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하지 않고, 보여주지 않고, 대신 우리를 '감각하게' 영화들
2025년 제78회 칸 영화제는 전통의 반복이 아니라 재정의로 나아간다. 익숙한 이름의 귀환 속에서도, 올해 경쟁 부문은 뚜렷한 전환의 감각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야기보다는 감정, 정치보다는 정서, 정보보다는 감각의 파편이 관객의 중심에 놓인다. 영화제는 단순히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보다 '지금 세계와 어떻게 마주 설 것인가'라는 질문을 꺼내 든다. 작가들은 일종의 태도, 또는 시선의 방식으로서의 영화를 제안한다.
올해 칸 영화제 공식 포스터는 1966년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는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남과 여>(1966)에서 영감을 받았다. 아누크 에메와 장-루이 트랭티냥이 해변에서 서로를 감싸 안는 흑백의 순간은, 반세기를 지나 다시 칸의 얼굴로 돌아왔다. 영화사에 남을 이 장면은 단순한 향수에 머물지 않는다. 사랑, 감정, 침묵, 그리고 영화 그 자체를 응시하던 시대의 감도를 불러내며, 오늘의 영화제가 다시금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시간은 흘렀지만, 감정은 여전히 살아 있고, 칸은 그 감정의 얼굴을 잊지 않았다. 이번 포스터는 올해 칸 영화제가 단순한 영화 상영을 넘어, 시네마의 역사와 감성을 되새기는 장으로서 펼쳐 보일 서사와 감각의 풍경을 조용히 예고한다.
조용한 권위, 단단한 시선: 줄리엣 비노쉬가 심사위원장이 된 이유
올해 심사위원장은 '줄리엣 비노쉬'다. 그는 앞서 2019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다만, 그의 이번 심사위원장 선임은 단순한 예우로 보이지 않는다.
비노쉬는 칸·베니스·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한 유일한 배우다. 1980년대 중반 장뤽 고다르와 앙드레 테시네에 의해 주목받은 이후,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의 <세 가지 색: 블루>(1993),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2005),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랑을 카피하다>(2010), 클레어 드니의 <렛 더 선샤인 인>(2017) 등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유럽 영화사의 굵직한 이정표에 깊이 관여해온 인물이다. 줄리엣 비노쉬는 단순히 연기를 '수행'하는 배우가 아니라, 감독들의 영화 미학을 현실화하는 감각의 공동 창작자다. 세계 각지의 작가들이 비노쉬를 통해 구축한 인물들은 감정의 결, 윤리의 진폭, 존재의 층위를 구현해왔다. 그녀가 '칸의 심사석에 앉는다'는 사실은, 예술적 깊이와 시대적 감각을 동시에 요구받는 지금의 영화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칸 역사상 여섯 번째 여성 심사위원장이자, 그레타 거윅(2024년)에 이어 두 해 연속 여성 심사위원장이 배출된 첫 사례라는 점이다. 1997년 이자벨 아자니, 2009년 이자벨 위페르, 2014년 제인 캠피온, 2018년 케이트 블란쳇에 이은 이번 결정은, 칸 영화제가 보다 의식적이고 책임감 있는 리더십을 지향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특히, 거윅과 비노쉬 모두가 배우이자 감독으로 활동하며, 산업 구조를 변화시키는 문화적 행위자로 기능해왔다는 점에서, 이들의 연속된 위촉은 '대체 불가능한 여성들'을 향한 명확한 메시지로도 읽힌다.
비노쉬의 예술적 태도는 언제나 개인적이되 정치적이었다. 그녀는 연기를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사회와 감각의 경계에 서 있는 실천적 행위로 여겨 왔다. 난민, 인권, 기후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 그리고 유럽영화아카데미 회장으로서의 제도 개혁 활동은, 그녀가 어떤 기준과 감각을 가지고 영화를 바라보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번 심사위원장 선임은 칸이 단지 뛰어난 배우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윤리와 감정, 형식과 정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영화의 현재를 판단할 수 있는 '시선'을 선택한 것이다. 2025년 칸은 줄리엣 비노쉬라는 고요하지만 단단한 리더십 아래, 더욱 섬세하고 예민한 영화의 조건들을 응시하게 될 것이다.
