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키안 스킴' 웨스 앤더슨은 왜 현재를 포기했을까?
"모형의 세계에서 꿈꾸는 가족, 어제의 세계를 향한 여정"
최근 웨스 앤더슨이 창작 욕구를 활발히 발현하면서 2년 사이에 <애스터로이드 시티>(2023)를 비롯해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외 단편 3편, 그리고 <페니키안 스킴>(2025)을 연달아 선보였다. 그렇게 단 시간 내에 영화적 역량을 분출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페니키안 스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웨스 앤더슨 작품이 가진 주변부와 공통점을 추적하면서 이를 발견하고자 한다.
먼저, <페니키안 스킴>을 보며 골똘히 생각해 보게 된 지점은 작품의 방향성은 둘째 치더라도, '언제부터인가 그의 영화에서 동시대적인 느낌을 받기 어려운지'에 대한 고민이다. 그의 첫 작품으로 알려진 <바틀 로켓>(1996)으로 시작하여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1998), <로얄 테넌바움>(2001), <스티븐 지소와의 해저 생활>(2004), <다즐링 주식회사>(2007)까지는 미국과 현대사회를 주로 다루며, 가족 관계나 소외된 인물상,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을 다뤄왔다. 그러나 <판타스틱 Mr. 폭스>(2009)를 시작으로 그의 작품은 점차 동시대보다 동화적이고 연극적인 구조로 그 프레임을 전환하면서 현대는 자취를 감추었다.
가장 큰 계기가 되는 작품은 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일 것이다. 이 작품이 개봉되었을 때, 대중들은 그의 미학에 크게 감응했다. 특유의 대칭적 구도와 파스텔 톤 색채, 미니어처 세트가 전면에 드러나면서 '웨스 앤더슨 풍'의 광고, 밈, 패러디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앤더슨의 성공은 그가 앞으로 구축하게 될 영화에 대한 예언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 환기해야 할 부분은 '왜 미국인인 그가 '유럽' 등을 경유해 영화 세계를 재전유했으며 왜 계속하여 현대를 배경으로 사용하지 않느냐'이다. 이 의문은 그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제작한 후 인터뷰한 내용을 살펴보면 해소될 수 있다. 많은 매체에서 웨스 앤더슨은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을 제작하면서 '슈테판 츠바이크' 저서인 『어제의 세계』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에서 보낸 문화적 전성기를 회고하는 내용인 이 책은, 곧 몰락할 세계에 대한 탄식과 화려하고 낙관주의였던 세계를 회상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그가 추구하는 세계관의 변화에 대한 시발점이었다. 초기 앤더슨을 거쳐 중기 영화로 가기 위해 앤더슨은 현재가 아닌 '어제'를 전략적 요충지로 삼았다. 과거의 낭만을 구현하기 위해 영화라는 타임머신을 발명한 것이다.
앤더슨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부터 베를린에 위치한 바벨스베르크(Babelsberg)스튜디오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이 바벨스베르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 스튜디오로 1912년부터 다채로운 대형 세트와 역사적 건축물을 재현해 온 경험이 풍부한 기업이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부터 현대 블록버스터까지 다양한 장르를 제작하며 여러 영역을 끊임없이 개척해 왔다. 바벨스베르크가 표현주의를 실험하고, 적극적인 카메라 기술 지원을 통해 로베르트 비니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19), 프린츠 랑의 <메트로폴리스>(1927)와 같은 작품이 탄생한 것도 그 명성을 확고하게 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독일은 미국 할리우드의 경쟁력에 맞서기 위해 그 핵심으로 바벨스베르크를 선택했다. 선전영화의 거점이었던 시기를 거쳐 세대를 연결하는 이곳은 영화사에서 독자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장소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여기서 독일 표현주의를 앤더슨의 작품과 등치시킬 수 있는 이유는 촬영 기법 때문이다. 이는 왜곡과 대칭, 인위적 공간과 그림자 활용, 미니어처와 세트 결합, 미장센 중심의 오브제들이 작품을 구성하는 특성을 공유한다. 더불어 '연극'적 구성에 기여하는 세트는 세트가 세트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려는 성격과도 일치한다. 이는 곧 앤더슨은 '영화가 현실인지 가상인지하는데 큰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그의 연출은 과거의 유산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도리어 영화가 영화답기 위한 과거의 형상을 미학의 출발점으로 지정했다. 