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다시 써 보지만…
추억을 다시 써 보지만…
  • 배명현
  • 승인 2019.11.0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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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Terminator: Dark Fate, 2019.미국, 128분)
감독 '팀 밀러'(Tim Miller)

 

사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사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사라 코너가 돌아왔다. 28년 만에 터미네이터의 이야기는 새롭게 쓰이는 것이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라는 반가운 이름도 함께. 이 둘만으로 <터미네이터> 1과 2의 전율을 기억하는 이들의 기대감을 고조시키기엔 충분할 것이다. 시리즈 이후 태어난 나조차 어린 시절 티브이를 통해 보았던 나 조차 그러하니 말이다. 하물며 할리우드의 세기말 전설이라 불리는 <터미네이터>와 동시대를 보낸 사람들은 오죽할까. 

그리고 당연하게도, 영화는 그들을 공략했다. 린다 해밀턴과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등장은 오리지날리티를 살리는 매우 효과적인 무기였다. 또한 전 시리즈와의 긴 공백을 알게 해 주는 깊은 주름은 그들에게 뭉클한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두 인물의 등장신은 그토록 임팩트 있게 다루어졌는지 모른다. 영화 내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자면 사라 코너의 등장을 빼놓을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28년이란 시간은 추억만으로 메꾸기에는 너무나 큰 공백이었을까. 시리즈를 현대화하려는 감독과 각본가의 노력에도 ‘새로 쓰인 터미네이터’는 2시간 동안 삐걱거리고 있었다. 영화의 시작은 2 이후 새롭게 시작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존 코너는 살해당했으며 T-800은 이후 목적을 잃고 사람에게 동화되었다는 설정을 가진다. 2 이후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설정치고는 너무나 간단하지 않은가. 관객들은 이 간단한 설득력에 동의할 수 있을까. 단지 아놀드를 다시 부르기 위한 임시방편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지점이다.

사라 코너 또한 등장 이후 이렇다 할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한다. 주인공 린다 옆에 붙어 있는 그레이스가 너무나 압도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하기엔 아놀드와 동일한 찜찜함을 남긴다. 영화는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소환한 두 사람을 정말 추억으로만 남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새로운 관객 세대에게 흥미를 끌 만한 요소로 집어넣은 pc 요소는 영화의 오리지널리티를 파괴한다는 인상을 남긴다.

 

사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사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대니는 사라와 달리 ‘자궁’이 아닌 그녀 자체가 영웅이다. 영화는 진행될수록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실존적 대응을 실현해 나간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의 점진적 발전을 보여주지 않는다. 혹은 감독의 의도는 보여주었다 할지라도 내 입장에선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레이스의 고백으로 ‘네가 마지막 희망이야’라는 말을 듣고 나서 뜬금없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레이스는 어떠한가. 그녀의 신체는 강화되었고 명확히 인간인지 기계인지 알 수 없는 경계 선상에 있다. 그 결함으로 말미암아 주기적으로 약을 맞아야 하는 인물이다. 여성인 동시에 장애인 그리고 약물. 이보다 더 현대 pc 적인 인물이 있을까. 영화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pc적 인물인 것은 동의할 수 있지만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태생부터 한계를 가진 작품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 다른 캐릭터들은 ‘희생’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때 질문은 던져져야 한다. 대니라는 유색인 여성을 살리기 위해 다른 소수 여성을 희생하는 것은 가능한가.

영화는 이 질문을 엄폐하기 위해 먼저 대니가 그레이스를 구해준다는 설정을 가진다. 더욱이 결말부에서 대니는 어린 그레이스를 바라보며 새롭게 쓰여지는 역사에서는 그녀를 지키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새로운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끝나는 듯하지만 ‘스카이넷’을 파괴한다 하더라도 ‘희생’의 역사는 계속된다는 (또한 이 시리즈가 계속되기 위해서라도 동일한 역사는 쓰여져야 한다. 또한 제임스 카메론은 다크 페이트가 흥행한다면 2-3편의 영화를 더 찍을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대전제는 이 영화가 페미니즘을 진지하게 다루는지 의심하게 한다.

과거의 관객과 새로운 관객. 모두를 잡는 것에 실패한 이 영화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과연 다음 영화에선 어둡고 긴 침체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과거와 새로운 관객 둘 사이에 낀 필자는 꼭 성공하길 바란다.

 

사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사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코아르CoAR 배명현 에디터, rhfemdnjf@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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