칸은 무엇을 선택했는가
올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작품들에서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면, 대부분 직선적 내러티브를 지양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억은 회상되지 않고, 현실은 해석되지 않는다. 대신, 인물과 공간 사이의 간격, 이미지와 정서 사이의 침묵이 중심을 이룬다. 요아킴 트리에의 <센티멘탈 밸류>(Sentimental Value)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는 각기 다른 시대와 지역을 배경으로 삼지만, 모두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응시한다. 특히, 올해 영화들은 세계를 말하는 데 있어 함부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자파르 파나히의 <심플 액시던트>(Un Simple Accident)는 검열된 존재로서의 감독이, 최소한의 제스처로 세계에 남긴 흔적이다.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의 <시크릿 에이전트>(O Secreto Agente) 역시 독재의 과거를 반추하면서도, 인물의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무언의 감각에 집중한다. 정치적 주제는 부재하지 않지만, 그것은 이제 명시적 진술이 아니라 윤리적 구조로 남는다.
여성 감독들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감각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하프시아 헤르지, 마샤 쉴린스키, 카를라 시몬의 영화는 여성의 내면을 '재현'하지 않고, 그 내면이 형성되는 감각의 조건을 탐색한다. 이들은 침묵과 단절, 간격과 유예를 활용하여 인물 간의 관계가 어떻게 기억과 신체를 통해 변형되는지를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감정은 진술이 아니라 구성, 설명이 아니라 리듬이 된다. 흥미롭게도, 이처럼 감각적이고 명상적인 작품들 사이에서도 칸은 산업적 균형을 잊지 않는다. 웨스 앤더슨, 리처드 링클레이터, 아리 에스터, 켈리 라이카트처럼 이미 시장성과 미학성을 동시에 확보한 감독들은 영화제의 무게중심을 형성한다. 칸은 이들을 통해 예술성과 배급 가능성이라는 이중 전략을 조율하며, 국제 영화 시장에서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 이는 정치와 감정,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극단'이 아닌 '조화'를 택한 칸의 장기적 전략으로 읽힌다.
은유적 형식, 현실의 기호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페니키안 스킴>(The Phoenician Scheme)은 감독의 이전 작품에서 익히 볼 수 있었던 화려한 미장센과 독특한 색감, 정교한 대칭적 구도를 다시 한번 선보일 것으로 기대되는 스파이 블랙코미디다. 부유한 사업가 자자 코르다(베니시오 델 토로)가 자신의 유산을 수녀가 된 딸 리슬(미아 트리플턴)에게 상속하며 발생하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이번 작품은 앤더슨이 그간 구축해온 영화적 유희—정밀한 미장센, 건조한 유머, 실물 미니어처에 가까운 세트 구성—을 유지하면서도, 한층 더 느슨하고 과잉된 구조를 실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앤더슨 감독 특유의 건조한 유머와 초현실적 분위기가 음모와 혼란으로 가득한 이번 서사와 어떻게 어우러질지, 혹은 그 스타일이 지나치게 전형적인 모습으로 반복되지 않을지 영화 팬과 비평가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마이클 세라, 리즈 아메드, 스칼렛 요한슨, 톰 행크스, 브라이언 크랜스턴,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 앤더슨 감독과 자주 협력해온 배우들의 익숙한 앙상블 연기가 작품에 새로운 활력을 더할 수 있을지 여부 역시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전망이다.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신작 <알파>(Alpha)는 전작 <티탄>(2021)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으로, 신체의 경계와 사회적 이방성에 대한 그녀의 관심이 한층 더 섬세하고 내면적인 방향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예고한다. 1980년대 프랑스 르아브르를 배경으로 한 13세 소녀 '알파'의 이야기다. 문신을 새기고 학교에서 돌아온 알파는 점차 자신이 주변 세계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감각에 휩싸이고, 미혼모인 어머니와 함께 사회적 편견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고립되어 간다. 