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유도 선수 세르지오는 외딴 시골 마을 레미스에 체육 교사로 발령받는다. 마을에는 수년 전에 일어난 열차 사고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다. 재난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이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은 신비스러운 소년 마테오를 껴안는 것이다. 포옹으로 슬픔과 괴로움을 전이시킨다는 초현실적인 상황은 마을 사람 모두에게 기적이자 저주이다. 세르지오는 마테오와 교감하며 그의 비극적 삶을 변화시키려 노력하지만 결국 그 노력은 모두의 비극으로 전염된다.
<홀리 보이>가 초현실적인 설정들을 통해 건들고 있는 것은 신체와 전염의 코드다. 신체 간의 접촉을 통한 전이, 혹은 타인의 신체로의 접속. 이러한 설정들은 단순한 장르적 상상력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비극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혹은 아웃사이더라는 타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간다. 공교롭게도 이 두 가지 질문은 수년간 한국 영화가 놓지 못한, 동시에 그 너머로 나아가지 못한 질문이기도 하다. 영화 내외의 여러 고민들을 잔뜩 안은 채로 만남이 약속된 장소로 향했고, 한국 관객에 대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김민세 영화평론가
두 번의 상영을 마친 시점이다. 한국 관객들과 만난 소감이 어떠한지.
파올로 스트리폴리 감독
굉장히 열정적인 관객들과 만나 감사한 마음이다. 보통 영화제에서 질문을 받으면 피상적인 질문이 나오기 마련인데, 부산의 관객들은 날카롭고 깊이 있는 질문들을 주어서 만족스러웠다.
김민세
2021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데뷔작 <클래식 호러 스토리>는 호러의 장르적 특성과 감각에 집중한 영화였다. 반면 <홀리 보이>는 공동체적인 상실감과 비극, 욕망 등, 보다 사회적인 시선으로 접근해 장르를 활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호러는 정치적인 장르이나 <클래식 호러 스토리>와 <홀리 보이>의 작업은 또 다른 방식 안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종의 도전이기도 했을 텐데, 어떤 점들을 새롭게 시도해 보게 되었는지.
파올로 스트리폴리
<클래식 호러 스토리>는 직관적인 호러 영화였다. 정치적인 이야기가 확실히 존재하긴 했지만 풍자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이번 작품인 <홀리 보이>에서는 전작들 보다 사회와 정치적 이슈에 더 깊이 들어가고자 노력했고, 인물의 중요도를 더 부각시켰다. 개인적으로 호러는 정말 아름다운 장르이다. 현대의 많은 호러 영화 감독들이 현대적인 인물과 사회 문제를 그리기 위해서 이 장르를 많이 사용하고, 그만큼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보고 나서도 계속 내 안에 남아 있는 영화를 좋아하고 보고 싶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김민세
<홀리 보이>에서는 '포옹'을 통해 슬픔을 없애는 초현실적인 기적이 일어나고, 그에 따른 비극도 일어난다. 개인적으로는 포옹을 이렇게 마음 편히 볼 수 없던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먼저, 왜 포옹이었는지 묻고 싶다. 가령 신체를 통한 접촉이 필요하다면 손을 맞잡는 등의 다른 액팅도 가능했을 것이다. 포옹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어떠한지.
파올로 스트리폴리
단순한 터치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포응은 그보다 더 깊은 행위이고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맥락을 포함하는 행위이다. 동시에 포옹에는 모호한 지점 또한 존재한다. 아름다운 치유의 행동이기도 하지만 압박하거나 강제적, 폭력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특히 17세의 청소년 남성 마테오는 안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데도 마을 사람들이 억지로 포옹한다. 그것은 분명히 학대적인 면을 갖고 있고, 영화 안에서 이러한 포옹의 양가적인 면을 표현하려 했다.
김민세
영화에서 대부분의 포옹은 이해관계나 욕망 안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마테오와 세르지오가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행하는 포옹은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순수한 포옹이라 생각했다. 그 장면에서 마테오가 껴안으려 하자 세르지오가 잠깐 주저하는 모습이 있지 않나. 하지만 포옹 뒤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러니로 가득한 장면이다.
