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가는 길에 딱 한 잔 더' 포스트-아포칼립스 같은 세계를 달리는 술꾼들

2025 부산국제영화제(BIFF) X 이탈리아 영진위 치네치타(Cinecittà) 특집 (3) 프란시스코 소사이 감독 인터뷰

2025-10-14     김경수

50대의 블루칼라 노동자 카를로비안키와 도리아노, 너드 건축과 학생 줄리오. 계급도, 감수성도 다른 셋의 만남은 생각만 해도 어색한 분위기일 듯하다. <가는 길에 딱 한 잔 더>는 어울리지 않을 듯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세 남성의 로드무비다. 평생을 선글라스 공장에서 일했던 카를로비안키와 도리아노는 명품 선글라스를 훔쳐다 판 죄로 회사에게 고발당할 위기에 처한다. 소송 직전에 둘은 퇴사를 선택해 철창신세를 면한다. 둘은 퇴직금을 모으기는커녕 재규어 한 대와 술을 사는 데에 탕진한다. 머무를 곳도, 갈 곳도 사라진 둘은 무작정 차에 몸을 싣고 도시 곳곳을 방랑한다. 이 방랑에 너드 대학생 줄리오가 우연히 합류한다. 카를로비안키와 도리아노는 갈 만한 술집을 물색하다가 대학생끼리 한 파티를 거리에서 우연히 본다. 또래와 달리 혼자서 과제를 한답시고 2차에 가지 않겠다는 줄리오가 둘의 시선에 들어온다. 둘은 "마지막으로 딱 한 잔 더"라고 졸라서 줄리오를 술집에 데려가고, 셋은 그날부터 친구가 된다. 셋은 마음이 흐르는 대로 베네토를 방랑하다가 줄리오를 따라서 카를로 스카르파가 설계한 건축물 브리온 묘원에 도착한다.

이탈리아 북동부에 있는 시골 베네토를 배경으로 하는 <가는 길에 딱 한 잔 더>는 멀리서 볼 때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할 애쉬비의 영화가 저절로 생각나는 루저 감성의 로드 무비로 보인다. 2008년 경제 대공황 이전을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와 안정적 삶에서 밀려나서 변방의 인간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우울, 술기운이 어우러지는 둘의 자조는 웃기고도 애달프다. "우리는 성장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라는 대사에서 드러나듯이 둘에게는 늙음이 유예되었다는 무력감이 팽배해 있다. 이 무력감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의 부재로 이어진다. 프란시스코 소사이는 이 미래가 없다는 절망을 단순히 캐릭터의 심리적인 차원으로 두지 않는다. 가까이서 볼 때 이 영화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셋의 절망을 세계의 풍경으로 그려내는 섬뜩한 영화다.

감독은 세 남성의 얼굴을 그리면서도 거리를 돌아다니는 인간이 사라진 베네토의 황폐화된 풍경에 주목한다. 술집 등 실내 공간에서는 사람이 있으나 거리는 텅 비어 있으며, 낮에 있어도 한밤중에 있는 듯한 느낌을 만든다. 곳곳에 유령이 있다는 착각까지 든다. 심지어 캐릭터가 말할 때 기계에서 생기는 소음이 둘의 대화를 방해하기도 한다. 이때 인간의 세계가 자동화된 기계에 계속 점거당하고 있다는 으스스함을 느낄 수 있다. 소사이가 이를 포착하는 방법도 독특하다. 16mm와 35mm 필름으로 각인된 베네토의 풍경은 영화 속 시간대가 과거에 영원히 머물러 있다는 으스스함을 남긴다. 마치 저 영화 속의 세계가 영원히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는 절망이 필름 질감으로 새겨져 있는 듯했다. 영화 속 줄리오가 필름 카메라로 건물을 기록하듯이 감독도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는 세 인물을 기록하며 우리에게 미래를 질문한다. 미래는 현재와 과거의 자장에 잡아먹힌 것은 아닐까.

