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태풍클럽>(1985)의 4K 디지털 복원판 개봉에 이어 1년이 지난 지금 <이사>(1993)와 <여름정원>(1994)이 연달아 복원판으로 개봉하면서, '소마이 신지'의 영화가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소마이 신지 열풍이라고 하기엔 거창할지 모르겠지만, 그의 죽음 이후에도 자꾸만 그를 거론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코아르에서 이상용 평론가가 남겨두었듯, 아이가 갖고 있는 특유의 쉼 없는 재잘거림 혹은 특유의 에너지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정식 개봉한 소마이 영화 3편이 전부 '아이를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은 그의 영화를 함축하기도 하지만, 분명 아쉬운 지점도 있다. 3편의 영화는 각각의 분위기와 스타일이 다르긴 하지만, 소마이를 단순히 아이를 다루는 감독으로 치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총 13편에서 아이가 주연인 영화는 모두 7편이다). 많은 평론가가 주목했던 '아이'에 관한 평론은 꽤 많이 축적되었으니 차치하고, 소마이 신지가 마주해야 했던 시대성과 일본 영화사의 쇠퇴, 영화 안에서 공통으로 작동하는 구도와 움직임이 말하는 주제 의식에 대해 먼저 논구함이 유의미할 것이다.
'소마이 신지'가 니카츠에서 견습생으로 작업하던 당시의 1970년대는 일본 영화가 쇠퇴기를 맞이하고 있던 시기였다. TV의 보급으로 인해 영화 관객 수는 급감했으며, 메이저 스튜디오는 문을 닫거나 생존을 위해 저예산 로망 포르노로 전향하던 추세였다. 게다가 급진적 사회 정치 운동을 견인하던 그전 시대의 문화적 토양에서 비롯된 영화(뉴웨이브)가 여가생활을 추구하는 세대에게 어필하지 못하면서, 일본 영화 산업은 침체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태동했던 일본 사회의 직접적인 변화는 한 시기를 지속하였던 대가족 기능의 약화로 점화되었다. 1970년대 전후로 핵가족 가구 비율은 63%에서 74%로 증가했고, 편도 세대와 1인 가구의 증가하면서 상호 돌봄은 그 기능을 점차 상실해 갔다. 가족의 기능을 서로 분담하였던 이전 시대의 종국은 곧 심리적, 정서적 불안을 초래했고, 전업 주부들의 스트레스는 가족 불화의 원인으로 제기되기도 하였다.
가전제품 보급, TV와 비디오 확산, 편의점의 등장 등은 가정의 기능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일본 영화의 구세주라 불리는 하세가와 카즈히코는 사회와 세대 문제를 수면 위로 건져 낸 과감하고도 파격적인 영화 문법을 선보인 감독이었다. 컬트 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청춘의 살인자>(1976)와 <태양을 훔치는 사나이>(1979)는 현대 젊은 청년들의 방황과 일탈, 기성세대와 사회 불만, 심지어는 패전과 핵폭탄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던 일본 사회의 불확실성을 겨냥한 영화로 큰 화제를 모았다. 개봉 당시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거듭 재평가를 받으면서 키네마 준보에서는 2018년 1970년대 일본 영화 베스트텐 1위로 꼽기도 했다.
하세가와 카즈히코는 어떤 의미에서 일본 영화에 걸쳐 있는 '특성화'된 문제를 해체하기 위해 노력한 작가였다. 그는 독립 예술영화 제작과 배급 지원을 통해 작가주의에 통로를 마련했으며, 이때 카즈히코의 조감독으로 활동했던 소마이 신지는 자신만의 영화적 역량을 발휘할 방법을 그와 함께 모색할 수 있었다. 하세가와 카즈히코는 소마이 신지를 "질문도 많고 귀찮았던 녀석"이라 밝힌 적이 있는데, 이는 소마이 신지가 영화를 향한 열의를 대변하는 말이자 그에게서 많은 측면을 흡수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격변의 70년대가 지나 카즈히코의 바통을 이어받은 소마이 신지는 자신만의 영화를 발굴하기 위해 흥미로운 기획을 감행한다.
