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에서 공개된 <그래도, 사랑해.>(2025)는 앞서 두 편의 단편으로 영화제 곳곳을 찾았던 김준석의 첫 번째 장편 영화다. 그의 페르소나이자 긴밀한 협업자인 아내 '손소라'와 아들 '김하람'이 어김없이 함께 했다. 영화가 담고 있는 일상은 연극배우이자 한 아이의 부모인 부부의 실제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가족이 출연하고 실제로 거주하는 집에 촬영한 방식 또한 그만의 독창적인 사실성을 더한다. 특히, 아이와 함께하는 장면들은 일상을 사려 깊게 응시한 과정에서 탄생한 활력으로 가득하다.
<그래도, 화이팅!>(2021)으로 생계 노동의 문제를, <그래도, 행복해.>(2022)로 연극배우의 현실을 조명한 그는 이번 장편에서 앞선 단편들의 주제를 밀도 있게 확장한다. 노동과 창작, 젠더에 관한 담론을 은연 중에 떠올리게 만드는 그의 영화는 다소 비약적인 경로를 거쳐 희망에 가닿는데, 현실의 벽 앞에서도 '그래도,'(All is well)를 실천하는 이 낙관적인 태도에는 이상하리만큼 순수한 감동이 있다. 아들 하람과 함께 성장할 그의 다음 영화들을 벌써부터 기다리는 마음으로, 제20회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상영을 위해 부산을 찾은 김준석 감독과 만나 그의 창작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민세 영화평론가
<그래도, 사랑해.>는 <그래도, 화이팅!>(2021), <그래도, 행복해.>(2022)라는 제목의 두 편의 단편 이후 만들어진 첫 장편이다. 단편에서부터 직접 출연하며 가족의 일상 이야기를 영화에 담고 있다. 단편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 장편 작업으로 확장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김준석 감독
<그래도, 화이팅!>은 내가, <그래도, 행복해.>는 아내가 주인공인 가족 영화다. 가족끼리 영화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이제는 가족의 소재에서 벗어난 다른 영화를 찍어보고자 고민하던 찰나 또 가족을 중심으로 한 세 번째 소재가 떠올랐다. 사실 이전에 써놓은 <돼지가 꿈에 빠진 날>이라는 단편 시나리오가 있는데 집으로 손님들이 찾아오는 이야기다. 촬영까지 이어지진 않고 잠시 접어뒀는데 아내와 비슷한 시기에 캐스팅 제의를 받으면서, 그 에피소드를 활용해 <그래도, 사랑해.>라는 제목의 장편 시나리오로 확장하게 되었다. 집으로 동료들이 찾아온다는 구성도 넣어보고 마당에서 다같이 무언가를 해보자는 생각에 여러 소재를 버무리다보니 장편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단편을 두 편 찍고 나니까 세 번째는 '장편을 찍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었다. 장편에서는 제작비와 스태프 규모의 측면에서 다를 테니까 고민하던 와중 배급사 필름다빈의 백다빈 대표가 공동 제작을 제안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주변 동료들과 공동 제작을 맡아준 백다빈 대표, 그리고 가족을 소재로 영화를 찍는 것에 흔쾌히 동의해 준 아내 덕분에 영화가 잘 완성되지 않았나 싶다.
김민세
오랜 시간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영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들어보고 싶다.
김준석
'진짜를 담고 싶다'는 것이 최초의 의도였다. 연극배우로 생활할 때, 선배들로부터 '연기는 진짜다, 진짜를 해라' 같은 말을 계속 들어왔다. 하지만 진짜라는 게 말은 쉽지만 굉장히 어렵지 않나. 10년 가까운 연극 생활 속에서 몸소 깨달았다. 그래서 진짜의 삶을 찍으면 그 진짜가 뭔지를 알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의 삶을 단편 영화로 찍기 시작했고, <그래도, 사랑해.>에 이르러 소재의 측면에서 '진짜'가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게 되었다.