파올로 스트리폴리
그렇다. 영화 내에서 가장 진실한 포옹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다소 전략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과의 포옹은 마테오가 원하지 않지만 강제적으로 벌어지는 것이라면, 정작 마테오가 포옹을 원할 때면 세르지오가 망설인다. 세르지오는 마테오가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안아주기를 원했던 사람이고 서로 교감하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포옹한다면 자신의 아픔이 마테오에게 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는 것이다.
김민세
유도 선수 출신인 세르지오의 캐릭터와 유도 강습의 장면도 포옹의 아이디어와 관련한 것인가. 유도 대결 중에는 서로 껴안는 듯한 터치의 순간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않나.
파올로 스트리폴리
터치와 포옹 때문은 아니었다. 유도라는 것은 원칙과 자제력을 기르는 것이 정말 중요한 무술이다. 그런 무술을 가르치는 사람이 결국에는 마테오에게 초능력을 자제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세르지오는 마테오가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지역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지만, 힘을 자제하는 방법은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후반부의 비극이 펼쳐지게 된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를 너무 필요로 하고 이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의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김민세
마테오의 캐릭터는 비밀스러운 괴물 같은 인물이지만 동시에 아웃사이더를 대변한다. 학교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것을 포함해 성정체성의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그렇기에 이 아웃사이더적인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빙의해서 조종하는 발상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단순한 아웃사이더의 반항과 공격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를 다른 방식으로 체험하고 나름의 사회화를 시도하는 것처럼도 보이기 때문이다.
파올로 스트리폴리
말한 바가 맞다. 그렇게 봐주어 감사하다. 영화에서 세르지오는 마테오에게 직접 사람들과 교류하며 마을 공동체에 어울려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세르지오가 알지 못했던 점은 마테오는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계속 학대를 받으며 살아왔고, 일반적인 소통 자체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러다 보니 마테오에게 직접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사람들 몸으로 들어가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어떤 면에서 자신을 학대해 온 사람들을 학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폭력적인 행동을 당한 사람이 폭력을 가하는, 복잡하지만 동시에 이해가 가능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김민세
단순히 물리적인 가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몸에 접속하여 조종하는 모습에서도 어떠한 전염 내지는 감염의 코드가 느껴졌다. 한편 그 몽타주 장면은 마테오의 뒤틀린 욕망을 가장 가까이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미스터리를 지닌 인물을 타자로서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가감 없이 드러내고 깊숙이 이해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신체와 정신이 서로에게 어떻게 접속하고 전염되며, 이를 통해 타자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영화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파올로 스트리폴리
마테오의 시점에서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었다. 부도덕한 행동이지만 마테오는 그것을 기분 좋게 즐기고 있기 때문에, 무섭거나 기괴하기보다는 좀 더 가벼운 톤으로 장면을 연출하려 했다. 세르지오가 강조했던 ‘경험’이라는 것이 괴상한 방식으로 일어나는 순간이다.
김민세
외딴 시골 마을은 종종 공포 영화의 배경이 되곤 한다. <홀리 보이>에서도 레미스라는 마을의 지역적 특징은 중요한 부분이다. 시골 마을의 폐쇄성과 통속적인 분위기 등이 이 영화의 결정적인 사건들에 큰 요건이 된다. 이탈리아의 지리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이 마을의 장소적 특징을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 어디서 촬영했고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를 모티브로 했는지.
파올로 스트리폴리
실존하는 지역은 아니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물색했고,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주에서 두 장소를 발견했다. 한 곳은 슬로베니아 국경 지역에 있는 산이고, 다른 하나는 베네토주와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마을의 대부분 장면은 이 두 곳을 한 마을처럼 느껴지게 연출하여 촬영했다.
한편, 멀찍이서 와이드한 쇼트로 산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사파다라는 마을에서 촬영했다. 그곳의 산들은 절벽처럼 경사가 가팔라서 산들이 에워싸고 있는 중심부에 들어가면 마치 계곡 안에 들어가 있는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매우 아름답게 햇살이 비치는 곳이지만 산의 경사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햇살이 중심부의 지면으로 떨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아름답기보다는 무서운 느낌을 주는데 이건 어떤 면에서 포옹이 가진 이중성과도 연관한다. 마치 산이 마을 전체를 포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에는 아름다움과 공포감이 공존하는 것이다. 포옹을 지정학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김민세
시골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주민들의 얼굴 또한 기억에 남는다. 가령, 중반부에 마테오가 초능력을 이용해 어떠한 노파를 트럭에 짐칸에 고꾸라지게 하지 않나. 그 노파의 얼굴이 <홀리 보이>가 보여주고 있는 외딴 시골 마을의 리얼리티를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주민으로 출연하는 다른 단역들의 얼굴들도 마찬가지다. 노파를 포함해서 몇몇 장면들에서 비전문 배우들이 참여했다고 알고 있는데, 실제 마을의 주민들이었는지.
