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빛' 각자의 창을 비집고 나온 작은 빛
'작은 빛' 각자의 창을 비집고 나온 작은 빛
  • 배명현
  • 승인 2020.01.2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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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빛 (Tiny light, 한국, 2018. 90분)
감독 조민재
사진 ⓒ (주)시네마달
사진 ⓒ (주)시네마달

한국 독립영화가 약진 중이다. 대대적 지원을 받은 영화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작품성을 가진 작품들이 늘어났다. 작년에는 <김군>이 대표라면 올해에는 <작은 빛>이 있다. 아직 2020의 초 이기에 확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 훌륭한 독립영화로 올해를 장식할 것이다.

기억을 잃을 수 있는 수술을 준비하는 진무는 중요한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캠코더로 가족을 찍는 그는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담는다. 한 명 한 명 정성스럽게 그들을 담는다. 숨겨진 이야기와 숨겼던 면들을 담는다. 이 과정은 시간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마치 잃어버린 기억을 헤집듯 뒤섞여있다. 하지만 뒤죽박죽된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맥락을 읽을 수 있다.

그 맥락 안에 가족의 존재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 고민을 풀어가기 위해 영화는 밥을 먹는다. 영화는 강박적으로 밥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들의 관계를 엮는다. 이혼과 파혼, 죽음과 다툼으로 헤어져 있던 가족을 연결 짓는다. 이 연결의 연장선으로 각자 숨겨온 이야기를 한다. 캠코더에 온전히 담기는 이 비밀들은 저장된다. 진무가 잃어버리지 않도록 고이 남겨진다. 이 기억들은 소중하다.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는 풀지 못한 이야기들이 개인으로 남자 풀리고 이 풀린 실들은 기억에서 새롭게 연결된다.

영화 안에 등장하진 않지만 영화 전반에 영향을 끼지고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작품 안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끔찍한 기억이다. 폭력적인 인물이며 죽어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조차 가족의 일원이었다는 일말의 여지를 남긴다. 끔찍한 기억이지만 잊어야 하는 걸까, 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라고 대답해야 하는 존재. 차마 지울 수는 없는 존재. 이에 대한 감독의 인터뷰가 인상 깊다.

 

사진 ⓒ (주)시네마달
사진 ⓒ (주)시네마달

그 인터뷰를 인용해보겠다. 조 감독은 "이 영화는 자전적인 이야기지만, 이렇게 살았다 이런 정도로만 영화를 만드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내 이야기로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뭘까 하고 당연히 질문해야 했고, 이 과정의 고민을 진무에게도 심어주고 싶었다. 병에 걸린 건 단순히 캠코더를 들기 위한 설정은 아니었다. '내가 굳이 왜 아버지를 기억해야 할까'라는 딜레마가 있었다. 제가 만약 이 영화를 완성하지 못했다면 아버지를 담아냈다고 말할 수 없을 거다. 이 딜레마를 진무한테도 주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노컷 뉴스, 20.01.26, <언제 이걸 관둘까?' 걱정에도, '작은 빛'은 개봉했다>)

이렇게 기억으로 연결된 존재들이 얼기설기 엮여져있다. 때문에 <작은 빛>이라는 제목은 힘을 얻는다. 감독은 집집마다 난 창으로 새어나온 빛을 보고 스크린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 각각의 스크린마다 다 이야기가 있겠다고 생각한 그는 수많은 작은 빛(이야기)가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가족이 폭력적인 가장과 지난함으로 다루어져 왔다면 작은 빛은 새로운 면을 조망한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굴레를 씌우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 동시에 개개의 길을 가면서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의미를 가진 존재로 표현된다. 이 모습을 따뜻하다고 표현하진 않겠다. 이 지점은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건 가족이란 지난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 시간의 텀을 두고 한 번씩 뒤 돌아봐 주기만 해도 의미를 같게 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라며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사진 ⓒ (주)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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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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