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지않아' 무해해서 새로운
'해치지않아' 무해해서 새로운
  • 선민혁
  • 승인 2020.01.19 1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물원에서 사람이 동물의 탈을 쓰고 동물인 척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고 이 영화를 본 사람은 아주 적을 것이다. 예고편과 포스터에 나오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예고편과 포스터를 통해 알고 있었고, 신선하고 재미있는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니 자신의 성공만을 추구하던 인물이 선량한 사람들을 만나 더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여 이전의 위선을 버리는 흔한 이야기였고, 그 이야기 안에서 인물들이 겪는 갈등과 극복은 예상이 가능한 뻔한 내용들이었다. 인물들은 모두 매력이 있는 캐릭터들이었으나, 캐릭터는 영화에서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았고 캐릭터들 간의 ‘케미’또한 아쉬웠다. 애초에 캐릭터 형성이 충분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공의 ‘변화’또한 어색했다.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장면들이 몇 있었지만 ‘코미디 영화’라는 정체성을 가지기에는 부족한 정도로 보였다.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그래도 나는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전반적으로 뻔한 이야기 속에서 몇 가지 낯선 부분을 느꼈는데 그것이 꽤나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해치지않아>는 제목처럼 무해한 이야기이다. 튀는 소재에 비해 이 영화는 자극적이지 않다. <해치지않아>에서 나타나는 주된 갈등은 타인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과, 자본이라는 세속의 가치보다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집단의 대립이다. 소중한 가치를 지키려는 집단은 투쟁하고, 이익을 얻으려는 집단은 그들을 굴복시키려 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대립에 의해서 크게 다치는 사람(혹은 동물)이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대립의 결과는 한쪽의 승리나 패배가 아니라 타협이다.

이러한 결과가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영화에 악인이 없기 때문이다. <해치지않아>의 악역은 JH로펌의 한대표(박혁권), 낙원그룹의 민채령(한예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그다지 악해 보이지 않는다. 한대표와 민채령은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지나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설득을 당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양보를 하기도 하는 꽤나 인간적인 모습들을 보여준다. 자본주의의 논리에 충실하게 살아가면서도, 적당히 하는 인물들인 것이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을 위해 동물의 탈을 쓰고 동물인 척을 하는 비상식적인 행동까지 감행한 변호사 강태수(안재홍)는 결국 상사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성공한다. 그러나 그는 동물원에서 발견했던 자본주의 이상의 가치와 소중해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이전에 추구하던 것들을 포기한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같은 로펌의 송변호사(박형수)는 단지 친구라는 이유로 손해를 감수하고 태수를 돕는다. 그리고 태수는 결국 순수한 가치와 사람들을 지킨다. 이러한 주인공 태수의 이야기는 개연성이 조금 부족해 보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관객의 욕망은 반영한 서사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위해 이리저리 치이며 치열하게 살아가다가도, 그것들을 초월할 만한 어떤 소중한 가치를 만나 이전에 좇던 위선들을 버리고 그 가치를 추구하고 싶은, 그리고 그 투쟁에서 아무도 크게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망 말이다.

<해치지않아>는 아주 웃긴 코미디 영화도 아니고, 놀라운 전개로 관객에게 흥미를 주는 영화도 아니다. 하지만 놀라운 전개로 아주 웃기는 일들은 현실에서도 많이 일어나니, 자극적인 현실보다는 적당하고 무해한, 싸우더라도 아무도 누구를 해치지는 않는 세계로 2시간 동안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글 선민혁, sunpool1347@gmail.com]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