파올로 스트리폴리
노파와 엔딩에 나오는 마을 주민들은 모두 비전문 배우다. 일단은 엑스트라만 전담하는 캐스팅 감독이 따로 있었고, 로케이션 헌팅 과정에서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섭외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디테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빨리 엑스트라를 구하는 편인데 나는 보다 구체적인 방향으로 신경 쓰려 했다. 처음에는 공포 영화에 어울리는 이상한 얼굴들을 찾으러 다녔는데 결국에는 이탈리아 보통 사람들의 얼굴을 담고 있는 인물들을 섭외했다. 관객이 주민들을 처음 마주하게 되었을 때, 무언가를 저지를 사람들이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하고 그저 보통 마을 사람이라는 것을 믿게 하고 싶었다.
김민세
마지막 군중 씬은 여러모로 촬영이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비전문 배우에게 특정한 표현적인 몸짓을 연기하게 하는 것인데, 디렉팅과 더불어 현장을 통제하는 과정도 큰 규모의 작업이었을 것 같다. 당시 현장의 비하인드를 들어볼 수 있을지.
파올로 스트리폴리
특정 몸짓을 만들어내기 위한 안무가가 있었다. 안무가는 단역들이 전문 배우도 아니고 댄서도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연기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 했지만, 캐스팅 과정에서 단역들의 괴상한 몸짓이 담긴 영상을 요청해 참고 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닐 것으로 판단했다. 문제는 그 연기를 개개인으로는 할 수 있지만 동시에 다 같이 연기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위해 리허설을 두어 번 했는데 그 과정에서 20명 정도가 낙오되기도 했다. 한 사람이 땅에 넘어지는 연기를 하는 것은 괜찮은데, 150여명의 사람들이 한 번에 넘어지는 것은 단역 입장에서 굉장히 무섭고 다치기도 쉬운 일이지 않나. 그래서 리허설 테이크를 다시 갈 때마다 마치 <배틀 로얄>(2000)처럼 단역 수를 줄여갔다. (웃음) 결론적으로 나온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김민세
영화 속의 마을 사람들은 열차 사고를 겪은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 이러한 공동체의 상처는 동시대 한국 관객들에게 피부로 느껴지는 면이 있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등이 그러하다. 실제로 이러한 사건 이후 만들어진 한국 영화는 재난의 이미지를 종종 불러오곤 한다. 그런 면에서 <홀리 보이>는 그러한 재난의 역사와 이미지를 호러 장르 안에 녹여냈다는 생각인데, 감독님이 보고 경험한 고통과 재난은 무엇이었는지.
파올로 스트리폴리
지금은 로마에 살지만 고향은 이탈리아 남부의 코라토라는 지역이다. 그곳에서 이 영화에서 말하는 것과 유사한 열차 충돌 사고가 있었다. 당시 내 주변에 사고를 당한 사람은 없었지만 아직까지도 깊은 충격으로 남아있다. 그러다 만약 300명, 400명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내가 아는 사람의 가족이 죽을 수도 있고. 이런 일을 겪고 나면 그 지역 사회가 완전히 변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찾을 것이고, 이 영화에서는 마테오가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탈출구가 된 것이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지만 사실은 저주와도 같다. 마치 마약에 중독되는 것처럼 마테오에게 중독되고 의지하게 되는 것이기에 슬픈 일이다.
김민세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지.
파올로 스트리폴리
올해 여름에 촬영을 마치고 편집 중인 새 영화가 있다. 공포 영화는 아니지만 아주 어두운 가족 이야기다. 남부 이탈리아가 배경이기 때문에 <홀리 보이> 같은 산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90년대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에 걸친 부르주아 가족의 이야기이다. 내년쯤에 극장 개봉과 영화제를 통해 관객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 김민세 영화평론가]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이후, 2024 제5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