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말하려는 노력에 관하여
조희영 감독의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1.
조희영 감독의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를 보는 동안,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았던 것은 흔히 언급되곤 하는 이 영화의 구조적 측면이었다. 정호가 캔버스의 종이를 뜨는 동일한 장면이 영화의 시작부와 중반부에 반복돼서, 전체 서사의 반복 구조를 이루는 부분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또한 세 명의 주요 여성 인물 중 한 명인 인주(정보람 배우)가 제작한, 영화의 제목과 동일한 명칭을 가진 작품이 영화 말미에 등장한다는 사실 역시 쉽게 주목할 수 있는데, 파란색 조각이 깨져 흩어져 있는, 파편화된 색채의 회화적 감각은 단순한 소품 차원을 넘어 영화의 핵심적인 주제와 긴밀히 연결되며 독특한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정작 나에게 더 강하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이 영화의 구조적 반복이나 심미적 장치들 자체가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경험과 영화가 사용하는 형식적 장치가 어떠한 방식으로 접속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중요한 것은 인물의 삶과 감독이 그려낸 시각적 관찰들이 어떤 형태로 형식화되고, 그 형식을 통해 불안과 고독, 그리고 살아낸 시간의 경험이 어떻게 다층적으로 드러나는가 하는 점이다. 이 지점이야말로 오늘의 한국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일종의 태도, 즉 '삶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형식의 반복과 차이를 통해 포착하려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조희영 감독의 전작 <이어지는 땅>은 영화 배급사 '필름다빈'을 통해 세상과 만났다. 필름다빈은 한국에 유명세가 있는 유럽 거장들의 작품은 아니지만 중요한 영화제의 상영작들을 수입하여 개봉해 왔고, 무엇보다 단편, 장편 독립 영화의 배급사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필름다빈이 선택하는 한국 영화에는 어떤 특징들이 보인다. 이를 세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해외라는 다소 낯설 공간에서 펼쳐지는 한국적인 것들로 묶일 수 있다.
최근 배급작 중 하나인 남소현 감독의 단편 <떠나는 사람은 꽃을 산다>(2025)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은하라는 한국 여성이 베를린에서 살아가다 귀국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들어 지내던 집의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고, 한국으로 가져가기엔 번거로운 물건을 돌려주기 위해 옛 연인을 기다리고, 또 가까운 친구들 혹은 지인들과 함께 하는 송별 모임에서 돌발적인 감정을 터뜨린다. 이 세부들은 단순한 에피소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단지 "베를린에서의 생활"이 아니라, 낯선 땅에서 한 젊은 여성이 자기 정체성을 자꾸만 질문받으며, 동시에 귀환해야 할 고향을 의식하도록 만드는 체험이다. 이 서사 속에 담긴 주요 키워드는 타향, 외로움, 불안, 여성, 그리고 존속과 단절이라는 삶의 긴장이다. 이러한 키워드는 고스란히 조희영 감독의 영화 속에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영화가 점점 많아지는 이유는 명백하다. 워킹홀리데이, 교환학생, 해외 유학, 혹은 "한국이 싫어서"라는 연유로 일정 기간 해외에서 거주한 경험을 가진 세대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런던, 밀라노, 베를린 같은 도시의 이름은 더 이상 이국적 상상력에 머물지 않고, 지극히 일상적인 "체류의 경험"이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상하게도 이국적 배경을 선택한 한국 독립영화나 젊은 감독들의 작품 중에서 유독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도시들이 드물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제작비나 언어적 장벽 때문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깊숙한 정서적 경향—유럽 도시가 제공하는 미묘한 고독과 낯섦이 특정 세대의 심리적 풍경과 더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정하게 이 영화들은 오래전 뮌헨의 '슈바빙'에 대한 기억을 내게도 주입시켰던 전혜린의 에세이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의 후예들이다.
아무려나 바깥에서의 삶, 낯선 도시의 삶은 관객들에게 이중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도시 풍경과 청춘의 불안 사이의 긴장적 진동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눈앞에는 낭만의 파편과도 같은 이국적 경치가 펼쳐지지만, 동시에 그 풍경과 대조적으로 인물의 내면에는 고향과 가족, 낯익음과 이별 같은 무거운 감정이 전개되는 것이다. 인주의 파편화된 작품인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가 아니더라도 이들의 존재성은 애초부터 깨어져 있다.