뒤쿠르노는 이번 작품에서도 신체성과 젠더, 그리고 사회적 경계에 대한 복합적인 감각을 밀도 있게 풀어내며, <로우>(2016)와 <티탄>에서 축적해온 영화적 감각을 또 다른 결로 전개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외부로 발현되던 신체 공포 대신, 훨씬 더 조용하고 불편한 방식으로 내면화된 공포와 연대를 탐색할 것으로 보인다. '성장'과 '변이'라는 주제가 이번에는 어떤 시청각적 경험으로 확장될지, 아직 정식 공개 전임에도 벌써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신작 <에딩턴>(Eddington)은 공포와 심리적 불안을 섬세하게 탐구했던 그의 전작 <유전>(2018)과 <미드소마>(2019)와는 전혀 다른 장르인 서부극 코미디로 알려지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이 영화는 천재적이지만 괴짜로 알려진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로, 그의 독특한 이론과 성격이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유머와 아이러니를 담아 재해석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주연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가 애스터 감독과 함께 협업했던 <보 이즈 어프레이드>(2023) 이후 다시 한 번 독특한 캐릭터를 소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애스터 감독이 이전에 다루었던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던 작품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 낯선 장르인 서부극 코미디에서도 성공적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을지 우려와 기대가 공존한다.
'올리버 허머너스' 감독의 신작 <히스토리 오브 사운드>(The History of Sound)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두 남성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영화는 벤 샷턱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1919년 여름,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을 여행하며 민요와 구술 기록을 수집하는 두 남성 라이오넬과 데이비드의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허머너스 감독의 전작인 <모피>(2019)와 마찬가지로, 남성 간의 관계와 정체성, 그리고 사회적 규범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그의 영화 세계를 더욱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주연을 맡은 폴 메스칼과 조시 오코너는 각각 라이오넬과 데이비드를 연기하며, 이들의 감정적 교류와 내면의 변화를 깊이 있게 표현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특히, 메스칼은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제작자로도 참여하며, 연기와 제작 양면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감각의 윤리, 침묵의 정치 : '말하지 않음'으로 세계를 감각하는 영화들
이칸 영화제의 초청 이후 언론과 관객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신작 <심플 액시던트>(Un Simple Accident)는 "단지 하나의 우연한 사건이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는 암시적 문장 하나로 2025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등장했다. 현재까지 줄거리와 등장인물, 촬영 방식까지 철저히 비공개를 유지하고 있는 이 작품은, 내용의 공백이 오히려 파나히의 영화 세계를 아는 이들에게 더욱 강렬한 기대와 해석의 가능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단순한 일상의 균열 속에서 정치와 검열, 자유와 통제를 투명하게 비추어온 파나히의 경력이 이 작품 안에서 어떤 형태로 전개될지, 작품이 베일을 벗는 순간이 올해 칸의 가장 흥미로운 순간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심플 액시던트>는 프랑스와 룩셈부르크의 공동 제작 하에 완성되었으며, 파나히는 이란 정부의 공식적인 영화 제작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비공식적인 형태로 완성해냈다. 이전에도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2011)와 <택시>(2015), <노 베어스>(2022) 등을 통해 검열 하의 창작이라는 전례 없는 작업을 이어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물리적 제작 조건보다는 윤리적 시선과 철학적 질문을 앞세운 서사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파나히의 영화는 종종 실재와 픽션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관객으로 하여금 '지금 이 화면이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고발하고 있는가'를 묻도록 한다. 정보가 철저히 통제된 상태에서 완성된 이번 <심플 액시던트> 역시, 형식과 내용의 이중 구조를 통해 억압적 상황에서의 창작이 어떤 형태로 가능하고 유의미한지를 다시금 묻게 만드는 작품이 될 것이다.
