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 여전히 뚜렷한 자국, 그 씁쓸함에 대하여
'시빌' 여전히 뚜렷한 자국, 그 씁쓸함에 대하여
  • 오세준
  • 승인 2019.11.25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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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영화특별시
'시빌', 사진 ⓒ ㈜영화특별시

대체로 잊기 힘든 '과거'는 끔찍한 경험이 낳은 '상처', 즉 곧바로 치유하지 못한 그 순간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 편이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기억은 결코 희석되지 않는다. 잠시 눈(마음)에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숨어있을 뿐. 그저 찰나에 잊어버린 '어떤 기억'에 불과하다. 오해하지 말자. 이것은 '상흔'과 전혀 다른 무엇이다. 이것은 이미 벌어져 손 쓸 수 없는 만성적인 상태, 계속해서 아파할 수밖에 없는 '트라우마'와 같은 것이다. 영화 <시빌>은 이러한 상처를 가진 한 여성의 이야기다.

파리에 사는 심리 치료사 '시빌'(비르지니 에피라)은 소설을 쓰기 위해 모든 환자들을 정리하기로 결심한다. 그때, 사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젊은 여배우 '마고'(아델 엑사르쇼폴로스)가 찾아온다. 그녀의 치료를 거절할 수 없었던 시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와의 상담을 통해서 자신이 쓸 소설의 영감을 가지게 되고, 녹취까지 하기에 이른다. 마고의 사정은 이러하다. 남자친구 '이고르'(가스파르 울리엘)의 도움으로 영화 주인공을 맡았지만, 알고 보니 작품의 감독인 '미카'(산드라 휠러)와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 심지어 그녀는 임신까지 한 상태다.

 

'마고', 사진 ⓒ ㈜영화특별시
'마고', 사진 ⓒ ㈜영화특별시

시빌은 그녀의 상황을 소설로 쓰기 시작하면서 과거 연인이었던 '가브리엘'(닐 슈나이더)과의 사랑을 떠올린다. 당시에 가브리엘의 아이를 임신했던 그녀는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고 홀로 키웠던 셈이다. (두 아이 중 첫째는 가브리엘의 자식이다) 마고를 통해 그때의 감정을 떠올린 시빌은 그녀가 임신중절수술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아이를 지우고 감당할 수 없는 실의 빠진 마고의 촬영을 돕기 위해 시빌은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에 위치한 스트롬볼리 화산섬을 찾아간다.

 

기억과 욕망의 몽타주

<시빌>은 현재와 과거, 사건과 사건, 소설과 영화 등 '뒤섞인 몽타주'를 통해서 한 여성이 가진 욕망을 격정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스트롬볼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끓어오르는 동시에 분출되어지는' 감정을 어떻게 카메라 안에 담아낼지 고민한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연출적 의도가 또렷이 느껴진다. 이를테면 시빌은 마고와 이고르가 촬영 중인 영화의 장면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삶, 마고가 겪은 사건, 그녀가 쓰고 있는 소설 등이 혼합되어짐을 느낀다. 마치 그녀의 과거로 역화(逆火)되는 것처럼.

수많은 우연이 겹치지는 듯한 그 순간은 관객의 입장에서 코미디로 느껴지지만, 불행하게도 시빌은 그렇지 않다. 영화가 반복적으로 스트롬볼리 화산의 배경을 보여주는 것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빌의 욕망과 차오르는 감정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결국 시빌은 달이 차오른 밤 해변에서 충동적으로 이고르와 관계를 갖는다. 지난날 가브리엘과 뜨겁게 타올랐던 밤을 기억하며. 마고, 이고르, 미카로 이뤄진 삼각관계 안으로 뛰어든 시빌은 무사히 촬영을 마무리하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자신이 이고르와 잤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폭로한다. 그렇게 섬에서의 나날은 끝이 난다.

 

사진 ⓒ ㈜영화특별시
사진 ⓒ ㈜영화특별시

어쩌면 영화 속 시빌의 모든 선택은 어쩔 수 없는, 애초에 막을 수 없었던 '무언가'였을지도 모른다. '슬픔이 슬픔을 낳는다'는 말을 부정하려 했던 것일까. 그녀가 마고가 중절하도록 대화를 이끈 것 역시 과거 가브리엘과 헤어지고 홀로 아들을 키웠던 순간의 기억과 감정이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아 있었던 것일 수도. 아니면 자신의 삶을 들여다봐도, 남의 삶을 훔쳐봐도, 심지어 고쳐 써보려 하지만 결코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는 깨달음이 가장 필요했을 수도.