<가는 길에 딱 한 잔 더> 속 우울감은 이 영화 속 시간이 흐르지 않을 것이라는 으스스함에서 생긴다. 프란시스코 소사이가 그린 세계는 이미 종말 후의 세계인 듯했다. 데이비드 린치와 포스트-아포칼립스, 빔 벤더스가 공존하는 이 괴작의 감독은 누구일까. 89년생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창작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호기심이 생겼다. 프란시스코 소사이 감독과 진행한 인터뷰는 뜻밖의 잡담으로 시작했다. 거기서부터 감독이 전방위적인 담론과 관심사를 아우르는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감독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내 노트북에 붙은 <신세기 에반게리온> 스티커를 본 감독은 흥미롭다는 듯한 눈빛으로 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한 애정을 고백했다. 언뜻 보았을 때 <가는 길에 딱 한 잔 더>와 거리가 먼 듯한데도 대화의 물꼬를 트기에는 적절한 작품이었다. 두 영화는 1시간 30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를 거쳐서 하나로 이어졌으며 그 가운데에는 그가 손에 든 영화 속 줄리오의 필름카메라가 있었다. 동시대성을 본인만의 독창적 시선으로 포착하려는 고집스러운 감독 프란시스코 소사이와의 흥미로운 인터뷰 현장을 전하려 한다.

 

김경수 영화평론가

오프닝부터 흥미로운 영화다. 카를로비안키와 도리아노가 누운 재규어 주위로 이탈리아 국기를 보는 듯한 붉은 조명과 초록빛 조명이 번갈아 나온다. 그다음 도시전설에 대한 나레이션과 함께 두 캐릭터가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상황이 등장한다. 근데 전설 속 캐릭터의 이름이 프리모 소사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소사이라는 캐릭터는 사적 이야기를 반영한 캐릭터일까.

프란시스코 소사이 감독

내 생각에 우리 시대의 관중은 이제 픽션을 거의 믿지 않는다. 그런 성향이 강해져서 나름의 방법을 고안했다. 내 성을 쓴 캐릭터가 등장하면 관중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일 거라 신빙성을 가질 것이다. 이런 신빙성이 영화에 몰입하는 데에 도움을 줄 거라 생각했다. 사적인 이야기랑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

김경수

생각해보니 도시 전설도 사실과 허구 사이에 있는 루머라 생각한다.

프란시스코 소사이

좋은 발견이다. 허구와 현실 사이를 오가고 둘 사이의 경계를 실험하는 데에 흥미를 갖고 있다. 브리온 묘지를 방문하는 순간이 내 서사 실험의 핵심이다. 허구 속의 세 캐릭터가 실존하는 브리온 묘지를 방문하는 에피소드 자체는 영화 속 내러티브에서 펼쳐지는 허구다. 다만, 이를 촬영할 때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려 했다. 세 캐릭터가 브리온 묘지에 들어설 때 일부러 관광객이 그곳을 들르는 것처럼 촬영했다. 나아가 이 브리온 묘지를 살펴보는 시선도 최대한 관광객이 유적을 바라보는 시선을 사실적으로 그리려 애썼다. 허구적 사건과 사실적인 촬영, 그 두 개가 함께 만나는 지점에서 둘의 경계가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김경수

영화에서 차가 도로를 질주하는 타이틀 시퀀스가 인상적이었다. 컴컴한 도로를 헤드라이트만 틀고 오간다는 점에서 다른 세계로 빨려드는 듯한 초현실적 순간을 만든다. 마치 <로스트 하이웨이>를 보는 듯하달까. 베네토는 이탈리아 시골 마을인데도 데이비드 린치가 그리는 미국에 있는 듯하다. 극 중 대사로 미국화되어가는 이탈리아라는 언급이 있으며 네온사인이 내리쬐는 정체 모를 클럽에서 <블루 벨벳>에서 나올 법한 우울한 라이브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초반부 독일에서 온 남성은 유령이 출몰하는 고속도로를 언급하며 곳곳에 으스스함을 더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유령이 곳곳에 있다는 몽환적 느낌을 준다. 여러 인터뷰에서 1960년대에 유행했던 이탈리아 코미디 영화(디노 리시의 <Il Sorpasso>(1962), 모니첼리의 <I Soliti Ignoti>(1958) 등)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언급했는데, 혹시 데이비드 린치의 영향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프란시스코 소사이

데이비드 린치 감독을 워낙 좋아한다. 그의 영화 가운데 <로스트 하이웨이>(1997)와 <블루 벨벳>(1986)을 아낀다. <블루 벨벳>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나이트 클럽, 제재소 등) 미국의 잊힌 장소를 다루어서다. 대학생인 제프리 보몬트는 아버지의 병환을 계기로 고향 노스캐롤라이나주 럼버튼으로 돌아와 잘린 귀를 시작으로 미국의 시골 곳곳을 여행한다. 린치는 시골에 있는 잊힌 장소의 어두운 풍경과 그곳에 모인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인간 군상을 섬세히 재현한다. 개인적으로 그런 장소에서 허구의 서사를 창조하는 작법이 흥미로웠다. 린치가 포착한 잊힌 장소에 대한 애정이 영화에 영향을 준 듯하다.

