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의 나라> 익숙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성혜
<성혜의 나라> 익숙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성혜
  • 선민혁
  • 승인 2020.02.04 0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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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혜의 나라'(The Land of Seonghye, 한국, 2018, 118분)
감독 '정형석'

빚 보증을 잘못 선 적이 있고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비와 입원비가 필요한 부모를 가진 취업준비생 주인공.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준비를 한다. 아르바이트 업종은 편의점과 신문 배달이다. 끼니는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 삼각김밥 등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퇴근 후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주인공의 생활은 개선되지 않는다. 오랜 기간 만난 남자친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며 현실감각이 없다.

주인공은 부당한 일로 인턴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상태다. 집주인은 보증금을 올려 달라고 한다. 영화는 흑백이며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친구에게 “그거 피면 좀 나아지나?”라고 말하고 친구가 피던 담배를 피는 장면이 있다.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인 주인공은 기침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천변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세상을 향해 "씨발!"을 외치는 장면이 빠지면 섭섭하다. 물론 주인공은 수면제를 모으는 취미 또한 가지고 있다.

 

사진 ⓒ 아이 엠(eye m)

너무나도 뻔하다. 그래도 괜찮다. 이러한 소재가 뻔한 이유는 현실에서 흔하기 때문이니까. 충분히 꺼내 볼 만한 문제적인 이야기라는 것이다. 뻔한 소재를 뻔하지 않게 이야기해주면 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영화적인 재미를 추구하기 보다는 최대한 현실에 가까운 그림을 관객에게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청춘의 문제를 다루고 싶다. 현재 이 나라의 청춘들은 그 단어의 뜻과는 다르게 고생을 많이 한다. 그래서 영화는 청춘이 고생하는 걸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이 청춘들의 현실을 자세히 본 뒤에 보여준 그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피상적이다. 왜 그들이 고생을 하는 지, 무엇이 많은 청춘들을 괴롭게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영화는 던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청춘들은 돈이 없고 노동력을 착취당해서 힘들다. 그런데 그들이 왜 돈이 없을 수밖에 없고 노동력은 어떻게 착취 당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시선은 영화에 없다. 단지 청년들이 끊임없이 고생하는 걸 보여줄 뿐이다.

이런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씬들이 현실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씬들이 많다. 스물 아홉 살인 성혜(송지인)는 아이폰을 사용한다. 그녀는 잘 때 그것을 침대에 두는데 알람 기능은 사용하지 않고 알람 시계를 따로 사용한다. 일하는 편의점에서 멀쩡한 아이폰을 놔두고 크고 무거워 보이는 노트북을 꺼내어 이사 갈 방을 검색한다. 평소 성혜가 편의점에서 노트북으로 따로 하는 일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은행업무는 ATM기를 이용하며 통장잔고는 종이 통장으로 확인한다. 시대적 배경을 의도적으로 과거로 설정한 것 같지는 않다.

편의점에서 손님으로 우연히 성혜와 마주친 이전 직장의 상사(이미도)는 무려 4년전에 인턴으로 근무한 성혜를 알아보고 매우 친근하게 대한다. (인턴은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이며 6개월 이상이면 긴 것이다. 성혜는 중간에 그만 두었다.) 심지어 함께 일하던 성혜의 동기도 성혜를 잘 기억하고 있으며 보고싶어 한다고 말한다.

성혜는 열심히 산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준비를 하는데 취업준비에는 취업 학원을 다니는 것이 포함된다. 취업학원에서 면접을 1:1로 강사에게 배우는 장면도 나온다. 그런데 성혜의 면접 실력은 형편없다. 면접관의 질문에 짧은 한 문장으로 대답만 할 뿐이다. 합격할 리가 없는 면접이다. 그런데 영화의 의도는 '성혜는 열심히 하고 면접도 잘 봤지만 면접에 붙지 않았다.'이다.

 

사진 ⓒ 아이 엠(eye m)

이 영화도 물론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시도를 한다. '부모님의 사고사로 성혜에게 갑자기 들어온 5억'이라는 사건이다. 충분히 신선할 수 있고 관객들이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꺼내 볼 수 있는 사건이다. 이런 좋은 소재마저 영화는 클리셰를 통해 작위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아버지의 생일이라서 드라이브를 시켜주고자 오랜만에 운전을 하는 어머니에게 주인공은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로 운전 조심하라고 말한다. 아니나다를까 부모님은 그날 교통사고로 죽는다. 물론 주인공은 바쁜 와중 받은 불길한 전화로 이 사실을 알게 된다. 5억이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낸 피의자(재벌)가 낸 합의금이란 사실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고, 부모님의 목숨 값에 대해 논하며 "우리의 목숨 값은 얼마일까?" 하는 장면도 빠지지 않는다.

성혜는 5억을 특별한 곳에 쓰지 않고 은행을 통해 약 150만원씩 40년에 나눠서 받기로 한다. '큰돈을 손에 쥐고도 특별한 꿈이나 낭만을 쫓을 수 없는 세대' 라는 주제의식을 이야기하며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친절하다. 은행원이 플랜을 설명해주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고 성혜가 영화에서 급하게 등장한 인물인 성혜의 대학 동기에게 메시지를 보내 "아무데도 쓰지 않기로 했어~" 하며 설명까지 하게 만든다.

<성혜의 나라>라는 제목에 대해 이 영화는 무책임하다. 성혜도 누군지 모르겠고, 나라가 어떻다는 것인지도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사진 ⓒ 아이 엠(eye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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