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아메리칸 팩토리' 우리 모두의 이야기
[NETFLIX] '아메리칸 팩토리' 우리 모두의 이야기
  • 김수진
  • 승인 2020.03.22 2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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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메리칸 팩토리'(American Factory, 미국, 2019, 110분)
감독 '스티븐 보그너, 줄리아 레이처트'(Steven Bognar, Julia Reichert)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우리와 의견이 다른 이들의 말이라도 (...) 그들이 영화를 보면 '맞아, 저게 내 시각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미국에 진출한 중국 기업이 입지를 다지는 과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 감독의 기획 의도다. 영화는 어느 쪽에도 저당 잡히지 않은 채,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하며 여러 담론을 제시한다. 쉼 없이 달려온 산업화 시대를 거쳐 글로벌을 넘어선 '글로컬(Glogal)'의 다문화 시대, 그리고 이미 우리 앞에 도래한 산업 자동화의 물결은 이 영화 속 여러 담론들을 추동하는 힘이다. 산업화 시대에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다문화 세대가 시작되면서 발생하는 갈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궁극적인 목표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무엇이든. 이제는 하나의 국가에서 하나의 이념만 집중하는 건 구시대적인 형태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스티븐 보그너, 줄리아 레이처트 감독을 비롯해 선뜻 제작에 나선 버락 오바마, 미셸 오바마 부부의 말처럼 나와 다른 이들과의 '소통'이 그 어떤 이념보다도 중요해졌다. 버락 오바마는 이 영화를 통해 “세상은 흑백으로만 나뉠 수 없고, 회색도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류에게 있어서 모든 이념을 뛰어넘는 다원주의가 왜 필요한지 역설하는 대목이다.

 

가치관(이념)의 충돌 

<아메리칸 팩토리>는 미국의 공장 이야기이면서도 미국의 공장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의 자동차 유리 제조사 '푸야오 글래스 아메리카'(이하 '푸야오')는 미국 오하이오주에 공장을 설립한다. 2015년 오하이오주에서는 GM 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수만명의 실직자가 발생한 때였다. '푸야오'는 그런 오하이오주의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고마운 존재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중국 현지에서 온 근로자와 미국인 근로자로 이루어진 근무환경은 순탄치만은 않다. 중국인과 미국인 사이 문화적, 법률적 차이로 인한 잡음이 차츰 발생한다.

사회주의 이념 아래, '노동'을 가장 중시하는 중국의 문화와, 자유민주주의 기치 아래 인간의 존엄성에 가치를 둔 미국의 문화는 여지없이 충돌한다. '챠오 더왕' 회장을 비롯하여 중국인 관리자들은 미국인 근로자들을 향해 '손이 느리고 천성이 여유로워 일의 효율성을 떨어트린다'고 아쉬움을 드러낸다. 반면 중국 본사를 찾은 미국인 근로자들은 기계적인 반복 노동에 능통한 근로자들을 보며 괴리감을 느낀다. 보호 장비도 없는 위험천만한 작업현장, 매일 이뤄지는 잔업과 적은 급여에 적잖은 충격을 받는다.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일의 능률을 중시하면서 회사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느냐, 아니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충분한 복지를 제공하느냐의 기로에서 '푸야오'에 대한 미국인 근로자들의 불만은 본격적으로 쏟아지고 노사 간의 갈등이 증폭된다. 물론 공장에서 일하지 못하면 생계가 어려워지는 일부 근로자는 회사 전체의 이익에 큰 비중을 두며 불합리한 대우를 견뎌낸다. 이 같은 삼각편대 속에서 관객 또한 스스로 처한 위치에 따라 어떠한 결정을 따를지 함께 고민하게 된다. 모두가 만족하는 방안이 있긴 한 것일까.

그 누구도 이러한 갈등에 대한 뚜렷한 해답을 내릴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푸야오'의 갈등을 조용히 관망할 뿐이다. 물론 한가지 상식적이고 추상적인 해결책은 존재한다. 바로 '소통'이다. 이 영화는 국가와 국가 혹은 개인과 개인 간의 '소통'과 그에 따른 '이해'의 중요성을 여러 번 반복하여 강조한다. 미시적으로는 공장 근로자들 간의 언어장벽과 문화 차이에서 벌어지는 문제일 것이고, 거시적으로는 노사 간의 '소통'과, 더 나아가 미국와 중국이라는 거대 국가들 간의 '소통'을 이야기할 수 있다.

영화의 큰 줄기에는 미국과 중국의 문화적 차이가 전제되어 있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국가적 테두리는 점차 사라진다. 실질적으로 개개인의 가치관과 문화적 차이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는 핵심적인 화두다. 이 때문에 영화는 그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은 채,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그 답을 맡긴다. 관객에게도 '이 영화와 소통하라'고 권하는 셈이다.

 

개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미국인의 회사가 아니고 중국인의 것이고, 노동의 대가를 받는 근로자이기 때문에 중국의 문화에 맞춰 회사가 원하는 행위만을 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있을까. 개인의 자유와 개성의 존중 여부를 떠나서라도, 미국을 앞서고자 하는 중국의 국가적 권력 욕심과 최고의 기업이 되기 위한 기업의 자본주의적 욕심이, 과연 개인의 인권을 당연하다는 듯이 무시해도 되는지 의구심을 들게 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푸야오' 공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등을 비롯해 노동하는 모든 인간의 이야기다. 또 다원적 문화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충돌을 요구당하는 자들의 이야기다. 주류문화 혹은 기업과 같은 거대한 세력이, 스스로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진정 공익적인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국가와 회사가 있기 전에, 개인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서로 이해하고 함께 공생하는 길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지극히 기본적인 상식에 기대하는 말이다.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고 기계는 어느새 인간의 자리를 빼앗았다. 인간과 인간이 남은 자리를 위해 경쟁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소통'은 한층 더 중요하다.

더 나아가 계급을 관통하는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운다는 면에서, '챠오 더왕' 회장의 개인적 일화를 이야기의 끝에 더한 것은 주목할만하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한 공장의 경영자로서 스스로 느꼈던 회의감을 드러낸다. 산업화로 인해 사라진, 이젠 되살릴 수도 없는 그 아름다운 시골의 자연풍경을 그리워한다. 그러면서도 배고팠던 그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쉬이 회귀할 수 없다. 먹고사는 일을 생각하면 과거보다 현재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다문화 시대의 노동하는 인간에게 이 영화가 주는 것은, 모든 것이 사라져 가는 이 순간에도 해결책은 인간에게 있음을 상기시킨다는 것이다. '소통'과 '공감', 인간만이 가능한 이 능력들은 노동의 효율성, 돈, 권력 그 어떤 것보다도 가치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돌이킬 수 없는 강도 숱하게 건너왔지만,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음을 이 영화가 일깨워 준다.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영화 비평지 '씬1980' 편집위원 김수진
웹진 무비스트에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다가 광주로 내려와 영화 비평지 씬1980(scene1980)을 창간해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에서 영화이론도 연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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