또 유령에 경우에는, 물론 영화 전반에 으스스함이 배어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영화의 유령을 이야기하고 싶다. 어릴 적 나는 시네필이었다. 영화에 대한 애정과 갈망은 있으나 영화관이 없는 시골에 살았다. 이탈리아에서는 로마가 영화의 중심이기에 로마에 살지 않으면 영화계로 진입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영화는 나에게 너무 먼 듯하면서도 가까이에 있다. 나한테는 두 가지 감정이 공존했다. 아마 내 영화에서 유령에 홀려서 따라가는 과정이 그려진 것은 이런 개인적인 감정을 반영한 것이다.

김경수

이 영화는 로드무비인데도 다크 투어리즘을 다니는 듯하다. 베네토라는 공간, 길에서 생기는 사건이 낯설고 기이하고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길거리에는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으며 술집에 있는 군중은 유령에 가깝게 보인다. 카를로비안키와 도리아노의 알코올 중독도 유령에 붙들린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가 브리온 묘지에서 끝난다는 설정도 다크 투어리즘의 전형적 루트에 가깝다. 마치 종말 이후의 세상을 여행하는 듯하달까. 때마침 카를로비안키와 도리아노의 대사로 2008년 이탈리아를 뒤흔들었던 경제 위기에 대한 메타포도 곳곳에 드러나 있다. 이 영화를 포스트-아포칼립스 영화라고 무리하게 해석해도 될까?

프란시스코 소사이

진심으로 기쁜 해석이다. 그렇게 봐주어서 감사하다. 내가 사랑하고 깊은 영향을 받은 책 중 하나가 영국 철학자인 마크 피셔의 책(『기이함과 으스스함』, 『내 인생의 유령』)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붕괴한 후에는 어떠한 대안도 없으며, 그렇다 해서 자본주의가 완전하게 종말하지도 않기에 자본주의가 망가진 채 좀비처럼 계속 존속할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종말론적 비전이 담긴 그의 이야기를 2008년 이후 이탈리아에 접목하고 싶었다.

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모든 스태프에게 레퍼런스로 <매드맥스> 시리즈를 추천했다. <매드맥스>를 토대로 재앙 이후에 남겨진 인간이 체감하는 삶의 감각이 어떤지를 연출하려고 했다. 그래서 세 주인공이 타인을 만날 때 술집에 갈 때만 사람을 만나고 길가에는 행인이 돌아다니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연출을 인위적으로 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동네가 진짜 그러하다. 산업화가 이루어졌던 도시인데 2008년을 기점으로 노동자가 모두 그 동네를 떠나버려서 거리가 텅 비어 있다. 다만, 이런 풍경을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인 느낌으로 찍고 싶지는 않았고, 완전히 포스트-아포칼립스 장르로 그리고 싶지도 않았다. 현실의 으스스한 풍경을 가져와 영화적으로 이용했다. 일부러 그런 느낌을 더했고, 관객도 그렇게 봐주기를 바란다.

김경수

그래서일까. 텅 빈 집, 황량한 들판, 텅 빈 광장 등 일상적인 공간을 찍는데도 거기에 일상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로드무비라면 풍경에 감탄한 리액션이 있어야 한다. 두 주인공은 전혀 마을 풍경에 놀라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술집에 있는 음식이나 술 등 즉시 다가오는 즉물적인 것에 대한 리액션만 있을 뿐이다. 약간 세상에 대한 감탄과 리액션이 없다. 마치 모든 생동감이 제거된 듯한 느낌이랄까. 여행의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권태가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이런 정서를 그려낸 이유가 있는가.

프란시스코 소사이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로 이 영화의 풍경을 둘러싼 나의 시선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괴테가 이탈리아의 어떤 마을에 가서 언덕에 있는 유적과 무덤에 감탄해서 그림을 그리는 에피소드가 있다. 괴테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순간 그곳에 사는 농부가 지나가다가 그에게 무심히 말을 건다.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여기를 왜 그리는가"라고. 괴테에게는 아름답다고 보이는 풍경이 그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는 무심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은 본인이 사는 곳의 풍경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그곳에서 살 뿐이다. 마찬가지로 카를로비안키와 도리아노도 그 동네에 살고 있어서 그냥 그 풍경에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는다.