꿈꾸는 경계의 세계
파격적이며 아방가르드한 하세가와 카즈히코와 테라야마 슈지 영화의 조감독을 했던 소마이 신지가 첫 영화로 선택한 건 <꿈꾸는 열다섯>(1980)이라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발랄하고 엉큼한 작품이었다. 사실 이 만화 자체는 대중이나 평단에는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당시 마이너한 작품으로 분류되었고, 고등학생이 동거한다는 특수한 소재로 인식될 뿐이었다. 신인 감독인 소마이 신지는 자신이 처한 상업적 제약 속에서 도전적인 실험보다는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할 방법을 채택했는데, 그것은 만화를 영화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업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잠재력이 높은 아이돌을 영화에 투입하는 전략을 취했다.1) 이때, 소마이는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등의 전방위적인 시도를 거듭하던 제작사 키티 필름에 영입되었고, 메이저 스튜디오였던 쇼치쿠를 통해 소규모 미니시어터를 포함한 전국 극장 망에 <꿈꾸는 열다섯>을 배급하며 그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소마이는 자신의 작가주의적 역량을 발휘하는데, 이는 단순히 그를 상징하는 롱테이크 기법뿐만은 아니었다. 그는 배우이자 아이돌인 야쿠시마루 히로코가 가진 상품화된 인격, 언어, 몸이 가진 규율을 해체하고자 했다. 그녀는 1980년대 여성 아이돌 인기 랭킹에서 5위를 기록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전형적인 아이돌 이미지를 갖고 있는 여자가 남자와 동거한다는 이 설정은 다른 의미에서 일본 사회의 혈연적이며 가족적 공동체를 벗어나 새로운 연대를 모색하는 것처럼 보였다. 흥미롭게도 일본 70년대 후반과 80년대는 미국식 스타 마케팅을 수용하고 모방했던 시기다. 스타의 이미지 관리와 제작, 팬덤 형성,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때, 소마이의 처음 시도는 도박적인 수였다.
그러나 그녀는 <꿈꾸는 열다섯>과 <세일러복과 기관총>에서 주제가를 부르며 미디어 그룹인 카도카와의 다양한 프로모션을 통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성공을 목격하던 소마이는 스타 이미지와 자신의 영화와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2) 가령 스타 이미지와 그가 하고자 했던 영화적 방식 사이에서 그의 고집을 드러냈던 예시 중 하나는 영화 후반부에 두더기 잡기 장면에서의 현장 상황이다. 주요 인물 4명이 모이는 이 장면에서 회사는 얼굴을 클로즈업 해야 한다고 성토했지만, 소마이는 끝까지 의견을 굽히지 않고 그대로 미디엄 숏을 썼다. 소마이는 캐릭터와 작품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산업의 한 형태로 소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소마이는 아이돌의 이미지에 복무하던 아이의 선천적 태생을 해체하고 전복되는 것을 바랬다. 이를 지켜보는 10대 관객은 자신과 비슷한 연령이 펼치는 발칙한 남녀의 긴장 사이에서 아이돌로부터 소급되는 '영원한 청춘'3)이라는 신화가 허물어지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의 전략은 이러한 이미지를 비신화화하는 것에 있었다.
또한 <꿈꾸는 열 다섯>의 주인공은 마치 신혼부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케이(야쿠시마루 히로코)가 하교하고 온 유스케(츠루미 신고)를 위해 음식을 차려놓고 '꼭 양치질하고 손 씻고 먹으라는 메모'를 남기기도 하고, 유스케의 방에 있는 벽장에 잠입하여 그를 기다리는 모습이 그렇다. 고등학생들이 할 수 없는 이상한 대사와 옷차림은 성년 행세를 하는 어른과 아이 사이의 경계를 의뭉스럽게 관통하고 있다. 케이와 첫 데이트를 하는 나카야마(오미 토시노리)는 하얀 셔츠와 바지, 넥타이를 입고 머리를 올리고 자동차가 오가는 위험한 자리에 앉아 현학적인 말을 쏟아낸다. 이어지는 장면은 속옷을 드러내면서까지 옷을 갈아입고 유스케의 셔츠 단추를 풀러는 여자아이가 나오면서 소마이는 첫 작품부터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모색하고 있다. <세일러복과 기관총>에서는 평범한 중학생이 야쿠자 두목되는 이질적인 사태에서 경계를 생성한다. 영화에선 평범한 아이지만, 관객이 보이는 이 현실 아이돌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자기 부하 어른에게 입맞춤한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현실의 경계, 즉 <태풍클럽>이 이야기하는 개와 종의 계열은 해체된다. 종보다 개로서 존재하는 소마이 영화는 계열화된 이미지에서 탈주한다.
