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파고드는 운명
도시를 파고드는 운명
  • 오세준
  • 승인 2019.10.31 2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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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날씨의 아이'(Weathering With You, 2019, 일본, 112분)
감독 '신카이 마코토'(Shinkai Makoto)
사진 ⓒ 워터홀컴퍼니㈜
사진 ⓒ 워터홀컴퍼니㈜

여전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그려내는 세계는 놀랍다. 그리고 매료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그의 팬이라면 알다시피 초기작인 <별의 목소리>부터 시작된 그의 '사랑 이야기'는 빛이 풍부한 풍경 묘사가 더해져 시적인 느낌을 준다. 그가 애니메이션계 렘브란트나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라 불리는 이유 역시 그러하다. 특히, 그는 흔히 세카이계라는, 주인공(나)과 히로인(너)을 중심으로 한 작은 관계성(너와 나)의 문제가 구체적인 중간 부분을 두지 않고, '세계의 위기나 마지막'과 같은 추상적이면서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는 스토리(대표적인 작품으로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신세기 에반게리온>)를 중심으로 작품을 펼쳐낸다. 감독 또한 한 인터뷰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최소단위는 '너와 나'이고, 그 주위에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으로 그 의미에서는 '세카이계'라 불리는 이야기의 진행이라는 것은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힘도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초속5센티미터>와 <언어의 정원>을 통해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집중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절대적인 누군가와의 관계성'이며, 그의 세계는 '너와 나'의 세계라는 점이다.

 

'너의 이름은', 사진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너의 이름은], 사진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하지만 전작인 <너의 이름은>의 경우는 '무언가' 달랐다. 마치 하루키의 소설과도 같은 문학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남녀 주인공의 운명적이고 비극적인 만남을 통해서 '재해'에 대한 망각을 일깨우는 한편,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품고 있었다. 이를테면 작품 속 술을 보관하던 동굴 안에 그려진 유성의 그림은 재해에 대한 경고인 동시에 단절된 관계를 일깨워주는, 기억과 망각에 대한 윤리적인 상징을 지닌다. 가장 중요한 점은 '너와 나'라는 관계의 흐름이 둘 사이에서 멈추지 않고, 그들을 둘러싼 타인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세계를 구원하는 방향으로 틀어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너와 나'에서 '우리'로 커뮤니케이션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며, 또 그것이 동일본대지진과 같은 재해의 사망자나 희생자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애도의 길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빛으로 가려진 억압과 단절

사진 ⓒ 워터홀컴퍼니㈜
사진 ⓒ 워터홀컴퍼니㈜

<날씨의 아이>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이전 작품들에서 꾸준히 배경이 되었던 '도쿄'를 중심으로 그린 작품으로, 이상 기후로 비가 그치지 않는 여름, 도쿄에 살기 위해 가출한 '호다카'와 엄마를 잃고 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히나'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비교적 단순한 플롯인 만큼 맑음 소녀라 불리는 '히나'의 신기한 능력을 통해서 흥미롭게 전개해 나아간다. 특히, 비에 젖은 도쿄의 모습은 번화가를 중심으로 펼쳐진 화려한 건물과 외각에 위치한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의 조화로 아름답게 묘사되어 진다. <언어의 정원>과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섬세하게 그려내는 '비'. 이것은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감정, 그 자체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도 담긴다. 필자는 이상하리만큼 이러한 도시가 가진 아름다움의 '이면'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날씨를 맑게 하는 능력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호다카'와 '히나'. 도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중요한 행사나 결혼식 등의 이유로 두 사람에게 의뢰를 한다. 특히 뒤로 갈수록 그 의뢰의 정도가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나 천식인 아이와 함께 공원에서 놀고 싶은 이유 등 사소하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으로 간다는 점에서 도쿄의 사람들이 햇빛과 푸른 하늘을 갈망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결국 <날씨의 아이>는 활기찬 사운드 트랙과 함께 화려한 감독의 시그니처 배경을 통한 밝고 맑음이 표층적으로 자지 잡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우울함이 짙게 깔려 있는 복잡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비가 멈추지 않는 재앙과도 같은 이상 기후로 도쿄의 대부분이 침수되는 영화의 비극적인 결말만으로 이 영화는 분명한 '이면'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이면을 드러내고 있을까. 바로 위에서 언급한 '너와 나'의 관계를 통해서 표현된다.

 

사진 ⓒ 워터홀컴퍼니㈜
사진 ⓒ 워터홀컴퍼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일방적으로 '호다카'의 과거를 배제한다. 또 '히나'의 과거 역시. 영화의 시작이 히나가 엄마의 병원에서 신비의 힘을 부여받는 한 낡은 건물의 옥상에 있는 신당으로 가는 과정을 그려지는 것 또한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겠다는 감독의 명백한 의도로 느껴진다. 미성년자인 호다카가 일을 찾지 못하거나 끼니를 굶는 상황과 더불어 나이를 속이고 일을 해야 하는 히나는 보호자인 엄마가 죽었기 때문에 동생과 헤어질 위기다. 두 사람의 만남은 비슷한 처지를 알아보는 계기로 작용하지만, 히나가 매춘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호다가카 우연히 주운 '총'으로 구해주는 지점에서 두 사람이 진정으로 연결된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총'에 대한 언급은 밑에서 좀 더 자세히 언급하겠다) 이처럼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너와 나'의 세계는 이시이 유아 감독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를 떠올리게 하는 현실적인 느낌을 물씬 준다.

