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스 아웃> 속 무수히 바뀌는 자리들
<나이브스 아웃> 속 무수히 바뀌는 자리들
  • 오세준
  • 승인 2019.12.09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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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 미국, 2019, 130분)
감독 '라이언 존슨'(Rian Johnson)
사진 ⓒ IMDb
사진 ⓒ IMDb

'다니엘 크레이그', '크리스 에반스', '마이클 섀넌', '크리스토퍼 플러머' 등의 화려한 배우진에 이끌려 <나이브스 아웃>을 보기 위해 극장에 들어갔다면, 혹자는 분명 극장을 나오면서 “대체 이 영화 감독이 누구야?”라고 궁금해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브릭>이나 <루퍼>,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로 유명한 '라이언 존슨' 감독이다. (어쩌면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로 더 알려졌을지도) 그렇다면 우린 왜 영화를 다 본 다음에 '감독'이 누구인지 찾았을까', 유명한 배우들의 그늘에 가려져서!? 아니다. 이유는 딱 하나. 오로지 '재미' 때문이다.

화려한 대저택 안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이어 범인을 찾기 시작하는 사립탐정, 여기까지는 분명 최근에 애거사 크리스티의 동명소설을 원안으로 한 영화 <비뚤어진 집>이나 S.S. 반 다인의 저택 살인 미스터리 소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저들의 소설과 같은 척'을 하며,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펼친다. <나이브스 아웃>의 각본을 직접 쓴 라이언 존슨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한 구상을 10여 년 전부터 시작했다고 밝혔는데, 그만큼 이 작품에는 그가 분명 감독이기 이전에 훌륭한 작가임을 증명하는 잘 설계된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베스트셀러 추리 작가 할란 트롬비(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자택에서 시체로 발견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 '시작점'부터 영화는 꽤 흡입력이 있다. 가정부 '프랜'이 '내 집, 내 규칙, 내 커피'라는 재밌는 문구가 새겨진 머그컵에 커피를 담아 '할란'에게 아침 식사를 전달하는 과정인데, 할란의 다양한 수집품과 집의 구조, 특히 할란이 죽은 장소가 서재와 같은 일반적인 공간이 아닌 '비밀의 방'처럼 들어가는 방식이나 위치가 특별한 곳임을 꽤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렇지만 가정부와 가족 대부분이 알고 있는 공개된 장소이다) 이는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또 영민한 감독이 사립 탐정이 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시간을 줄이는 효율적인 장치로 작용한다.

 

블랑&경찰들, 사진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블랑&경찰들, 사진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실제 영화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플롯을 도해해볼 수 있다. 일단, 경찰의 수사를 통해 만나게 되는 '할람의 가족들'과 사립탐정 '블랑'(1부), 이어 '할람'과 간호인 '마르타'의 관계(2부), 마지막으로 할람의 막내아들 '램섬'의 등장(3부)까지. 1부를 통해서 할람과 그의 자식들과의 갈등과 원인을 통해서 각 인물들의 캐릭터를 소개하고, 2부를 통해서 할람의 죽은 이유와 그의 죽음에 따른 마르타의 생존을 다루며, 3부에서는 그러한 마르타를 이용해 할람의 유산을 독실하려는 램섬의 범죄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관찰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입장에 선 '블랑'이 존재한다.

 

비튼다 한들 진심이 퇴색될 리 있나

할리우드가 추리 미스터리 장르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이유로 '내러티브의 복잡성'이나 '2시간이 넘는 긴 상영시간'을 들 수 있는데, '라이언 존스' 감독은 마치 그러한 사정을 충분히 공감한 듯 재미난 '변형'을 시도한다. 그것은 추리로 시작하는 영화가 어느새 추격이 되고, 이듬코 범죄 드라마가 되는 '장르적 스펙타클'이다. 영화는 할람의 일부 자식들의 반대로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한 '마르타'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이후 그녀가 경찰의 조사를 받기 위해 다시 할람의 집으로 가면서 본격적으로 저택 안에서의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이때부터 '마르타'가 아닌 할람의 자식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린다(첫째 딸)-리차드(첫째 딸의 남편)-월트(둘째 아들)-조니(둘째 아들의 아내) 순으로 진행되는 조사, 이때 감독은 인물들이 경찰에게 하는 말(거짓말)과 그 인물이 당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주는 기억(진실)을 '불일치시'킨다. 즉, 자식들 모두 아버지인 할람과 갈등을 가진 인물들이고, 아버지를 살해할 충분한 동기가 있음을 경찰과 사립탐정보다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이들 중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도록 더욱더 부추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지막 조사자인 '마르타'가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전복된다.

 

사진 ⓒ IMDb
'할람'의 자식들, 사진 ⓒ IMDb
사진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마르타&메그, 사진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마르타'(아나 드 아르마스)라는 이 영화의 핵심적인 인물은 작품 전체를 이끄는 중요한 '키'로 작용한다. 마르타의 할람에게 실수로 약을 잘못 투약하면서 할람이 죽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자신을 죽였다는 살인죄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신이 자살을 하는 계획을 세운다. 이 장면에 대한 플랙시백은 '할람'의 죽인 범인을 밝혀내며, 관객의 추리를 멈추게 만든다. 동시에 이제 그녀가 블랑과 경찰에게 들키지 않도록 지켜보는 관람자의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더불어 감독이 설치한 '재밌는 장치'도 같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마르타는 거짓말을 하면 구토를 한다는 것'이다. 즉 그녀는 거짓말을 할 수 없기에 오직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녀의 구토'는 블랑과의 대화를 통해서 할람의 가족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그의 추리가 사실이라는 것을 밝히는 장치로 쓰이지만, 한편으로 블랑이 그녀를 의심할 경우, 오직 진실만을 대답해야 하므로 적대적인 관계로 형성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어느새 마르타는 범인을 쫓는 블랑과 아버지의 재산을 되찾기 위한 할람의 자식들로부터 도망치는 신세로 전락한다.

