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V 페라리> 7000rpm 그 어디에서 (후편)
<포드 V 페라리> 7000rpm 그 어디에서 (후편)
  • 배명현
  • 승인 2019.12.0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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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드 V 페라리' (FORD v FERRARI, 미국, 2019, 152분)
감독 '제임스 맨골드''

7000rpm 그 어디에서 (전편)에서 계속.

사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사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전편에서 말한 문장을 다시 반복하겠다. 이건 실화이다. 켄은 죽었다. 그렇다면 과연 켄과 캐롤, 둘은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만약 감독이 켄을 살려냈다면 이건 실화 바탕의 픽션이 되어버린다. 때문에 영화는 현실을 따라간다. 감독은 둘을 다시 연결시키기 위해 ‘시간’을 건드린다. 감독은 켄이 죽은 후 6개원이 지난 장면을 붙여 놓는다. 관객에겐 1초가 지났을 뿐이다.이 배치를 이용해 캐롤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죽은 지 정말 얼마 지나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반쪽을 잃은 사람은 시간이 얼마가 지나도 치유되지 않는다. (켄의 첫 자동차 대회와  르망에서의 후반. 캐롤은 혼잣말로 지시를 내리고  차 안에 있는 켄은 이 지시를 들은 것마냥 정확하게 운전한다. 이것이 둘을 하나로 묶는 장면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그 시간이 6개월이 지났다 하더라도 치유되기엔 역부족이다.

영화가 다루는 사건의 노출 빈도로 보자면, 주요 갈등은 포드와 캐롤의 기 싸움이다. 자본주의하에서 포드는 열렬히 팔아먹기위해 노력한다. 공장에서 개인은 없다. 헨리 포드 2세는 노동자들에게 걸으라 ‘명령’한다. 걸으며 생각하라고 한다. 과거 헨리 포드 1세의 명예로운 과거를 설교하며 말이다. 하지만 이 명령은 누가 하는가. 자본주의이다. 영화 중반 캐리가 회장을 설득하기 위해 개발 중인 차에 태워 ‘지리게’ 운전하는 장면에서 포드 2세는 무어라 말하는가. “나는 몰랐어 나는 정말 몰랐어.” 그는 무엇을 알지 못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이 대사는 레이서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대사일까. 그렇다기엔 자신이 몰랐다는 대사를 계속해서 반복한다. 너무 많은 걸 몰랐기 때문에 목적어가 없는 건 아닐까. 우리는 페라리 회장이 포드 2세에게 어떤 모욕적 발언을 했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헨리 포드가 아니야. 2세지” 한글 번역으로는 언어유희가 잘 살지 않으나 의도는 2세와 세컨(이류)의 동음 이의어일 것이다. 헨리포드는 노동자 출신이었고 걷다 생각해서 자동차를 만들었다. 하지만 2세는 어떤가. 편히 의자에 앉아 노동자에게 피를 빨아먹으려 하지 않나.

 

사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사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러나 이 이야기를 끌고가 보면 역설이 보인다. 페라리는 자신의 회사가 부도난 것을 포드에게 알리고 몸값을 올리려 한다. 처음부터 피아트사에게 파는 것이 목표였다. 수공업으로 무장한 장인으로 보기엔 너무 ‘장삿속’이 보이지 않나.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미국에 넘길 수 없다는 명목으로 은폐하고 있지만 페라리 회장조차 뼛속까지 자본주의에 물든 인물이다. 자본주의 하늘아래서 자본주의를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자존심이 상하신 헨리 포드 2세는 ‘공장’을 바라보며 ‘포드’-라 쓰고 미국이라 읽는다-를 1위로 만들어보려 한다. 하지만 모두 영화에서 보았듯 실패로 끝난다. 첫 경기는 어처구니없게도 켄을 보내지 않았다. 두 번째는 켄을 보냈고 승리가 명확해졌으나 승리를 택하지 않는다. 자본을 선택한다. 한 장의 사진과 함께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GT40을 생각하며. 켄과 캐롤이 승리를 그려나갈 때 자본가들은 더 멀리 보며 더 ‘큰 승리’를 그리는 법이다.

애석하게도 이 장면은 아이러니하다. 관객은 기쁨을 빼앗긴다. 그리고 황당함을 느낀다. 이어지는 너무나 빠른 장면전환은 우리를 혼란하게 만든다. 뻬앗긴 승리에 우리는 화를 내야 할 순간에도 혼란을 느끼며, 이것이 분노인지 당혹인지 헷갈려한다. 자본은 그렇게 우리를 현혹시킨다(뭐시 중헌지도 모르고!).

페라리 회장의 존경을 받은 켄은 어떻게 되었는가.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그것도 이미 충분히 예견된 브레이크 사고로 말이다. 이전 부터 브레이크가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고질병을 고치지 않는다. 왜인가. 포드는 팔기 위해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지만 거꾸로 팔리지 않는 건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고 배제해버렸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갈아끼우는 노력은 했을지언정 그건 임시방편일 뿐이다. 절대 문제 자체를 건드리지 못한다. 여러 차례 예고된 명징한 문제가 터지고 만다. 너무나 끔찍한 말이지만 오히려 그 이전까지 ‘차에 갇힌 채’로 죽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 이 영화를 통해 스릴을 느끼는가. 웅장한 엔진음과 속도감이 우리를 운전석에 데려다 놓은 것 처럼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아니다. 스릴은 기본적으로 켄의 죽음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닌가. 관객은 켄의 생사를 제단 위에 올려놓은 채로 2시간 30분에 달하는 아슬아슬한 림보를 진행한다. 브레이크가 붉게 타오를 때 우리는 긴박감과 동시에 스릴을 느낀다. 관객은 동시에 그가 안전할 것이라 믿는다. 이미 시험주행에서 브레이크 사고를 당한 켄이 그다음 쇼트에서 멀쩡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운전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니 말이다.

그가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안전벨트처럼 존재하기에 ‘포드’가 단기간에 만들어낸 GT40은 달릴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포드’는 결국 브레이크를 완성시키지 못해 켄을 죽음으로 데려갔다. 물건을 팔기만 하면 된다는 ‘포드주의’는 르망에서의 승리와 함께 그의 목숨을 가져갔다. 영화 중반에 헨리 포드 2세가 사무실에서 캐리와 함께 ‘공장’을 바라보며 했던 말을 복기해보자. “2차 대전 당시 저 공장에서 미국의 폭격기 3대 중 2대가 생산되었어. 자네도 전투를 치르러 가게.” 돈은 얼마든지 상관없다는 지원아래 이들의 전투는 시작되지만 결국 이 전투의 승리는 켄과 케리가 아니라 포드가 가져가게 된다. 전투는 군인이 했지만 승리는 미국이 가져가는 상황과 겹쳐보인다.

그렇기에 영화의 시작 씬을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한다. 캐리는 더이상 싸울 수 없는 전투 불능의 상태에서 켄이라는 또다른 자신의 자아로 전투에 나선다. 하지만 승리를 눈앞에 두고 포드에게 빼앗기고 만다. 그뿐만인가 예견된 죽음이 찾아온다. 켄의 평화롭던 가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디트로이트가 경제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영화가 끝난 후 역사의 ‘사실’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을 감독은 계산해 둔 것일까. 어떻게 해석할지는 물론 관객의 선택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 영화를 버디 무비 혹은 카 체이스 무비로 소비하는 것은 아쉽다.

 

사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사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코아르CoAR 배명현 에디터, rhfemdnjf@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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