줄리오는 다르다. 그는 필름 카메라로 건물을 기록하며 베네토의 풍광에 미적 감탄을 느낀다. 두 인물은 줄리오와 만남으로 달라지기 시작한다. 다 함께 브리온 묘지로 향할 때 클라이막스가 등장한다. 세 명이 함께 브리온 묘지를 볼 때 감탄하는 순간이 등장한다. 그 풍경을 일부러 아름답게 연출하지 않으려 했다. 개인적으로 최근 영화에서 갑자기 어떤 맥락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삽입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드론을 동원하는 등 풍경을 아름답게 촬영하려는 욕망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 브리온 묘지를 최대한 건조한 시선으로 찍고 싶어서 관광지 홍보 영상을 촬영하듯이 연출했다. 이 풍경의 사실감을 어떻게 유지할지에 대한 고민이 커서 풀샷을 찍을 때 풍경과 카메라 사이의 거리감을 설정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곳에 사는 주민의 눈으로 보는 풍경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김경수

풍경을 찍을 때, 주인공의 발걸음 속도를 따라가는 촬영이 꽤 있었다. 특히, 줄리오가 건물을 촬영할 때 그러한 숏의 감각이 두드러진다. 기계적으로 꾸미지 않는 듯한 느낌을 준달까.

프란시스코 소사이

그 촬영은 돌리나 트래킹 등 기계 장치를 전혀 쓰지 않고, 두 명의 촬영 기사가 주인공의 발걸음 속도에 따라서 함께 걷게 했다. 일부러 그런 느낌을 주려고 했다. 그때 줄리오가 열쇠를 계속 허리에 차고 다니기에 그 샷이 나올 때 계속 열쇠 소리가 들린다. 걸어가면서 찍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그런 사운드를 강조했다. 거기에 줄리오의 발걸음을 차가 따라가면서 찍는 씬이 더해진다. 차를 타면서 풍경을 보는 것과 걸어가면서 풍경을 보는 것 사이의 느낌을 다르게 전달하고 싶었다.

 

김경수

카를로비안키와 도리아노의 경우는 도둑질도 하고, 저속한 농담을 주고받아도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캐릭터다. 이 캐릭터의 탄생 비화와 이 캐릭터를 그리려 할 때 주안점으로 삼은 기준이 있는가.

프란시스코 소사이

공동 작가와 작업할 때 가장 큰 원칙은 이 캐릭터가 다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그 캐릭터의 관점에 이입하려고 했다. 그 캐릭터가 쓸 법한 일기도 쓰는 등 사전 작업을 꼼꼼히 한 다음에 시나리오에 착수한다. 타인의 삶을 알면 타인을 그렇게 쉽게 미워하거나 판단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러 캐릭터의 방향을 정하려 하거나 판단하지 않으려 했다. 시나리오를 쓰다가 처음의 설정과 달라져도 흘러가는 그대로 두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에서 맨슨 패밀리 사건을 뒤트는 엔딩을 사랑한다. 역사적 사실이 자연스럽게 전환된달까. 이런 흐름을 좋아한다.

김경수

카를로비안키와 도리아노는 줄리오를 보자마자 운명적인 이끌림을 느낀 듯하다.

프란시스코 소사이

그러하다. 셋은 운명적인 이끌림을 느낀다. 처음에 줄리오는 단편적으로 그냥 다른 사람처럼 바에서 만나는 이 사람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냥 셋은 만나서 술을 마시다가 줄리오의 집에 가서 파스타를 야밤 중에 요리해 먹고 거기에서 잔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줄리오 친구도 있어서 떠나는 줄리오를 마중하러 공항으로 나가는 그런 설정이었다.

이 셋의 만남을 쓰는 도중에 공동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연 줄리오가 간다고 해도 이 두 남성이 줄리오를 순순히 보내줄까? 두 남성은 줄리오를 계속 따라다닐 듯하고 계속 술을 먹자고 할 듯했다. 생각해 보니까 줄리오는 평생토록 이 두 남자를 잊지 못할 듯하다. 자신에게 중요한 날 만난 사람을 어떻게 있겠는가. 셋의 운명적인 이끌림이 있다고 생각한 순간 줄리오가 의도치 않게 주인공이 되었다. 인생은 이렇게 우연의 연속이 아닐까.