<시빌>은 영화 처음 한 동료와 소설을 쓰기로 했다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도록 잘 짜여진 설계와 같이 작동한다. 시빌의 내면을 들여보는 것이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결코 복잡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영화의 편집, <시빌>의 몽타주는 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스크린으로 투영하는 방식에 있어서 확실한 '유효타'를 가진다.

 

사진 ⓒ ㈜영화특별시
사진 ⓒ ㈜영화특별시
'가브리엘&시빌', 사진 ⓒ ㈜영화특별시

분명 누군가는 섬으로 떠나는 시빌의 여정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지고 과한 이야기라 언급할 수 있지만, 이것은 시빌과 마고가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 바라볼 때의 시선이다. 마고는 시빌의 욕망을 자극하는 피사체다. 그녀가 쓰는 소설 속 주인공이며, 자신의 과거를 소환하는 주체이고,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성이다. <시빌>의 이야기는 한 여성이 지닌 감정을 어떻게 역동적으로 펼쳐내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인과론적인 서술이 아닌 쪼개지고 반복되는 몽타쥬를 이용해 그려진다.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시빌이 마고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 의사의 실패!?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마고를 통해 시빌 자신을 들여다보고자 했던 시도의 실패로 보는 것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점에 더 가까워 보인다. 어쩌면 감독이 가브리엘과의 섹스 장면을 관능적이고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그녀가 마고를 통해 재현하고 싶었던 것은 두려웠던 과거, 실패했던 사랑을 마주하는 것보다 타올랐던 그 순간을 느끼고 싶었던 것을 보여주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시빌은 마고와 더불어 엄마를 잃은 한 아이를 환자로 두고 있었다. 그 아이는 자신의 아지트인 할머니댁 세탁실에서 여전히 엄마의 향수가 느껴진다고 말하며 울음을 터트린다. 자신의 슬픔을 고백하는 그 순간 시빌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다름 아닌 자신의 아이다. 알콜중독자인 그녀는 남편의 확신을 바라지도 않는 가족의 외곽한 위치한 인물이다. 그래서일까. 영화의 마지막, 첫째 아들이 진짜 아빠가 누구인지 묻는 장면은 이상하게도 그녀가 살아야 할 이유, 자신의 삶을 써 내려가야 할 희망이 느껴진다. 소설가가 아닌 '엄마'로서의 삶으로.

 

사진 ⓒ ㈜영화특별시
'이고르&마고&미카', 사진 ⓒ ㈜영화특별시

 

시빌은 마고와 이고르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다름 아닌 과거 자신과 가브리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 그녀는 마고를 보면서도, 자신의 소설을 쓰면서도, 또 미카의 영화를 지켜보면서도 계속 과거 안에 머물러있다. 여전히 뚜렷한 그 기억 속에서 그와의 사랑을 간직한 채.

한편으로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스트롬볼리>(1950)가 주인공 카린(잉그리드 버그먼)을 구속하고 억압하며, 결국 그녀가 탈출하도록 그려낸 이야기라는 점에서, '해방'이라는 묘한 공통점을 가진다. 물론 전자가 이탈리아의 배타적인 지역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라면, <시빌>은 분명 자신을 억압한 기억과 욕망, 과거의 자신인 셈이다. 또 다른 관점을 보태자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여성의 신체적 구조가 이 영화를 작용하는 부분인데, 시빌과 마고를 가르는 중요한 차이점은 '아이의 유무'이다. 아이를 낳고자 했던 시빌과 아이를 낳지 않고 배우로서 자신의 삶을 선택한 마고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삶을 어떻게 써 내려가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가능성을 품는다.

 

카린(잉그리드버그만), 사진 ⓒ 스크롬볼리
카린(잉그리드버그만), 사진 ⓒ 스크롬볼리
사진 ⓒ ㈜영화특별시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첫 장편 영화인 <에이지 오브 패닉>(2013)으로 내외의 주목을 받았던 '쥐스틴 트리에'(Justine Triet) 감독은 전작 <빅토리아>(2016)를 통해서 침몰 직전의 여성이 남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경쾌한 톤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한 여인의 과거와 현재를 퍼즐을 맞추듯 아주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그려낸 <시빌>까지. 그녀는 끊임없이 여성의 욕망과 정체성을 탐구하는 듯하다. 특히, 그녀의 작품들이 코미디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현대적인 상황과 맞물리면서 이 장르의 관습을 완곡히 비켜 나간다는 점에서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영화제뿐만 아니라 극장에서 그녀의 작품들이 많이 보여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다려본다.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m]

 

쥔스틴 트리에 감독
'쥐스틴 트리에' 감독, 사진 ⓒ ㈜영화특별시
사진 ⓒ ㈜영화특별시
사진 ⓒ ㈜영화특별시

 

오세준
오세준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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