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 통속성을 넘어서 모험으로
'히어' 통속성을 넘어서 모험으로
  • 김경수
  • 승인 2025.04.03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히어>와 '로버트 저메키스'에 대하여

로버트 저메키스의 신작 <히어>가 개봉한다는 소식에 큰 기대에 부풀었다. 한 장소에 카메라를 고정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그의 페르소나인 톰 행크스가 (생성형 A.I의 힘을 빌려서) 20대를 연기한다는 소식을 접해서다. 그의 필모를 생각했을 때 둘 다 도전적인 선택이었다. 물론 저메키스의 영화는 작가주의의 틀로 정리하기에는 복잡한 성향을 가진 감독이다. <플라이트>(2012), <얼라이드>(2016) 등 스릴러를 찍기도 했고, <죽어야 사는 남자>(1992) 등 코미디, <왓 라이즈 비니스>(2000) 등 호러처럼 다양한 장르가 교차하므로 접점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굳이 그의 여러 영화를 관통하는 그의 인장을 이야기하고 싶다.

 

ⓒ <하늘을 걷는 남자>(2015)

저메키스에게 기대한 것들

저메키스의 영화는 오브제를 따라서 하늘에서 땅으로 하강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시작한다. <포레스트 검프>(1994)의 CG로 그린 깃털은 검프(톰 행크스)에게 내려오며 미국의 풍경을 따라간다. <하늘을 걷는 남자>(2015)에서 자유의 여신상 위에 선 남성의 독백을 그려낸다(비행기가 추락하는 <플라이트>의 경이로운 오프닝은 이런 의미에서 자기반성에 가깝다). 이 모티프는 <콘택트>(1997)에서 극적으로 확장된다. 영화는 우주의 행성을 확대하는 CG 이미지로 시작되더니 엘리(조디 포스터)의 눈동자에 우주가 반사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카메라를 보는 듯한 이 눈동자는 영화를 대하는 저메키스의 믿음을 담는다. 그는 우주나 하늘 등 공간을 통해 꿈과 동경을 그려낼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그릴 수 있는 테크놀로지와 영화의 힘을 신뢰한다. <컨택트>에서 외계생명체를 만나러 갈 때 그 믿음이 체계적으로 드러난다. 엘리 일행은 외계생명체가 보낸 설계도를 통해 베가 행성으로 갈 수 있는 기계를 완성한다. 엘리는 카메라를 몸에 장착하고 기계에 탑승한다. 그녀는 베가 행성에서 외계생명체를 만난다. 영화 속 대중에게는 그 긴 시간이 몇 초 남짓한 시간에 불과하다. 엘리가 장착한 카메라에는 그녀가 본 것이 담기지 않으므로 그 체험을 증명하기가 어렵다. 오직 관객만 청문회에 소환당한 엘리를 이해할 수 있다. 관객은 외계생명체를 함께 보는 주체로 연루되고 동일시된다. 이때 관객의 시선은 곧 동경과 꿈을 마주하는 인물의 시선이 된다. CG로 그려진 동경과 꿈은 캐릭터의 눈에서 관객의 눈으로 전달된다.

