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V 페라리' 7000rpm 그 어디에서
'포드 V 페라리' 7000rpm 그 어디에서
  • 배명현
  • 승인 2019.12.19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 <포드 V 페라리>(2019)

1.

<포드 V 페라리>는 실화를 어떻게 영화로 풀어내야 하는지, 균형감각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 모든걸 다루면서 재미를 주는 방법까지도.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영화는 포드와 페라리의 대결이다. 하지만 그건 영화 속 순간일 뿐이다. 러닝타임 내내 나오는 주요 적은 '포드'이다. 두 주인공 케롤과 켄에게 적은 포드의 경영진이다. 적은 늘 내부에 있다는 관용어가 딱 들어맞는다. 플롯은 내내 포드의 경영진과 캐롤의 대비를 보여주도록 짜여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단순히 개인과 포디즘(경영진)의 대결이라는 도식에 끼워 넣고 싶지 않다. 그렇게 판단한다면 해석의 다양성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렇다면 영화의 후반부에서 '켄'이 했던 선택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 때문에 영화의 해석을 얄팍하게 만드는 '선과 악'의 대결로 해석하지는 않겠다. 때문에 더더욱 영화를 보는 관점이 중요할 것이다. <포드 v 페라리>는 실재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정말 실화인가. 역사가 실재의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영화로 만든다고 결정한 순간부터 영화는 감독의 관점을 따라가게 된다. 감독의 시선은 누구를 향하고 있을까.  줄거리부터 따라가 보도록 하자. 영화는 캐롤의 시점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르망에서 최초로 우승한 미국인이다. 그러나 아름답지진 않다. 가장 아름답게 '결정된' 실재는 어둡다. 영화의 첫 씬은 중요하다. 이 영화가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판이기 때문이다. 캐롤이 어둠을 뚫고 지나가면 화면은 바뀌고 더이상 운전할 수 없다는 처방을 받는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다음은 켄의 등장이다. 그는 자동차 수리공이다. 자동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씬 다음은 경주로 이어진다. 영화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는 관객은 캐롤이 운전자, 켄이 자동차 개발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감독은 예상을 빗나가게 만든다. 실제 '르망 24시'에서 운전을 해야 할 사람은 켄이었고 그를 서포트하는 사람이 캐롤이다. 첫 장면은 관객을 놀리기 위한 장면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미래를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제한된 정보만을 받는다. 르망이 캐롤의 마지막 주행이었느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캔이 얼마나 오랫동안 달리지 못했는지를 방증하는 장면이다. 주위의 어떤 사람도 그가 운전할 수 있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오직 관객만을 위해 찍은 병원 씬이 정보를 전달한다. 그가 더이상 달릴 수 없다고 때문에 켄이 달려야 한다고.

<포드 v 페라리>는 켄을 달리기게 만들기 위한 영화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급진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온다면 이를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켄의 위기는 늘 극복된다. 그의 경제적 위기, 포드에 의해 좌절된 의지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건 켄이 아니다. 그를 믿고 지지해주는 부인 몰리가 있지만 그녀는 정신적 지주일 뿐이다.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준 지원자는 캐롤이다. 때문에 영화는 두 번 켄과 캐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장면을 배치해두었다. 켄의 첫 자동차 대회와  르망에서의 후반에서 말이다. 캐롤은 혼잣말로 지시를 내린다. 켄은 이 지시를 들은 것처럼 정확하게 운전한다. 이는 단지 둘의 운전실력을 드러내려는 장면이 아니다. 실력 때문이라면 한 번으로 족하다. 감독은 이 둘을 한 사람으로 까지 생각한 것 같다. 때문에 영화 마지막 장면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2.

위에서 말한 문장을 다시 반복하겠다. 이건 실화이다. 켄은 죽었다. 그렇다면 과연 켄과 캐롤, 둘은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만약 감독이 켄을 살려냈다면 이건 실화 바탕의 픽션이 되어버린다. 이 때문에 영화는 현실을 따라간다. 감독은 둘을 다시 연결시키기 위해 '시간'을 건드린다. 감독은 켄이 죽은 후 6개원이 지난 장면을 붙여 놓는다. 관객에겐 1초가 지났을 뿐이다. 이 배치를 이용해 캐롤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죽은 지 정말 얼마 지나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반쪽을 잃은 사람은 시간이 얼마가 지나도 치유되지 않는다.(켄의 첫 자동차 대회와  르망에서의 후반. 캐롤은 혼잣말로 지시를 내리고  차 안에 있는 켄은 이 지시를 들은 것마냥 정확하게 운전한다. 이것이 둘을 하나로 묶는 장면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 시간이 6개월이 지났다 하더라도 치유되기엔 역부족이다.

<포드 v 페라리>가 다루는 사건의 노출 빈도로 보자면, 주요 갈등은 포드와 캐롤의 기 싸움이다. 자본주의하에서 포드는 열렬히 팔아먹기위해 노력한다. 공장에서 개인은 없다. 헨리 포드 2세는 노동자들에게 걸으라 '명령'한다. 걸으며 생각하라고 한다. 과거 헨리 포드 1세의 명예로운 과거를 설교하며 말이다. 하지만 이 명령은 누가 하는가. 자본주의이다. 영화 중반 캐리가 회장을 설득하기 위해 개발 중인 차에 태워 '지리게' 운전하는 장면에서 포드 2세는 무어라 말하는가. "나는 몰랐어 나는 정말 몰랐어.” 그는 무엇을 알지 못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이 대사는 레이서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대사일까. 그렇다기엔 자신이 몰랐다는 대사를 계속해서 반복한다. 너무 많은 걸 몰랐기 때문에 목적어가 없는 건 아닐까. 우리는 페라리 회장이 포드 2세에게 어떤 모욕적 발언을 했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헨리 포드가 아니야. 2세지” 한글 번역으로는 언어유희가 잘 살지 않으나 의도는 2세와 세컨(이류)의 동음 이의어일 것이다. 헨리포드는 노동자 출신이었고 걷다 생각해서 자동차를 만들었다. 하지만 2세는 어떤가. 편히 의자에 앉아 노동자에게 피를 빨아먹으려 하지 않나.