영화는 이상 기후를 해결하기 위한 제물이 돼야 하는 히나와 그것을 지켜만 봐야 하는 호다카의 비극적인 사랑을 애절하게 담아내지만, 이것은 강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어트랙션에 불과하다. 정작 중요한 점은 미성년자인 두 주인공이 그들의 의지와 다르게 끊임없이 도쿄라는 대도시에서 소외되고 해체되며 추방당해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어른과 아이, 도시와 인간 사이의 단절감을 전달한다. 이를테면 도시에서 살고 싶은 호다카는 가출 소년이며, 총을 사용한 이유로 경찰들과 대립한다. 히나 역시 동생과 함께 살고 싶어 하지만 보호자의 부재로 아동보호소에서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 한다. 정작 보호가 필요한 두 사람이 보호를 위한 목적을 지닌 국가의 기관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지점은 어른의 세계로 편입될 수 없는 소년 소녀의 아니러니함이다. 마치 하늘과 땅이 어두운 구름으로 나누어진 것처럼.

 

호다카 그리고 히나와 그녀의 동생은 경찰을 피해 한 호텔에서 머물게 된다. 함께 목욕을 하고, 밥을 먹으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은 흡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와 <어느 가족>을 연상시킨다.

 

사진 ⓒ 워터홀컴퍼니㈜

히나는 자신의 운명이라는 이유로 이상 기후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한다. 그리고 사라진 히나를 찾기 위한 호다카. 그는 히나를 찾는 것을 막는 어른들에게 다시 총을 겨눈다. 분명 처음과 똑같은 상황이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또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사용되는 소년의 총이 어른들을 겨냥한 순간 '너와 나'의 세계가 지닌 순수는 상실되어진 것이다. 달리 해석하면 히나의 희생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어른들의 세계에 맞서는 '너와 나'의 세계인 것이다. <너의 이름은>과 다른 완전한 단절을 그려낸 <날씨의 아이>. 비가 끊임없이 내리는 날씨에서 벗어나지 못한 도쿄의 사람들처럼 호다카와 히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히나의 희생을 막은 호도카의 투쟁은 온전한 '너와 나' 세계를 구축한 셈이다. "스스로를 위해 기도해"라는 대사처럼.

그는 영화에서 '날씨'를 다룬 이유에 대한 답변으로 "일본인들이 일본 안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걱정거리가 자연재해가 돼버렸다. 영화를 통해 비가 멎지 않은 이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 보여주면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크게 자신이 없다. 어쩌면 지금 사회에 대한 반발 같은 마음이 더 컸을 수도 있다. 정치인일 수 있고 일반인일 수 있는데 SNS나 미디어에서 한 가지에 대해 공격을 받고 한 사람의 인생이 굉장히 산산조각 나버리는 그런 일들을 많이 목격하고 있다. 그러한 사회라는 점에서 저는 살아가기 힘들다, 숨 막힌다는 걸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호도카가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히나를 위해서 전력을 다해 뛰어가는 모습은 어른들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하게 목도되어질 수 없음을 나타낸 큰 성취이자 따뜻한 마음이다.

 

사진 ⓒ 워터홀컴퍼니㈜

 

사진 ⓒ 워터홀컴퍼니㈜
사진 ⓒ 워터홀컴퍼니㈜

 

히나를 구한 지 3년이 지나 20살이 된 호도카는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도쿄로 향한다. 오랜만에 히나와 운영하던 날씨 맑음 사이트에 접속한다. 그리고 처리하지 못한 마지막 의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과거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의뢰를 했던 한 할머니의 신청이었다. 그녀를 만난 호도카는 도쿄가 침수된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는 듯 다짜고짜 사과를 한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모든 사정을 다 안다는 듯 "세상은 원래 미쳐 있었어"라며 되려 그를 위안한다.

영화 속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은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쌓인 물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 채 점점 차오르는 모습은 흡사 도시 속 사람들이 해소하지 못한 우울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점점 그 깊이가 깊어질수록 도시의 본래 모습이 잃어가는 것은 더는 되돌릴 수 없는 현실에 놓인 것이 아닐까. 짙은 회색 구름 아래 현대 도쿄, 콘크리트 정글 사이사이 대도시의 삶, 청춘, 사랑, 판타지, 신화 등 다양한 컨텍스트로 채워진 <날씨의 아이>는 낭만적 환상 그 자체다. 영화가 끝난 뒤, 극장을 나오며 히나가 펼쳐낸 강렬한 빛의 기둥을 찾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건 영화가 보여준 이면에서 벗어나고 싶은 씁쓸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사진 ⓒ 워터홀컴퍼니㈜

[코아르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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