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랍스터> 시스템의 세계
<더 랍스터> 시스템의 세계
  • 선민혁
  • 승인 2019.12.2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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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랍스터'(The Lobster, 그리스 외, 2015, 118분)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언어 중 하나는 ‘과장’이다. 영화 속 세계가 내가 평소에 경험하는 세계와는 다른 곳이라는 걸 확실히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더 랍스터>의 세계는 과장되었다. 호텔에서는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되고, 숲에서는 커플이 되면 잔혹한 처벌을 받으며 호텔의 투숙객들은 투숙객들이었던 ‘사람’들을 사냥한다. 극단적이다.

영화에서 이 극단적 세계는 주인공 데이비드(콜린 파렐)가 아내의 외도라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사건에 의해 호텔에 머물게 되면서 펼쳐진다. 어쩔 수 없이 호텔에 던져진 데이비드에게, 이 호텔이 완전히 낯선 곳은 아니라는 것을 영화는 데이비드가 호텔에 함께 데리고 온 개를 통해 알려준다. 개는 호텔에서 커플이 되지 못한 데이비드의 형이다.

이 호텔의 입실 절차는 ‘결정’이다. 여성과 결혼생활을 했지만 동성애 경험이 있는 데이비드는 이성애자로 스스로를 결정하고, 44.5사이즈의 신발을 신는 그는 45사이즈로 신발의 크기를 결정한다. 호텔에서 양성애자, 44.5사이즈와 같은 중간은 허용되지 않는다.

입실 절차를 마친 데이비드는 객실에서 짝을 찾지 못하면 어떤 동물로 변할지를 선택한다. 이전의 결정들과 다르게 데이비드는 “랍스터”라고 미리 생각해 놓은 것처럼 쉽게 대답한다. 왜 랍스터냐는 호텔 직원의 질문에 그것이 100년 넘게 살고, 귀족처럼 푸른 피를 가졌으며, 자신이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데이비드는 말한다. 랍스터는 데이비드의 취향에 따른 선택인 것이다.

짝이 되지 못하면 랍스터가 되기로 한 데이비드는 호텔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호텔의 다른투숙객들과 함께 호텔에서 정해준 일정대로 움직이며, 그 안에서 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투숙객들이 보내는 일상 중 가장 중요한 활동은 사냥이다. 사냥의 대상은 짐승이 아닌, 호텔에서 도망쳐 숲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로 그들을 한 명씩 잡을 때마다 짝을 찾기 위한 하루의 시간을 더 제공받을 수 있다. 호텔이 추구하는 가치에 위협이 되는 이들을 사냥해 시스템 유지에 기여한 대가로, 시스템 내에서의 안전을 추가로 보장받는 것이다.

호텔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금지 되어있다. 투숙객들은 호텔이 정한 가치인 ‘짝을 찾기’에 몰두해야 하며 자위행위를 하다가 손을 데우는 처벌을 받은 혀짤배기 남자(존 C.카일리)처럼 가치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안는다. 호텔에서 투숙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호텔의 요구대로 45일 안에 짝을 찾아 사람으로서 호텔을 나가거나, 짝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동물이 되거나, 도망쳐서 사냥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동물이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45일 안에 짝을 찾아 호텔을 나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그런데 호텔에서 짝을 찾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존재해서는 안된다.

 

(주)영화사 오원
사진ⓒ(주)영화사 오원

호텔에서 짝을 찾는 방법은 상대와의 공통점을 만드는 것이다. 억지로 코피를 내는 노력을 해 짝을 찾은 절름발이 남자처럼, 데이비드는 비정한 성격의 여자(아게리키 파루리아)와 짝이 되기 위해, 그녀 앞에서 비정한 척을 하고, 커플이 되는 데에 성공한다. 그러나 ‘나’를 완전히 버리지 못한 데이비드는 ‘척’을 그녀에게 들키게 되고, 결국 호텔에서 도망을 치게 된다.

호텔에서 도망친 데이비드는 도망자들이 모여 사는 숲으로 간다. 그곳의 리더(레아 세이두)는 여기서는 시간적 제한 없이,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도 된다고 데이비드에게 말한다. 얼핏 ‘커플이 되어야 하는 호텔’이라는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인 것으로 보이는 숲은, 사실 이곳에 있는 한, 죽을 때까지 싱글이어야 하는 곳으로, 호텔과 반대의 가치를 가진 또 다른 시스템일 뿐이다.

사랑을 하면 안되는 곳에서 데이비드는, ‘근시’라는 공통점을 가진 여자(레이첼 와이즈)를 만나게 된다. 이미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데이비드는 ‘나’를 꾸밀 필요없이 그녀와 사랑을 한다. 그러나 리더에게 이 사실을 들키게 되고, 리더는 그녀의 눈을 멀게 한다. 그녀와의 공통점을 상실한 이후, 데이비드의 사랑은 식어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데이비드는 그녀에게 자신도 그녀처럼 장님이 되기로 했다고 말하고, 숲에서 그녀와 함께 도망을 친다. 숲에서 빠져나와 도망친 식당에서 데이비드는 여자에게 기다리라고 한 뒤 칼로 눈을 찌르기 위해 화장실로 간다. 데이비드가 돌아오는 것은 보여주지 않고, 영화는 끝이 난다.

 

(주)영화사 오원
사진ⓒ(주)영화사 오원

영화에서 줄곧 나오는 내레이션이 장님이 된 여자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관객은 데이비드가 결국에 그녀에게 돌아왔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도 가능하고, 데이비드가 숲의 리더를 따라 몇 차례 방문했던 도시에서 커플이 아닌 채로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성공적인 탈출을 위해 그녀를 이용한 것이며 그녀에게 결국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떠한 결말이건 간에 확실한 것은 데이비드와 그녀의 감정이 자연스러운 형태의 사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시스템의 의미 자체가 그렇듯, 시스템 내에서 자연스러운 형태로 개인이 존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더 랍스터>에 존재하는 두 시스템 내에서 개인은, 생존을 위해 각 시스템의 이데올로기에 맞게 스스로를 끼워 맞춰야 한다.

나는 영화에서의 극단적인 과장에 재미를 느낀다. 그것이 사실은 내가 평소에 경험하는 익숙한 세계에 대한 낯선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진ⓒ(주)영화사 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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