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들의 느슨한 지점(地點)
그 영화들의 느슨한 지점(地點)
  • 오세준
  • 승인 2020.01.29 0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웃음은 있는데, 재미가 없다"

1.

설을 맞아 한국영화가 대거 개봉했다. 그리고 100만, 300만 나름 흥행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설연휴 흥행강자'라는 수식어와 함께. 배우, 영화감독 및 여러스텝 입장에서는 분명 흥행은 축하할 일이지만, 관객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딱히 감흥이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재미가 없다. 도리어 '한국영화 위기설'이란 말을 꺼내며, 동시에 한국영화끼리의 경쟁이 '제 살 깎아먹기'라던지, 제작자나 투자자의 금전적인 문제, 독점 배분에 대한 극장 플랫폼 유통구조 등의 지적도 이제는 의미가 없는 듯하다. 언젠가부터 한국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는 시기가 생겼고, 요즘에는 그러한 낮은 기대치를 인정하고 영화관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편 지난해 <벌새>, <우리집>, <메기>, <아워바디> 같은 여러 여성 감독의 작품들이 주목받은 것도 -그것이 작품성이든 흥행성적이든- 한국영화라 불릴 선택폭이 그것들뿐이었다. (또는 한국영화산업에서 그간 충족시키지 못했던 여성 창작자의 결핍에 대한 방증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앞서 거론된 작품들에는 스타가 아닌 다양한 배우들이 그들의 존재감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성취를 가진다. '송강호', '이병헌' 등과 같은 스타급 배우들을 앞세워 만들어 내는 상업영화들 역시 그들의 명성이 '결코 흥행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수를 반복하는 중이다. 심지어 최민식, 이성민, 조진웅 등의 배우들이 계속해서 흥행에 실패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오히려 '하정우'나 '마동석'은 운이 좋았다.

'정확히 언제부터였을까'라고 기억해낸들 그것의 소환이 당장의 문제해결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기에 무의미하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가 느끼기에는 2018년 <물괴>, <명당>, <안시성>, <협상>부터다. 이후로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들은 관객의 평가나 작품의 완성도 보다는 '손익분기점을 넘기냐 못 넘기냐'로 그들의 작품을 점검하기 바빴다. 기사 역시 손익분기점을 주목하며 그들의 성공 여부를 가르기도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난해 한국영화는 100주년을 맞이했고, <벌새>는 유수 영화제에서 45관왕을 달성했으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칸을 넘어 아카데미 수상을 노리고 있다. 더불어 천만 영화가 5편이나 등장했다. (그만큼 중박 이상의 작품들은 크게 줄었다.)

"그래서 당신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냐?"라고 필자에게 따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사실 현재 박스오피스(2020.01.28 기준)만 보면 한국 영화가 박스오피스 TOP10에 5편 이상 차지할 정도로 강세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영화들이 가진 '스토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 영화들의 스토리에는 '느슨한 지점'이 존재한다. 여기서 언급하는 '느슨함'은 원인-결과에 따른 인과율 또는 관객을 설득시킬 스토리 설정에 대한 부분이다.

 

2.

아이러니하게도 <해치지 않아>와 <히트맨>은 '웹툰'을 소재로 했다는 공통점뿐만 아니라 비슷한 설정 오류를 범한다. 전자의 경우, 주인공 태수(안재홍)가 황 대표(박혁권)의 권유로 기업이 관리하는 망하기 일보 직전인 동산파크의 원장이 되어 동물원을 살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때 태수의 '욕망'은 기업의 정식 변호사가 되기 위한 목표로 향하는 반면 그를 돕는 동물원의 직원인 수의사 소원(강소라), 사육사 건욱(김성오)과 해경(전여빈), 그리고 서 원장(박영규)은 그를 도와 '동물 탈을 써야 할 이유'(그들의 욕망)가 명확하지 않다. 다시 말하면 무리해서 동물원을 살려야 할 사정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이러한 허술한 영화의 시작(도입)은 관객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켜봐야 할 이유를 제거한다. 태수의 성공 여부가 본인이 로펌 기업의 정식 변호사로 발탁되는 계기로 작용하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수의자-아픈 북극곰, 건욱-해경의 러브스토리 등의 작은 이벤트로 러닝타임을 채울 뿐이다. 특히, 아픈 북극곰인 까만코의 존재를 지우더라도 극의 전개는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까만코가 북극곰 보호소로 떠나는 결말은 지나치게 클리셰이다. 결국에는 '동물 탈을 썼다는 것을 들켰는지의 유무'만이 극 전체를 지탱할 요소라는 것이다. 영화를 끝나고 나오면 인간이 동물 탈을 썼을 때 발생하는 코미디만 남을 뿐이다.