그의 또 다른 인장은 CG의 과잉된 노출과 은폐다. 그의 영화에서 CG의 활용은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되지 않는다"라는 아시모프의 격언이 생각나게끔 한다. <컨택트>에서 CG로 그려진 베가 행성을 볼 때 그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베가 행성은 하와이 해변을 보는 듯한 풍경, 프리즘을 가로로 펼친 듯한 알록달록한 수채화의 질감으로 연출된다. 이 행성은 감탄을 불러오면서도 이질감을 남긴다. 미디어학자 레프 마노비치는 2D 애니메이션과 3D 실사를 합성한 저메키스의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를 키노 브러쉬Kino Brush(영화kino와 붓brush의 합성어)의 사례 중 하나로 이야기했다. 필름 영화가 대상을 스크린에 그대로 포착하는 키노 아이라면 그 대상을 조작할 수 있는 디지털 영화는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키노 브러쉬라는 것이다. 저메키스는 꿈과 동경을 섣불리 물리적 실체로 그리지 않으려 한다. 결정적인 순간 꿈이 CG에 불과함을 노출한다. <백 투 더 퓨처>에서 마티가 현실로 되돌아올 때 자동차에 내리치는 낙뢰도 그러하다. 이때 CG는 서사에서 동화 속의 삽화를 보는 듯한 장치로 쓰인다. 여기까지만 보았을 때 그를 할리우드의 동화 작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00년대의 중후반부에 그가 집중한 작업은 이 CG로 인간에 가까운 존재를 그리는 것이었다. 언캐니 밸리(로봇이나 CG 등 비-인간 대상이 인간처럼 살아 움직일 때의 기이함)에 관련한 논란이 생긴 <폴라 익스프레스>(2004)와 <크리스마스 캐럴>(2009), 말년의 졸작 <피노키오>(2022)가 그 사례다(물론 필자는 그것까지 사랑했다).

저메키스는 CG 테크놀로지의 은폐를 통해서 본인을 할리우드의 동화 작가로 규정하는 시선을 거부한다. 그는 SF 장르를 만드는 감독으로의 자의식도 지니고 있다. 테크놀로지가 먼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깊게 침투해 있다는 감각이 그의 영화 전반에 반복된다. <포레스트 검프>에서 검프와 만나는 J.F.케네디, <콘택트>에서 연설하는 클린턴의 이미지를 통해 CG의 놀라움을 드러낸다. 또 촬영 기술의 정점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콘택트>의 거울 씬은 촬영 과정을 감쪽같이 숨긴다. CG는 표면에 그치지 않고 역사에 깊이 침투하고, 픽션 속 캐릭터의 동시대를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그의 영화에서는 과학기술의 마법이 일상화된다. 그의 영화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기술적인 경이를 선보임으로 CG를 삽화의 수준에 그치지 않게 한다. 기술의 노출과 은폐를 통해 그의 영화는 기술에 경도되지도, 기술을 거부하지도 않는 균형을 지니게 된다. <백 투 더 퓨처>(1985)는 그의 사유가 집약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 영화 <히어>(2024)

최신작 <히어>는 그의 필모 안에서 여러모로 문제적이다. 우선 카메라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카메라는 어느 한 인간의 방에 고정되어 있을 뿐이다. 꿈과 동경의 세계를 그리려 한다기보다는 땅에 있는 일상성에 주목하려는 그의 시도가 보이는 지점이다. 인물이 모험을 떠나지 않을 것이므로 그의 영화에서 종종 그려지던 동화적 경이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가 메타피직스 라이브(Metaphysics live)라는 기술로 톰 행크스의 얼굴을 20대로 그리려고 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아이리시맨>(2019)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디에이징 기술은 불완전하다. 그는 기술의 한계를 무릅쓰고 페르소나라 부를 수 있는 톰 행크스를 기용해 20대부터 60대까지 한 남자의 일생을 그리려 한다. 이 기술은 노출하기에도 은폐하기에도 애매하다. 관객은 이미 톰 행크스가 60대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감쪽같이 속이든, 이를 노출하든지 간에 이 영화는 실패에 가까울 것이다. 그는 슬럼프를 극복함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열 수 있을까. 

 

<히어>, 필모그라피를 리부트하려는 안간힘

<히어>의 이야기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지럽다. 한 장소에 카메라를 고정한 다음 공룡 시대부터 선사 시대, 미국의 건국사, 1차 대전에 참전한 용사, 2차 대전 이후에 탄생한 리차드(톰 행크스)와 마가렛(로빈 라이트) 부부, BLM의 이야기까지 먼 시공간을 그린다. 어떻게 한 공간에서 이토록 수많은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지 의문을 품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는 프레임을 몽타주하면서 그 수많은 시간을 한 데에 아우른다.