'올리베르 라세' 감독의 신작 <시라트>(Sirat)는 그의 전작 <미모사>(2016)와 <불은 곧 올 것이다>를(2019) 잇는 또 하나의 감각적 순례 영화다. 이번 작품은 모로코 사막의 외곽에서 열린 비밀스러운 레이브 파티에서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이들의 감정적 동요와 생존의 경로를 신화적이고도 정치적인 은유로 풀어낸다. <시라트>는 16mm 필름으로 촬영되었으며, 라세 감독 특유의 느린 리듬과 명상적인 이미지, 그리고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서사 방식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기대하게 한다. 주연 배우 세르지 로페즈와 브루노 누녜스는 각각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 루이스와 그 곁을 따르는 아들 에스테반 역을 맡아, 낯선 풍경 속에서 갈등과 연대를 오가는 부자 관계를 깊이 있게 구현해낸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라세가 한층 더 직접적으로 "실종"과 "폭력", "침묵의 사회"라는 주제를 다루며, 그간의 영화 세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감각적 급진성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라트>는 여전히 미지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풍경이 던지는 정서적 파동은 점점 더 선명하고 구체적인 세계의 불안을 향하고 있다.
'세르히 로즈니차' 감독의 신작 <두 검찰관>(Two Prosecutors)은 그의 다큐멘터리적 감수성과 픽션 서사의 긴장감이 정교하게 결합된 작품으로, 1937년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연방, 한 젊은 지방검사가 억울한 수감자의 편지를 받으며 체제 내부의 거대한 부조리와 맞닥뜨리는 이야기를 그린다. 조르지 데미도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지방 검찰관 코르네프는 모스크바의 고위기관에 진정을 넣기 위해 나서지만, 그의 '정의'는 곧 체제의 '침묵'과 맞서게 된다. 로즈니차는 <마이단>(2014), <돈바스>(2018), <바비 야르 협곡>(2021) 등을 통해 역사적 현실을 정제된 형식과 감정으로 재현해온 감독으로,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두 검찰관>은 전면적인 픽션 구조를 취하면서도 로즈니차 특유의 다큐멘터리 미학을 유지하고 있으며, 등장인물의 대사와 행동이 철저히 역사적 기록에 기반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그가 픽션이라는 형식 속에서 얼마나 날카로운 윤리적 질문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이 역사적 픽션은 단지 과거를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관객에게 '국가 권력'과 '양심'이라는 질문을 새롭게 던지는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의 신작 <시크릿 에이전트>(O Secreto Agente)는 1970년대 말 브라질 군사 독재 정권의 음울한 공기를 배경으로, 침묵과 감시에 의해 조여오는 정치 현실 속에서 한 인물의 기억과 의심이 교차하는 서사를 그린다. 이 작품은, 필류 감독 특유의 공간과 소리를 통한 정치적 이미지 구축이 전면에 드러나는 야심작이다. 전작 <아쿠아리우스>(2016)와 <바쿠라우>(2019)를 통해 공동체, 권력, 도시라는 주제를 장르 영화 문법 안에서 새롭게 조율해왔던 그는, 이번엔 첩보 스릴러 장르를 통해 검열과 검거, 은폐와 저항이라는 정치적 레이어를 정교하게 쌓아 올린다. 특히 그가 꾸준히 탐구해온 '도시의 얼굴'을 매개로, 감춰진 권력과 공적 공간의 관계를 해체하는 방식은 그의 영화적 세계가 여전히 현재형임을 증명한다. 현재까지 공개된 줄거리에 따르면, 주인공 마르셀로는 오랜 해외 생활을 접고 고향 레시페로 돌아오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낯선 거리와 끈질긴 감시의 시선이다. 바그너 모라가 마르셀로 역을 맡아 내면의 분열과 외부의 억압 사이에서 복잡한 감정선을 견인하며, 독일 배우 우도 키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부 세력의 인물로 출연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160분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레시페와 상파울루의 실제 촬영지를 배경으로, 도시의 건축과 음향을 감시 장치처럼 활용하며 관객에게 시청각적으로 억압의 정서를 체험하게 할 예정이다.
