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영화는 영화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영화는 영화다
  • 선민혁
  • 승인 2019.11.22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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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스어 폰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미국, 영국, 2019, 161분)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쿠엔틴 타란티노 만큼 색이 분명한 감독이 있을까. 맛깔나는 대사, 기막힌 플롯, 통쾌한 카타르시스. 타란티노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은 자연스러운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타란티노의 9번째 작품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그의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다. 탁월한 플롯으로 관객을 감탄하게 만들지도 않고, 유혈이 낭자하지도 않으며, 직접적인 복수극이라고 보기에도 어렵다. 이런 이유로 타란티노의 팬들 중 일부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실망을 하기도 한다.

타란티노는 왜 평소 그의 영화에 비해 이질적인 영화를 만들었을까? 그가 늘 쓰던 것과는 다른 방식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헐리우드의 전성기를 '원스 어폰 어 타임…’으로 시작하는 동화적인 이야기로 만들어내고 싶었을 수도 있고, 샤론 테이트 사건을 영화로 재구성하여 그녀에 대한 추모와, 가해자에 대한 복수를 타란티노식으로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또한 한물간 배우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감독 자신을 투영한 자전적 이야기로도 볼 수 있으며 '릭 달튼',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 히피들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몇 가지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볼 수도 있다.

 

사진 ⓒ소니픽처스코리아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관객들마다 달라도, 이 영화가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것에는 아무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1969년이라는 헐리우드의 전성기를 배경으로 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등장인물 중 대부분이 영화계에 종사하는 인물이기까지 하다. 이 영화에는 수많은 영화인들이 등장하며 극 중에서 그들은 계속해서 TV시리즈를 포함한 영화를 본다. 'FBI’, '바운티 로’를 포함한 웨스턴 무비들. 영화 속의 인물들은 왜 이렇게 끊임없이 영화를 볼까.

그것을 보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웨스턴 무비를 보다가 릭 달튼을 섭외하기로 한 마빈 슈바르츠(알 파치노),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극장에 가서 관람하며 관객들이 웃을 때 함께 즐거워하는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FBI를 보는 릭과 클리프,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모두 영화를 보며 즐거워한다. 타란티노는 이들이 보는 영화를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것들은 꽤나 재미있다. 보스턴에서 온 남자가 인질로 잡힌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무법자를 찾아와 협박을 당하는 영화, 군 차량을 강탈하는 범죄자가 등장하는 FBI시리즈, 나는 이 이야기들의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즐겁게 그 이야기들을 보았다.

물론 영화란 단지 인간에게 재미만을 주는 무엇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어쨌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영화란, 그냥 영화이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만들고 보는 것, 그것 자체가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영화를 그냥 영화로 보지 않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사진 ⓒ소니픽처스코리아

스판 농장의 히피들, 맨슨 패밀리이다. 그들도 처음에는 영화를 그저 영화로 보았다. 유년시절부터 즐겁게 그것을 향유했으며 스판 농장에 모여 살면서도 티브이로 FBI를 보는 것이 하루 중 아주 중요한 일일 정도로 영화를 즐긴다. 그런데 그들은 영화를 즐길 때는 언제고 영화가 자신들에게 살인을 가르쳤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들이 본 TV시리즈 '바운티 로’에 출현한 릭 달튼을 살해해야 한다는 궤변에까지 이른다. 영화는 그들에게 단지 영화로 존재하는데, 그들은 영화를 단지 영화로 보지 않는 것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영화는 인간을 즐겁게 해주는 어떤 것. 즉 인간이 즐거움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도구이다. 도구는 그 목적에 맞게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히피들은 반전, 평화주의, 사랑 등의 이데올로기로 뭉쳐 살아간다. 사람들이 영화를 더 나은 즐거움을 얻고자 사용한다면,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도구로써 사용하는 것이다.

모든 영화가 모두에게 즐겁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 듯이, 이데올로기 또한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실용이 어려울 수 있다. 어떤 영화에 실망한 누군가가 더 좋은 영화를 만들거나 다른 영화를 찾아보는 것처럼, 이데올로기에 실패한 사람은 이데올로기를 수정하거나, 다른 이데올로기를 찾거나, 이데올로기의 실패를 인정하고 그것을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맨슨 패밀리는 그렇게 할 줄 모른다. 자본주의를 등지고 사랑과 평화를 외치며 스판 농장에 모인 그들은 관광업에 종사하거나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대뜸 영화계 탓을 하며 사랑이나 평화와는 거리가 먼 살인을 도모한다.

영화를 단지 영화로 즐기는 사람에게 이러한 살해 협박은 얼마나 당혹스러운가. 이러한 당혹을 준 자들에게는 화염방사기로 대처한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아닌 릭 달튼이, 헐리우드가 아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말이다.

[글 선민혁, sunpool1347@gmail.com]

 

사진 ⓒ소니픽처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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