<이어지는 땅>에서 공민정이 연기한 이원이 밀라노에서 조경사 일을 하거나,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에서 유정이 연인에게 식물에 물을 주었는지를 집요하게 묻는 장면은 모두 이와 같은 맥락 안에서 읽힌다. 단순히 '식물 관리'라는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땅에 뿌리내리려는 존재의식과 연결된 직관적인 동시에 은유적 장치로 읽히기도 한다. 부유하고 흔들리는 듯 보이는 인물들의 삶은 결국 항상 "뿌리"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원은 밀라노에서 새로운 뿌리를 내리려고 하지만 여전히 어렵고, 유정은 새로운 남자와의 인연을 지속하지만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은 자살하려고 했던 과거의 연인이다. 전혀 다른 시공간이지만 두 인물은 식물을 기른다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통한다.
이들의 뿌리 내림을 향한 의식은 디아스포라의 경험을 구성한다. 요즘은 잘 쓰이지 않지만, 여전히 유효한 용어로 말하자면 '자기 유배' 혹은 '자발적 유배'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 말들의 근원에는 '고아의식'이 있다. 문학비평가 김윤식이 한국 근대 문학을 정의하면서 활용한, 영화 평론가 김영진이 2000년대 이후 등장한 한국 영화를 정리하면서 아버지 없는 세대의 박찬욱, 봉준호 등의 영화를 저서 『순응과 전복』에서 정의할 때, 한결같이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통용되는 키워드는 '고아의식'이다. 그렇기에 도발적이고, 자유롭지만, 그렇기에 어딘가 뿌리내리고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 가고 싶어하는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 분야에 정점에 있는 고전은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다. 영화 속에서도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의 수진(공민정)과 유정(정회린)과 인주(정보람)가 각각 일러스트레이터, 배우, 화가인 것은, 전작 <이어지는 땅>에서 한국으로 바뀌었어도 여전히 내적으로 방황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초상 속에서 한 남자를 둘러싼 서로의 관계도를 그리고 있다. 예술가의 설정은 단순 직업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자 하지만 끝내 단절과 고립을 경험해야만 하는 동세대 예술가의 초상'으로 기능한다. 조이스가 그 시대의 디아스포라적 자아를 문학으로 형상화했듯, 조희영은 현대 한국 청년들의 불안과 자기 유배를 영화 속 화면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조희영 또는 전혜린의 후예들은 남성적 고아의식과는 좀 다른 결이다. 타지에서 살아가거나 부유하는 여성 인물들은 단순한 '이민자'나 '여행자'라기보다는, 자기 내면의 불안을 낯선 도시의 어두운 풍경에 반사시키며 "의식적으로 자기 유배를 감행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자발적 유배'라는 주제의식'은 동시대 한국 독립영화에 부상하는 정동적 언어이다.
2.
조희영 감독의 두 편의 장편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연애담'이라는 사실이다. 성인 여성들이 등장하는 동시대 한국 영화의 흐름을 보면, '직접적인 남녀의 연애담'이 터부시되는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상업 영화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독립 영화의 경우는 특히나 그러하다. 인물들의 감정은 고립되어 있거나 밀도 있는 사랑의 서사가 빠진 채, 연애가 없는 연애담 혹은 감정의 부유만이 영화를 지배한다.
<이어지는 땅>의 주인공 호림(정회린)은 헤어진 연인을 만나러 온 목적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자신이 런던에 온 이유를 분명히 드러낸다. 인물의 되돌리려는 태도는 솔직함과 분방함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젊은 여성 캐릭터들에서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라이즈>(1995)를 연상시키는 이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밀라노에 낯선 남자와의 하루를 통해 두 사람의 친밀함은 단박에 가까워진다.
<이어지는 땅>에서 두 여성이 솔직한 감정을 내맡길 수 있게 된 데에는, 낯선 장소, 즉 '런던'과 '밀라노'라는 바깥의 공간이 가지는 힘을 지나칠 수 없다. 타자의 영역에 자신을 내맡긴 호림은 과거의 연인을 다시 만나는 순간, 또렷해지는 두 사람의 관계(남자에게는 현재의 연인이 있다)를 떨치기 위해 과감해 지고, 이원은 새로운 가능성을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길을 찾지 못하는 남자로 인해 안타까운 시간을 보낸다. 이처럼 두 인물의 이미지는 지나간 사랑과 새로운 사랑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는 구조적 장치이면서, '장소의 이동'이라는 시간-공간적 프레임워크 속에 깊은 감정의 미분을 새겨 넣는 매체가 된다.
일반적으로 연애의 감정은 고정된 공간, 익숙함 속에서 순환하지만, 조희영 감독의 세계에서 인물들은 런던과 밀라노, 혹은 국내 외부 공간을 이동하면서 사랑의 본질과 그 실현 혹은 실패의 구조를 새롭게 질문한다. 장소 변화 자체가 인물의 내적 진화를 견인한다는 점, 그리고 이 공간에서 뿌릴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의 자기-목적성을 관객에게 질문한다.