타릭 살레 감독의 신작 <공화국의 독수리들>(Eagles of the Republic)은 그의 '카이로 3부작'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영화는 한때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배우 조지 파흐미가 정부의 압력으로 대통령 압델 파타 엘시시의 전기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서, 권력의 중심으로 끌려들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살레 감독은 이전 작품 <나일 힐튼 사건>과 <카이로의 음모>를 통해 이집트 사회의 부패와 권력 구조를 날카롭게 비판해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권력의 중심에 있는 인물의 내면을 탐구하며, 정치적 선전과 개인의 도덕적 갈등을 조명한다. <공화국의 독수리들>은 살레 감독의 정치적 스릴러 미학이 절정에 달한 결과물로, 현대 이집트 사회의 권력과 예술, 개인의 자유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억과 시간의 시적 재구성 : 장르·설정·메타 구조를 통한 은유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신작 <누벨바그>(Nouvelle Vague)는 그가 오랜 시간 탐구해온 '시간과 예술'의 관계를 이번엔 프랑스 영화 역사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며 새로운 도전에 나선 작품이다. 장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 제작기를 중심으로, 19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운동의 핵심 인물들과 미학을 현대의 감각으로 되살리는 메타적 시도를 펼친다. 링클레이터의 첫 프랑스어 연출작이자, 흑백 4:3 화면비를 고수한 이 작품은 단지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혁신과 실험정신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살아 있는지를 질문한다.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누벨바그>에는 기욤 마르벡이 장뤽 고다르를, 조이 도이치가 진 세버그를 연기하며, 이 외에도 프랑수아 트뤼포와 아녜스 바르다, 장 피에르 고렝 등 누벨바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극중 등장할 예정이다. 링클레이터는 이 작품에서 과거의 인물을 단순히 모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영화적 태도와 사유 방식을 영화 그 자체의 구조와 호흡 속에 녹여낸다고 알려졌다. 고다르 특유의 점프컷, 서사의 분절, 영화-만화-정치의 융합 같은 형식 실험이 <누벨바그>에서도 유기적으로 반영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비포 시리즈>, <보이후드> 등을 통해 인물의 내면과 시간의 흐름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해온 링클레이터에게 이번 신작은, 자신이 영향을 받아온 유럽 영화의 정수를 직접적으로 마주하고 대화하는 일종의 '감독적 회고록'이기도 하다.
'도미니크 몰' 감독의 신작 <사건번호 137>(Dossier 137)은 한 건의 과잉 진압 사건을 통해 프랑스 국가 시스템 내부의 균열을 들여다보는 서늘한 시선의 수사극이다. 영화는 2018년 '노란 조끼 운동' 당시 실제로 벌어진 경찰의 폭력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었으며, 사건을 재조사하게 된 IGPN(내무부 산하 경찰감찰기관) 소속 조사관 스테파니의 시선을 따라, 책임과 침묵, 윤리와 권위의 갈등이 겹겹이 드러나는 과정을 정밀하게 포착한다.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사건번호 137>은 단순한 고발 드라마가 아니라, 절차적 진실과 감정적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밀도 있게 조명한다. 스테파니 역을 맡은 레아 드뤼케르는 내면의 분열과 체제 내부인의 고뇌를 절제된 연기로 그려내며, 요안 블랑, 구슬라지 말란다, 케빈 드본 등이 함께 출연해 사실성을 더한다. 