장르와 인물이 범용적 성격을 지니면서 처음으로 관객에게 침투하는 사유란 경계 밖을 상상하는 것이다. 어른의 롤플레잉을 수행하는 이 아이들에게 소마이 신지가 처음 던지는 과제는 아이와 어른 사이의 경계를 부자연하고 불편한 형태로 세공하는 데 있었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자연적 태도'를 벗어나 여러 군데로 분할된 아이의 감정을 획득하는 일은 결코 동결될 수 없는 아이와 영화에 활력을 집어넣는 일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를 감정의 현상학이라 호명하고 싶다. 어떤 방식이든 의미 자체를 규명해야 하는 상태로 돌입하는 일, 감정을 호명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경계를 소환하는 일, 이를 위해서 어떤 방식이든 균열을 일으켜야 한다. 소마이는 캐릭터 감정을 응집하기 위해 더 나아가 부재한 세계 안에 침식된 존재를 그린다.
부재한 세계
그런 의미에서 '부모 없음'의 세계관은 마치 소마이의 영화를 내재화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유운성 평론가는 2009년 9월 27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소마이 신지: 저항의 미메시스>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한 바 있다. 여기서 그는 일본 영화의 특정한 양식이 '일본적'인 것으로 인지되고 마침내 엑조틱한 대상이 되었을 때, '일본적'인 것으로 즉각 인지되지 않는 일본 영화를 재발명해 내는 문제를 고민했던 감독4)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소마이 신지와 죽마고우였던 조감독 에노키도 코지가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과도 유사하다. 소마이 신지는 배우들에게 자주 "자연스럽지 않은 걸 하라고" 주문했다. 영화는 허구적이며, 도리어 부자연적이라는 테제 속에서 소마이는 순수한 감정과 반응에 집착했다. 그는 영화를 '일본적'이라거나 혹은 '영화적'이라는 것에 감염된 이미지 형태를 해독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가진 보편적 성질은 감정이라 믿었다.
근원적으로 소마이는 '일본 영화'로부터 스스로 고아와 같은 '부모 없음'의 위치에서 규범을 거부하고, 스스로 주체가 되고자 했던 개척자의 야성이 있는 감독이었다. 이전에 '고아(孤兒)'는 대표적으로 오시마 나기사 영화 <소년>(1969)에 나오는 것처럼 보수적 사회 구조와 권위주의적 아버지 상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다분히 사회문화와 정치적 담론의 대상으로 사용되었던 '고아'의 문맥을 소마이는 다른 방식으로 차용한다. 어른 없이도 아이들만이 창조할 수 있는 싱싱하고 민첩한 것, 곧 영화에서 주체가 되는 아이들은 부단히 자신의 움직임을 개조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스로 주체가 된다는 이 설정은 소마이 신지 영화에 일관되게 제시된다. 질풍노도의 시기라 할 수 있는 나이이자 언제든 목표를 향해 열화할 수 있는 나이인 청소년기 영화 세편 <꿈꾸는 열다섯>, <세일러복과 기관총>, <숀벤 라이더>(1983)에서 활약하는 배우들이 모두 그렇듯 부모의 존재는 미미하고, 심지어 <세일러복과 기관총>에서는 야쿠자인 아버지가 초반에 죽는 모습이 나온다. <태풍클럽>에서도 그렇다. 어른은 부재할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화면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술에 취해 있다. <눈의 노래>(1985)에서는 아예 고아를 배경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후기 영화인 <아 봄>(1998)은 고아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다루는 등, 소마이는 이 부재 사이에서 캐릭터를 맵핑한다.
아이와 부모 사이의 관계 붕괴는 불완전한 세계를 표방하고, 부재로부터 특징짓는 묘한 관계는 그의 영화를 결합하는 토대로 작동한다. 그의 영화의 여러 방면에서 구조화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마이는 적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모호한 관계들을 산재해 놓는다. 같이 동거는 하지만 사귀는 관계가 아니거나, 세일러복을 입은 평범한 학생이거나 기관총을 든 야쿠자 두목이거나, 야쿠자로 오인된 아이를 찾는 우스꽝스러운 전개에는 부재가 있다. 그의 영화에서 관계를 상징하는 독특한 모형이 있다면 삼각형인데, 가장 유명한 장면은 <이사>에서의 식사 장면이다. 가족 공동체의 붕괴를 암시하는 비대칭한 삼각형 식탁은 렌(타바타 토모코)을 기준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렌의 위치는 영화의 주체이자 아빠와 엄마를 연결하는 꼭짓점으로 극을 끌어나간다.
