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의 폭발 가능성
'백두산'의 폭발 가능성
  • 오세준
  • 승인 2019.12.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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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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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국영화 대전의 시작'이라고 한다. 글쎄. 최근 흐름을 보면 한국영화끼리의 대결은 결과가 좋지 않았다. 어쩌면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해야 할지도. 한편으로 <백두산>의 경우에는 26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으로, 이병헌, 하정우, 마동석, 수지, 전혜진 등 캐스팅 라인업도 상당하다. 물론 제작비와 캐스팅이 영화의 작품성이나 흥행을 보장하지 않지만, 현재 시간(22일) 기준으로 200만을 돌파했으니 확실히 대중들에게 먹히는 듯하다.(같은 시간 <시동>은 100만을 넘겼다) 그렇다면 필자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아니.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백두산>을 보면서 느낀 피로감과 아쉬움 때문이다.

조성희 감독이 배우 송중기와 함께 한국영화 사상 최초 '우주'를 배경으로 SF영화를 제작한다. 다시 말하면 한국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우주'로 향하는 판국에 '백두산'을 소재로 한 재난영화는 사실 그리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 못 된다. 백두산이 휴화산인 점을 고려할 때, 분명 언젠가 다뤄질 소재쯤에 불과했다. 결국 <백두산>이 살아남는 방식은 완벽한 '재난영화'로 가는 길밖에 없다. 아니면 단순히 '재미'가 있는 영화 정도에 그치거나. 결과적으로 영화는 후자에 속한다. 오죽하면 '관객들은 무난히 보고, 비평가들은 싫어할 영화'라고 딱지가 붙었으니 말이다. 또 영화에 관한 기사의 댓글 역시 "평론가 의견은 모르겠고 난 재밌게 봤어요"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분명 <백두산>은 관객의 감성을 자극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올해 초 흥행 배우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쏟아부은 <마약왕>, <스윙키즈>, <PMC: 더 벙커>의 경우, 개봉과 동시에 일찌감치 동력을 잃으며 관객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은 결과와는 다른 분위기다. <백두산>에 대한 평가-그것이 대중성이든 작품성이든-비평의 영역보다는 관객의 반응으로 평가를 받는 편이 맞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당신은 분명 의아할 것이다. 대체 필자가 왜 이 영화를 보며 피로감을 느꼈는지. 아니면 잘 완성된 작품에 기어코 흠집을 내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지.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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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감'과 '뻔함'의 과잉

필자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과도한 '편집'이다. 지극히 의도적이라 할만한 숏들의 연결은 감독이 아무리 '관객의 몰입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내놓더라도 뻔하면서 평범한 그런 장면의 연속이다. 영화의 결말이 대표적이다. 백두산이 터지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 서울에서는 '조인창'(하정우)의 아내 '최지영'(수지)이 출산 직전이다. 이같은 지진과 태동의 진동을 동시에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연출은 되려 핵을 터뜨려 백두산의 폭발을 막아야 하는 일촉즉발의 긴박한 전개를 느슨하게 만든다. 심지어 '리준평'(이병헌)이 '조인창'에게 반드시 살아 돌아가 태어날 아기를 만나라며 '희생'을 하는 장면 이후에 펼쳐지는 장면이니 감정이 이미 고조된 상태이다.

더불어 이러한 감독의 편집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백두산 근처에는 '리준평과 조인창'이, 서울에는 '최지영' 그리고 지질학 교수 '강봉래'(마동석)과 청와대 민정수석 '전유경'(전혜진)이, 128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영화는 버디 무비와 옴니버스 무비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다. 매 순간의 위기를 중첩하고 몰아서 담아내기에, 이 영화의 편집점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인물들의 위기를 담아낸다. 그러다보니 특정 상황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역시나 관객들의 감정만 지나치게 쌓아 올려질 뿐이다. <백두산>은 매 순간은 집중하도록 플롯을 짜놓았지만, 그것은 노련하지 못한 감독의 어설픈 욕심이다.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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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재난'이라는 장르적 특성이 이 영화에서 무색해지는 이유는 '화산 분출'이라는 재앙의 특수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되려 '백두산의 폭발'은 맥거핀으로 느껴지는데 추격이나 전투, 정치, 가족 등 많은 요소들을 담기 위한, 이것을 한 번에 분출 시킬 필요성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과연 정공법이라 해야 할지. 이 영화의 접근법은 오로지 관객의 감정을 위한 목적으로 러닝타임을 채운 시퀀스들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 영화가 가진 기시감의 가장 큰 원인이다.