전작 <12일의 밤>(2023)에서 실종 사건을 통해 남성 중심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응시했던 몰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는 법과 국가 권력의 작동 방식 자체를 해부하며, 더 명확하고 직접적인 정치적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사건보다는 '사건을 추적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며, 수사극의 전형을 사회적 심리극으로 전환시키는 듯 보인다. <사건번호 137>은 권력을 감시하는 영화가 갖는 윤리적 긴장과 미학적 절제 사이에서, 도미니크 몰 감독이 자신만의 영화 언어를 어떻게 갱신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카를라 시몬' 감독의 신작 <로메리아>(Romería)는 그녀의 가족 3부작을 완성하는 작품이다. 전작 <프리다의 그해 여름>(2017)과 <알카라스>(2022)에서 어린 시절의 상실과 공동체의 해체를 다뤘던 시몬은, 이번 작품에서 자신의 부모 세대의 기억을 조명하며, 개인적이면서도 집단적인 역사적 상처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주인공 마리나가 대학 입학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찾기 위해 갈리시아 지방의 비고(Vigo)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에이즈로 사망한 생부의 가족을 만나게 되지만, 가족들은 과거의 아픔을 외면하려 하며 마리나의 질문에 냉담하게 반응한다. 이 과정에서 마리나는 부모의 사랑과 상실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야기는 현재와 1980년대 두 개의 시간대를 오가며 전개되며, 당시 스페인 사회의 마약과 에이즈 문제로 인한 세대의 상처를 조명한다. 촬영은 비고와 그 주변 지역에서 진행되었으며, 주연은 신예 배우 루시아 가르시아가 맡았다. <로메리아>는 카를라 시몬 감독이 자신의 가족사를 통해 스페인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조명하며,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깊이 있는 드라마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마샤 쉴린스키' 감독의 신작 <사운드 오브 폴링>(In die Sonne schauen)은 독일 동부의 한 농장을 배경으로, 약 100년에 걸쳐 네 세대의 여성들이 겪는 삶의 단면을 시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려낸다. 각 시대의 여성들이 동일한 공간에서 겪는 경험들이 서로 얽히고 중첩되며, 세대 간의 기억과 정체성이 어떻게 전승되고 변형되는지를 탐구한다. 쉴린스키 감독은 이전 작품 <딸>(2017)을 통해 모녀 관계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바 있으며, 특히, 감독은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조각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각 시대의 분위기와 감정을 화면에 담아낸 바 있다. <사운드 오브 폴링> 또한 마샤 쉴린스키 감독의 독창적인 시선과 섬세한 연출력을 통해, 세대 간의 기억과 정체성, 그리고 여성들의 삶을 깊이 있게 조명하는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체성의 재조율 : 해체된 관계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쩌면 이번 칸의 최고 기대작일 수 있는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신작 <마스터마인드>(The Mastermind)는 아홉 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197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예술품 절도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감정적 균열과 도덕적 모호성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베트남 전쟁의 후폭풍과 젠더 이슈, 경제적 불안정이 얽힌 1970년대 중서부 미국을 배경으로, 미술계와 범죄 세계의 경계를 오가는 한 남성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주인공 역은 조쉬 오코너가 맡았으며, 알라나 하임과 존 마가로가 주요 인물로 함께 출연한다. 마가로는 <퍼스트 카우>, <쇼잉 업> 등에서 라이카트와 꾸준히 작업해온 배우로, 이번 작품에서도 감독과의 호흡이 서사의 밀도를 더욱 깊게 만들 예정이다. 