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머니' 모두가 알아야 할 이야기
'블랙머니' 모두가 알아야 할 이야기
  • 오세준
  • 승인 2019.11.15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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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정지영의 영화는 항상 살에 직접 와닿는 느낌을 준다. 감독은 <부러진 화살>(2011), <남영동2985>(2012) 뿐만 아니라 초기작인 <남부군>(1990)이나 <하얀전쟁>(1992)을 포함해 사회고발적인 영화들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들은 그의 올곧은 태도를 증명하는 듯하다. 무려 7년 만에 돌아온 신작 <블랙머니>는 IMF 이후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소재를 바탕으로 극화한 작품으로, 자산가치 70조 은행이 1조 7천억 원에 넘어간 희대의 사건 앞에 금융감독원과 대형 로펌, 해외펀드 회사가 뒤얽힌 거대한 금융 비리를 파헤치는 평검사의 활약상을 그려낸다. (2011년에 론스타는 총 4조 4,059억 원의 지분을 하나은행에 팔고 떠났고, 외환은행을 더 빨리 팔지 못했다며 우리나라에 투자자 국가 간 소송까지 계속 진행 중이다)

 

바뀌지 않는 '비극'

영화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현재 한국정부가 론스타와의 ISD(Investor-State Dispute의 약자로, 해외투자자가 상대국가에서 부당한 대우, 급격한 정책 변화 등에 의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상대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 소송을 제기해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 소송에서 패할 경우, 국민의 혈세 5조 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감독은 한 매체 인터뷰에서 “그러니까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 그게 그냥 한국 국민이 바보여서, 혹은 정부가 바보여서 그런 게 아니고 그 정보를 알고 있는 몇몇이 한국 국민을, 한국 정부를 바보로 만든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라고 영화를 만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즉, <블랙머니>는 현재진행중인 이 소송이 가진 내막으로 깊숙이 파고들기 위한 시도 그 자체인 셈이다.

양민혁 검사(조진웅)는 자신이 담당한 피의자가 그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유서를 쓰고 자살을 한다. 그는 이 누명을 벗기 위해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다 금융감독원과 대형 로펌, 해외펀드 회사가 뒤얽힌 거대한 금융 비리의 실체와 마주한다. 심지어 피의자가 대한은행 헐값 매각사건의 중요한 증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대한은행의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김나리'(아하늬), 검찰 총장의 지시로 은밀이 조사하고 있는 부장검사의 팀, 대한은행으로부터 해고된 노동자들을 변호하는 서권영 변호사(최덕문) 등의 도움으로 거침없이 막 가는 그의 수사의 끝에는 '모피아'(MOFIA: 재경부 인사들이 퇴임 후에 정계나 금융권 등으로 진출해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는 것을 마피아에 빗댄 표현)의 짓이었음을 밝혀낸다.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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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머니>의 장점은 실제 론스타 사건에 관련한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 그려냈다는 점이다. 경제를 전혀 모르는 양민혁 검사를 통해 사건을 하나씩 파헤쳐가는 구조를 통해서 관객이 그의 눈이 되는 동시에 현실에서 자각하지 못했던 거대한 실체를 발견해 나아간다는 점이다. 대한은행 매각 심의 73일 전, 2011년 5월 16일을 기점으로 57일 전, 24일 전 시간순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다소 평이하게 다가오지만, 지루하거나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이 사건이 반드시 모두가 알아야 할 이야기임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국회 앞에서 대한은행 해고로 금식 투쟁을 벌이는 서권영 변호사를 찾은 양민혁은 그에게 “너 이거 네 일 아닌 것 같지?”라고 말하는 장면의 경우, 이는 결국 양민혁을 통해서 관객에게 하기 위한 중요한 대사이다.

흥미로운 것은 '양민혁'과 '모피아를 포함한 기득권 세력'의 모습이다. 양민혁 검사의 수사 방식은 도청이나 서류를 몰래 빼돌리는 등 불법을 불사하고 막 나아가는 방식이다. 이것은 관객에게 있어 '저래도 될까'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데 이와 비슷하게 소위 1%의 세력들이 99%의 경제를 흔드는 방식은 역시 위험한 인물을 살해하거나 로비, 청탁 등 온갖 불법을 다 저지른다. 아이러니한 것은(어쩌면 당연한 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결국 이 영화의 끝에는 '양민혁'이 그의 수사 방식때문에 되려 범죄자로 낙인찍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범죄자로 만든 것 역시 모피아 세력들이다. 은행은 팔렸고, 노동자는 해고됐고, 누군가는 죽었으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나선 자들은 되려 범죄자가 된 상황이다.

양민혁의 수사가 기득권 세력들의 파티나 별장 등을 넘나드는 모습은,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특정 세력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진입으로 다가온다. 이 진입의 당위성은 영화라는 픽션의 토대를 기반한 가능성으로 구현되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는 스크린 밖의 현실과 똑같아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를 통해 관객은 바뀌지 않는 비극을 확인한 것이다. 정지영 감독은 “내가 하고 싶은 건 대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지배이데올로기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나. 나의 영화적 상상은 모두 거기서부터 출발한다”라고 말한다. <블랙머니>가 가진 일종의 대중영화로써의 '재미'는 론스타 사건의 이야기를 압축하고 현실감 있게 담아낸 부분에 있다. '사건의 사실'을 어떻게 전달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적어도 이 영화는 분명한 성취를 이뤘다.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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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문자를 받는다. 알고 보니 그녀의 아버지 역시 많은 돈을 투자했다는 사실이다. 또 이 돈으로 그녀만의 로펌을 차리도록 도와주고 싶었다는 말까지. 그리고 금융위원회는 '전원 대한은행 매각 승인'이라는 결과는 내놓는다.

양민혁을 도와주고자 했던 '나리'와 그의 상사인 '부장검사'는 정의가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선택한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동물이야 또는 요즘 같은 세상에 정의롭게 사는 사람이 어디있나 같은 말로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을 심판할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음에도 양민혁의 위치는 여전히 범죄자로 낙인찍힌 신세다. 2시간 가까이 달린 이 영화의 결말이 참담하고 분노가 차오르는 것은 변하지 않은 건 '그'뿐만 아니라 여전히 기득권 전문가들의 부도덕하고 이기적인 행태가 망가뜨리는 우리의 일상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위치'다.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m]

 

정지영 감독,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정지영 감독,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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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준
오세준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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