내가 생각하는 리얼리즘 영화를 만든 것이 <부모 바보>다. 2024년에는 이전에 써둔 시나리오를 발전시켜 <인서트>를 완성했고, 마침 여유가 생긴 2025년에 <나타 근영>의 촬영을 마치기 위해 다시 나타를 찾았다.
김민세
본격적인 극영화 작업을 시작하기 이전에 다큐멘터리 촬영을 먼저 한 셈이다. 당시 홀로 영화를 촬영하면서 극영화의 숏에 대한 감각을 익혔을 수도 있겠다.
이종수
현대 미술과 비디오 아트 작업을 전공했다 보니 촬영이라는 행위 자체는 익숙하다. 사실 영화에서 숏의 구도를 둘러싼 공식은 미신 같은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숏보다는 오히려 인물이 가진 일관성이나 특별하거나 의도적으로 배제된 서사 구조 같은 것이 영화라는 매체를 지배하는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요즘 들어 하고 있다. 나의 현장에서의 촬영자로서는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숏을 찍는 편이다.
김민세
나타는 영화 작업을 어떤 작업으로 받아들였는지도 궁금하다. 틀에 잡힌 영화 촬영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자아를 수행하는 퍼포먼스에 가깝다고 느꼈겠다.
이종수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정말 힘들게 준비해서 갔는데 썩 내켜 하지 않은 기색이었다. 카메라가 있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원래 살던 대로 사는 거다. 평범한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은 생각에 재미있는 아이디어에 관한 대화를 자주 시도했는데, 첫 1년 동안은 그저 그의 반복되는 일상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108배와 요가를 하고, 날이 밝으면 집 짓기를 시작해서, 해질 때쯤 밥을 해 먹었다. 이런 일상이 하루에 꽉 차 있다.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언가를 만들어볼 여유는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반복되는 그의 루틴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삶의 방식이라는 형식을 통해 작업을 하는 중이라고 말했고, 내가 그것을 기록하는 것에서 또 다른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뒤늦게 전해 들은 이야기이지만, 사실 촬영을 하러 왔을 때 정말 기뻤다고 하더라. 재주가 많은 사람이라 들뜬 자신의 모습을 내비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김민세
큰 계획 없이 바로 촬영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때가 촬영의 끝이 되리라고 예상한 순간은 있었나. 아무래도 집이 완성될 시점이었을지.
이종수
나타는 완성될 집을 사람들을 초대해서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 공간이 만들어지는 순간 우리의 작업도 끝날 것이라고 서로 이야기했다. 끝에는 완성된 집터에서 공연 같은 것을 만들어서 촬영할 생각이었다. 근데 작년 초여름쯤에 갑자기 전화로 집을 더 이상 못 지을 것 같다고 하는 거다. 나이도 들었고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면서, 지금까지 지은 집을 부수겠다고 했다. 그때 이 부서진 집이 영화의 끝이 되겠다고 예감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전화로 다시 짓겠다고 번복했다. 지은 집도 당연히 가치 있는 것이지만, 그 집을 부숴놓은 모습이야말로 정말 영화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틈을 안 주더라. (웃음) 부수기로 결정한 것도, 그걸 번복한 것도 나타다운 모습이다. 그의 행적을 따라가는 나로서 어떤 선택이든 아쉬움은 없었다. 사실상 마지막 촬영은 나타가 집을 더 보수하고 난 뒤 사람들과 캠프를 만들었을 때 진행되었다.
김민세
개인적인 첫 만남에서 느낀 첫인상이 있었을 것이다. 한편 관객으로서 우리가 마주하는 나타의 첫 모습은 시골 마을의 집에서 홀로 글을 쓰고 요가를 하는 모습이다. 관객에게 나타의 첫인상이 어떻게 다가가길 바랐나.
이종수
매우 과묵하고 낯을 가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과묵한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에 먼저 쉬이 다가가지 않는 편이다. 나타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고,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도 따로 떨어져 소수와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다 그의 춤을 보고 흥미를 느껴 말을 걸고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음악이 나오는 장소에서는 돌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관객들이 마주하는 나타의 첫인상 역시 과도하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스터리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일반적인 극영화에서는 좋은 방법이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표백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타는 무언가를 표백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저 그 인물이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납득이 되고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을까.