<해치지 않아>가 주인공들이 망해가는 동산파크 동물원을 되살리기 위한 고군분투를 그린 이야기로 말하기 어려운 것은 태수를 제외하면 나머지 인물들이 동물로 변장할 만큼, 즉 위험을 감수하고 동물원을 지켜야 할 사연(주체의 결핍)을 가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동물원에 놀러 온 사람들에게도, 감시하러 온 황 대표와 오 비서에게도 주인공들이 '동물 탈'을 썼다는 사실을 들킬 긴장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히트맨>은 더 심하다. 암살요원 준은 웹툰 작가가 되기 위해서 사고로 죽음을 위장한다. 여기서 준의 욕망은 '웹툰 작가'로서의 성공이다. 그러나 영화는 갑자기 준을 '가난한 아빠'로 만든다. 심지어 딸 가영의 랩 가사를 통해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이때부터 준을 이해하기 혼란스러워진다. 죽음을 위장해 정부에게 들키지 않고 어엿한 시민으로 살고 있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상황에서,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 성공해야 하는 웹툰 작가라니.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런 설정 오류에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이 영화는 사실 리암 니슨 주연의 <테이큰>의 플롯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준이 만화로 그린 1급 비밀로 그에게 원한을 품은 악당이 아내와 딸을 납치한다. 그리고 준은 자신의 가족을 구하기위해 나선다. <히트맨>은 결국 전직요원이 악당으로부터 자신의 가족을 구하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웹툰작가로써 주인공 준의 기능은 오로지 자신이 국정원 요원으로 활동한 내용을 만화로 만들어 낼 뿐이다. 최종적으로 이 주인공의 욕망(주체의 결핍)은 웹툰작가로서의 성공이 아닌 악당으로부터 납치된 가족을 구하는 것이다.

<해치지 않아>와 <히트맨>이 가지는 공통적인 문제는 '부실한 스토리 설정'이다. 두 영화는 주인공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욕망의 추구를 소훌히 한 탓에 관객으로써 인정하기 어려운 '사건'만이 버젓히 남아 가까스로 러닝타임을 채운다. 체호프의 말을 빌리자면, 두 영화는 1막에서 총도 꺼내지 않고, 3막에서 총알을 쏜 격이다. 총도 없이 어떻게 총알을 쐈는지 전혀 보여주지 않은채. 필자의 이같은 접근은 결코 작품을 미학적 성취만을 중요하게 생각해 서술하는 것이 아니다. 오락으로서, 내러티브로서 또는 쾌락의 의미에서 영화를 소비하는 주체(관객)가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에 대한 고민이다.

 

3.

그 이전에 개봉한 <시동>과 <백두산>도 비슷한 실수를 범한다. 두 작품은 주‧조연을 포함해 비중 있는 주인공들이 대거 영화 속에 등장하는데, 이들을 한 시퀀스로 이어질 연결점을 찾지 못한 채 무리하게 진행한다. 다시 말하면 두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인물들을 소모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전자가 특히 심한데, 택일(박정민)을 포함한 인물들의 개별적인 스토리, 만약 거석(마동석)의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영화는 무리 없이 잘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택일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그렇다. 애초에 이 영화에는 갈등이라 불릴 딜레마가 존재하지 않는다. 긴 호흡으로 연재한 원작과는 달리 영화는 캐릭터 쇼이며, 그들의 이야기는 쉽게 휘발될 뿐이다.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백두산>의 경우에는 영화 초반 '인창'(하정우)이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는 강남 한복판을 자동차로 질주하는 시퀀스가 기술의 자랑으로 여길 만한 어트랙션으로 이해하더라도, 그의 아내 지영(수지)이 공항으로 바로 직결하는 것이 아닌 가던 중 한강에 빠지는 사고를 겪는 장면을 집어넣는 강박적인 필요성을 관객에 요구한다. 그녀가 임신한 몸으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그 장면이 영화 속에서 반드시 필요한 장면인지를 묻는 것이다. 이와 같은 독립적인 장면들이 백두산에는 무수하다. 이런 플롯의 구조가 '재난 영화'의 코드인지 몰라도 작품의 완성도나 내러티브 측면에서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시동>과 <백두산>은 개봉 전부터 '캐릭터 열전'으로 소개됐다. 원작과의 싱크로율이나 캐릭터 메이킹 등으로 관객에게 어필한 셈이다. 이런 홍보사 전략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 아닌 그럴 수밖에 없는 한계에 있다. 그것은 두 영화의 스토리가 각각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편집으로 조립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런 편집을 위에서 언급한 '느슨함'이라 불러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대체로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가 그러하듯. 개별적인 사건을 이어붙여 관객을 동요하는 이러한 편집이, 영화를 채우기 위함이라면 오히려 마블보다 못하다는 평밖에는 할 말이 없다.

 

4.

재밌게도 위에 제시된 작품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우리 시대의 공감할 수 있는 결핍과 욕망을 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의 캐릭터와 상황을 세팅하는 일, 또 스토리의 메인 사건에 대한 올바른 관점 또는 접근에 대한 탐구를 하지 않는다. 미장센, 몽타주, 이미지 등의 시네마가 지닌 복합성은 비단 예술영화만이 가지는 성취가 아니다. 상업영화라 할지라도 '잘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소비자가 듣고 싶어 할 것'에 기준을 두는 것이 맞다. 심지어 스토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주인공'에 대한 세팅이 제대로 고민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관객이 정서를 대입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한 타당성과 적절함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으면 이야기는 시작할 수 없다.

[코아르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