김민세
연출과 동시에 연기를 하는데, 현장에서 연출과 연기에 어떻게 관여하게 되는가.
김준석
사실 연기에 대한 부분은 나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미 대사를 쓰면서 머릿속으로 그려진 것이다 보니 연기적인 것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연출적인 면은 촬영감독과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고 시작한다. 때에 따라 현장에서 구도를 수정하는 경우도 있다.
김민세
연극 작업과 영화 작업 사이에서 느끼게 되는 차이가 있을까. 연출적인 측면, 연기적인 측면 등에서 다소 차이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김준석
서른 초반에 연극을 시작했을 때, 주변 선배들이 '영화도 재밌고 드라마도 재밌지만 나는 연극이 제일 재밌다'라고 말하곤 했다. 나 또한 그랬다. 연극은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연출자가 배우를 건들 수 없지 않나. 게다가 관객이 바로 앞에서 보고 있을 때 느껴지는 현장성이 있어 다른 매체들은 연극을 따라갈 수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잇따라 세 편의 영화를 찍다 보니 영화가 더 진짜 같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연극은 만들어진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반면에 영화는 실제 로케이션에서 촬영이 이루어지니까. 앞에 카메라가 있고 테이크를 멈출 수 있다 뿐이지 영화는 실제 삶으로 더 들어간다. 무엇이 더 좋다 장단점을 따지는 건 아니지만 영화를 준비할 때면 고양이가 생선 밭에서 뛰어노는 것처럼 정말 가슴이 뛴다. 내가 출연도 해서 그런 것인가 싶다. (웃음)
김민세
이전 단편 작업 때는 직접 촬영까지 했지만 <그래도, 사랑해.>는 촬영감독이 따로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사이에 어떤 변화들이 있었을지.
김준석
연극은 계속해 왔지만, 영화를 전공하거나 따로 공부한 적은 없다. 첫 단편 <그래도, 화이팅!>은 장편 영화 제작 지원 사업에 지원서를 제출할 자격을 만들기 위해서 아내와 단둘이 찍게 된 작품이다. 아내가 만삭이어서 힘든 데다가 제출 자격을 위한 조건만 맞추면 되는 상황이니까 그냥 휴대폰으로 간단하게 촬영할 것을 제안했는데, 아내는 그래도 카메라로 찍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카메라까지 빌려서 1회차 동안 촬영했다. 시나리오는 미리 써놨지만 구도를 보고 콘티를 그리는 것은 잘 몰랐는데, 아내가 이런저런 영화에서 레퍼런스를 따와서 콘티를 그려줬다. 그 콘티를 기반으로 아내와 내가 번갈아 촬영했다. 근데 야외 촬영의 경우는 실내 촬영과 달리 막상 그려놓은 콘티가 먹히지 않더라. 그래서 어떤 법칙없이 즉흥적으로 촬영했다. 소위 말해서 막 찍은 거다. (웃음) 그렇게 촬영한 것들을 편집할 때 보니까 이게 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잘 모르겠더라. 일단 단편 영화의 조건을 맞췄다는 생각에 그렇게 완성까지 하게 된 건데. 결국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고 많은 관객이 좋아해 주니 처음에는 운인가 싶었다.
<그래도, 사랑해.>를 촬영한 오정석 촬영감독은 촬영을 많이 진행해 본 사람이다. 앞서 아내와 내가 촬영까지 맡았던 두 단편은 구도가 좀 이상하다. (웃음) 다만, 내가 담고자 하는 것들은 잘 이루어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장편에서는 오정석 촬영감독과 나의 시너지가 잘 보였다고 생각한다. 롱테이크 숏들이 많으면 영화의 색깔이 더 잘 묻어날 것 같다는 의견을 주었고, 그런 논의들을 미리 나눌 수 있어서 현장에서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하고 싶다.