김민세
다수를 담은 숏에서 나타는 프레임 한쪽 구석에 있거나, 카메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곤 한다. 이것은 곧 다큐멘터리로서 인물과의 거리를 결정하는 문제와도 연관할 텐데, 연출자로서 그와 어떤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나.
이종수
나타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늘 볼 수 있는 풍경이 그러한 모습이다. 나타는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재롱부리는 것을 좋아하다가도, 그것이 끝나고 나면 어딘가에 지쳐서 공허한 표정으로 한구석에 앉아 있곤 한다. 이 또한 내가 연출하고 구성한 부분은 아니다. 촬영자로서의 나는 누군가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을 담을 뿐이다. 일종의 자연 현상을 담는다는 생각으로. 마음 같아서는 거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찍었다. 영장류들은 자연스럽게 모여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나. 그 안에는 우두머리를 하고 싶은 자도 있고, 나타처럼 그걸 원치 않는 자도 있을 것이다. 이런 풍경은 나타의 개인적인 성향을 넘어 동시대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2020년 이후 팬데믹을 거치며, 관계 맺으려 시도하면서도 끝내 완전히 결속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보고 느껴왔다.
김민세
다큐멘터리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이어가긴 했지만, 본인은 이 영화를 극영화처럼 접근했다고 알고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극성'은 무엇인가.
이종수
카메라를 켜는 순간 극성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겐 자연 다큐멘터리도 픽션적인 것이다. 아주 엄격하게 사실만을 담았을 때도 픽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나에게 극성의 본질은 관찰과, 그 관찰에서 파생되는 여백이다. 개입의 정도와 엄격성이 다큐멘터리에서 중요한 윤리적 기준이라면, <나타 근영>은 분명 그 기준으로부터 어긋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정한 분위기의 맥락을 만들기 위해 연기를 부탁하기도 했고, 촬영한 소스의 시간 순서를 조작한 부분이 많다. 이 작업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다.
김민세
다소 열려 있는 현장이었을 거라고 예상한다. 그럼에도 스스로 세운 규칙이나 나타와 함께 설정한 합의가 있을까.
이종수
처음부터 구체적인 규칙이나 방법론을 설정하지는 않았다. 가령, 영화의 초반부 촬영 당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하품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너무 잘하는 거다. 그 행위에서 재미있는 무언가가 발견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 후로 카메라가 노골적으로 자신을 당겨서 찍고 있다고 느껴지면 하품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후반부 겨울 장면도 엔딩이 될 거라 정해두지 않았다. 그가 집을 다 짓고 한겨울에 불을 지피고 이불 속에 들어가 자는 모습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2025년 초에 찍은 장면이다. 이런 식으로 그때그때 떠오르고 실험해 보고 싶은 것을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최소한으로 유지했던 태도가 있다면 내가 촬영자인 동시에 관객이라는 생각을 놓지 않은 것이었다. 카메라를 들여다보면서도 이것이 극장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모습을 항상 상정하면서 촬영에 임했다.
김민세
나타가 가장 많이 보여주는 모습은 대화 중에 지루해하거나 하품하는 모습이다. 그런 몸짓이 그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요소라 생각했던 걸까.
이종수
하품은 감정적인 영역과 본능적인 부분이 공존하는 행위다. 지루하다는 감정을 내비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피곤함에서 나오는 본능적인 생리현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중성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나아가 나타와 그의 친구들을 지켜보면서 느낀 것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는 그들 또한 본능적인 것과 문명적인 것 사이에서 충돌하는 순간을 겪는다.
김민세
캠프파이어 장면에서 캠핑에 참여한 여성이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는 와중에 따라오는 숏은 나타가 미끄럼틀에서 홀로 누워 있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누군가의 진실한 발화를 통해 소통이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순간에, 정작 나타는 그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은 하품 장면과 마찬가지로 나타 혹은 <나타 근영>이라는 영화가 지닌 태도를 설명할 수 있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이종수
영화에서 나타는 다수가 있는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도, 그 안에서 혼자 떨어져 나오는 듯한 행위를 반복한다. 그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한 개체의 몸부림처럼 보였다. 사람이 다 그렇지 않나. 항상 어딘가에 들어가고 싶은 갈망을 느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권태감과 회의감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거기서 빠져나오면 다시 공허해지고 또 다른 갈망이 시작된다. 그런 왕복과 이중성 속에서 영장류로서의 인간 개체의 어떤 형태가 드러난다고 느꼈다. 이 영화를 두고 자연 관찰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는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다. 나타 윤근영이라는 한 개인의 삶만을 온전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영장류로서의 인간 개체에 대한 이야기다.