 

<나이브스 아웃>은 극 중 '마르타의 위치'를 통해서 장르적 변형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 위치가 관객의 입장이 아닌 극 중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서 바뀐다는 점이다.

마르타가 할람과 돈독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장례식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은 '단순히 간호인' 신분, 즉 고용주인 할람이 고용한 단순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굳이 그녀와 아버지의 친밀한 관계를 고려할 이유따위 없는 것이다. 경찰의 등장으로 그녀는 조사인의 신분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할람의 죽음이 밝혀지면서, 경찰과 블랑으로부터 진실을 숨기기 위한 도망자, 또 할람의 전 재산을 받는 상속자로 바뀐다. 이것은 곧 그녀가 처할 상황이 바뀌는 것이며, 새로운 사건을 발생시키는 전개를 이어간다. 바로 마지막 '램섬'과의 공모이다. 램섬의 등장으로 <나이브스 아웃>은 범죄 드라마로 장르가 뒤바뀐다. 그는 그녀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용해 그녀가 숨기고 있는 비밀을 전부 알아낸다. 그리고 유산을 나눠 가지는 목적으로 경찰과 블랑을 속이기로 하지만, 알고 보니 할람이 죽은 이유도, 가정부 '프랜'을 죽인 것도 모두 자신이 유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꾸민 범죄였다는 것을 '블랑'을 통해 알게 된다.

 

램섬, 사진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램섬, 사진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적어도 10명이 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나이브스 아웃>은 어느 인물 하나 낭비하지 않고, 빠른 전개로 이야기를 펼쳐낸다. 할람과 자식들의 사연을 보여주는 '사건 당일 파티의 재현', 할람의 죽음에 대한 '마르타의 사건', 할람의 유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램섬의 음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연결하는 '블랑의 추리', 감독의 이러한 연출은 현대적인 미스터리의 플롯처럼 다가오며, 연속적인 비틀기를 통해서 복잡하지만 어렵지 않은 흥미로운 재미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꽤 교활한 코미디가 아닐까. 필자는 이러한 감독의 뛰어난 살인 게임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감독의 분명한 의도처럼 다가오기도 하는데, 바로 '할람의 죽음'이다. 그의 죽음은 마르타의 실수도, 램섬의 음모도 아닌 자신이 직접 손으로 목을 그어 자살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가 왜 자살을 택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것은 마르타가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함인데, 그 안에는 이민자 출신의 마르타와 그녀의 가족이 불범체류자라는 사정이 담겨있다.

그녀가 범죄자가 되는 순간, 가족까지 추방되는 위기에 빠지는 것이다. 할람의 진심이 닿는 거리는 그녀를 넘어 그녀의 가족까지 이어진다. 더불어 할람의 유서를 통해서, 마르타가 외부자(집 밖)에서 내부자(집 소유자)로 바뀌는 결말은 이 영화가 트럼프 시대의 스릴러로서 느껴지도록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칼을 꺼내 휘두르다'라는 뜻을 가진 영화 제목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 결국 영화는 할람이 죽음으로 시작되는, 어쩌면 그의 죽음과 동시에 휘둘러진 칼이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보는 '즐거움'을 위한 영화가 아닐까. 모든 것을 다 알았다고 시작될 때, 다시 또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내는 감독의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은 분명 고전적인 살인 미스터리의 범주에서 벗어난 형태이며, 한편으로 탐정을 위주로 펼쳐내는 전개가 아닌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통해서 '인물들의 진술'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감으로써 이야기의 확장 가능성을 열어두는, 독창적인 스타일의 작품을 완성했다.

 

사진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사진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우리는 '할람'의 선택을 어떻게 지켜봐야 할까. 아니.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 과장된 말투(미국 남부 사투리)와 몸짓으로 저택 사람들을 밑에서 쳐다보고 있었던 '블랑'의 추리는 어떻게 다가오는가. 그는 죽은 '할람'과 더불어 처음부터 끝까지 '마르타'의 선한 마음을 믿어준 인물이다. 그래서일까. 두 인물이 가지는 진심은 이 영화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이다. 그녀의 실수를 대신에 자살을 택하는 할람의 선택은 이어 블랑이 모든 것이 램섬이 꾸민 음모임을 밝혀냄으로써 그녀가 가진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제거해준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영화에서 실제 '칼'은 할람의 손에 쥐어졌고, 그는 자결을 택한다. 이것이 우선적으로 마르타를 위한 일이지만, 동시에 그의 자식들에게 향하는 재밌는 상황을 발생시킨다. 바로 '유산 상속'이다. 그가 죽지 않았으면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에게 다시 돈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아버지를 잃은 동시에 돈을 구할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 또한 잃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화 초반 할람은 자신의 성공으로 자식들이 자립해서 성공할 수 있는(자수성가) 능력을 기르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그의 죽음으로 이제 자식들은 자신들이 직접 돈을 벌어서 살아야 하니 상황에 놓였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그는 여기까지 설계해 놨던 것일지도)

영화의 전환, 숨겨진 음모, 위트 등 '세련된 스타일의 폐쇄적인 미스터리', 더불어 선량한 캡틴아메라카(크리스 에반스)가 양아치로 또 냉철한 007(다니엘 크레이그)이 말 많고 오버스러운 형사 브누아 블랑으로 변한 모습은 이 영화만이 가진 또 하나의 재미다. 다시 한번 극장에 찾아가 “킥킥”거리며 보고 싶게 만드는 분명한 재미를 가진 작품이다.

 

사진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사진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코아르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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