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의 눈망울은 순애다"
"레제의 눈망울은 순애다"
  • 김경수
  • 승인 2025.12.0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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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마의 시선 아래에서: 〈극장판 체인소맨:레제편〉의 영화적 프레이밍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의 비극적인 엔딩이 남기는 여운은 후유증이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레제는 지하철을 타고 도망치던 중 카페에서 자신을 기다리기로 약속한 덴지에게 발걸음을 돌린다. 카페로 향하는 골목에서 덴지를 본 그녀는 벅차오르는 얼굴로 감탄사를 외친다. 그때 쥐 떼가 레제의 뒤에서 달려온다. 마키마와 건물 옥상에 숨어 있던 엔젤이 그녀를 순식간에 제압한다. 피투성이가 된 레제의 시선은 끝까지 덴지 쪽을 향한다. 요네즈 켄시와 우타다 히카루가 부른 'JANE DOE'의 우울함은 그 정념에 방점을 찍는다. 이 엔딩이 남기는 충격은 시간이 흘러가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없는 정념이 휘몰아쳤으며 그것을 소화하고 레제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덴지와 레제가 마주할 파국은 영화 곳곳에서 은연중에 암시되고 그 파국은 무의식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의 후유증은 관객이 레제에게 다가올 파국의 증거를 되짚으면서 레제의 죽음을 수용하고 애도하는 마음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을 컷 단위로 해부하고 엔딩을 설명할 수 있는 영화적 장치를 발견하는 수많은 릴스는 후유증이 애도의 논리와 이어진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은 왜 이토록 강렬한 후유증을 남기는가. 그 힘은 지금부터 이야기할 영화적 프레이밍에 있다.

 

ⓒ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은 폭탄의 악마 레제와 체인소의 악마 덴지의 멜로드라마와 애증 어린 전투를 담은 <체인소 맨> 5-6권의 서사를 따라간다. 레제와 덴지의 멜로드라마를 중심으로 한 1부와 레제의 정체가 드러난 이후의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덴지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그의 어릴 적 친구이면서도 그와 계약한 체인소의 악마 포치타가 문 너머에 있으며 덴지는 그 문에 열려고 하다가 실패한다. 잠에서 깬 그는 동료 파워에게 뿔이 두 개 더 생긴 것을 보고 놀란다. 마키마는 뿔을 제거한다는 이유로 파워를 데려가고 그에게 상어의 악마 빔을 새 버디로 소개한다. 마키마는 다음날 덴지와 영화관 데이트를 한다. 종일 허탕만 치던 그 둘은 심야에 영화 <병사의 발라드>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덴지는 그날로 자신에게도 마음이 있음을 느끼게 도와준 마키마를 짝사랑한다. 다음날 아침에는 적선하는 등 본인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에 뿌듯해하면서 거리를 돌아다닌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근처의 공중전화 부스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덴지에게 의문의 소녀인 레제가 접근한다. 덴지는 "기르던 개를 닮았다"라며 웃는 그녀에게 입에 숨겨둔 꽃 한 송이를 선물한다. 레제는 선물에 답례하겠다면서 그를 자신이 아르바이트하는 카페로 초대한다.

둘의 관계는 나날이 친밀해진다. 덴지는 마키마와 레제 사이에서 고민한다. 레제는 덴지가 학교도 안 다니면서 공안으로 활동하는 거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밤에 학교에 함께 가자고 한다. 레제는 학교를 안 다니는 덴지에게 "시골 쥐가 좋아? 도시 쥐가 좋아?"라는 이솝 우화의 질문을 물으며 함께 도망가자고 고백한다. 덴지는 대답을 망설인다. 레제는 머리를 식힐 겸 함께 수영장에 가자고 권하고, 레제는 나체로 덴지에게 수영을 가르친다. 그 직후 학교에 태풍이 내리기 시작하고 학교에 잠입한 살인마가 체인소의 악마를 잡을 인질로 레제를 납치하려고 한다. 되려 살인마가 레제에게 살해당하고, 살인마와 계약한 태풍의 악마는 레제에게 복종한다. 레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음날 덴지를 축제에 초대하고 한 언덕에서 다시 함께 도망치자고 부탁한다. 레제는 덴지에게 다른 여자가 있음을 직감한다. 그때 레제는 키스하는 척 덴지의 혀를 자르고 죽이려 한다. 때마침 빔이 도착해 덴지를 구하고 레제는 폭탄의 악마가 되어서 둘을 추적한다. 레제와 덴지는 생사를 건 혈투를 시작한다. 아키와 엔젤 등 공안부의 멤버는 모두 그 싸움에 휘말린다.