김민세
집의 구조가 여러모로 재미있다. 작은 마당도 있고, 집들이 손님 중 한 명은 문을 헷갈려 이상한 곳으로 나오기도 한다. 아파트 등의 규격화된 구조의 집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을 담고 있는 숏들이 작품의 재미를 더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실제 거주하는 집으로 알고 있는데, 로케이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김준석
20대 중반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해 자취를 17년 동안 하면서 단독주택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아내와 신혼집을 알아보던 중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찾게 되었다. 40년 가량 된 오래된 단독주택이었는데 동료 한 명과 아내, 나 셋이서 한달 가량 직접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안방에서 서재로 통할 수 없는 구조인데 벽을 뚫어냈고 마당에 있던 간이 화장실 콘크리트 구조물도 허물어냈다. 영화 내용처럼 집을 산 것도 아니고, 전세인데 왜 그 고생을 했나 싶지만... 예쁘게 리모델링한 덕분에 재밌는 숏들이 나온 것 같다.
김민세
숏을 선택할 때, 즉 카메라가 집의 구조를 활용해 부부라는 두 인물, 혹은 가족이라는 세 인물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보였다. 숏을 선택함에 있어서 고려하는 점은 무엇인지. 소규모 현장과 실제 집, 자동차 등의 로케이션으로 인해 여러 한계가 있었겠지만 그 속에서도 지켜내고자 하는 것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준석
숏을 선택할 때는 '어떻게 하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잘 드러날지'를 생각한다. 일단은 대사를 담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물들을 잘 담을 수 있는 숏을 선택하게 된다. 둘의 대화, 셋의 대화, 혹은 그 이상의 대화 모두 마찬가지다. 다같이 밥을 먹는 씬에서 숏을 나누지 않은 이유도 화기애애한 모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케이션은 실제 나의 삶을 담고 있는 공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예 다른 인물의 삶을 담는다면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할테지만 나와 가족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에 따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이를테면 미술, 의상, 소품 이런 것들을 대부분 있는 그대로 담았다. 한계가 있는 상황이지만 진짜 마음, 진심을 담아보자는 생각이었다.
김민세
본인의 집을 로케이션으로 영화를 찍는 것은 다소 편한 방법이면서도 고민이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번 장편에서는 집 앞의 마당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요한 장소가 되는데, 마당을 배경으로 한 장면들은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나.
김준석
사실 동료 중 한 명은 집에서 그만 좀 찍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근데 그 마당에서 사람들을 불러놓고 내가 말하는 장면이 자꾸 상상되는 거다. 연극이 너무 좋으니까 연극하는 사람들을 불러놓고 물어보고 싶었다. 꼭 영화로 찍고 싶은 장면이었고 실제 촬영 때도 모두 재밌어했다. 서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촬영한 그날이 아직까지 기억에 오래 남는다.
김민세
부부가 마당에서 공개 오디션을 펼치는 장면은 롱테이크로 촬영되었다. 현장에서 테이크를 몇 번 갔는가.
김준석
마당 씬 전반부는 3-4번, 후반부는 한번 테이크를 갔던 기억이다. 더 좋은 테이크를 욕심낼 수도 있었지만, 공개 오디션을 펼치는 후반부 장면은 처음 찍은 테이크의 생생함을 담는게 맞겠다는 직감이 있었다. 사실 시간에 쫓긴 것도 있고, 연기와 연출을 동시에 하다보니 힘든 것도 있었지만. (웃음) 결국은 직감을 믿었다.
김민세
후반부 마당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마법 같은 순간들로 가득하다. 공개 오디션 장면과 당연하지 게임도 그러하지만, 그 직전 부부가 연기를 준비할 때 손님들이 마치 연극 관객이 된 것처럼 모두 한자리에 옮겨 앉는데 그 순간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들의 이야기를 오롯이 귀 기울여 듣겠다는 영화의 자세 같다고 할까.