 

ⓒ 영화 <히어>(2024)

<히어>는 동명 그래픽노블 원작의 형식을 따라간다. 각 시대를 그려내되 시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을 그리지 않는다. 되려 역사책에 쓰이지 않은 보통 인간의 일상에 주목한다. 영화는 연극적인 상황을 계속 나열한다. 한 상황이 끝나갈 즈음에 방에 있는 오브제 하나를 둘러싼 프레임이 등장한다. 그 프레임이 사라지면서 그 프레임을 둘러싼 특정 상황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이 호흡은 느리고 지루하다. 영화의 초반이 흘러간 다음에야 각 상황의 시간대와 이야기의 흐름이 겨우 정리된다. 영화 중간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고고학 연구자의 존재는 이 영화의 방법론을 설명한다. 보통 역사는 시간순으로 서술된다. 이에 따라서 영구히 남을 만한 극적이거나 의미심장한 사건이 선택된다. 영화는 특정한 공간에 축적된 역사를 그려내면서 거기서 유물, 소중한 삶의 의미를 발굴하려고 한다. 또 공간을 스쳐간 이의 자잘한 순간에 주목하면서 우연과 일상을 발견하려고 한다. 저메키스가 지금껏 그린 것과는 결이 어긋나는 이야기다.

이런 서사 실험은 프랑스 문학의 거장인 조르주 페렉의 실험을 열화한 듯하다. 페렉이 쓴 『보통 이하의 것들』 중 「무엇에 다가갈 것인가?」에서 그는 "매일 일어나고 날마다 되돌아오는 것, 흔한 것, 일상적인 것, 평범한 것, 보통의 것, 보통-이하의 것, 잡음 같은 것, 어떻게 그것들을 설명하고 어떻게 그것들에 대해 질문하며, 어떻게 그것들을 묘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공간에서 발견한다. 그가 그리려 하는 보통 이하의 것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포착된다. 그의 소설 『인생사용법』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그곳에 거주민 모두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거기서 생긴 99개의 일상적 상황을 느슨하게 나열하면서 각각의 인생과 일상을 그려낸다. 페렉의 실험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에세이 『파리의 한 장소를 소진시키려는 시도』에서 그는 파리의 카페에 온종일 앉는다. 그다음 그날 거리에서 우연히 생긴 일을 아무 인과도 없이 시간 순서대로 적는다. 다만, <히어>는 조금은 다른 길을 택한다.

 

ⓒ 영화 <히어>(2024)

<히어>에서 등장하는 사소한 사건은 소프 오페라의 통속에 가깝다. 더 정확히는 <포레스트 검프>의 통속적인 판본이다. <포레스트 검프>에서는 개인은 특정 시대의 영향 아래서 자라난다. <히어>에서는 각 시대를 둘러싼 정치적, 문화적 맥락이 달라도 인간의 보편적인 인생의 양상은 비슷하게 반복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인물 각각의 이야기는 첫사랑, 결혼, 아이의 출생, 갑작스러운 죽음 등 대부분 사람이 의례적으로 경험하는 인생을 단계별로 그려낸다. 통속적인 사건만 남기므로 페렉이 이야기하는 우연성이 발견되지 않는다. 더 정확히 자질구레함과 거기서 생기는 돌발성을 그리지는 않는다. 하물며 이 통속적 사건을 둘러싼 반응도 관객도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감정이다. 영화가 시종일관 기시감이 들고, 신파적이라 다가오는 이유도 이런 에피소드 선택에서 온다. 각자 다른 시간대에 살고 이름과 직업을 지니고는 있어도, 이들은 입체적인 캐릭터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중핵인 리차드와 마가렛(로빈 라이트) 부부의 서사마저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다. 영화 속 캐릭터의 인생은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사이토 마리코)"로 다루어지는 셈이다. 그럼에도 로버트 저메키스는 각 서사를 동등하게 배분하지 않는다.