김민세
<나타 근영>이라는 제목에 맞게 나타라는 한 사람의 행적을 따라가는 영화다. 한데 어느 순간 나타를 프레임에서 놓아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초중반에 나타가 참여하는 몸짓 워크숍에서 카메라는 나타의 존재를 놓아버리고 춤과 비슷한 몸짓을 이어가는 참가자들의 몸을 유영하듯이 담는다. 그리고 이내 창문 바깥으로 나가더니 나무와 땅 같은 풍경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종수
나타를 하나의 풍경 속으로 편입시키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한 인물을 따라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점차 구분되지 않는 어떤 흐름의 일부가 되어간다고 느꼈다. 한 사람이 다수가 함께 한 풍경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주변의 자연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층위에 놓이게 되는 거다. 어느 순간부터는 촬영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땅 위에 떨어진 열매의 모습과, 어딘가에 모여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인물을 포착하길 포기하기보다는 그를 포함한 어떤 상태를 바라보려는 시도였다.
김민세
영화 곳곳을 수놓는 것은 산골 마을의 무성한 수목들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쯤, 얼어붙은 호수와 함께 눈으로 뒤덮인 풍경들이 등장한다. 여름에서 시작한 영화를 겨울로 끝낸 이유를 묻고 싶다.
이종수
정확히는 '여름-겨울-여름-겨울'의 흐름이다. 계절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이들의 상태가 특정한 궤도 안에서 반복된다는 감각을 드러내고 싶었다. 무리에 편입되었다가 떨어져 나가는 왕복 운동 말이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개체의 특성이 그러하다고 느꼈다.
김민세
자연 풍경을 담은 인서트가 인상적이다. 전작 <인서트>에서 풍경 인서트만을 찍고 있는 인물이 등장했기에, 이상한 기시감이 드는 면도 있다. 개인적으로 자연 풍광을 담는 일을 좋아하는가. 긴 시간 제주 생활을 한 만큼 자연에 대한 애정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종수
그렇다. 하도 많이 찍다 보니 휴대폰 정리가 잘 안된다. (웃음) 규모가 큰 다큐멘터리 현장에는 풍경 인서트만을 촬영하는 기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한때 인서트 감독이 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자연의 삶을 동경하는 것과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은 차이가 크다. 시골로 가면 갈수록 사람이 정말 귀하고, 그 안에서 무리와 어울리는 일도 쉽지 않다. 도시의 삶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권태를 느끼듯, 시골의 삶도 마찬가지다.
김민세
영화의 후반부에 나타는 자신이 만든 막걸리 '대붕'에 대해 설명한다. 그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관습적인 인터뷰 장면처럼 촬영되었다. 그만큼 가장 명확히 보여주고 싶었던 장면이라고 느껴진다.
이종수
나타라는 사람의 삶에 대해 놓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넣게 된 장면이다. 이전부터 영화 곳곳에 '대붕'에 대한 단서는 존재하지만 대놓고 찍고 싶진 않았다. 촬영 후반부가 되니 나타가 고백처럼 한 말이기도 하다. 그날따라 자신의 삶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듯했고, 그 인터뷰가 후반부에 들어가면 지금까지 나타가 보여준 이상한 행동들에 맥락이 부여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민세
세대에 대한 문제도 떠올리게 된다. 영화에서 나타를 비롯한 젊은 세대의 인물들은 모두 나이 든 현지인에게 다가간다. 그 시골 마을의 주민은 대부분이 노인이고 그들에게 젊은 세대의 사람들은 낯설 수도 있다. 나타가 왜 시골에서 생태적인 삶을 꾸리고 싶어 하는지, 젊은이들이 왜 이곳을 찾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것을 넘어선 지금 세대의 결핍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종수
도시권에 거주하는 일부 사람들은 시골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곤 한다. 근데 사실 거리를 두고 동경하는 것과 실제로 그 삶에 들어가는 것은 차이가 크다. 나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보면 항상 서로 아껴주고 다정할 것 같지만, 새로운 사람이 이들과 어울리려면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 또한 나타와 오랜 시간 알고 지냈지만 그 무리에 자연스레 끼는 것이 쉽지 않다. 밤에 산책하는 장면에서 그들이 촬영 중인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앞서 걸어가듯이, 무언가 닿을 수 없는 지점들이 있다. 세대를 떠나서 동시대 인간들이 벗어날 수 없는 모습이다.