 

ⓒ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우선,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은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훌륭한 영화다. 후지모토 타츠키의 원작의 디테일과 작화를 살리면서도 컷과 컷 사이에 있는 여백을 자연스럽게 보완한다. 일례로 마키마가 처음 덴지의 품에 안길 때 그녀의 손은 원작보다 더 아래로 내려간다. 그 손은 덴지의 심장을 지나더니 체인소의 트리거 버튼이 있는 자리에 닿는다. 관객은 마키마가 체인소를 노리고 있다는 어렴풋한 심증을 확보한다. 하나 더 언급할 만한 씬이 있다. 레제와 덴지가 키스하기 직전 한 아이가 링고아메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설정은 덴지의 혀가 잘릴 때의 충격을 방지한다. 이처럼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은 컷 하나하나 허투루 버릴 수 없을 만큼 반복과 수미상관, 복선이 적합한 정도로 배치되어 있어서 관객은 아무런 무리 없이 극을 따라갈 수 있다. 이같은 기술적 씬의 배치는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는 서사를 전개하는 안티-플롯, 유혈낭자한 미장센 등 원작의 거칠고 독특한 매력을 영화 포맷에 맞도록 부드럽게 살려낸다.

이뿐만 아니라 요네즈 켄시의 <IRIS OUT>이 흐르는 오프닝 타이틀이 더해졌고 수영장과 액션 씬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수영장은 열 컷 남짓의 장면을 3분 가까이의 길이로 확장해 덴지와 레제의 감정을 증폭한다. 시골 쥐와 도시 쥐 우화, 붉은 꽃과 흰 꽃 사이에 나비와 거미라는 상징을 삽입해 둘의 위치가 계속 엎치락뒤치락하는 해석의 모호성과 자유도도 더해주었다. 특히 액션의 경우 원작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여러 컷을 지표로 삼아서 그 컷까지의 여백을 새로 더했다. 레제와의 첫 전투에서는 우에서 좌로 질주하는 빔의 질주가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태풍의 악마와의 전투는 경이로울 정도다. 체인소와 체인소가 체인으로 조종하는 빔이 태풍의 악마를 상대할 때 수많은 건물의 잔해가 날아다니면서 액션에 리얼함이 더해진다. 태풍의 악마를 죽일 때 폭발적인 피의 분출을 원색과 여러 그림체로 그린다. 위에서 아래로 활강하는 동선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서 액션의 움직임이 증폭된다. 붐과 몇 초 뒤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미래의 악마 아키의 전투와 붐과 덴지의 마지막 전투는 화려한 특수효과와 불균질한 작화가 인상적이다. 또 오프닝부터 <국외자들>, <현기증> 등 명작부터 <샤크네이도> 등 B급 영화까지 장르를 불문한 후지모토 타츠키 특유의 혼성모방도 인상적이다. 이 모든 영화적 강점을 살리는 단 하나의 요소를 말하라 한다면 영화적 프레이밍이다.

 

ⓒ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이 극장판의 원작 <체인소 맨> 5-6권은 1부의 흑막 마키마의 정체가 드러나기 전에 그려졌다. 이 극장판은 마키마의 정체가 드러났을뿐더러 1부가 종결된 5년 후인 2025년에 개봉했다. 이미 인터넷에서 마키마의 정체가 퍼질대로 퍼진 터라서 마키마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에 적잖은 난관이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스포일러의 문제가 아니다. 마키마의 정체가 드러난 에피소드 중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키시베는 콴시에게 "이 대화를 마키마가 듣고 있어"라고 필담을 적어서 건넨다. 지배의 악마 마키마는 새나 쥐 등 동물은 물론 인간까지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조종해 타인을 감시할 수 있다. 그 힘은 단순히 캐릭터를 조종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모든 프레임 속 시선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차원까지 나아간다. 즉, 카메라의 시점과 마키마의 시점 사이의 구분이 흐릿해진 것이다. 이때 독자는 마키마의 심복이 《1984》 속 빅 브라더의 시선처럼 어디든 존재할 수 있다는 음모론적인 상상을 통해 서사 전체를 다시 보게끔 된다. 제작사가 이 설정을 못 본 체하고 제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체인소 맨> TVA 1기는 이런 설정을 외면한다.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의 감독 요시하라 타츠야는 난관을 정면 돌파한다. 카메라로 찍은 듯한 영화적 프레이밍과 응시와 관음증을 오가는 카메라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다음 카메라를 보는 듯한 시점이 마키마의 시점일 수 있다는 불안을 배제하지 않는다. 극장판에만 삽입된 요네즈 켄시의 <IRIS OUT>이 흐르는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의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영화적 연출이 돋보인다. 이 시퀀스에서 마키마의 1인칭 시점은 부감으로 전개된다. 평범한 아침 식사를 그렸던 이 부감은 마키마와 아키, 파워의 이력서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이어진다. 그다음 마키마와 아키, 파워가 공안으로 출근하는 출근길 곳곳에 카메라의 렌즈를 보는 듯한 원형의 구멍이 등장한다. 이때 셋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음하고 있다는 불안이 스멀스멀 밀려든다. 다만 관객은 각각 시점이 마키마의 시점인지, 동물 시점인지를 분간할 방법이 없다. 마키마라는 심증만 있을 뿐이다. 이처럼 모호함과 불안감이 프레이밍과 그 프레이밍으로 찍은 인서트 컷의 삽입을 통해서 계속 드러나면서 관객은 황홀한 첫사랑 가운데에서도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런 프레임 연출은 덴지와 레제의 멜로에 서로의 정체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한 첩보 장르의 외피를 더하면서 비극성을 한층 증폭한다. 첩보 장르 속 스파이가 초국가적 감시 아래에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땐 더욱 그러하다. 설정 상으로도 그러하지만 첩보 장르의 기본은 개개인을 감시하는 첨단 시스템이다. 레제가 처음 덴지를 만나는 공중전화 씬에서 둘을 보는 고양이의 시점으로 프레임이 그려진다. 그다음 레제와 덴지가 키스하기 직전에도 마찬가지다. 그때 레제와 덴지가 언덕에 서 있다는 구도를 그리려 프레임을 나무 밑둥에 배치한다. 그 직전에 덴지가 레제와 떠나기 위해서 짐을 쌀 때 영화는 고양이의 시점을 한 차례 배치한다. 이런 프레임 연출이 하나둘 더해지면서 마키마가 정체가 예감된다. 시골 쥐와 도시 쥐의 우화를 레제에게 말할 때, 관객은 레제와 덴지의 사랑이 마키마의 감시 아래에 있음을 체감한다. 마키마가 레제를 죽일 때 관객이 충격을 받아도 이 결말을 부정할 수 없는 이유도 이미 관객은 파국을 여러 차례 본인도 모르게 느끼고 있어서다. 이 영화의 후유증은 단순 둘의 사랑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라는 무기력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레제가 살아 있다는 듯한 착각에서 생긴다.