이는 단순히 시각화된 모형의 문제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소마이의 많은 영화에서는 남녀의 삼각관계가 대두된다. <눈의 노래>와 <빛나는 여자>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두 영화에서는 세 명이 각각의 삼각의 꼭짓점이 되어서 간격을 설정하는 숏이 있다. 삼각관계에 있는 남녀가 공터에서 공을 던지는 장면이 나오는 <눈의 노래>와 격투쇼를 운영하는 나이트클럽의 경영자와 사투를 벌이고 살해하는 장면이 나오는 <빛나는 여자>는 유사한 구도를 사용하는데, 이 두 영화엔 동일한 죽음이 있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필연적 부재 앞에서 소마이의 인물은 죽음을 맞이한다. 소마이가 나열하는 죽음은 감정이 완전히 소멸할 때 찾아온다. 그가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이 부재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의 후기 영화는 이를 응답하는 것 같다.
귀향을 위한 영화
소마이에게 인물 관계는 영원히 미결 상태로 존재하거나 어디론가 연장되어 있는 형태로 보인다. 일본 정통 드라마로 알려진 <물고기 떼>(1983)에서의 결말은 반복되고 순환하는 인류학적 고찰이 드러난다. 참치 잡는 일을 하던 중년 남성이 어업을 원하는 딸의 남자 친구를 혹독하게 다루다 결국, 남자 친구는 치열하게 참치를 잡다가 사망한다. 이때 딸은 그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는데, 아버지는 태어날 애가 만약 남자라면 어부로 삼아 달라는 남자 친구의 유언을 전한다. 여성을 고려하지 않은 영화의 시선은 과연 무엇을 향하는가.
소마이 초기 영화에서 아버지 혹은 중년의 남성성은 감정을 무겁게 틈입하는 요소로 묘사된다. <세일러복과 기관총>에서의 중년 남성들은 소녀를 단체로 희롱하고 농락하는 뉘앙스를 주고, <러브호텔>(1985)에서는 첫 장면부터 가혹하게 여성을 강간한다. <도쿄 하늘 반갑습니다>(1991)에서도 남성은 성폭력을 시도하려다가 결국 교통사고를 당해 여성이 죽는 장면이 나온다. 소마이는 왜 남성을 그렇게 묘사했을까? 가족에 대해 제한적으로 밝힌 내용에 의하면 그는 6세에 아버지의 전근으로 모리오카시에서 삿포로시로 이주하였고, 10세에 아버지를 잃었다. 이후 그는 홋카이도 내에서 여러 차례 이사하면서 성장하였고, 대학 진학과 영화계 진출을 위해 도쿄로 상경했다. 그는 아버지가 없는 현실 가정에서 살면서 분주한 어머니 없는 집에 거주하며 부재를 경험하며 영화제작을 꿈꿔왔다. 결혼하지 않았던 소마이에게 가족은 그가 궁극적으로 꿈꾸고자 했던 장소였을지도 모른다.
부재를 간직한 이가 그리움을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을 '귀향'이라 부른다. 이는 소마이 초기와는 달리 후기 영화에선 초기에 보여주었던 부모와 남성을 다루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후기 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 <이사>(1993), <여름정원>, <아 봄>(1998), <바람꽃>(2000)에서는 귀향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전환한다. <이사>는 가족에 대한 부재를 다시 봉합시키는 듯한 인상을 주는 최초의 영화다. 한 부부의 별거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이혼 위기에 봉착한 부부를 다시 결합하기 위한 고군분투하는 아이를 그린다. 소마이가 본격적으로 가족이나 어른에 대한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준 영화다.
필자는 <이사>의 마지막 장면에 도달하기 위해 불의 가마 축제와 소마이 자신의 어두운 심연과 같은 풀숲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소마이가 갖고 있었던 가족에 대한 감정을 되새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불의 축제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집으로 돌아온 조상의 영혼을 다시 저승으로 안전히 보내드리는 의미가 있다. 이것은 소마이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기리는 한편의 제의처럼 보인다. 그가 어린 시절 수 많은 이사에서 겪었던 상처가 이 영화로 회복되는 인상을 준다고 할까. 마지막 렌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나는 환상을 보면서 '축하합니다'라는 말이 보이스 오버와 렌의 입술을 통한 발화된다. 이 대사는 소마이의 목소리와 렌의 목소리가 함께 교차하는 것과 같다. 실제 아버지와의 결별, 불온한 중년 남성을 다뤘던 소마이의 영화는 결별을 선언한다.
