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어느 학교, 남학생들로만 구성된 학급에 유일한 여학생 프레드(스텔라 웬딕)가 전학 오며 영화는 시작된다. 낯선 존재의 등장은 여느 틴 무비의 오프닝 공식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의 활력을 책임지는 건 그저 호기심 어린 시선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청소년들이 성장기 마주치게 되는 불안과 외로움이라는, 낯선 감정이 있어서 더 반짝이는 한 시절의 기록이다. 프레드와 세 남학생 안테로(지아코모 코비), 파시니(피에트로 주톨리시), 미티스(사무엘 볼투르노)는 각자의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타인의 세계와 어우러진다는 건 무엇인지 찾기 위해 시종 육체적인 에너지를 분출한다. 무엇보다 그 들뜬 에너지를 감수성의 영역으로 초대하고 장면 안에 붙잡는 라우라 사마니의 섬세한 시선이 돋보인다. 그 비법을 물었을 때 라우라 사마니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한 길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이 당연하다는 말을 지탱하는 것은 서로 다른 모든 인간적인 면에 대한 존중 그리고 한 시절에 대한 사랑임을 느낄 수 있었다.
변해빈 영화평론가
3년 전 장편 데뷔작 <스몰바디>(2021) 이후 다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인터뷰 시점 당시) GV도 한 차례 마쳤는데 소감이 어떤가.
라우라 사마니 감독
3년 전에도 직접 부산국제영화제에 방문 예정이었는데 비행기를 갈아타는 과정에서 옆자리 승객이 양성 반응이 뜨는 일이 있었다. 당시엔 룰이 엄격했던지라 방문하지 못했다. 이번에 GV를 하면서 느낀 것은 관객들이 굉장히 트렌디하다는 점이었다. 집요하고 호기심이 많고 사소한 디테일을 파악해 질문해줘서 좋았다.
변해빈
이번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나 에피소드가 있는가. 지아니 스투파리치의 소설 <One Year of School>를 읽었던 경험담과 그 소설의 내용을 일부 각색했다고 들었다.
라우라 사마니
그 소설을 읽었던 고등학교 시절, 실제 나의 현실 상황이 메타내러티브했다. 소설 속에 나오는 바로 그 고등학교를 다녔고, 주인공들과도 같은 나이였다. 게다가 이번 영화의 주인공 프레드처럼 나도 남학생들 사이에서 유일한 여학생이었던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어쩌면 <스몰 바디>와도 조금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소녀들의 외로움을 다루고 있지만 어느 정도는 부드럽고 친절하고 그러면서도 슬프지 않은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정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두 번째 영화를 만들면서도 그런 맥락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변해빈
말씀하신 <스몰 바디>와 공명하는 지점이 있지만 틴 무비라는 점에서 약간은 다른 톤을 지니고 있었다. 틴 무비를 만든 계기가 있는지, 수많은 틴 무비 사이에서 어떤 차이를 두려던 게 있었는가.
라우라 사마니
모든 감독이 직접 말로 하지 않아도 틴 무비를 만드는 것은 길티 플레저인 것 같다. 잔인하면서도 대중적인 면이 있고 열정적이라는 점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의욕을 주는 게 있지 않나. <퀸카로 살아남는 법>처럼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영화가 되는 측면이 있어서 틴 무비를 만드는 건 모든 감독이 당연히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틴 무비와 다르게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라는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도시는 이탈리아 안에서도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데다 이곳만의 특정 방언을 사용한다. 이 점이 캐스팅에도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온 스텔라 웬딕을 제외하고선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배우를 구했는데, 전부 트리에스테 방언을 구사하는 신인 배우들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다. 또 영어 팝 음악 이외에 트리에스테에서 많이 퍼졌던 지역 음악을 특히 많이 사용하게 됐다. 이 지역이 슬로베니아와도 국경을 두고 있어서 펑크 음악이 이탈리아게 퍼지게 된 그 시작점이지 않나. 비유하자면 서울이 아닌 전주를 배경으로 만든 틴 무비이다.
변해빈
주인공 프레드는 학급 내에서 유일하게 여학생이다. 청소년 시기엔 전학이라는 상황 자체도 새로운 문화에 유입되는 사건이지 않은가. 여기에 다른 성별로 구성된 하나의 그룹에 한 번 더 소속되어야 하는 입장이 캐릭터에 부여됐다.