결국, 앤더슨이 바벨스베르크와 협업하게 된 이유는 츠바이크가 묘사한 '쇠락한 유럽'을 재현하기 위해 최적의 미학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앤더슨과 바벨스베르크가 벌써 제작 파트너로 동행한 다섯 번째 작품인(<그랜드 부다 페스트 호텔>(2014), <개들의 섬>(2018), <프렌치 디스패치>(2021), <애스터로이드시티>(2023))인 <페니키안 스킴> 또한 그가 지속하고자 하는 영화적 성격을 규명한다. 그에게 '현대 없음'의 시간은 마치 그가 촬영 현장에서 화려한 파스텔 복장을 착용하듯 그의 행실로서 그 주체적 이미지를 수행하고 있다. 현대에 머무는 과거 '인간'인 앤더슨은 시간 속에 잔여하는 다큐적 사건을 기록하기보다 시간 속에 수면을 취하던 상상의 여백에 몰입한다. 전작 <에스터로이드시티>가 1955년 완전한 허구의 미국 사막 마을을 배경으로 했다면, 이번 <페니키안 스킴>도 이와 유사한 1950년의 시대적 배경을 공유한다. 분명 시기가 공유되고, 중동이란 국가를 겨냥하고 있지만, 당시 세계를 긴장하게 했던 역사라는 사건(식민지 해방, 홀로코스트, 세계대전)은 영화의 주변을 맴돌지 않는다.
<에스터로이드시티>가 소행성(에스터로이드)이라는 의미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외계 생명체의 등장은 사막에 고립된 마을이 마치 독립적인 세계처럼 보인다. 이는 그가 규정하는 공상과도 맞물린다. 물론 1947년에 로즈웰인근에 미확인 비행물체가 추락했다는 음모론 사건을 염두하고 제작된 영화이긴 하지만, 사건과의 관련성을 크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또한 <프랜치 디스패치>의 2번째 에피소드에서 프랑스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인 68혁명이 명시적으로 드러나곤 있지만, 여학생 기숙사에 남학생들의 출입을 허용해 달라는 요구로 역사는 정치적 디테일이 남아 있지 않을뿐더러 희화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의 영화에는 시대의 흔적이 어렴풋이 묻어 있지만, 다큐적 가능성은 그의 이야기 속에서 무정하게 배회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역사적 과거를 진열된 소품처럼 다닌다는 평가가 따라온다.
모형의 문명과 인간, 반형상적인 영화
<페니키안 스킴>은 유럽의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전쟁 국가들이 아니라 고대 페니키아를 토대로 한 '문명' 국가가 앤더슨 영화의 모형처럼 닻을 내리고 있다. 곧 고풍스럽고, 우아한 자기 과시적인 경향, 고대 문명을 이어가는 민족에 대한 자부심, 페니키안이란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던 상인이란 모형을 선택하면서 다루고 있다. 이 모형은 그의 관심사를 관통하는 영화적 주체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현대 사회에서 모형은 원형을 대체하는 생산 주체다. 곧 앤더슨 과거의 영화를 답습하는 동시에 원형을 넘어서는 창작자로 서 있다. 역사 혹은 사건 없는 반형상적 모형을 이용하는 것이다. 모형은 온전히 현실을 담을 그릇이 될 수 없으며, 그의 영화에서 담으려 했던 몇몇 사회풍자의 표면은 미장센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 또한, 선입견을 전제로 한 특정 개인-공동체는 역사와 정치적 담론 앞에서 판결을 내리는 존재이긴 하지만, 앤더슨의 영화는 모형으로서 상상계에서 머문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도덕적 교훈이나 윤리적 메시지를 전하기를 원한다"고 명시적으로 말한 경우가 없으며, "내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고 밝혔다. 이는 그의 영화가 지극히 개인적이며 실존적인 영역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번 영화 역시 지극히 개인적이며 가족적인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는 이 영화를 "<로얄 테넌바움>과 같은 샘물에서 나온다"고 밝혔고, 영화 속 주인공 자자 코다(베니시오 델 토로)는 "장인 푸아드 말루프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장인에게 헌정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영화 초기부터 <로얄 테넌바움>, <다즐링 주식회사>, 그리고 이번 작품 <페니키안 스킴>에 이르기까지 가족영화를 제작하는 이유는, 그의 가정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8살 무렵 부모가 이혼한 후 삶의 큰 격변기를 겪었다고 회고한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굉장히 복잡한데, 이는 그 사랑이 결핍된 부성애를 갈구하는 인물이나 이상한 아버지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리고 <로얄 테넌바움>이나 <다즐링 주식회사>에서는 세 남매와, 세 형제가 부모와 연결되고 죽은 아버지를 애도하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3명은 앤더슨을 포함한 실제 형제 관계를 의미한다. 그의 자전적 성격은 이번에도 장인을 겨냥하여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는다. 결국, 앤더슨이 영화를 통해 맨 먼저 드러내고자 했던 이런 '가족'이다. 그는 "내가 자란 방식은 나의 영화에서 계속 반복되고, 나는 그것을 피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가 있는 아버지를 대체하는 <페니키안 스킴>의 '코다'는 앤더슨이 모형으로 삼는 반형상적 이미지다.