그 이후에는 아빠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고 엄마와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렌이 말하는 '나의 가족'이란 주제의 발표에서도 아버지와의 관계는 삽입되지 않는다. 그의 영화의 전환점이자 자전적인 <이사>는 제목 그대로 '이사'라는 말처럼 다른 영화적 주제로 이동한다. 다음 영화인 <여름정원>에서는 아이들과 죽음을 앞둔 노인을 다루는데, 무력해진 노년의 남성성과 더불어 과거의 가해5)를 회고하며 반성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이사>의 렌이 그랬듯이 세대를 매개하는 아이들과 그들의 담임선생님(노인의 손녀이기도 한)은 노인과의 유대를 조성하며 소마이의 영화 후기를 개방하는 메타포 중 하나다.
가장 쇼치쿠 선배이자 일본 영화사에 거대한 업적을 남긴 오즈 야스지로 영화 <만춘>(1949)을 재해석한 것처럼 보이는 <아 봄>은 죽었다고 들었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만춘>은 사회적 관습이 요구하는 결혼제도를 통해 아버지가 고독한 고아로 남지만, <아 봄>은 반대로 고아였던 아버지가 가족의 품에 귀향함으로 진정한 유대를 전승하며 종결된다. 부재한 아버지, 어른, 가족이란 존재가 점차 회복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소마이 후기는 유대가 무엇인지를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소마이는 자신이 돌아가야 할 내재적 장소, 즉 중년 남성으로 표기되는 아버지 혹은 가족이란 관계를 오로지 귀향의 대상으로만 삼지 않았다. 그가 고향인 홋카이도만큼이나 오래 거주했던 '도쿄'는 그의 경험을 동기화하는 장소이자 귀향의 원인이 되는 장소다. <세일러복과 기관총>에서 주인공은 마지막 결투에서 살아남은 동료가 몇 달 후 홋카이도에서 출장으로 도쿄에 와 있다 봉변을 당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홋카이도는 다시 말하자면 소마이의 고향이고, 도쿄는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했을 뿐 아니라 학생 운동을 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빛나는 여자>에서의 초반 쓰레기가 쌓인 공간은 소마이가 여겼던 도쿄의 모습이다. 격투가 벌어지는 언더 월드, 부랑자들의 거리, 함께 생활하던 부랑자 친구의 분신자살은 일본 전체를 언표(사건들의 분산과 고유한 순간에 구성된)하는 장소이자 소마이가 탈출해야 할 장소이기도 하다. <도쿄 하늘 반갑습니다>에서 도쿄는 일본 아이돌 문화에서 몸을 팔아야 하는 자본주의 성 착취가 이어지는 장소다. 여기서 망자가 된 아이돌 유우(미카세 리호)는 마지막에 필연적으로 돌아가야 할 귀향의 장소에 관한 노래6)를 부른다. 직접적으로 고향으로 향하는 두 영화인 <빛나는 여자>와 유작 <바람꽃>(2000)은 소마이 신지의 고향인 모리오카시와 홋카이도를 언급한다.
<아 봄>에서도 그랬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병아리라는 생명을 잉태하는 순간 순환의 봄이고, <바람꽃>은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뀔 무렵의 맑게 갠 날 아직 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는 산맥의 바람에 날려온 세설이란 의미가 있는 것처럼 소마이는 자신으로부터 다시금 귀향의 장소를 홋카이도로 선택했다. 상사로부터 일방적 해고 통보를 받아 이제는 집이 없는 켄지(아사노 타다노부)와 5년 만에 딸을 만나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창녀 유리코(코이즈미 쿄코)의 귀향길은 소마이 신지가 희망을 찾기 위한 마지막 장소는 아니었을까. 2001년 9월 9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소마이는 고향인 아오모리현 다코마치에 영면했다.7) 흥미롭게도 이 장소는 아버지의 고향이자 본적지로 생전에도 소마이가 자주 방문했던 곳이다. 곧 귀향의 최종목적지는 중년 남성인 소마이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아버지였다.
부자연한 움직임
소마이 신지는 영화가 거짓말을 한다고 자주 말해왔다. 영화의 세계는 허구이지만, 카메라는 진실을 말한다는 전제는 앙드레 바쟁의 '투명한 재현'에서 매체가 가진 물질성과 한계를 의식적으로 드러내면서도 현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스크린적 리얼리즘 전통(Screen Realism)에 부합한다(대표적으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있다). 한마디로 "연기하고 있다"는 인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전문 배우를 기용하고,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므로 그의 영화는 자연적이라기보단 부자연적이다. 자연과 부자연의 경계에서 소마이는 교묘한 교차를 만들어내며 허구의 움직임을 실체화 구현하는 데 애를 쓴다.
