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FF season2] 이원영 '미명' 얼굴과 음성을 잃은 영화가 향하는 곳
[NDFF season2] 이원영 '미명' 얼굴과 음성을 잃은 영화가 향하는 곳
  • 김민세
  • 승인 2025.11.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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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남도영화제 시즌2 광양 남도작품경쟁 작품상 수상작

얼굴과 음성을 잃은 영화는 어떻게 지탱될 수 있을까. 이원영의 네 번째 장편 <미명>(2025)은 이러한 난감한 질문 앞에서 도발적인 시도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아내의 죽음 뒤 목소리를 잃은 남자의 모습을 따라가는 영화는 얼굴 없는 인서트에 가까운 이미지, 스마트폰과 컴퓨터 디스플레이 화면, 브이로그처럼 녹화한 영상들을 적극적으로 불러오며 동시대의 지각 방식을 재현한다. 특히 남자의 목소리를 대체하는 스마트폰의 기계적인 음성은 브레송이 모델을 사용하는 방식을 동시대적으로 변주한 결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계적인 음성은 이 영화에서 가장 정서적으로 충만한 목소리이며, 따뜻함과 간절함, 설렘과 절망을 동시에 담을 수 있는 강력한 영화적 요소가 된다.

이원영은 일련의 작업들을 돌이켜보며 영화가 가져야 한다고 여겨지는 요소를 하나씩 소거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희망의 요소>(2021)와 <절망의 요소>(2023)를 거쳐 프로덕션 규모를 점차 줄여가는 그는 <미명>에 이르러 아내인 임정은 감독과 단둘이서 촬영과 출연을 겸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다소 열악한 한국 독립영화 제작 환경에 대한 부분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다면 과연 영화를 영화로서 성립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는 어디까지 내려놓을 수 있고, 어디까지 도달해볼 수 있는가. 아내의 혼령과 소통하기 위해 남자가 부르는 간절한 노래는 곧 이 영화를 지탱하는 ‘질문’과 ‘믿음’의 목소리다. 이러한 끈질긴 질문을 던져오던 그는 <미명>에서 가장 소박하면서도 독창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 이원영 감독

김민세 영화평론가

제천에 이어서 광양에서의 상영을 마쳤다. GV 등을 통해 관객들을 만났을 텐데,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는지.

이원영 감독

이전부터 내 전작들을 꾸준히 보고 좋아해준 김태용 작가를 제천에서 만났다. 소설을 쓰는 사람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생각의 매커니즘이 미묘하게 다르구나 느끼며 흥미롭게 질의응답을 한 기억이다. 이외에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번 작품이 이전 작품과 비교해서 무언가 해소되었다는 점을 느낀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으면 한다.

김민세

해소라면 전작들에서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해소라고 보면 될지.

이원영

<희망의 요소>와 <절망의 요소> 같이 전문 배우들과 작업하다보면 그들 덕분에 작품이 살아나는 지점도 있지만, 동시에 어떤 것들은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도 있다. 그런 면에서 <미명>은 정말 하고 싶은 대로 다 했고, 이걸 해소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김민세

이전의 작업들에서 느꼈던 포기는 어떤 것이었나.

이원영

어제 GV 당시, 파스타 장면을 보고 아무 저항 없이 어떤 감정이 훅 들어와서 눈물을 흘렸다고 이야기하는 관객이 있었다. 접시에 담긴 파스타의 이미지 위로 아내의 유령과 대화를 시도하는 사운드가 흐르는 장면인데. 지금 도대체 무엇을 포착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유형의 이미지로 영화를 끌고 간다는 것 자체가 전문 배우와는 할 수 없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미명>은 소리가 주된 지각의 요소가 되는 영화다. 결국 영화 전체의 감정을 리드하는 것은 소리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관객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고려했던 점이 제 역할을 했구나 싶었다.

 

김민세

고전영화와 대한 감각과 소리의 지각에 대한 중요성은 이전의 작품들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미명>에서는 그 방법론을 보다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밀어붙였다는 생각이다. 이를테면 영화를 보는 동안 브레송의 이름을 머릿속에서 떨칠 수 없다. 표정 없이 그저 모델로서 서 있는 배우들 위로 쌓이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들. <미명>에서는 그것이 비전문 배우의 표정 없는 얼굴, 구글 번역이 제공하는 기계적인 음성으로 드러난다.