영화 <페니키안 스킴>은 도덕적 결함이 있는 페니키안 스킴이라는 대규모 개발 계획이 있는 사업가 코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첫 장면에서 우리는 그의 여섯 번째 추락 사고를 목격하면서 그에 대한 온갖 비리의 잔상이 추정되는 논설을 듣게 된다. 그리고 다음 흑백 프레임에는 어느 회당 혹은 교회(사후세계를 상징하는)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관에 들어가 있는 젊은 시절 코다의 삶을 나열하는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영화에 간간이 등장하는 이 흑백 배경은 전작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도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활공하는 장면으로서 앤더슨 자신의 실존을 영화에 투영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라는 말은 그가 영화 안에서 도달하고자 하는 꿈, 희망을 모색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코다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흑백 세계가 계속해서 영화를 채운다. 이는 과거 영화사를 회귀하는 영화적 장치이자, 그가 끊임없이 탐색하려는 가족 서사의 또 다른 실존적 면모이다.
코다는 자신의 죽음 이후를 생각하여 아홉 명의 아들을 입양하는데, 이는 그가 말하는 '확률'을 높이기 위한 방책이다. 여기서 코다의 혈육인 딸인 수녀 리즐(미아 트리플턴)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녀인 그녀에게 코다는 전보다 도덕적인 방식으로 여러 협상을 이어 나간다. 영화에서 사용되는 가죽 신발 상자 오브제는 서사의 핵심 장치다. 건강이 악화된 장인이 앤더슨에게 추억을 정리한 신발 상자 여러 개를 꺼내 보여줬다는 것이다. 기억의 오브제인 이 상자 안에는 협상을 위한 인프리 계획, 생일날의 아버지, 삼촌 성적표, 결혼식 날 엄마 사진, 독가스 앰플 6개, 회귀 우표, 금화, 해골 모양, 비밀 편지, 조부의 시신을 태운 재가 담겨 있다. 이 모형은 제국적 야망과 가족의 균열이 보관되어 있다. 이는 과거로부터 주어지는 선택의 문제를 영화는 다루는 것이다.
<페니키안 스킴>에서 앤더슨은 성공과 가족 사이에서 그가 영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주제로 돌아가는 선택을 감행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코다의 사업이 유명무실하게 된 후 궁궐과 같은 집이 아닌 헌 집에서 생활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코다와 리즐은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책상에 앉아 카드 게임을 한다. "결혼할 거니"라 묻는 장면에서 카드를 들고 "하트"라 말하는 이 묘한 장면은 거대한 사업이 가족과의 협상으로 이어지는 모습으로 귀결된다. <페니키안 스킴>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꿈꾸는 앤더슨의 실존을 긍정하는 영화다. 문명의 진화가 아닌 가족의 진화. 그것이 그의 영화 모형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터무니없이 보이는 이야기에서도, 이게 점점 더 개인적인 이야기가 되어 갑니다. 나도 모르게요."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