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영화 편지] 최근 한국독립영화가 보여준 '구조'에 대한 단상

영화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2021), <우리와 상관없이>(2023)

2025-07-31     김민세

최근 영화제 내외에서 구조에 대한 실험 내지는 탐구적 성격을 지닌 한국 독립영화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것을 최근만의 경향으로 읽어내기는 어렵다. 21세기 이후의 한국 독립영화, 그중에서 극영화의 커다란 한 축이 리얼타임과 핸드헬드 팔로우 카메라에 따른 다르덴적 리얼리즘에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홍상수적인 구조에 대한 실험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편과 장편을 넘나들며 크고 작은 영화에서 보이는 경향들이다. 물론 이러한 영화들은 홍상수에서 출발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상동이 아닌 상사 관계에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로, 그리고 2020년대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구조에 관한 영화가 한국 독립영화 안에서 계속해서 건드려지는 부분임은 지적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0년대에는 구조가 창작 과정과 그 양태의 개념으로 엮이는 경우가 많았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두 작품인 장건재의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임정환의 <국경의 왕>이 그러하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국경의 왕>에서 양식적인 형태로 드러난 2부 내지는 3부의 구조는 창작자가 경험한 현실로부터 어떻게 이야기라는 양태가 탄생할 수 있는지, 그리고 각자의 층위가 서로 간섭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픽션적인 가능 세계들이 산출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상상과 몽상의 장치가 된다. 한편, 홍상수의 연출부 출신으로 알려진 이광국의 <로맨스 조>, <꿈보다 해몽> 같은 영화도 유사한 맥락에서 읽힌다. 마찬가지로 영화감독이나 연극배우 등의 창작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광국의 영화는 파편적인 서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떻게까지 확장되고 미궁에 빠질 수 있는지에 대한 서사의 성질 자체를 탐구하는 영화이다.

한편, 창작에 대한 주제와 멀어져서 구조 자체에서 올 수 있는 감흥을 전달하고 있는 영화들도 존재한다. 장우진의 <춘천, 춘천>과 장률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가 그러한 예이다. 두 영화들은 모두 2부 구조를 취하면서, 각각 춘천과 군산이라는 특권적 장소가 지닌 신비성을 들춰내려 한다. 홍상수의 영화가 종종 오해받듯이, 이 두 영화는 일차적으로 사실적 혹은 일상적이라는 인상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하지만 이들의 영화에서 사실과 일상은 영화가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 일종의 질료에 가깝다. <춘천, 춘천>과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서 보여주는 구조와 반복성, 그리고 지역성은 일상적이라 여겨지는 소박한 풍경을 통해 세계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을 물리적 차원에서 감각하도록 한다. 여기서 ‘물리적’이라는 말은, 내러티브의 논리에서 벗어나서, 반복과 리듬, 패턴과 대칭성 등을 통해서 세계를 감각하고자 하는 태도를 말한다.

 

러한 느슨한 계보를 따라가 읽어볼 수 있는 동시대 한국 독립영화에는 신동민과 유형준의 극영화가 존재한다. 신동민의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와 <당신으로부터>는 3부 구조를 통해 ‘어머니’라는 존재의 ‘몸’을 반복해서 보고자 하는 시도이고, 유형준의 <우리와 상관없이>는 2부 구조를 통해 한 사람이 놓인 상황과 정신을 복합적인 층위를 통해 묘사하려는 시도다.

이들의 작업을 포함한 한국 독립영화들이 공통적으로 구조 내지는 챕터 구성의 영화를 만들게 되는 이유를 가늠해 볼 수 있을까.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독립제작 방식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다. 가령,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는 몇 년간의 시차를 두고 작업한 세 편의 단편을 하나의 장편으로 묶어 구조화한 영화이고, <우리와 상관없이>는 1부 이후 2부를 촬영하는 데 있어서 수개월의 시차를 가졌다. 독립영화, 무엇보다 소규모 제작 환경을 지닌 독립 장편의 경우에는 여러 회차를 갖고 촬영하는 것에 어려움을 지닌다. 스태프와 배우를 모집하고 촬영 일정을 조율하는 면에서, 그리고 특정 로케이션에 오랜 시간 머무르며 촬영하는 면에서 그러하다. 그렇기에 이들은 비교적 시간과 노동, 예산이 적게 드는 단편 영화를 시차를 두고 촬영한 후에 장편화하는 듯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가령, 김태양의 <미망>이 정확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측면은 최근에 있어 독립영화 감독들의 자기참조적 성격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 자기참조적 이야기는 종종 영화인 또는 창작자의 정체성을 지닌 주인공을 통해 풀어지곤 한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신동민과 유형준은 자신의 일상과 사적 경험을 질료로 영화라는 예술이 지닌 매체 특정성을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는 그런 면에서 독창적인 구조적 방식을 택한다. 신동민은 각 챕터에 따라 실재하는 어머니를 담는 것에 있어서 각자 다른 시도를 하는데, 그것을 구조화된 하나의 장편 영화 안에서 일련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대상을 재현하는 창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변수와 작용들을 영화가 오롯이 체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으로부터>는 그것을 보다 정제된 형태로 밀어붙여 1부와 2부를 가능 세계로 구현하고, 3부에서 감독 본인이 실제 어머니와 함께 출현하며 재현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시험한다.

 

<우리와 상관없이>의 구조를 투박하게 설명해보자면, 1부는 현실 세계, 2부는 1부에서 언급한 영화 속 영화, 또는 1부의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머릿속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동민이 현실과 가능 세계 사이에서 불확실한 하나의 형상을 더듬어대려 노력한다면, 유형준의 영화는 기억의 파편으로 이루어진 구조적 유희 자체가 목적이다. 불일치와 비-연속으로 가득한 파편의 집합으로 만들어지는 가능-서사는 동시대의 그 어떤 한국 극영화보다 급진적이고 비관습적이나, 그 구조는 결국 영화라는 매체가 쌓아 올린 관습과 체계가 지닌 힘을 은연중에 감지하고 성찰하게 만든다. 즉, 신동민과 유형준의 영화는 모두 비관습적 구조의 문법에서 출발하지만, 이를 통해 영화가 쌓아 올린 관습(formula)을 되짚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에 존경을 표하는 듯한 태도가 있다.

또한 이들의 영화가 지니고 있는 구조는 세계를 지각하는 낯선 태도와 연관한다. 챕터 별로 구성된 구조는 자연스러운 선형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보다는 그 흐름을 끊어내고 벽을 세우는 방법이다. 구조에 대한 영화를 읽어낼 때는 여기에 세워진 벽 혹은 간극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리얼과 한없이 멀어지면서도 그만의 리얼리즘을 실천하기 위한 작가적 태도다.

[글 김민세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