이원영

이전 작업을 할 때는 브레송이 보여주었던 것들에 닿으려고 의식적으로 굉장히 노력했다. 반면 이번 작업은 오히려 그런 의식을 덜어내고 내 안에 있는 재료들을 조합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다. 근데 이번에 피디 겸 배우로 참여한 임정은 감독도 유사한 이야기를 하더라. 어떻게 보면 <희망의 요소> 같은 영화들보다 이번 영화가 훨씬 브레송적인 지점들이 느껴진다고 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감정을 명확히 전달해야겠다는 의도도 전혀 없었다. 그래서 제천과 광양 상영 당시에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을 보고 여러모로 놀랐다. 그럴 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엄청나게 감정으로 파고들어 가고 있구나, 대체 이 감정이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나에게도 의문이고 여러 생각들을 해보고 있다.

김민세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를 더하자면, 감독님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종종 노래한다. <검은 여름>, <희망의 요소>, <절망의 요소> 모두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인물이 등장하고, 그 순간 영화는 그 노래의 음성적인 면을 올곧이 기록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즉, 노래 가사의 내용적인 측면을 보여주기보다는 그것이 주는 음성적인 감각, 혹은 그것이 지속되는 시간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품마다 결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희망의 요소>는 2부에서부터 이것이 실제로 벌어진 일인지 혹은 이 남자의 소설 속 이야기인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는데, 굉장히 긴 롱테이크로 제시되는 노래방 장면이 그 모호함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평소에 회식을 하면 노래방을 자주 가는 편이다. 사람들이 특히 회식을 하고,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를 때 본연의 꾸미지 않은 목소리,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는 가장 솔직한 나다운 목소리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있다 보니 전작을 걸쳐 자연스럽게 반복적으로 나온 장면이 아닐까.

김민세

그런 면에서 <미명>이 흥미로운 지점은 주인공이 목소리를 잃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영화임에 있다. 음성을 잃은 영화이지만 그렇기에 음성을 다른 사운드로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도가 녹아있다. 이를테면 앞서 말한 기계적인 음성, 주인공이 밥을 먹으면서 내는 소리들, 카카오톡 문자를 보낼 때의 키보드 음, 텔레비전에서 들리는 뉴스 소리, 번개탄이 타는 소리들이 그러하다. 그런 장면들은 사운드가 내화면에 있든 외화면에 있든 간에 결국 ‘들려주고’ 싶은 장면이라 생각했다. 그 이미지와 사운드 간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어떤 점을 고려했는지.

이원영

결국은 모호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앞서 말한 파스타 이미지 위에 프레임 밖에 있는 뉴스 소리가 들리는 것이 비슷한 맥락이다. 한편 주인공이 꿈에서 아내를 만난 것인지 실제로 아내의 혼령이 온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다시 잠에 들려고 글라스에 술을 따라 마시는 장면을 보면, 그 바깥에서 들리는 사운드와 숏 자체의 사이즈가 정말 이상하다. 사운드의 출처를 이미지 내에서 어디까지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하며 프레이밍 했다.

 

김민세

마지막 엔딩은 얼굴이 지워진 부부의 사진으로 줌인하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이 영화가 인물의 얼굴을 영화 내에서 지워버리는 순간이 적지 않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가령, 주인공이 목소리를 잃고 친구와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친구의 정면숏에 대한 역숏으로 컴퓨터 화면의 활자가 나온다. 나아가 몽골로 떠난 순간을 담은 푸티지에서는 그 누구의 얼굴도 등장하지 않고 기계적인 내레이션의 발화만이 흐른다. 이는 단순히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얼굴 없는 영화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원영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던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 출연하고 실제 아내인 임정은 감독이 출연하다 보니,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기도 했다. (웃음) 마지막 엔딩의 사진은 몇 년 전에 처형이 찍어준 사진인데, 잘못 촬영해서 얼굴이 날아가 버렸다. 그 원본 사진을 그대로 사용했다.

몽골 장면에 등장한 로케이션은 중국 서쪽에 위치한 카슈가르라는 지역이다. 7~8년 전에 여행을 가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들인데, 이번 영화에서 활용하게 되었다. 시나리오만 나온 단계에서 임정은 감독은 이 영화가 과연 제대로 작동할지 반신반의한 상태였는데, 그 시퀀스를 미리 편집해서 보여주니 재밌을 것 같다고 하더라. 우리 둘의 얼굴은 제대로 나올 일이 없다고 설득한 셈이다.