나아가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에서 연애의 구조는 인주(정보람)가 추가로 배치되며, 그 관계도와 감정의 결 역시 한층 복잡하게 확장된다. 정회린과 공민정이 각각 유정과 수진이라는 역할을 맡는 가운데, 인주의 등장은 단순한 기능성 캐릭터가 아니라, 한때 죽음을 기다렸던 이력이 있는 인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에 여전히 망설임이 남아있는 인물이라는 다층적 설정으로 채워진다. 바람을 피는 수진은 불륜의 연인과의 사이에서 연인에 대한 죄의식으로 반응하고(소문에 대한 예민한 반응들), 여전히 과거에 붙들려 있는 유정은 현재의 연인에게도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인내하고자 애쓴다. 두 인물은 조희영 감독의 페르소나이자 사랑에 대한 두 갈래 길이다.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인주는 자신을 마음을 차마 말하지 못한 채 멀리서 지켜보고, 바라보는 인물이다. 그녀가 마음을 전하는 쪽지를 쓴 것은 죽을병에 걸렸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남자 정호를 찾아간 곳에서 그녀가 되찾으려고 한 것은 병원에 다녀온 후 자신의 마음을 전할 것을 되찾기 위해서다. 인주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새롭게 추가된 '감정의 a'이며, 두 인물과는 달리 멀리 있는 달을 지켜보는 스타일의 연애를 줄곧 보여준다.
이러한 인물들이 최근 한국의 독립영화에서 완전히 새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국적인 공간을 중심으로 혹은 예술과의 접점 사이에서 지적으로 진동하면서 흥미로운 꼴을 만들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특히 조희영 감독의 반쪽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정회린은 새로운 얼굴처럼 느껴진다. 두 편의 영화에서 맡은 역할이 워낙 다른 결을 지닌 탓이기도 하고, 요즘 시대에 선호되는 이미지를 지닌 동시에 날카롭고, 직선적인 클로즈업으로 다가온다. 조희영 감독의 영화에서 클로즈업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의 막바지에 그녀를 클로즈업하는 데에는 이러한 맥락을 포함한 신중한 선택과 배우의 이미지가 있다.
3.
조희영 감독의 영화의 연애담에서 가장 큰 감정은 후회일 것이다. 동시에 외로움이기도 하다. 후회와 외로움이 동시대 사랑과 삶의 가장 보편적인 성질임을 예리하게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재현하는 예술들을 드러내고(사진이 일러스트로 바뀌고), 기록 재생장치들을 호출해 낸다. <이어지는 땅>에서 호림이 공원에서 줍게 된 캠코더에는 이원에 대한 흔적이 남아 있고, 그 흔적은 단순한 촬영기록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떠나가는 자와 남아있는 자, 돌아와서 재현-재해석하는 자와 이미 떠난 자 사이의 관계가 파생된다. 이것은 구조적으로 각 인물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 구성적 미래를 다르게 해석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서로를 향한(결국 타인을 향한) 기억과 후회의 지각변동과 미디어(캠코더, 그림, 기록 등)를 통한 감정과 관계의 재시간화는 영화라는 매체 혹은 예술의 재현성을 가리키지만, 그것은 상실된 것들을 추스려는 인간적인 행위의 대표적 예일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에서는 남아 있는 이미지와 흔적이 실제보다 더 중요한 감정의 힘을 갖게 만들어진다. 모든 여성들과 관계되어 있는 정호라는 남성을 재현하기 위해 뒷모습에서부터 옆모습으로 서서히 이동하면서 애써 중심을 비껴가는 전략을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심리와 관련을 맺는다. 또한 재현적 이미지는 영화 전체 혹은 부분을 압축한다. 인주가 제작한 파란색 깨진 조각 그림, 즉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는 깨진 색채의 파편으로 산종되는 작품인 동시에 인물 각자의 내면 파편, 그리고 그 파편들이 잠시 형태를 이루다가 다시 흩어지는 세계의 구조로 이어진다.
영화의 서사도 마찬가지다. 정호가 사라진 이후 각 여성 인물이 놓인 상황은 단일한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과 선택, 바람, 불안에 따라 각기 다른 시간대가 평행적으로 존재한다. 인과적 차원에서는 정호의 실종, 인주의 죽음에 대한 성찰, 유정의 반복적 행동 등이 서로 교차하며, 인물의 행동이 하나의 결과가 아닌 여러 가능성을 품고 있다. 결국, 예술이 곧 이들의 인생이고, 이들의 인생은 하나의 그림, 하나의 사진, 하나의 작품으로 수렴되었다가 흩어진다. 그렇게 한 편의 영화가 탄생한다.