라우라 사마니
매우 드물긴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아마 한국과는 다를 것 같은데 이탈리아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공부할지 선택할 수가 있고, 그 선택 과목에 맞는 학교로 진학한다. 그러다 보면 고등학교 때부터 젠더적인 갭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여학생들은 주로 인문학을 선택하고 남학생들은 주로 수학을 선택하는 식의 차이. 프레드는 건축을 공부하고 싶어하고, 그 이유에서 건축을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뿐이다. 앞서 말한 소설 <One Year of School>에서도 똑같이 남학생들의 학교에 여학생이 유입되는 세팅이 있다. 비교적 흔한 사회적인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어딜 가든, 남학생들에게 둘러 싸이게 되는 어떤 포지션에 놓이게 될 때가 있지 않은가.
변해빈
남학생들은 프레드에게 짓궂다. 어떤 면에선 그들의 행동이 폭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체육 수업 후 탈의실에서 옷을 빼앗겨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던 장면 같은 것에서. 하지만 완전히 폭력으로 기울지 않는 분위기 또한 있었다. 폭력과 짓궂음의 경계를 어떻게 조율했는가.
라우라 사마니
그 균형을 지키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이 각본은 또 다른 여성 한 분(각본가 엘리사 돈디)과 공동 작업했는데 막상 남학생들이 이렇게 잔뜩 등장하고.... 그래서 일단 정해진 구조를 구축하는 게 먼저였다. 처음에는 남학생들의 시점에서 프레드를 바라보는 걸로 쓰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그 시점이 프레드 중심으로 전환된다. 그 전환점이 프레드가 옷을 빼앗긴 장면인데, 그동안 남학생들을 따르던 카메라가 이때부터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굉장히 오랫동안 비어있는 공간을 비춘다. 이들은 왜 이런 짓을 할까? 그러면서도 남학생들을 책망하거나 옳고 그름을 구분하려던 것은 아니다. 청소년에게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결국 배우지 못하지 않는가. 그런 사회의 잘못이 더 크기 때문이다.
변해빈
영화에는 인물들이 수다를 떨거나 장난을 치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때 즉흥적인 리듬이 발생한다. 자유롭고 거침없는 대화나 몸짓이 오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것은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부터 계획하는 편인가. 현장에서 배우들과는 어떻게 호흡을 맞췄는가.
라우라 사마니
일단 연기 코치와 함게 세 남학생을 연기할 세 배우를 길거리 캐스팅했다. 가능한 인물이 가진 성격과 비슷한 인간적인 측면을 가진 배우를 캐스팅했고, 실제 인물들처럼 친구가 되게끔 프로세스를 거쳤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들은 친구가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게 원래 내 친구와 비슷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개인적이고 즉흥적인 걸 만들어 내기 위해 리허설을 정말 많이 했고 5개월이 걸렸다.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맥주를 마시면 오늘 만나서 맥주를 마시러 가고, 그다음은 커피를 마시러 가고... 장면과 같은 세팅을 가지려고 했다. 또 배우들에게 각각의 비밀 장소에 나를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 장소를 통해 그들의 감정적 깊이에 대해 탐구를 했고. 나도 그들을 내 비밀 장소에 데려가 주었다. 이런 작업 후 아주 나중에 스크립트를 보여줬다.
(라우라 사마니 감독은 통역이 이루어지는 사이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촬영이 이루어지기 전 스텔라 웬딕, 지아코모 코비, 피에트로 지우스톨리시, 사무엘 볼투르노가 한 프레임에 담긴 모습. 이것 자체로 영화 스틸 같았다.)
세 남학생을 연기한 지아코모 코비, 피에트로 지우스톨리시, 사무엘 볼투르노를 먼저 캐스팅하고 나중에 프레드 역의 스텔라 웬딕을 캐스팅했다. 그러다 보니 극중 프레드를 본 이 남학생들의 반응이 실제일 수밖에 없는 게 트리에스테라는 시골 소년들 앞에 스웨덴 출신의 똑똑하고 예쁘고 용감한 그런 소녀가 진짜 실제로 거기 나타난 거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아까 말한 메타네러티브한 그런 거였다.
변해빈
인물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고 심지어 활기차다. 장소를 변화하기 위한 이동성이라기보단 스크린 안에서 계속해서 어떤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느낌. 반드시 달리기를 해야 하는 급박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높은 텐션의 움직임을 보인다는 인상이 있다.
