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7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영화제 《2025 HGFF》가 열렸다. 'ON YOUR MARK'라는 부제처럼, 이 자리는 4년간의 습작을 마치고 영화라는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의 출발선이었다. 스크린 위로 펼쳐진 작품들에서는 미숙함보다 패기가, 정돈보다 열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COAR의 평론가들이 그 현장에서 포착한 신진 감독들의 시선을 전한다.
음소거된 세계의 안무 — 이승현 <나의 몸을 움직여>
춤에 대한 열정을 지닌 준희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 댄스 학원에 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두 달 치 거짓말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고 어렵사리 세운 계획은 거듭 어긋나기 일쑤다. 학업 중심의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에 의해 개개인의 꿈이 주변화되는 문제를 조명한 이 영화는 정확한 경로를 따르는 수학 이론, 각 잡힌 의복과 규정에 의해 제단된 신체, 가로X세로 격자를 협소하게 계산한 공간의 형태 등으로 나타난다. 이같은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물의 욕망은 이 영화에서 춤으로 펼쳐진다. 인상적이게도 인물이 구사하는 춤에서는 특별한 규칙이 읽히지 않는데, 정확히는 규칙 없음 자체가 규칙으로 작동하는 즉흥적인 움직임이 이 영화의 안무이며, 그것이 규격화된 시스템의 범주를 넓히는 구체적인 몸짓으로 변주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한다. 거절이 전제된 어려운 말을 꺼내는 상황에서, 어른들의 감시망을 피해 시종 움츠러들었던 준희의 신체는 팔다리를 뻗고 구르는 이 불규칙한 안무를 통해 프레임을 뚫고 나아간다. 으레 욕망이 바깥으로 나올 때의 역동성이 음악의 볼륨으로 표현되곤 한다면, 이 영화는 음소거된 환경을 소란하게 만드는 힘이란, 제목이 가리키듯 나의 움직임과 관련된 자발적인 표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한다.
점프할 수 없는 남자 — 정재서 〈지구에 떨어진 남자〉
주인공 석주는 바닥에서 두 다리를 동시에 떨어트리는 것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을 보인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자의 이유로 점프를 하던 순간 정체가 묘연한 시공간으로 이동하며 자취를 감췄기 때문. 이 원인불명의 순간이동이 지구의 자전 속도와 연관된다는 가설을 세운 채 시작되는 <지구에 떨어진 남자>는 엉뚱한 상상력을 표면에 내세우면서 홀로 남겨진 인물이 외로움과 사투하는 과정을 코미디의 색채로 그려낸다. 그러니까 거꾸로 매달려 다리가 공중에서 대롱거리는 것과 스스로 중력을 위반해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은 서로 다르다는, 비논리적인 논리를 비장하고 치밀하게 쌓아가는 게 코미디스럽다. 그럴수록 인물의 고립감은 더욱 선명해진다는 점도 중요한데, 이에 기여하는 핵심은 장면 내내 흐르는 내레이션이다. 감독은 인물의 내면을 샅샅이 내레이션으로 기술한다. 이미지를 보완하는 단순 보조 장치라기보단 보이는 이미지 속 인물의 행동과 내면의 진술, 그리고 현실의 논리 간의 공백을 더 확보하며 이상한 풍경, 우스운 풍경을 만드는 쪽이다. 특히 혼잣말에 불과한 내레이션은 바깥으로 터져 나오는 말이 아니라 영화를 통째로 인물의 머릿속으로 만들고 관객을 그 안에 집어넣는 설정이다. 외로움에 시달리는 인물을 그곳에서 꺼내는 게 아니라 점점 더 가두어 외롭게 만든다. 외로움을 말하기 위해 웃음을 경유하는 감독의 영화적 화법도 눈에 띈다. 흑백의 화면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과장된 앵글, 애니메이션풍으로 구현된 비둘기와의 경쾌한 대화는 감독이 외로움의 기조를 어떻게 다루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 프레임에 담기지 않는 가족 — 안정식 〈오월동주〉
제목이 지시하듯 <오월동주(吳越同舟)>는 관계의 파탄을 마주한 가족의 초상을 그린 영화다. 결혼 정보 회사를 운영하던 아버지는 사업 실패 후 분거 중이며 어머니는 노동의 고단함을 홀로 감당 중이다. 툭 건들면 곧장 무너질 것 같은 이 부부의 관계는 이혼 서류 한 장을 사이에 둔 상태로, 두 아들은 이혼을 막기 위해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계획하지만 연신 실패에 이른다. 각자의 사정을 호소하며 제대로 된 소통에 이르지 못하는 가족의 문제는 네 인물을 하나의 프레임에 동시적으로 담지 못하는 영화의 사정으로도 이어진다. 하나의 가족을 하나의 프레임에 담는다는 것은 뭔가. 우리가 익히 보아온 가족사진의 이미지. 말하자면 이 영화는 ‘가족’을 보여주는 가장 보편적인 이미지를 향해 가면서, 그 보편성을 형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고민이다. 집이라는 공간이 제공하지 못하는 공존의 환경 대신 인물들은 자주 좁은 골목길에서 멈춰 선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여도 상관없었을 이 어둡고 오래된 골목길은 아이러니하게도 협소한 공간 세팅으로부터 인물들이 비로소 얼굴을 마주할 여건을 마련하며, 평소 하지 못했던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장소가 된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으나 간과되었을지 모를 가족의 의미와 형태에 관해 물음을 던지는 작품.
[글 변해빈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