동시에 조희영의 영화에는 집요함이 있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영화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검은 개가 한 마리인지를 물었다. 이 질문을 하는 연유는 동물들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대다수의 영화에서 한 마리로 촬영을 진행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조희영 감독은 두 마리였음을 언급하면서도, 자신이 원했던 것은 한 마리였다고 강조했다. 같은 이미지가 서로에게 비춰질 때 다른 개처럼 보일 수 있다는 이 착시 효과야말로 이 영화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 아마, 조희영 감독은 세 명의 여주인공 혹은 모든 여주인공이 결국 하나의 인물처럼 보이기를 바랬을 것이다. 나아가, 세 여성과 관련된 정호라는 인물이 한 명의 인물이 아니라 각자에게 비춰진 여러 명의 인물일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출판사 직원의 이야기로 인해 촉발된,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정호의 사진을 찍은 유정과 그것을 일러스트로 그린 수진과의 사이에 일어나는 균열은, 정호가 다른 남자였음을 보여주면서 마무리된다. 그것이야말로 인주의 작품 제목보다 더 직접적으로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를 가리킨다.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세심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일정하게 과잉이기도 하다), 그러한 결을 통해 조희영 감독은 치밀하다 못해 모든 쇼트들을 통제하는 자신만의 그림과 음악을 완성해 간다. 심지어 이 영화의 음악 사용도, 최소한으로 반복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4.
영화의 스타일이 차이와 반복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연출부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조희영의 영화에서 홍상수의 흔적을 읽으려고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홍상수와 반대편에 있고자 하는 의지가 역력해 보인다.
홍상수의 영화가, 오래전 로카르노와 베를린의 집행위원장이었던 샤트리앙의 말처럼 "초록병의 마법"이 펼쳐지는 소주의 영화라면(그래서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여전히 소주를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조희영 감독의 이번 영화는 알코올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커피의 영화에 가깝다. 정호라는 인물은 쉼 없이 커피를 가져오거나 만든다. 알코올이 흐트러짐이라면, 카페인은 각성이다. 그러나 두 약물의 화학적 본질과는 상관없이, 둘 혹은 그 이상의 인물 사이에서 공유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짐 자무쉬의 <커피와 담배>(2003)에서 보여주듯이 커피는 종종 담배를 부르며, 더한 중독의 길로 안내하기도 한다. 당연히 조희영의 영화를 보노라면 커피가 끌린다.
최소한 조희영 감독의 영화가 보여주는 각성 작용은 실존적 외로움에 대한 각성이다. 끊임없이 불안하고, 그 가운데 취하기보다는 깨어 있고자 하는 노력은(이것이야말로 요즘 세대에게 가장 많이 발견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점점 알코올을 멀리하는 세대들이 증가하고 있음은 쉽게 관찰된다), 취한 세대보다 더 안정된 실존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알코올 중독과는 다른) 카페인 중독과 새로운 불면의 밤을 야기한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에서 침대에서 사랑을 나눈 후 수진이 깨어있는 장면의 섬뜩함이 여기에 해당한다. 나아가 앞서 쓴 바 있는 강미자 감독의 <봄밤>(2024)에서도 알코올 중독자인 인물과 함께 밤을 새며 기다리는 남자 주인공의 불안을 보는 것은(결코 함께 취하지 않는다) 카페인 시대(한국 사회에 오늘날처럼 카페가 많은 적은 이전에 없었다)의 주요한 풍경이자 태도이다. 그런 점에서 조희영의 영화는 동시대의 성질과 중독 속에서, 불안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히스테리를 건드리고 있다.
다만, 두 편의 영화를 본 독자로서 조금 더 여유로워지기를, 밀착하는 두 편의 작품도 흥미롭지만 이들이 지닌 과거의 사연보다는 현재 속에서 관찰되기를 희망한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꽤나 굉장한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업 영화 제작 편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실질적으로 코로자 직후였던 2023년도에 류승완 감독의 <밀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영화가 손익분기점에 실패한 상황 속에서 한국 영화는 바닥을 향해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의 가능성은 새로운 감독들과 여전히 함께한다. <장손>(2023)의 3만명 관객 돌파 이후, <딸에 대하여>(2023)의 2만명 관객돌파 이후, <여름이 지나가면>(2025)의 1만명을 넘기는 관객 이후 새로운 숫자들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극장의 경험들이, 오히려 어렵다는 시기에 펼쳐지기를 희망한다.
[글 이상용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