김경수

이 영화 속 해방감은 알코올에서 나오는 듯하다. 너드에 가까운 줄리오도 술을 마신 순간 제약이 풀린다. 오프닝에서 두 남성은 무알콜 맥주를 마시며 절망한다. 이후 술을 마시고 난 후부터 달라진다. 두 남성의 본격적인 음주가 시작하면서 사이키델릭한 정서가 감돌기 시작했다.

프란시스코 소사이

이 영화 속 술은 두 방향으로 인물에게 영향을 끼친다. 카를로비안키와 도리아노에게 술은 저주 같다. 이 둘은 알콜 중독으로 인해 계속 술이 있어야지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이미 음주가 루틴이고 생활이다. 다만 이 영화를 알코올 중독자를 다루는 영화로 제작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알코올 중독자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이 개입할 가능성이 커서다. 줄리오에게 술은 삶의 즐거움을 깨닫게 한다. 줄리오에게 술은 그전까지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이완의 수단이었다. 영화 중간에 줄리오가 백작의 집에서 맛있는 데낄라를 먹지 않는가. 거기서 표정이 달라지면서 음주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이때 그는 이전에 자신이 가진 사고 방식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경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5)같은 영화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되려 토마스 빈터베르크의 <어나더 라운드>(2020) 속 술을 즐기는 네 중년이 생각났다.

프란시스코 소사이

<어나더 라운드>도 사랑하는 영화다. <가는 길에 딱 한 잔 더>를 작업할 때 이 영화를 보았다. 알코올 중독과 알코올에 대해서 부정적인 편견을 넘어서서 긍정적으로도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김경수

영화에서 줄리오가 스마트폰을 쓸 때 그 화면이 컴컴해 보이지 않는 장면이 있다. 생각해보니 이 영화에서 스마트폰은 통화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아서 존재감이 없다. 소통 방식도 아날로그적이다. 이런 배제는 의도적인가.

프란시스코 소사이

줄리오가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는 등 스마트폰이 곳곳에 있기는 한다. 두 남성이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듯하다는 인상을 남기는 이유도, 그 둘이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것 정도는 가능함에도 술을 먹느라 바빠서 스마트폰을 굳이 보지 않는 캐릭터여서다. 줄리오의 경우 스마트폰으로 통화나 지도 찾기, SNS 등 기능을 쓰지만 나머지 두 캐릭터는 이를 잘 쓰지 않는다는 차이를 드러내고 시픽도 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장면에서는 일부러 소품팀에 핸드폰을 약간 깨라고 지시했다.

사실은 우리가 실제로 옆에서 누가 스마트폰을 한다고 해도 액정을 자세히 볼 수가 없다. 그냥 스마트폰을 보는 중이구나 정도만 파악할 수 있다. 일상에서 안 되는 것을 영화에서만 억지로 촬영하는 상황을 지양한다. 우리가 줄리오가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본다고 해도 우리가 그 내용을 다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 어느 순간부터 영화에서는 스마트폰을 화면에 크게 클로즈업해서 거기에 적힌 메시지까지 자세하게 드러내는지 의문이다.

김경수

동감한다. 제아무리 스마트폰을 소재로 쓴다고 해도, 스마트폰의 스크린이나 인터페이스를 직접 스크린에 재현해 인위적인 느낌을 만드는 데에 반감이 있다. 그 순간 영화가 유치해지는 느낌이랄까. 이와 이어지는 질문인데, <가는 길에 딱 한 잔 더>는 35mm 필름과 16mm 필름으로 찍혀 있다. 이런 촬영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지금 손에 든 줄리오의 필름카메라도 그러하고,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 셀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날로그에 대한 애호도 충분히 이유라 생각한다. 다만, 이 필름 촬영을 볼 때 개인적으로 레트로한 느낌을 연출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마치 영화 속 세계는 동시대인데도 과거에 갇혀 있는 듯하다는 고립감을 받았다. 특히 영화 속의 술집은 1970년대 그대로 머물러 있는 듯하다. 필름 카메라로 인해서 영화 속 시공간이 흩뜨려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란시스코 소사이

그러하다. 디지털은 모던하지 않은데 대중은 디지털을 최첨단의 매체라 생각한다. 동시대contemporary를 가장 정확히 드러내려면 동시대에서 거리를 두고, 시대착오적인 시선으로 동시대를 그리는 게 가장 동시대적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필름과 아날로그 매체가 더 동시대적이라 생각한다. 자칫하면 모순적인 말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필름 영상과 디지털 영상으로 무언가를 찍을 때의 미묘한 차이를 느낀다.