그러나 이 이야기를 끌고가 보면 역설이 보인다. 페라리는 자신의 회사가 부도난 것을 포드에게 알리고 몸값을 올리려 한다. 처음부터 피아트사에게 파는 것이 목표였다. 수공업으로 무장한 장인으로 보기엔 너무 '장삿속'이 보이지 않나.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미국에 넘길 수 없다는 명목으로 은폐하고 있지만 페라리 회장조차 뼛속까지 자본주의에 물든 인물이다. 자본주의 하늘아래서 자본주의를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자존심이 상하신 헨리 포드 2세는 '공장'을 바라보며 '포드'-라 쓰고 미국이라 읽는다-를 1위로 만들어보려 한다. 하지만 모두 영화에서 보았듯 실패로 끝난다. 첫 경기는 어처구니없게도 켄을 보내지 않았다. 두 번째는 켄을 보냈고 승리가 명확해졌으나 승리를 택하지 않는다. 자본을 선택한다. 한 장의 사진과 함께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GT40을 생각하며. 켄과 캐롤이 승리를 그려나갈 때 자본가들은 더 멀리 보며 더 '큰 승리'를 그리는 법이다.

애석하게도 이 장면은 아이러니하다. 관객은 기쁨을 빼앗긴다. 그리고 황당함을 느낀다. 이어지는 너무나 빠른 장면전환은 우리를 혼란하게 만든다. 뻬앗긴 승리에 우리는 화를 내야 할 순간에도 혼란을 느끼며, 이것이 분노인지 당혹인지 헷갈려한다. 자본은 그렇게 우리를 현혹시킨다. 페라리 회장의 존경을 받은 켄은 어떻게 되었는가.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그것도 이미 충분히 예견된 브레이크 사고로 말이다. 이전 부터 브레이크가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고질병을 고치지 않는다. 왜인가. 포드는 팔기 위해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지만 거꾸로 팔리지 않는 건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고 배제해버렸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갈아끼우는 노력은 했을지언정 그건 임시방편일 뿐이다. 절대 문제 자체를 건드리지 못한다. 여러 차례 예고된 명징한 문제가 터지고 만다. 너무나 끔찍한 말이지만 오히려 그 이전까지 '차에 갇힌 채'로 죽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을 뿐이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 <포드 v 페라리>를 통해 스릴을 느끼는가. 웅장한 엔진음과 속도감이 우리를 운전석에 데려다 놓은 것 처럼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아니다. 스릴은 기본적으로 켄의 죽음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닌가. 관객은 켄의 생사를 제단 위에 올려놓은 채로 2시간 30분에 달하는 아슬아슬한 림보를 진행한다. 브레이크가 붉게 타오를 때 우리는 긴박감과 동시에 스릴을 느낀다. 관객은 동시에 그가 안전할 것이라 믿는다. 이미 시험주행에서 브레이크 사고를 당한 켄이 그다음 쇼트에서 멀쩡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운전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니 말이다.

그가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안전벨트처럼 존재하기에 '포드'가 단기간에 만들어낸 GT40은 달릴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포드'는 결국 브레이크를 완성시키지 못해 켄을 죽음으로 데려갔다. 물건을 팔기만 하면 된다는 '포드주의'는 르망에서의 승리와 함께 그의 목숨을 가져갔다. 영화 중반에 헨리 포드 2세가 사무실에서 캐리와 함께 '공장'을 바라보며 했던 말을 복기해보자. "2차 대전 당시 저 공장에서 미국의 폭격기 3대 중 2대가 생산되었어. 자네도 전투를 치르러 가게" 돈은 얼마든지 상관없다는 지원아래 이들의 전투는 시작되지만 결국 이 전투의 승리는 켄과 케리가 아니라 포드가 가져가게 된다. 전투는 군인이 했지만 승리는 미국이 가져가는 상황과 겹쳐보인다.

그렇기에 영화의 시작 씬을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한다. 캐리는 더이상 싸울 수 없는 전투 불능의 상태에서 켄이라는 또다른 자신의 자아로 전투에 나선다. 하지만 승리를 눈앞에 두고 포드에게 빼앗기고 만다. 그뿐만인가 예견된 죽음이 찾아온다. 켄의 평화롭던 가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디트로이트가 경제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영화가 끝난 후 역사의 '사실'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을 감독은 계산해 둔 것일까. 어떻게 해석할지는 물론 관객의 선택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 영화를 버디 무비 혹은 카 체이스 무비로 소비하는 것은 아쉽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포드 V 페라리
FORD v FERRARI
감독
제임스 맨골드James Mangold

 

출연
맷 데이먼Matt Damon
크리스찬 베일Christian Bale
케이트리오나 발피Caitriona Balfe
존 번탈Jon Bernthal
트레이시 레츠Tracy Letts
조쉬 루카스Josh Lucas
노아 주프Noah Jupe
JJ 페일드JJ Feild

 

수입|배급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작연도 2019
상영시간 152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19.12.04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