이 영화는, 라이카트가 전작들에서 구축해온 조용한 인간극과는 다소 다른, 보다 선형적이고 서사 중심적인 접근을 취하면서도, 여전히 인물의 내면과 시대의 공기를 예민하게 포착하는 감독 특유의 영화적 언어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은 라이카트의 , 범죄극이라는 장르적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실제로는 권태와 이상 사이에서 방향을 잃어가는 개인들의 초상을 통해, 공동체의 해체와 그 안에서의 자율성의 조건을 질문하는 철학적 드라마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작품은 켈리 라이카트가 여전히 미국 독립영화의 중심에서 가장 섬세하고 일관된 시선을 가진 작가임을 확인시켜주는 신작이자, 장르적 외형과 미시적 인간 탐구 사이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그녀의 미학적 확장을 보여주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마스터마인드>는 2025년 칸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이후, MUBI를 통해 북미와 유럽, 인도 등지에서 순차 개봉될 예정이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신작 <센티멘탈 밸류>(Sentimental Value)는 2025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그의 오랜 협업자 에스킬 포그트와 함께한 또 하나의 감정적 가족 드라마로 주목받고 있다. 이 작품은 전작 <오슬로, 8월 31일>, <더 워스트 퍼슨 인 더 월드>에서 이어온 트리에 감독의 섬세한 인간 심리 묘사와 관계의 복잡성을 다시 한 번 탐구한다. 영화는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오랜 세월 소원했던 아버지와 재회하게 된 두 자매, 노라(레나테 레인스베)와 아그네스(잉가 입스도터 릴레아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버지 구스타프(스텔란 스카르스고르)는 한때 유명했던 영화감독으로, 자신의 복귀작에 딸 노라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려 하지만, 노라는 이를 거절한다. 이후 구스타프는 할리우드 배우 레이첼 켐프(엘르 패닝)에게 같은 역할을 제안하며, 가족 간의 갈등과 감정의 소용돌이가 시작된다. 이야기는 노르웨이 오슬로와 프랑스, 벨기에, 스웨덴의 스트룀스타드 등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되었으며, 가족의 재결합과 예술적 야망 사이의 긴장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트리에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감정적 깊이와 시각적 감성을 유지하며, 인간 관계의 복잡성과 세대 간의 갈등을 탐구한다. 이 작품은 요아킴 트리에 감독이 가족과 예술, 기억과 화해라는 주제를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마리오 마르토네 감독의 신작 <바깥에서>(Fuori)는 이탈리아 작가 골리아르다 사피엔차의 자전적 소설 『레비비아 대학교』를 원작으로, 1980년대 로마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저지른 절도로 인해 교도소에 수감된 사피엔차가, 그곳에서 만나는 젊은 여성 수감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들과의 우정과 연대는 출소 이후까지 지속되며, 사회적 경계를 넘어서는 진정한 인간적 유대감을 관객에게 전할 예정이다. 마르토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여성의 시선과 목소리를 중심에 두고 사피엔차의 내면 세계를 섬세하게 탐구한다. 특히 주인공 사피엔차 역을 맡은 발레리아 골리노의 깊고 섬세한 연기가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마틸다 데 안젤리스와 엘로디가 각각 로베르타와 바르바라 역으로 합류해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며 극의 몰입감을 높인다. 마리오 마르토네 감독이 기존 작품들과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바깥에서>는 여성의 삶과 연대, 사회적 억압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통찰을 선사할 예정이다. 칸 영화제 공개를 앞두고 국제 영화계가 이 작품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받고 있다.