김민세

영화가 최소한으로 가져야 한다고 여겨지는 강박적인 조건들이 <미명>에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원영

그렇다. 작업을 거치면서 영화가 성립되는 최소한의 조건을 하나씩 지우는 것 같다. 이번 작업을 통해 그런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사실 매 순간 확신이 있지는 않았다. 좋은 게 나오면 좋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새로운 방식으로 해보았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회차 촬영을 마치고 바로 러프 컷 편집본을 만들어서 볼 때마다 좋은 의미로서 놀라는 순간들이 많았다.

김민세

공간을 보여주는 면에서도 그런 점이 느껴진다. 우선, 로케이션은 실제 거주하는 집이었는지.

이원영

그렇다. 그것이 우리 부부가 직접 출연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배우를 섭외한다면 집 안의 모든 미술적인 세팅을 새로 해야 할 테니까.

김민세

공간을 묘사하는 숏의 종류가 한정적이고 전반적으로 숏 사이즈가 타이트 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면들이 집을 담고 있지만, 데쿠파주를 통해 집 전체의 구조를 가늠할 수가 없더라. 집 곳곳의 구체와, 그 구체와 상호작용하는 인물만이 존재한다고 느꼈다.

이원영

<희망의 요소>의 집과 같은 로케이션인데, 그 영화에서는 설정 숏이 등장한다. 배관공이 집에 왔을 때 와이드한 숏으로 이 집의 거실 전체 구조를 보여주는 식이다.

김민세

<희망의 요소>와 같은 로케이션인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해서 놀라운 지점이다. <미명>에서는 의도적으로 설정 숏을 피하려 했는지.

이원영

그렇다. 사실 <희망의 요소>를 찍을 때는 대체 인물이 어디에 서 있고 집의 전체 구조는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의식하면서 작업했다. 오히려 이번에는 그런 목적이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소리를 주된 지각 요소로 하기 위해 모호한 이미지를 만들려고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숏들이 나온 것 같다.

김민세

환상인지 유령인지 알 수 없는 아내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두 숏으로만 이루어졌던 기억이다. 남편의 얼굴을 담은 숏 혹은 남편의 시점일 인서트 숏이 등장하고, 그 뒤에 현관 부근에서 걸어들어오는 아내를 발코니 창문의 반사상으로 보여주는 숏이 등장한다. 이 두 숏이 만났을 때, 과연 우리는 이 환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믿음만으로 진행되는 몽타주라고 생각했다.

이원영

나름대로 세운 규칙이었다. 아내의 혼령은 반드시 발코니 창문을 반사해야만 볼 수 있다는 규칙이다. 사실 이게 제대로 작동이 될지 반신반의하면서 촬영을 진행했는데 일정 부분 성취하지 않았나 싶다.

김민세

그 쇼트는 아내가 현관으로 들어오는 반사상의 이미지와 창문 밖의 추상적인 빛들이 겹쳐있다. 내부와 외부의 위계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의 풍경이 내면으로 들어온다는 인상이 들었다. 그 쇼트를 선택하기까지 어떤 것들을 고려했는지.

이원영

집 밖으로 큰 도로가 하나 있고, 건너편에 아파트 불빛들과 가로등 불빛들이 있다. 이 모든 것들 위로 아내의 혼령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글을 쓸 때부터 생각한 이미지인데, 최초로 떠올리게 된 것은 몇 년 전이다. 당시 다른 영화의 촬영을 준비하면서 집에서 카메라 체크를 하는데 마침 아내가 주방에서 정리를 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발코니 쪽에 두고 있다 보니 아내의 반사상이 창문에 맺히는 이미지가 우연히 만들어졌고, 왠지 모르게 롤(Roll)을 눌러서 찍어두었다. 전혀 맥락이 없는 이미지였는데 좋더라.

시간이 지나고 <미명>을 준비하면서, 임정은 감독이 ‘영화 전체가 모호한 이미지로만 가는 것은 위험할 것 같다, 어떠한 키 이미지가 있어야 하지 않나, 어떤 순간에는 프레임 내부의 이미지만으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듣고 몇 년 전에 찍었던 그 이미지가 떠올랐고, 촬영까지 반영하게 되었다.