라우라 사마니
그 나이대를 반영하는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배우들이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어서 영화 촬영이 끝나면 감독, 촬영 감독, 책임자들은 지쳐저 잠이 들 때 그들은 ‘한잔하러 가야지’하는. 실제로도 높은 텐션이 유지되는 친구들이었다.
변해빈
인물들은 겉으로는 자유로운 영혼들처럼 보이지만, 그들 내에선 나름의 규칙이 존재한다. 자신들의 아지트가 관리되는 방식이나 프레드를 둘러싼 남학생들(안테로, 파시니, 미티스)의 관계에서도 건들면 안 되는 규칙이 존재하고. 또 끝내 그 규칙이 건드려지는 것을 계기로 인물 관계에 변화가 찾아온다. 모종의 규칙이 깨지는 순간으로부터 발생하는 변화에 기대하는 바가 있는가.
라우라 사마니
각본 단계에서 어떤 규칙을 만들어 빌드업하고 그것이 인물들에 의해 깨지는 시도를 하는, 그런 과정이 즐거웠다. 하지만 사실은 젠더적인 차이가 반영된 이런 규칙들은 멍청한 규칙이지 않는가. 프레드는 남학생들의 그룹에 다 속하고 싶으면서도 그중 한 명과 로맨틱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반면 남학생들이 보기엔 안 되는 일이고. 그룹 중 한 명을 택해선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각각 자신을 원해주길 바라는, 말도 안 되는 규칙이 있다. 스크립트를 쓰면서 이 규칙을 깨는 이가 누가될지 생각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어차피 처음부터 그 규칙을 깨는 이는 안테로로 정해 있었지만.
변해빈
전반부가 인물들의 육체적인 활기로 가득하다면 후반부에 이를수록 프레드의 내면 언어가 중심을 잡게 된다. 특히 후반부 프레드가 언어를 수집하고, 글을 쓰는 장면, 그때의 내레이션이 중요하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겪었는지를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육체와 내면의 자리 변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라우라 사마니
그렇다. 젠더 갭이 얼마나 크고 그 불균형이 얼마나 있건 간에 뭔가를 공부한다는 것, 새로운 것을 공부하는 일은 누구든 똑같이 공평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이런 괴로움이 있어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한 가지가 새로운 무언가를 배운다는 그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정말 사소한 거다. 예를 들어 화분을 키우는 것 같은 그런 사소한 거라도 뭔가 새로운 거를 배우는 일에 집중하면 점차적으로 고통이 사라질 수 있다.
변해빈
오프닝에선 공간(학교)에 진입하는 카메라 무빙을 보여줬다면 엔딩은 그 반대로 공간(학교)에서 걸어 나오는 인물의 동선을 보여줬다. 낯선 사회 또는 공동체에 들어간 인물이 그 안에 완벽히 섞여 들거나 적응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한 이유가 있는가. 또 관객들이 어떤 감흥을 느끼길 바란 게 있는가.
라우라 사마니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가 다른 사람들하고 이렇게 같은 장소에서 단체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굉장히 개인적인, 그 여정이라고 생각해서 반드시 어떤 걸 느끼길 바란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다만 프레드를 보며 어떤 안도감, 그다음에 자발적으로 용서하는 것.... 사실 그 나이대 청소년들이 자아를 찾는 데 있어 가장 많이 하는 행위가 어떤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 그리고 또 사람들과 단절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와 인연을 끊어내는 걸 하면서 자아를 찾는 과정이 이루어진다. 영화에서 프레드는 다른 이들과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고통스럽긴 하지만 원망도 무엇도 없이, 자기 혼자서 그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나아간다.
관객들이 자신들의 첫사랑, 또는 자기가 처음으로 몰려다녔던 친구들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관계가 잘 끝났을 수도 못 끝났을 수도 있지만, 이제 성인이 되었다면 돌아보면서 아 그들과 얼마나 즐거웠는지 혹은 아직 남은 앙금,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런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변해빈
끝으로 앞으로 계획된 것들은 무엇인지,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가.
라우라 사마니
여성의 몸에 관한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있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플롯 등은 없다. 지금은 이번 영화의 여운을 좀 더 즐기고 싶다.
[인터뷰 변해빈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