김준석
감사하다. 마당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다가 연기를 시작할 때는 짧은 단막극처럼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단편 때부터 이 마당에서 공연하는 장면을 찍고 싶었고, 이번 장편에 와서 마당에서 부부가 무언가를 보여줄 때 나머지 사람들이 관객처럼 보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미지를 카메라로는 어느 구도에서 보여줄지 촬영 중에 촬영감독과 상의했고, 집들이 손님들의 뒤쪽으로 위치가 결정되었다. 그 전에 손님 중 한 명이 잘못된 문을 열고 나오지 않나. 셀프 리모델링을 한 덕분에 거실에서 그 문으로 나올 수 있던 것인데, 해당 위치에서 구도를 잡아보니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는 듯한 장면이 나왔다. 그 구도에 있어 나와 촬영감독, 배우들의 의견이 일치됐던 기억이 있다.
김민세
그 장면은 인물들의 복합적인 감정이나 생각이 드러날 수 있는 장면이기 때문에 카메라가 인물에게 가까이 들어갈 수도 있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오히려 하나의 긴 롱테이크로 끌고 가서 더 흥미로웠다.
김준석
사실 부부를 더 타이트하게 잡거나 클로즈업으로 찍은 숏들이 여러 가지 있었다. 부부를 보고 있는 손님들을 담은 숏도 있었고. 근데 그걸 편집 과정에서 붙여보니까 뭔가 인위적이더라. 풀샷으로 잡은 롱테이크가 연극을 보는 듯한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 같아서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김민세
시나리오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반영되는가. 대사나 액팅에 있어서 자유롭게 열어두는 편인가. 연극을 하는 배우들이기에 각자가 자신의 해석을 통해서 새롭게 표현하려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준석
대부분의 대사가 시나리오 대사고 애드리브는 거의 없다. 대사가 너무 길기 때문에 약간의 애드리브를 섞어서 진행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산으로 가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그저 그 사람들을 믿었다. 리딩이나 리허설도 진행하지 않았고, 각자 외운 대사대로 현장에서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애드리브는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러하니까. (웃음) 실제 현장에서 막걸리를 마셨던 배우가 잠깐 대사를 멈추는 바람에 대화 흐름이 몇 초간 뜨는 장면이 있긴 한데 아내는 그 장면이 너무 좋다고 하더라. 그 배우가 취해서 대사를 까먹은 건지, 아닌지는 아직까지 미스터리다. (웃음)
김민세
첫 번째 자체 오디션 장면에서 하람이 자다 깨서 부모를 찾는 소리가 들리는 장면은 NG 장면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김준석
현장에서는 NG라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이후에 촬영본을 동료에게 보여주니까 소름이 돋는다며 너무 좋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내가 NG라고 생각한 장면이 누군가에겐 좋게 보일 수도 있구나 싶었고, 그 눈을 한번 믿어보자는 생각으로 영화에 넣었다. 그러고 나니까 이거야말로 연기와 진짜 삶이 구분되지 않는, 진짜를 담아낸 장면이 되어버린 거다. 사실 속으로는 '이런 것들이 반칙이지 않나' 싶은 생각도 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의 GV 때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왓챠피디아에 어떤 관객이 남긴 댓글이 나에게 크게 다가오더라. '이건 철저히 인물을 연기한 것이기 때문에 극영화로 봐야 한다. 감독이 본인 영화의 가치를 너무 깎아내리는 것 같다'라는 코멘트였다. 그 말을 읽고 나니까 내가 굳이 그런 식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더라. 그게 나만의 색깔인 것 같다.
김민세
28개월 된 아이 하람과 촬영하는 데 있어서 아이에게 실질적인 디렉팅은 주기 힘들었을 거라 예상한다. 아이를 상대 배우로서 함께 하며 연기를 어떻게 채워나갔는가.