김민세

반복해서 언급하는 모호한 이미지라는 것은 결국 완결되지 않은 이미지를 말하는 것인지.

이원영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이미지는 목적이 있지 않나. 어떤 대상을 클로즈업으로 찍을 때도, 풀 숏으로 찍을 때도, 그 선택에 따른 각각의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명>의 이미지는 그러한 명확한 목적이 없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김민세

<미명>의 설정 숏은 어디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 이미지인 것 같기도 하다. 제일 와이드한 숏이고 거실 전체를 보여주니까. 하지만 동시에 가장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는 이미지이다. 실제로 이미지 자체가 희미하기 때문에 그 숏으로 집의 구조를 알아보기 어렵기도 하다.

이원영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특수 청소 장면을 위해서도 집의 구조를 일정 부분 감추려 했다. 집의 구조를 훤히 들여다보게 되면 이후의 특수 청소 장면과 연결되었을 때 뭔가 어긋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김민세

특수 청소 장면의 로케이션은 어떤 곳인지.

이원영

이전에 미술 작가와 공동 연출로 작업하면서 한 달 동안 실제로 특수 청소 현장을 다녔다. 여러 고독사 현장을 봤었고, <미명>의 후반부에 들어간 집은 대구의 노인 분이 돌아가신 현장이었다.

김민세

돌이켜보니 그 현장을 담은 어떤 한 숏을 보고 집의 층고가 굉장히 높다고 생각했었다. 집 양쪽에 녹색의 라이트가 설치된 모습을 담고 있는 숏이었는데.

이원영

그 숏은 다른 로케이션의 이미지다. 양쪽에 있는 라이트는 냄새를 빼는 장비다. 실제 특수 청소는 낮에 장판과 벽지를 벗겨내고 약품을 도포하면 밤에 그 장비를 켜놓고 가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오면 그 집 전체가 초록빛으로 물들어있는 거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드로 다가왔고, 그 자리에서 찍어 영화에도 넣게 되었다. 몇몇 분들은 그 장면의 색보정을 일부러 초록빛으로 했다고 생각하던데, 사실 후반 작업에서 크게 건드리진 않은 장면이다.

김민세

마찬가지로 색보정 및 컬러를 통제하는 것은 <미명>에서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컬러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한데. 첫 장편은 컬러였고, 두 번째 세 번째 장편은 흑백이었다. 그리고 이번 장편에서 오랜만에 컬러로 돌아왔다. 감독님에게 컬러의 감각은 어떠한 것인지.

이원영

사실은 이번 영화도 흑백이었다. 최종 후반 작업에서 흑백으로 색보정할 것을 염두한 채로 촬영했고, 마지막 특수 청소의 장면만 컬러로 할 생각이었다. 색보정을 도와준 홍현준 촬영 감독에게도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 전부 흑백이니 콘트라스트나 샤프니스 정도만 체크를 해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었다. 근데 자기가 이 영화를 흑백으로 한 번보고 컬러로도 다시 봤는데 컬러가 훨씬 좋다는 거다. 그 설득에 넘어가서 컬러를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미술 시간을 제일 싫어했다. 그림을 잘 못 그리기도 했고, 특히 컬러에 대한 감각이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작업을 할 때면 컬러 쪽으로 뛰어난 분들의 의견을 듣고 받아들이려 하지만, 소규모 작업을 할 때는 흑백인 게 훨씬 낫다. 화면 안에서 룩(look)을 볼 때 고려해야 하는 대상이 하나 없어지는 거니까. 그래서 <희망의 요소> 때부터 흑백으로 계속 작업했고 <미명>도 같은 이유에서 흑백을 고려했다. 하지만 어제도 영화를 다시 보면서 컬러로 하길 잘했다 싶더라. 흑백으로 했다면 후반부 부부 대화 장면의 정서가 살지 못했을 것이다.