흔히 우리가 필름 영화를 볼 때 허구적인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는가. 반면에 디지털로 찍은 유튜브 영상을 볼 때의 느낌은 또 다르다. 유튜브 영상은 너무 생생하고, 동시대와 거리가 가까워 사실인지 허구인지를 분간하기가 어렵다. 일부러 필름으로 찍은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이 영화를 틀고 있는 동안만은 이야기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만들고 싶다. 앞으로 계속 필름으로 영화를 찍을 예정이다.

 

김경수

초현실적인 감각과 사실적인 감각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았는가. 이 감각이 약간 동시대 이탈리아 감독 중에 마술적 리얼리즘을 펼치는 '알리체 로르바케르'나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과 닮아 있는 듯하다.

프란시스코 소사이

두 감독 모두 애정한다. 개인적으로 두 감독이 이탈리아 영화의 전통을 다시 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이탈리아 영화 자체가 환상이나 상상이라 생각하는 부분과 현실이 혼재한 영화가 많다. 게다가 이탈리아인의 성격도 원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이야기꾼의 기질이 있어서 그런 허구와 현실을 섞는 게 자연스럽다. 그 기질이 영화로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은 아닐까 싶다. '페데리코 펠리니' 영화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고, 그의 영화를 볼 때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져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탈리아 영화에는 전통적으로 그런 마술적인 분위기가 있는데 한동안 좀 많이 안 보이다가 최근 두 감독을 통해서 그 지점이 발굴되고 재조명이 이루어지는 듯하다. 내 첫 단편 영화에서는 어릴 적 친구의 생일날 있던 기이한 일을 다루었다. 이 영화를 찍을 때는 최대한 내 기억에 충실하게 재현하려 했다. 영화를 보았는데 실제와 전혀 다른 이야기가 탄생했다. 어쩌면 기억이라는 것조차 허구가 벌써 개입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있고, 그 둘 사이의 균형이 있다기보다는 어쩌면 그 둘은 처음부터 혼재해 있어서 구분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경수

흥미롭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또 다른 이탈리아 영화인 마르게리타 스팸피나토 감독의 <스윗, 스윗하트>도 영화 곳곳에 허구와 현실이 분명치 않은 점을 그린다. 어쩌면 동시대 이탈리아 감독의 고유한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프란시스코 소사이

그러하다. 페데리코 펠리니는 "환상이 가장 진실한 리얼리스트다"라고 말했다. 이 감각이 이탈리아 영화의 개성일지도 모르겠다. 그 감각이 이탈리아 영화를 하나로 이어주는 듯하다. 이탈리아 감독 가운데 페데리코 펠리니를 안 좋아하는 감독은 없을 거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감독의 마음에 저는 평생에 한 번 정도 펠리니 영화 중 하나를 본인만의 방식으로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떤 감독은 <8과 2분의 1>(1963)을, 또 어떤 감독은 <달콤한 인생>(1960)을 본인만의 방식으로 찍고 싶을 것이다. 내 경우 <카사노바>(1976)를 나만의 방식으로 찍고 싶다. 마치 기타리스트가 지미 핸드릭스를 본인만의 방식으로 전유하고 계승하듯이 이탈리아 감독에게는 펠리니가 그런 이상향같은 존재다.

김경수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다. 인터뷰하기 직전에 신작 시나리오 초고를 쓰고 왔다고 들었다. 신작이 무엇에 관한 영화인지 궁금하다.

프란시스코 소사이

이탈리아에서는 아직 공개하지 않은 정보지만 흥미로운 인터뷰를 준비한 데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특별하게 힌트를 드리고 싶다. 1977년, 내가 살았던 지역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다. 그때 이탈리아에서 독립하려고 정치적 운동을 한 세력이 있었다. 그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트랙터를 타고 베니스의 산마르코 광장을 공격한 적 있다. 과연 그 독립운동을 이끄는 사람들이 꿈꾸던 독립 국가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야기를 구상하는 중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다시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차기작도 기대해달라.

[인터뷰 김경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