김민세
이 영화는 몸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게 하기도 한다. 나타가 자신의 몸을 통해 집을 만들고 춤을 추는 장면들. 동시에 그것은 그가 인간의 몸을 재현하는 조각가라는 사실과 함께 엮인다. 조소 작업이 하나의 정지한 사물에서 어떤 진실의 순간을 발견하려는 수렴의 과정이라면, 그가 몸으로서 춤을 추고 노동하는 모습은 자유로운 발산의 과정인 것처럼 보인다. 그 몸이 만드는 대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종수
수축과 발현 모두 몸부림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표현할 때면, 정지된 무언가에 나를 응축시켜서 보여주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발산하기도 한다. 그 이중성을 오가는 몸부림이야말로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행위이지 않을까.
김민세
영화 안에서 나타는 집, 막걸리, 조소 작품 등을 직접 만드는 행위를 지속한다. 그는 자신의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마치 감독 본인의 필름 메이킹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 연출, 촬영, 편집, 색보정과 믹스 후반작업까지 도맡은 부분이 드러난다.
이종수
나타의 조소 작업은 강도가 매우 높은 작업이다. 영화에서는 간략하게 등장하지만 와이어를 용접해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붙이고, 작업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전부 부숴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사람이 몸으로 할 수 있는 노동에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조각이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어시스트가 있으면 좋겠지만 적절한 보상을 못 해주니까 혼자 하는 거다. 나타와 나 사이에 닮은 점이 있다면, 남의 손을 쉽게 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 다 개인적인 작업을 중심으로 움직이다 보니 적절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조심스럽게 느끼는 것 같다.
나타의 조소 작업은 개인 작업이 가능하긴 하지만 내가 하는 영화는 공동 작업이 필수적이다. 스태프뿐만 아니라 배우를 포함한 다양한 사람과 소통해야만 영화 제작이 가능하다. <나타 근영>은 1인 제작에 가깝긴 했지만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것과 혼자서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기 때문에, 협업의 방식을 더 자세히 알아가며 배우고 싶다. 결국에는 나 역시 누군가의 좋은 손을 빌리고 싶다는 마음은 있다.
김민세
혹자는 이 영화를 브이로그스럽다고 말한다. 스스로 다큐멘터리와 브이로그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
이종수
요즘 유튜버들을 보면 홍상수 구도로 브이로그를 찍는다. 홍상수의 구도가 브이로그 제작자들에게 더욱 친숙해진 거다. 그래서 이 영화가 브이로그 같다는 말은 지금의 나에게는 큰 칭찬으로 다가온다. 미디어 유저들에게 매우 친숙한 방식으로 다가갔다는 뜻이니까. 앞서 극장 스크린을 의식하며 촬영했다고 말했지만, 한편으론 오늘날 영화는 극장의 스크린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는 방식에서 튀어나올 때가 되었다고도 느낀다.
김민세
전작 <인서트>(2024)는 대안적인 상영 방식을 통해 공개되었다. 전주 이후, <나타 근영>은 어떻게 관객과 만나볼 수 있을까.
이종수
확정된 것은 없지만 영화 속에서 나타가 드러낸 태도와 일관된 방식으로 관객과 만나고 싶다. 일반 극장 상영보다는 대안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을까. 극장 바깥을 비롯한 영화 관람의 형태가 변화하는 요즘인 만큼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여러 방식을 고려 중에 있다.
[인터뷰 김민세 영화평론가]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이후, 2024 제5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