 

ⓒ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감독 '요시하라 타츠야'는 1부에서 레제의 캐릭터에 매력과 감정적인 생기를 더한다. 덴지의 1인칭 시점으로 가까우면서도 끝내 속내를 읽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리려 한다. 감독은 레제의 다양한 표정 변화와 눈동자로 그녀가 가지는 미지의 매혹을 살린다. <체인소 맨> 원작에서는 캐릭터를 그릴 때 눈동자의 빛 반사를 드러내는 하이라이트가 제거되어 있다. 마키마나 파워 등의 악마는 눈동자가 문양으로 그려져 있고, 레제도 원작에서 눈동자에 빛이 반사되지 않는다. 영화는 이 하이라이트의 정서적 힘에 주목한다. 덴지가 전화부스에서 레제를 만났을 때 레제의 눈빛은 무언가 반사되지 않는 단색으로 그려져 있다. 가려진 얼굴이었던 그녀는 덴지가 선물해준 꽃을 통해서 눈빛을 가지게 된다. 레제가 덴지와 가까워질수록 레제의 눈동자에는 입체적인 색이 더해진다. 가장 가까운 순간인 수영장 씬에서 레제의 눈에 덴지의 나체가 그려진다. 밤으로 변신했을 때 자신에게는 마키마가 있다는 덴지의 얼굴을 본 밤의 얼굴에 걱정이 어리면서 덴지의 얼굴이 반사된다. 이처럼 레제의 초록빛 눈동자는 덴지가 그녀의 마음으로 진입하는 창구이며, 정치적인 감시가 닿을 수 없는 유일한 장소다.

레제의 눈동자는 영화 엔딩에서 한 번 마키마와 상대할 때 단색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레제의 눈동자는 덴지에게만 열려 있다. 과장된 웃음이나 홍조 등 그녀가 한 행동이 훈련으로 익힌 것에 불과할지라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진짜인지 분간할 수 없어도 관객은 레제의 눈동자로 감정을 느끼고 있다. 관객이 만약 레제의 죽음에 슬퍼한다면 덴지가 본 그녀의 눈동자를 우리도 보고 있어서일 것이다.

<체인소 맨>은 (<룩백>에서 암시되듯이) 3.11 동일본 대지진, 쿄애니 방화 등 불가항력의 재난을 마주했던 후지모토 타츠키의 비관적인 세계가 드러나 있다. 그의 세계관에서 타인을 향한 애도는 핵심적인 테마다. <룩백>(2021)과 <안녕, 에리>(2022) 등에서 드러나듯이 타인은 애도되기보다는 목에 가시처럼 걸린 마음처럼 상흔으로 남는다. 후지모토 타츠키는 "레제가 저주처럼 남기를 바란다"고 했다. 덴지는 커피를 마실 때 가끔 레제를 그리워할 터이나 그 그리움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는 체인소의 심장을 노리는 마키마에게 평범한 삶을 하나둘씩 박탈당할 운명이다. 그 슬픔을 대신 느낄 사람은 바로 우리다. 타츠키는 그 대상은 모를지라도 우리를 애도에 강제로 속박한다. 후지모토 타츠키의 매력은 거기 있는 듯하다. 후유증을 지나는 캐릭터가 있고 독자는 그 후유증을 물려받는 역할이 된다. 그는 후유증을 통해 우리가 다른 슬픔에 접속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은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의 영원한 상실감을 환기한다. 나아가 그 상실감을 평생토록 남김으로 슬픔의 정념을 기억하게 만드는 충격 효과의 영화라 할 수 있다.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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