하프시아 헤르지 감독의 신작 <리틀 시스터>(La petite dernière)는 파티마 다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프랑스 파리 외곽의 알제리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17세 소녀 파티마의 이야기를 그린다. 파티마는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의 명문 대학에 입학하면서, 가족과 전통, 신앙, 그리고 자신의 성적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국내에 다소 알려지지 않은 '하프시아 헤르지'는 1987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나 마그레브계 이민자 가정에서 성장한 배우이자 감독입니다. 2007년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쿠스쿠스 만들기>로 데뷔하여, 베니스 국제 영화제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 상과 세자르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감독으로서는 2019년 <너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로 데뷔하였고, 2021년 <굿 마더>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앙상블 상을 수상하며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리틀 시스터>는 하프시아 헤르지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칸 영화제의 유일한 아시아 영화인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신작 <르누아르>(Renoir)는 <플랜 75>를 통해 고령화 사회의 윤리적 그림자를 섬세하게 다뤘던 그녀의 연출 세계가 한층 더 정서적으로 확장된 결과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작품은, 1987년 도쿄 외곽을 배경으로, 암 투병 중인 아버지와 고단한 삶을 견디는 어머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조용히 자라나는 11세 소녀 후키의 시선을 따라간다. 지금까지 공개된 줄거리만으로도, 이 영화는 단순한 성장 드라마를 넘어 상실과 환상의 경계, 그리고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균열 속에서 피어나는 감각적 저항을 이야기할 것임을 암시한다. <르누아르>는 하야카와 감독이 직접 쓴 각본을 바탕으로, 소녀의 시각에서 본 세계가 어떻게 예술과 상상력의 공간으로 치환되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낼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화려한 수상 경력이 돋보이는 일본의 촬영감독 우라타 히데호 가 구현할 몽환적인 시각 이미지와, 신예 배우 스즈키 유이의 내면 연기가 만들어낼 정서적 깊이는, <플랜 75>에서보다 더 직접적으로 관객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다르덴 형제의 신작 <영 마더스>(Jeunes Mères)는 2022년작 <토리와 로키타> 이후 약 3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칸 영화제의 분명한 화제작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영화는 샤를루아 지역을 배경으로 사회적 보호 체계 밖에 놓인 벨기에의 젊은 미혼모들의 일상과 생존의 조건을 다룬다. 두 인물이 마주하는 극한의 상황은 다르덴 형제가 일관되게 천착해온 구조적 고립과 도덕적 긴장의 연장선에서 제시되며, 리얼리즘적 접근 방식과 신인 배우의 기용 또한 그들의 기존 작업과 궤를 같이 한다. 이 작품은 특히 '가족'이라는 주제를 새롭게 접근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로제타>, <자전거 탄 소년> 등에서 청소년과 부모 세대 간의 갈등을 다뤘던 그들은, 이번에는 부모가 된 청년들의 상황을 포착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혼모의 서사를 통해 다르덴 형제는 젊은 세대의 경제적 불안정, 제도적 공백, 그리고 개인 간의 연대 가능성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새로운 지점을 탐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선택은 벨기에 사회 내부의 균열을 성별과 계층, 세대라는 교차점에서 드러내는 시도로 읽힌다. 공식 발표에 의하면 <영 마더스>는 비교적 적은 제작비와 비전문 배우들을 중심으로 한 제작 환경에서 촬영되었으며, 도시의 회색빛 풍경과 실제 공간을 활용한 카메라워크가 특징적이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설명을 삼가고, 인물의 행동과 주변 환경을 통해 말없는 질문을 축적해나가는 서사 구조를 따를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형식적 선택은 다르덴 형제의 일관된 연출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젊은 여성이라는 주체를 중심에 놓는 새로운 구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제78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은 결국 '서사'를 뛰어넘어 '감각'을 조직하는 영화들의 모임으로 보인다. 각 작품은 사회와 역사, 정체성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로 출발하지만, 그 출발점에 도달하기까지의 방식은 매우 유기적이고 유동적이다. 시간은 늘어지고, 인물은 침묵하며, 공간은 공명한다. 이 감각의 재배치는 단순한 미학적 흐름이 아닌, 세계에 대한 감수성의 전환이다. 결국, 이 영화들은 관객에게 해석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의 감각을 밀어낸다. 그것은 말이 아닌, 이미지이며, 결말이 아닌, 여운이다. 올해 칸이 보여주는 이 흐름은 단지 한 해의 경향이 아니라, 세계를 다시 느끼려는 영화의 집단적 시도다. 그것은 과거의 복원도, 미래의 예측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을 감각하려는 태도다. 그렇기에 이 영화들은 기억될 것이다. 인물의 표정 하나, 뒤돌아보는 시선, 누군가를 향해 뻗지 못한 손짓 같은 것들이. 그것이 세계와 관객 사이에 놓인 가장 정직한 감각의 형태일 테니까. 그리고 칸은, 그 감각을 다시 꺼내어 보여주는 자리로서,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글 오세준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