대신 리차드 부부를 중심으로 서브플롯이 급작스럽게 난입하게끔 한다. 영화는 두 프레임을 느슨하게 연결하면서 시공을 초월한 두 상황의 연결을 시도한다. 관객은 거리가 먼 듯한 두 상황 사이의 인과를 유추하거나 그 둘 사이의 유사성을 헤아리게 된다. <히어>는 우연히 방문한 고고학자, 공룡만 있고 인간은 없는 세상, 벤자민 프랭클린의 아들 등 이야기에 아무 영향도 없는 존재를 중간에 삽입하며 혼란을 유발한다. 웃다가 죽는 남자 등 영화에서 그려지는 여러 죽음도 허무한 농담처럼 들린다. <히어>는 통속성 가운데에 돌출하는 여러 우연을 일부러 삽입한다. 그 결과 미국사를 압축하는 영화로도, 감독의 페르소나인 톰 행크스가 연기한 리차드의 일생을 담은 영화로도 설명하기가 모호한 영화로 다가왔다. 이처럼 중심 없이 산만한 서사는 그의 필모에서 처음일 것이다. 거부감이 들 즈음에 영화를 둘러싼 의문이 생겼다. 과연 이 영화에서 그려진 모든 인생은 동등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히어>에서 가장 이질적인 서사는 흑인 가족의 서사일 것이다. 백인 가족 중심의 서사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다른 인종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 서사는 2014년에 출간된 원작에서 영화에 추가된 부분 중 하나다. 원주민 선조의 이야기, 의자 발명가의 서사, 빅토리아 시대의 가족 등 원작에서 더한 부분이 여럿 있으나 시대와 이어져 있는 서사는 이 가족의 서사뿐이다. 흑인 가족의 서사는 마스크를 통해서 코로나19 시대임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이 가족의 서사는 영화에 기이한 현실감을 더한다. 이 가족은 리차드가 이사한 후에야 이 집에 온다. 흑인 가족은 감독이 중점으로 다루는 리차드의 시간대에서는 유일한 미래형으로 등장한다. 이 서사는 기이하리만큼 짧고도 강렬하다. 백인 가족은 그곳에 정착하지만, 흑인 가족은 정착한다기보다는 임시로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 가족은 백인 경찰의 폭력에 희생당하는 아들로 인해 곧장 자리를 떠나고 만다. 에릭 로스와 저메키스가 담으려는 이야기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이 공간이 드러내는 아직도 미국이 흑인을 추방한다는 정치적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화가 그려내는 통속성의 범주와 의의를 의심해보자는 것이다.

 

ⓒ 영화 <히어>(2024)

비약이라 할지언정 무모한 가정을 하나 해보려고 한다. 만약 이 영화 속 배경이 인터넷이라면 어떨까. 이 통속적 상황을 볼 때 느닷없이 모니터가 생각났다. 각각 프레임을 창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각 인물은 다른 시간대에 있는 인간을 보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계정을 들어가듯이 각 인물을 볼 수 있다. 이때 <히어>는 0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의 세계적인 보급과 함께 탄생한 스크린 라이프 장르가 된다. 인터넷 스크린만으로 영화를 전개하는 실험적인 장르다. <히어>를 인터넷이라 가정하면 이 프레임은 흥미로운 장치가 된다. 각각의 삶이 임의의 링크로 해석되고, 시간대를 넘나들어도 이해가 된다. 각각의 인물은 언택트인 셈이다.