그러므로 소마이는 시간의 특성을 이용한다기보다는 배우의 몸과 감정의 상태를 포착하려 한다. 그는 영화를 만들던 시기 전에는 많은 연극을 보았고, 영화보다 연극을 선호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배우를 사용하는 방식을 반영하는 단서다. 정해진 감정 표현을 거부했던 소마이가 아이를 활용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연기 패턴이나 내면화가 덜 되어있는 아이는 새로운 유형의 연기를 하기에 적합하다. 단편적으로 그들의 연기는 부자연의 움직임에서 출발한다. 대표적으로 <세일러복과 기관총>에서 이즈미의 첫 장면은 몸을 뒤로 젖히는 아치 자세를 한 채 거꾸로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한번이 아니다. 소마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자주 꼿꼿하지 않고 몸이 구부정해진다. 이 몸이 가장 유연하게 구부정한 순간은 성관계를 맺을 때이기도 하다. 그는 그 부자연 속에서 롱테이크를 구현한다. 그러므로 그의 영화에서 몸은 주뼛주뼛하지 않고 구부정 거리며 그 이상한 경계와 결함 사이에서 오싹하게 감정을 체화해 낸 인물과 배경이 존재한다. 소마이 영화에서 연기자는 끊임없이 달리고, 춤을 추며, 노래한다.
또한 소마이 영화에서 비는 한 번도 가냘프게 추락한 적이 없다. 불도 그렇다. <빛나는 여자>(1987)에서 버스 안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할 때나 <이사>에서 불을 이용한 장엄한 축제도 그렇다. 죽음이 몰아치거나 격동하는 사건 속에서 감정을 증폭하기 위해 소마이는 자연 환경을 언제든 인위적으로도 연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영화 대부분의 쏟아지는 비는 물 트럭을 사용해 인위적으로 비를 연출했고, <태풍클럽>에서는 사람을 동원해 나무를 흔들기도 했다.
이와 같이 현실 재현의 속성을 지닌 롱테이크와 마찰하는 인위적 연출은 부자연의 자연이라는 역설을 발산한다. 그는 특별히 배우들을 바라보며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하고, 대사를 하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 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자연스러움을 연기하고 연출하는 작가인 셈이다. 특히 <숀벤 라이더>의 가장 긴 롱테이크 장면을 촬영할 때 소마이는 배우들에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전혀 지시가 없었다고 한다. 단지 "그와 함께 도망가야 한다"는 것이 전부였다. <태풍 클럽>의 철저히 밀폐된 공간에서 촬영이 대부분 진행하기로 시나리오에 있었지만, 그는 교실에서 벌어질 예정이었던 장면을 체육관으로 옮겼고, 체육관 장면 후 아이들을 모아 폭풍이 다가오는 순간을 밖에서 촬영하기로 했다. 소마이는 오로지 감정이 진실임을 믿었다. 그 감정은 단지 인물을 가까이서 식별하기 위해 카메라를 이용하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 소마이가 영화에 자신을 올 곳이 반영하고 끄집어냈듯 배우의 연기 또한 그러길 바랬다. 13편의 작품에서 작동했던 평균 61초의 긴 쇼트는 영화가 어디까지 '감정'이 리얼리즘으로 도달할 수 있을지에 문제였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말하듯 소마이 신지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는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일본 감독들에겐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 참고
1) 허우샤오시엔의 데뷔 작품인 <귀여운 여인>도 같은 맥락이다. 그도 메이저 스튜디오 시스템이 약화되고 있을 당시에 로맨틱 코미디 장르와 스타였던 종진도와 펑페이페이를 배우로 기용하면서 데뷔하였다.
2)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적 본질의 매력을 상품으로서의 영화와 어딘가에서 연결하지 않으면, 다음 번 내 영화 제작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3) Between Boundaries: Deconstructing Youth in Shinji Somai’s 1980s Cinema. Peihuan Wang
4) https://annual-parallax.blogspot.com/2015/08/critique.html
5) 참혹한 전쟁 경험에서 이 노인은 필리핀 정글에서 현지 가족을 살해한 과거를 아이들에게 토로한다. 이 죄책감으로 노인은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했고, 아내는 노인이 죽었다고 생각한다.
6) 클럽에서 노래를 하는 유우(마키세 리호)가 “마을의 불빛이 꺼지고 이제 별은 돌아갈 때가 되었고 돌아가고 싶지 않은 둘 만을 남겼네”라는 가사를 부른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