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래빗' 낭만의 투쟁
'조조 래빗' 낭만의 투쟁
  • 선민혁
  • 승인 2020.03.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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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자유를 선고받은 우리가 끊임없이 마주하는 질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이 물음은 우리를 괴롭히는데, 우리가 던져진 외부세계는 우리를 가만히 두지도 않는다. 외부세계는 우리에게 '사회', '이념', '가치'등의 명목으로 우리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어떤 모습, 행동들을 요구한다. <조조 래빗>에는 이러한 요구가 매우 강력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은 전체주의로부터 부정당하고 있다.

주인공 조조부터 살펴보자. '멋진' 남성으로 사회에 소속되고 싶은 조조(로먼 그리핀 데이비스)는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를 상상의 친구로 둘 만큼 나치에 매료되어 있다. 그러나 조조는 나치에 어울리는 폭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에 반하는 순진함과 따뜻함을 가진 소년이다. 전체주의는 이러한 조조의 성격을 부정하며, 그가 자신의 본질을 포기하는 노력을 열심히 하도록 만든다.

조조의 어머니 로지(스칼렛 요한슨)는 전체주의로부터 그녀의 가치관을 부정당한다. 나치에 반대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로지는 그것을 드러낼 수 없다. 그녀는 아들 조조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숨겨야 하며 조조의 아버지가 이탈리아에서 연합군과 싸우고 있는 독일군인이라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

군인 클렌첸도르프(샘 록웰) 또한 그의 가치관을 숨겨야 한다. 그는 그가 속한 집단이 말도 안되는 행위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여 괴로워하고 있지만, 그것을 드러낼 수 없다.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맥켄지)는 그녀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다. 그녀에게 생존조차 허락되지 않은 전체주의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벽장에 숨는 것뿐이다.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들은 모두 전체주의라는 외부 세계로부터 억압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오히려 저항한다. 조조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자 자신의 본질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사회에서 부정하는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 또한 보인다. 토끼를 죽이지 못하는 조조는 '조조 래빗'이라고 조롱 당하지만, 상상속의 친구 히틀러를 통해 토끼는 사실 용맹하고 필요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그냥 토끼가 되기로 한다. 그는 자신이 토끼 같음을 부정하지 않고 '토끼'로서 세계와 부딪히는 것이다.

로지는 가치관을 숨기며 살아가지만,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유대인 소녀 엘사를 자신의 집에 숨겨주며 비밀리에 '자유 독일' 운동을 이어간다. 굴복하지 않는다. 클렌첸도르프 또한 체제에 적당히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그에게 부여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않는 '직무유기'를 통해 저항을 이어간다. 그는 그가 맡은 아이들에게 전체주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주입하지 않으며 유니폼을 자신의 취향대로 디자인하는 데에 몰두하는 등 체제가 요구하는 것과는 관계없는 행위를 한다. 엘사를 죽음의 위기로부터 구해내기도 한다.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전체주의 사회에서 생존이 허락되지 않은 엘사는 생존을 통해 저항한다. 그녀는 수차례의 죽을 고비와 포기의 유혹을 물리치고 살아남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 인물이다.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는 전쟁 같은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 영화는 하나의 방법을 제안해준다.

 

There's always time for romance.

로맨스 타령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전쟁중이다, 라는 조조의 이야기에 로지는 로맨스는 언제나 필요하다고 대답한다. 영화에서 'Ghost'로 표현되는 전체주의에 자신의 본질을 빼앗겨버린 사람들이 만연한 세상, 혐오로 가득한 전쟁 같은 세상에서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투쟁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낭만'을 좇는 것이다.

로지는 자신의 '낭만'을 좇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낭만'의 가치를 미래 세대인 조조에게 가르쳐준다. 클렌첸도르프는 사회에서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을 등지고,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며 엘사와 조조를 죽음의 위기로부터 구해내는 '낭만'을 실현한다. 조조는 어머니 로지에게 배운 '낭만'적인 감정들을 경험하며 그것을 익히고 결국,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이 아닌 '낭만'을 좇아 엘사를 사랑한다.

'낭만'은 전체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가치일 뿐만 아니라 전체가 개인에게 행사하는 폭력을 무력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타인이 베푼 '낭만'을 받고, 스스로의 '낭만'에 따라 행동한 조조와 엘사는 결국 'extremely dangerous'한 외부세계에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며 '춤'을 춘다.

[글 선민혁, sunpool1347@gmail.com]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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