물론, 이 영화가 취하는 국제정치적 입장은 썩 나쁘지 않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두고, 중국과 미국의 각각 철저하게 자신들의 입장에서 이익을 취하는 부분은 꽤 현실적이다. 문제는 '한반도'를 '한민족', '한마음'과 같은 '가족'으로 풀어내려는 점이다. 특히, 영화 초반 '조인창'의 아내 '최지영'이 임신했다는 설정만으로 이 영화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백두산>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는 '리준평'의 태도다. 그는 조인창과 핵을 중국에 넘기는 목적을 가졌음에도 마지막에 가서는 한반도의 안전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다. 심지어 희생 이전에 자신의 목적지와 백두산 사이에서 갈등을 하는데, 필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시동>도 그러했지만, <백두산> 역시 '맥락'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인물들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사건의 결과 영화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탓에 관객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이해를 떠나 짜여진 플롯의 순응하기에 그친다. 후자의 경우는 그것이 더 심한데, 마치 오프닝 시퀀스에서 '조인창'이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6‧25전쟁 잔해물 폭탄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결코 터질 일이 없다며 헬멧을 벗는 것처럼, 이 영화에는 '당연함'이라는 태도가 태연스럽게 깔려있다. 이 능청스러움은 영화의 비장미를 떨어뜨리고, 관객의 입장에서 '정말 백두산이 폭발하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1도 가지지 않게 한다. 아니. 가질 수가 없게 만든다.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2시간이라는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시간 속에서 조인창과 리준평의 여정이 길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리준평의 두 번의 이탈, 미국군의 습격, 연속되는 지진 등 크지 않은 사건들이 a, b, c, d… 플롯 안에 너무 많은 스토리를 끼어 넣는 무리함을 넘어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버디물'이나 '옴디버스식'으로 구성을 이어가려는 감독의 연출로 일관성을 잃어버린 탓이 크다. 또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헐리우드 재난 영화에서 이미 봐온 관객의 눈에 과연 영화가 끝나고 인상적인 장면이 머릿속에 남을지 의문이다. 영화 초반 서울 강남 한복판을 뒤흔드는 지진을 보여주는 시퀀스는 명백히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한 장면에 반해 결코 놀랍거나 압도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필자는 땅이 꺼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서울 강남 한복판,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자동차로 달리고, 발로 뛰는 조인창을 연기한 '하정우'를 보며 <우주전쟁>의 '톰 크루즈', <월드워Z>의 '브래드 피트', 심지어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에서 슈퍼맨과 조드 장군의 격렬한 전투로 무너지는 건물들 사이에서 사람들을 구조하는 브루스 웨인을 연기한 '벤 애플렉'이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병헌과 하정우'는 왜 이 영화에 나왔을까. '이병헌'은 KBS 드라마 <아이리스>를, '하정우'는 <PMC: 더 벙커>를 통해서 비슷한 배역을 연기한 바 있다. 오해하지 말자. 비슷한 배역을 한다고 잘못한 것은 아니니. 단지 필자의 눈에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전형적인 캐릭터가 출연료를 떠나서 두 배우에게 얼마나 이득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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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기생충>, <사바하>, <엑시트>, <벌새>, <메기>, <보희와 녹양>, <유열의 음악앨범> 등 더 나아가 <신의 한 수> 시리즈까지. 필자가 지금 나열한 영화들의 공통점은 '시나리오' 자체의 재미와 감독의 확고한 스타일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또 독립영화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영화가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 글을 통해 올해 한국영화를 되돌아보는 것은 아니지만, <백두산>이 분명 되돌아보게 하는 '무언가'를 가진 것은 확실하다. 지난해 추석을 기점으로 한국영화가 부진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 어쩌면 올해 디즈니의 '모든'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방증하고 있지 않나.

이에 대해 이상용 영화평론가는 "좋은 영화가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배급의 문제로 볼 수 있지만, 현재 한국영화는 그 자체의 다양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송강호·하정우 나섰지만… 외화에 점령당한 연말 극장가' 국민일보 기사, 2019.01.01.) 그에 말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뛰어난 서사의 완결은 '감정'만이 전부가 아니다. '관습'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그 자체의 다양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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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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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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