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연대의 힘
'작은 아씨들' 연대의 힘
  • 선민혁
  • 승인 2020.02.19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미국, 2019, 135분)
감독 '그레타 거윅'

There are some natures too noble to curb, too lofty to bend.

"어떤 천성들은 억누르기엔 너무 고결하고, 굽히기엔 너무 드높단다." 번역되는 문장은 도시 생활에 지쳐 돌아온 주인공 ' 마치'(시얼샤 로넌)에게 어머니 '마미 마치'(로라 ) 해주는 말이다.

같은 국가, 같은 지역, 같은 집에서 같은 성별로 같은 부모에게 태어나 길러진 작은 아씨들 그렇듯, 우리는 동일한 물리적 세계에서 살아가더라도, 각자 세계를 다르게 경험한다. 이것이 각자의 선천적인 어떤 'nature'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이러한 각자의 경험들을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그리고 이해한 세계를 살아가는 데에 참고할 지표인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모두 세계를 살아가기 위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 만으로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가치관이 어떤 것이든지 말이다. 작은 아씨들 가장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또한 그렇게 보인다. 조는 명확한 자신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망설임 없는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이웃 친구 '로리'(티모시 샬라메)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사랑이 아님을 분명히 하며 그의 고백을 거절한다. 조는 결혼을 함으로써 요구받게 되는 전통적 여성의 모습을 자신이 원치 않는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소설가'라는 명확한 꿈을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한다. 조는 이렇게 스스로의 가치관에 따라 능동적인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데도 자아실현에 좀처럼 성공하지 못하고, 외부세계로부터 상처 받는다.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다른 자매들도 마찬가지다. 첫째 메그(엠마 왓슨) 사랑을 쫓아 옆집의 가정교사로 일하던 ' 브룩'(제임스 노튼) 결혼을 하여 그녀가 가진 전통적 여성의 가치관에 따라 항상 가정을 위하며 살아가지만,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 지지가 않는다화가라는 꿈을 가지고 부자인 '대고모'(메릴 스트립) 따라 유럽을 여행 중인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 자신이 화가로 성공할 없음을 깨닫는다. 대고모의 조언에 따라 부자인 '프레드 본'(대쉬 바버) 약혼하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언니 조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로리를 사랑하고 있어 괴롭다각자 괴로움을 가지고 살아가던 자매는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위독과 죽음으로 인하여 '끝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진ⓒ 소니 픽쳐스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 작은 아씨들의 유년시절인 과거와 성인이 현재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유년시절에도, 현재에도 자매들의 삶은 순탄하지 않다. 유년시절 자매들의 아버지는 전쟁에 나가 있었고 가난했다. 성인이 자매들은 각자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으며 대부분 여전히 가난했다. 베스를 잃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자매들은 유년시절에나 현재에나,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은 세계를 오직 가치관 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세계에는 포용과 연대가 있다.

조와 메그가 서로 상반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도 그녀들은 서로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있으며, 조의 명확했던 가치관이 어느 순간 바뀌더라도, 자매들과 로리를 포함한 그녀의 주변 인물들은 놀라지 않고 그녀를 단지 응원해줄 뿐이다. 작은 아씨들과 마미 마치는 이웃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보다 가난한 이웃을 도우며, 다른 이웃인 '로렌스'(크리스 쿠퍼)에게 조건 없는 친절과 배려를 받는다. 각자의 개인들이 가족, 이웃, 친구, 사랑 등의 이름으로 서로에게 실현하는 포용과 연대는 괴로움이 반복되어도 그들을 불행하지 않게 만드는 '계속해서 살아갈 있는 힘'이 되어준다.

완벽한 사상은 없다. 있더라도 그것이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하는 우리 모두에게 완벽할 수는 없다. 우리는 타인이 어떻게 세계를 그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었는지 수는 없지만 내가 그렇듯, 타인 또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것은 있다. 그래서 주장과 설득보다 필요한 것은 어쩌면 포용과 연대일지도 모른다. '그레타 거윅'이 이미 수차례 영화로 제작되었던 <작은 아씨들> 2019, 다시 그녀만의 언어로 만든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글 선민혁, sunpool1347@gmail.com]

 

사진ⓒ 소니 픽쳐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