영화의 프레임 연출은 원작 만화와 다르다. 각자 프레임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또 다른 일상이 펼쳐진다. 이때 프레임의 사라짐을 두 가지 경우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누군가가 프레임을 클릭해서 그 창을 천천히 확대해 접속하는 것이다. 이때 창은 종료되지 않고 영화는 축적되는 수많은 창으로 구성된 영화가 될 것이다. 인과가 충돌한다고 한들 다른 경우의 수는 이 프레임이 알고리즘을 따라서 매개되는 것이다. 각 프레임은 인과율에 따르지 않고 릴스가 넘어가듯이 (이미지) 추천을 따라서 재생된다. 이때 여러 서사의 충돌도 설명된다. <히어>는 수많은 이가 인스타그램의 틀 안에서 비슷한 삶을 살고 있고, 그 수많은 삶이 과할 정도로 범람하고 있다는 지옥도를 그려내는 것은 아닐까. 이때쯤 영화의 기술적 오류를 되짚어보자. 20대 외양에 60대의 목소리를 가진 톰 행크스는 왜인지 버튜버처럼 다가온다. A.I 생성 기술은 기술적 경이를 불러오는 게 아니라 소격 효과를 만든다. 이 영화는 감독의 의도와는 반대로 정반대로 통속성을 비판하도록 읽히는 괴이한 작품으로 다가왔다.

 

ⓒ 영화 <히어>(2024)

정상성을 따라가는 통속적 삶은 과연 긍정할 만한 것인가? 영화를 볼 때 문득 생긴 의문이다. <히어>는 저메키스의 필모를 되짚어볼 때 ,그의 총결산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이 영화에서 난입하는 여러 서브플롯 속 인물은 모두 저메키스 영화에서 볼 법한 인간이다. Lay-Z 의자를 발명해 떼돈을 버는 발명가는 <백 투 더 퓨처>를, 비행기를 타는 남성은 <하늘을 걷는 남자>와 <플라이트>를 충분히 생각나게끔 한다. 모험은 옛날 이야기에 불과해졌다. 리차드 부부의 삶은 소시민적이며 돈이 없고 새로운 집으로 떠나가지도 못한다. 리차드 부부는 통속적인 삶의 루트에 짓눌려 있다. 먹고 살기에 급급한 통속적인 삶을 지나가면서 낭만은 서서히 감소한다. 미래 세대인 흑인 가족의 세대는 통속적 삶을 따라가기보다는 폭력의 희생양이 된다. <히어>는 모험을 잃어버린 통속적 삶이 초래할 파국을 드러낸다.

이런 의미에서 <히어>에서 눈여겨볼 만한 존재는 노년의 '리차드'다. 청년기에 화가를 지망한 그는 노년기에 아내 마가렛과 이혼한 후에야 그림을 시작한다. 은퇴한 후 돈이 없는 상황인데도 그는 집에다 에드워드 호퍼 풍 그림을 가득히 놔둔다. 그의 그림은 영화 속 프레임과 유사하다. 그는 본인이 그토록 바라왔던 화가로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의 엔딩은 할리우드에서 흔히 보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지긋지긋한 삶에서 아름다움을 발굴하려는 시도로 수렴되지 않아서다. 되려 통속적 삶을 미학화하려는 시도가 헛된 것이며, 거기에 아름다움이 없다는 잔혹함이 서려 있는 듯했다. 카메라는 리차드가 치매에 걸린 마가렛과 빈집을 본 후인 마지막에야 날아오른다. 둘은 그 공간에 얽힌 추억을 충분히 되새긴 후, 그제야 공간에서 해방되었다는 느낌으로 서로의 손을 잡는다. 그때 영화가 시작된다는 듯한 느낌으로 360도로 돌면서 전경을 담는다.

<히어>는 저메키스의 만년의 걸작보다는 그의 필모를 다시 시작하는 프리퀄에 가깝다. 통속적인 삶이 끝나야 동경으로 돌리는 시선이 탄생한다. 그 찰나의 활강이 주는 해방감을 도저히 잊기가 힘들다. 고정된 프레임 안에 서로의 삶을 가두는 지금 시대에 거장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더욱이.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