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의 선율'이 아이의 욕망을 보여주는 방식
'수연의 선율'이 아이의 욕망을 보여주는 방식
  • 김민세
  • 승인 2025.08.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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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앞에서 '아이'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 <수연의 선율>

유일한 친족인 할머니의 죽음 이후, 수연은 홀로 집에 남겨진다. 보호자 없이는 보육 시설로 들어가게 될 상황에서 수연은 자신을 받아줄 가족을 스스로 찾기로 결심한다. 그 와중, 유튜브 브이로그를 통해 입양을 계획 중인 한 부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미 입양된 아이 선율에게 접근하며 이들과 가까워지려 한다. 이 과정에서 수연은 행방을 알 수 없는 부모에 대한 사연과 어른 없이 홀로 남겨진 자신의 처지를 철저히 숨기고 거짓말한다. 수연이 진실을 말하는 때는 카메라 앞에 섰을 때이다. 선율의 친구를 소개하는 브이로그 촬영을 위해 스마트폰 카메라를 켠 부부 앞에서, 수연은 할머니의 죽음 이후 보육원에 가야 하는 자신의 사정에 대해 고백한다. 수연의 사연을 들은 유리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카메라는 모든 것이 녹화되고 있는 스마트폰 화면에 다가간다.

이 장면은 영화의 결정적인 전환을 낳는 순간이다. 부부 앞에서, 혹은 카메라 앞에서 처음으로 진실을 말한 이 순간을 기점으로 부부 가족에 편입되려는 수연의 욕망은 실현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후 갑작스러운 부부의 실종으로 수연의 욕망은 깨어진다. 부부가 브이로그를 통해 만들었던 허구적 세계는 무너지고 아이들은 보호막 없는 현실 세계에 놓인다. 그렇다면 카메라 앞에 놓인 이들은 어떻게 허구적 세계를 만들어내고, 스스로를 연출하며 욕망을 실현하는가. 이렇듯 <수연의 선율>이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이기 이전에 흥미로운 지점은 브이로그라는 동시대적인 매체를 배경으로 진실과 거짓, 각자의 욕망이 뒤얽히는 양상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 <수연의 선율>

<수연의 선율>은 행복한 가족의 겉모습만을 연기하는 쇼윈도 부부의 이중성을 가시화하기 위해 브이로그라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최종룡 감독이 스스로 말한 것처럼, 유리와 태호 부부의 입양 가족 브이로그는 "각자 보여지는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 어떤 허구의 개념"이다. 표면성 언어장애를 지닌 입양아 선율은 말없이 외딴곳을 응시하는 등 브이로그 속에서 이상행동을 보이는데, 부부는 그것을 자신의 말로 포장한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겠다는 브이로그 속의 말과 달리, 그들은 수연과 선율을 두고 떠난다. 이후 선율에 의해 밝혀지듯, 선율에게 "말 잘 듣고 착하게 굴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부부에게 브이로그 카메라는 선율의 결핍을 감추는 허구적 세계이며, 끝내 밝혀지지 않는 이들의 또 다른 목적을 위해 구성된 도구적 가상이다.

한편, 수연이 가족으로의 편입이라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선택하는 전략 또한 부부가 브이로그를 통해 펼치는 허구의 전략과 다르지 않다. 수연은 선율을 거쳐 부부에게 접근하고, 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가 되기 위해 영화 내내 ‘거짓말’함으로써 자신을 연출한다. 홀로 사는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감추고, 선율과의 만남과 도움을 우연으로 가장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런 거짓말의 연속 끝에, 브이로그 카메라 앞에서 수연은 진실을 말한다. 여기서 수연이 말하는 진실은 단순한 고백이라기보다는 입양을 위해 스스로 연출한 자신의 캐릭터에 방점을 찍는 행위에 가깝다.

 

ⓒ <수연의 선율>

이쯤에서 <수연의 선율>이 묘사하는 브이로그 카메라는 진실 혹은 허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위치에 놓인다. 카메라는 때로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혹은 피사체로부터 진실을 이끌어내는 도구로 여겨지지만, <수연의 선율>은 이를 전복시킨다. 부부는 거짓말을 통해 현실을 새롭게 프레이밍하고, 수연은 카메라가 동반하는 폭로성과 진실성을 역이용해 욕망을 실현한다. 즉, 영화 속 브이로그 카메라는 단순히 진실을 드러내거나 허구를 연출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물의 욕망을 위해 이용될 수 있는 기계가 된다. 그렇기에 수연이 진실을 말하고, 유리는 거짓된 울음을 터뜨리고, 선율은 말없이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는 앞서 설명한 장면은 각자의 욕망이 교차하는 복합성으로 가득하다.

부부의 욕망과 수연의 욕망이라는 이중의 욕망에 놓인 카메라 앞에서 진실의 기척을 보여주는 자는 선율이다. 브이로그 장면에서 보았듯이, 밝은 모습으로 카메라를 쳐다보는 부부와 달리 선율이 보이는 미심쩍은 행동은 그 자체로 쉬이 모른 체할 수 없는 미스터리를 남긴다. 또한 부부가 ‘말’로 현실을 포장하려 한다면, 선율은 프레임의 뒤쪽 한편에서 ‘침묵’으로 그에 저항한다. 브이로그 속 장면을 차치하더라도, 인물들의 거짓말로 둘러싸인 영화에서 침묵하는 선율의 모습은 존재 자체로 부부와 선율이 만들고자 하는 가짜 가족의 환상성을 뒤흔든다. 이 선율의 침묵이야말로 <수연의 선율>의 카메라가 보여주고자 하는 현실의 틈새이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변두리의 서사이다.

그런 면에서 선율의 표면성 언어장애는 흥미로운 설정이다. 가령 아이를 다루는 많은 영화에서 아이의 미숙한 언어 표현은 아이의 순진함을 표현하거나 과도하게 주제적인 대사로 드러내곤 한다. 그러나 <수연의 선율>은 선율에게 언어장애의 설정을 부여함으로써 그녀가 무심코 뱉어내는 대사 한마디에 한층 두터운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만든다. 예를 들어, 부부가 사라진 뒤 오게 된 수연의 집에서 선율이 곤충들을 모아두었던 통을 언급하며 "여기가 그 통이야? 언니가 나 구해준 거야? 나 여기서 죽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아이의 순진함을 담은 순간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처한 현실을 비유하는 스산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 <수연의 선율>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에서 욕망은 종종 미숙함이나 치기 어림으로 포장되곤 한다. 혹은 이 과정에서 아이의 욕망은 순수성에 가려져 과도하게 보호받는다. 하지만 <수연의 선율>은 영악한, 때로는 쉬이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모습을 통해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편입되고 싶어 하는 두 아이의 욕망을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나아가 브이로그 카메라라는 미디어 앞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욕망을 구성하는지, 어른들은 어떻게 그것을 포장하고 허구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결국 그 사이에서 어떻게 진실의 기척이 드러날 수 있는지 탐구한다. 거짓말과 침묵, 진실과 연기가 교차하는 카메라 앞에 선 아이들이, 끝내 희미한 연대를 이루어낸다는 점에서 <수연과 선율>은 미디어가 현실을 압도하는 동시대 안에서 작동하는 성장 서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김민세 영화평론가]

 

ⓒ <수연의 선율>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이후, 2024 제5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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