김준석
가족으로서 같이 지내다 보니 아이의 행동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식탁에서 귤을 까먹는 장면을 쓸 때, 내가 자연스럽게 귤을 들어 올리면 아이가 자기가 하겠다고 말하며 가져갈 것 같다는 생각에 그 대사를 적었다. 근데 아니나 다를까 실제 촬영 때 그대로 말하고 귤을 가져가더라. (웃음) 정말 고마웠다.
김민세
하람은 이 상황을 촬영이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준석
당시에는 촬영을 인지할 수 없는 나이였던 것 같다. 담벼락에 페인트를 칠하는 장면은 진짜 노는 걸로 생각해서 정말 페인트칠하며 놀았다. 손님이 와서 넷이 식사하는 장면에서는 조금 힘들어하기도 했고. 아이를 데리고 영화를 찍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덕을 크게 보고 많은 관객들이 사랑해 주는 것 같다.
김민세
단편 때부터 아이의 성장 과정을 봐온 관객이라면 큰 감동으로 다가올 것 같다.
김준석
그런 면에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2014)를 이야기하는 관객들이 많다. 하지만 <보이후드>와 비교하기에는 아주 한참 부족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두편의 단편과 이번 장편,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들에 나올 하람를 생각해보면 벌써부터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들 장면만 편집해서 한 편의 영화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장모님과 어머님, 누나가 목소리로 출연해줬는데, 정말 '가족 시네마'라는 생각이 든다.
김민세
소라와 아이가 페인트칠을 하는 장면은 영화상의 행간으로 다가온다. 서사에 있어 크게 중요한 장면은 아닌데 일상의 디테일을 더하는 활력으로 다가왔다. 실제 아이가 부모와의 일상에서 어떤 시간들을 보내는지 실감이 나기도 했다. 그 장면의 발상은 어떠했는가.
김준석
아들 하람이 유치원을 늦게 간 편이다. 덕분에 아내가 집 혹은 밖에서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집 리모델링 당시에 담벼락 페인트칠을 미처 못한 덕분인지 해당 장면을 넣자는 아내와의 일치된 의견도 있었고, 그러면 그것을 놀이처럼 해보자고 생각했다. 아내가 아들과 평소에 대화를 많이 하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연출을 할 것도 없이 그 순간이 자연스럽게 고스란히 담겼다. 다시 한번 아내와 아들에게 무궁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
김민세
비슷한 소재를 가진 세 편의 영화 작업을 이어오면서, 스스로 느끼게 되는 주제 의식은 무엇인가.
김준석
독립영화는 사회비판적이거나 우울한 내용을 담은 것들이 많다고 느낀다. 물론 그것 또한 이 사회에 필요한 것들이지만, 나는 궁극적으로 사랑을 담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에 '그래도,'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다 잘 될 거야'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와 별개로 이야기하자면, 사랑과 꿈을 전파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내 세대에는 꿈을 갖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꿈을 찾는 데까지 오래 걸렸다. 근데 현재는 그런 사람들이 더 없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걱정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 꿈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고, 그럴 때 제일 재미를 느낀다.
김민세
이번 작품은 프로덕션 규모, 현장 환경 등에 있어 큰 전환이 되었을 것 같다. 나아가 다음 작업에서 기대하게 되는 방향들이 있다면.
김준석
두 편의 시나리오를 작업 중이다. 하나는 프로덕션이 큰 편이라 제작 지원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내용인데 규모가 커지더라도 나의 색깔을 유지하려 한다. 하나는 올해 가을에 촬영이 예정되어 있고, 지금의 영화와 유사한 스타일로 찍게 될 것 같다. 생각이라는 게 마치 살아있는 생물 같다는 생각 같다고 느낀다. 날이 지나갈수록 계속 변화하니까 그 살아 있는 생물을 빨리 낚아채서 글로 쓰고 영화로 찍어야 한다. 하나씩 해나가는 과정에서 의심과 걱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함께 해온 동료들과 계속해 보자는 생각이다.
[인터뷰 김민세 영화평론가]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이후, 2024 제5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