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워터스' 알려주기의 힘
'다크 워터스' 알려주기의 힘
  • 선민혁
  • 승인 2020.03.23 0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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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크 워터스'(Dark Waters, 미국, 2019, 127분)
감독 '토드 헤인즈'(Todd Haynes)

<다크 워터스>는 유명 로펌의 변호사 롭 빌럿(마크 러팔로)이 시골 농부 윌버 테넌트(빌 캠프)의 의뢰를 받아 거대 화학 기업 듀퐁의 진실을 파헤치는 실화 바탕의 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가 어색했다. 보통의 영화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크 워터스>에서는 '이 부분에서는 인물이 이렇게 행동할 것 같은데', '사건이 이렇게 전개될 것 같은데,' 하는 예상이 빗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내게 이러한 경우들은 클리셰를 비트는 효과로 다가오기보다는 자연스러움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특히 이제 막 로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인 '매니저 변호사'로 승진한 빌럿이 자신의 커리어에 장애물이 될 수 있는 테넌트의 사건을 맡게 되기까지 내적, 외적 갈등이 그다지 없는 것처럼 표현되는 점, 기업을 고객으로 하는 로펌이 테넌트 사건을 회사의 이익과는 관계없이 지원해주는 것처럼 표현되는 점은 인물을 드러내지 못하고, 전개를 어색하게 만드는 것 같아 아쉬웠다.

 

사진 ⓒ
사진 ⓒ (주)이수C&E

그러나 이러한 어색함이 큰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이 영화의 힘은 충분했다. 이 영화의 힘은 실화와 그것에 대한 시선에서 나온다. 영화는 분노하거나 경악하거나 안타까워할 만한 실제 사건을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이러한 태도는 관객이 실제의 사건을 더욱 실제처럼 느끼게 만든다. 영화는 관객의 감정이입을 돕기 위해 주인공 혹은 피해자들에게 지나친 서사를 부여하는 일을 하지 않으며 악역을 더욱 악하게 표현하지도 않는다. 자본주의와 국가 시스템의 부조리를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비판하는 이데올로기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단지 진실을 보여주고 그것을 밝혀내는 과정을 알려주는 데에 충실한다. 이러한 담담한 방식은 오히려 관객에게 더 크고 깊은 충격을 준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해주어야 할 이야기가 있는 동시에 전달해야 할 정보가 있다. 화학회사와의 20년 간의 법정싸움에서 발생하는 정보들은 자칫 영화를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요소이다. 그러나 <다크 워터스>는 꽤 괜찮은 편집을 통해 필요한 정보들을 자연스럽게 전달해준다. <다크 워터스>가 담담한 목소리와 자연스러운 정보 전달을 통해 보여주는 힘은 내게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 <가늘고 푸른선> 같은 잘 만든 다큐멘터리를 보았을 때의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사진 ⓒ (주)이수C&E

<다크 워터스>는 진실을 밝혀 내기 위해 소수가 권력과 싸우는 이야기다. 진실은 무엇인가. 우리는 진실이라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 '거짓이 아닌 것', '꼭 밝혀져야 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알 권리'라는 말이 있듯 그것을 아는 것을 권리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알게 뭐야',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진실은 때로 누군가에겐 밝혀지지 않아도 상관이 없거나 모르는 게 더 나은 것이기도 하다.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어떤 진실은 숨겨졌을 때, 잘못이 없는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살아갈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꼭 밝혀져야 하는 진실이 있다. 그런 진실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용기와 희생, 투쟁이 필요하다.

잘못이 없는 사람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진실을 숨기려는 세력이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 진실의 은폐가 어렵지 않은 세계라는 것은 절망스러운 사실이 아닐 수 없으나 <다크 워터스>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희망은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를 가진 누군가가 있다면 진실은 결국 밝혀진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은폐된 진실과 싸우는 이들은 소수이다. 그러나 그 소수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숫자다. 빌럿과 테넌트가 시작한 싸움에는 마을 사람들과 빌럿이 속한 로펌이 함께하였고 이 싸움은 영화 <다크 워터스>가 되어 전세계의 관객들과 만나게 되었다.

P.S 이 영화만큼 까메오의 힘이 강력한 영화가 있을까. 까메오로 등장한 실제 사건의 주인공들은 영화 내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나 영화가 끝난 후에도 <다크 워터스>를 관객의 현실에 남아있게 한다.

[글 선민혁, sunpool1347@gmail.com]

 

사진 ⓒ (주)이수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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