김민세

<미명>의 이미지는 사진과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상, 영상통화 화면, 컴퓨터 화면 등을 오간다. 동시대 인간들의 지각 방식과 소통 방식을 영화 안에서 구현해 내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더불어 계엄에 대한 에피소드 또한 동시대를 건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미명>은 다른 작품에 비해 유독 동시대를 의식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원영

지금의 20대, 30대가 느낄 동시대의 감각을 영화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줌(Zoom)의 영상 통화 화면이나 카톡 채팅창의 이미지들을 본래 그대로 영화에 넣게 되었다. 한편, 동시대를 건든다는 면에서 계엄 사태를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가 정치적인 영화라 생각하진 않는다. 기성세대들은 요즘 젊은 세대들을 무기력하다고 말하곤 한다. 우리들이 왜 무기력할지를 떠올려보면, 아무래도 이 시대에 한국을 살아가는 데에는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적당한 예측 불가능성은 삶의 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젊은이들이 뭔가를 준비하고 앞으로 나아가기조차 어려운 시대라고 생각한다. 계엄 사태도 그런 예측 불가능성의 한 형태로서 이 영화에 드러난 것이라 볼 수 있다.

김민세

목소리를 잃은 주인공이 친구와 컴퓨터 화면으로 대화하는 장면도 존재한다. 발화하는 친구의 숏이 등장하고, 그에 대한 역숏으로 컴퓨터 화면의 활자와 커서가 보이는 것인데. 고전적인 숏/역숏의 체계를 디스플레이의 시대인 동시대에 대안적으로 구현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원영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그 장면은 정말 재밌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제수씨는 잘 있지?”, “잘했네” 같은 워딩을 타이핑할 때도 있지만, 그 두 대사를 제외하고는 깜빡이는 커서만 나온다. 이런 식으로 숏/역숏을 구성하면 어떤 느낌이 날지 개인적으로도 궁금한 마음을 갖고 촬영했다.

김민세

후반부 아내와의 대화 씬은 시점에 있어 여러 가능성으로 열려있는 장면이다. 아내의 생전 과거일 수도 있고, 주인공이 꾸는 꿈일 수도 있다. 그 시점과 층위를 명확하게 구분 지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 장면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염두하고 있던 가능 세계들이 있었는지.

이원영

개인적으로 그러한 모호함이 드러나는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런 장면을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이틀 동안의 시나리오 초고 작업 당시에도 첫날에 모든 장면을 다 쓰고, 둘째 날에 그 한 장면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이 남자가 과연 진짜 죽은 것인지 아닌지 확실히 규정지을 수 없도록 만드는 무언가를 넣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은 특수청소업체의 시제를 현재로 본다면, 과거만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약속한 미래까지 함께 소멸하고 있다는 점으로 나아가는 게 맞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둘째 날에는 미래의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쓰고 초고를 마무리했다.

 

김민세

감독이 배우로 출연하고, 실제 감독 부부가 영화상의 부부 캐릭터를 연기하는 방식의 한국 독립 영화들이 종종 만들어지는 최근이다. 가령, 박송열 감독과 김준석 감독의 영화가 그러하다. 그 영화들에서 주목해서 보게 되는 점들은 감독이 스스로 카메라를 두고 그 앞에서 연기를 펼칠 때 즉흥성과 자연스러움, 자유분방함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미명>도 유사한 제작 환경에서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앞선 그들의 영화와는 다른 맥락으로 배우에 접근한다. 아내와 함께 스스로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어떤 경험이었나.

이원영

임정은 감독은 촬영 전날까지도 염려를 많이 했다. 오히려 나는 소규모 방식 안에서 편하게 진행해도 문제없는 영화라는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 박송열 감독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미명>을 본다면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다.

김민세

스탭 겸 배우가 두 명뿐이었던 것인데, 현장에서 촬영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가.

이원영

내가 먼저 앵글을 잡고 임정은 감독이 가이드를 서는 식이었다. 구도가 잡히면 자리를 바꿔서 내가 카메라 앞으로 갔고 임정은 감독이 롤(Roll)을 눌렀다.

김민세

전작인 <절망의 요소>는 미개봉 상태이지만, 대안적인 방식으로 상영의 기회를 갖기도 하였다. <미명>은 곧 어떻게 관객과 더 만날 수 있을지. 기대하거나 생각하고 있는 방향이 있는가.

이원영

이종수 감독이 <인서트>의 공개를 비개봉 상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유사한 방식을 생각 중이다. 한국에서 독립영화를 극장 개봉하는 것 의미를 고민 중이고, 여러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시기다.

[인터뷰 김민세 영화평론가]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이후, 2024 제5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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