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 내나' 가족이 되기 위한 사람들
'니나 내나' 가족이 되기 위한 사람들
  • 오세준
  • 승인 2019.10.2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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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리틀빅픽처스
사진 ⓒ 리틀빅픽처스

이동은 감독의 영화에는 분명한 '의지'가 담겨있다. 어쩌면 그에게 왜 가족 영화를 고집하는지, 또 모든 작품에 죽음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지, 더 나아가 모성애나 동성애 등 다양한 사랑을 그려내는지 묻을 이유가 없을 만큼. 그의 세 번째 장편 영화 <니나 내나>는 그의 전작인 <환절기>와 <당신의 부탁>을 압축한 듯한 느낌을 주는 또 하나의 가족 영화이다.

본격적인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위에서 언급한 '그의 의지'에 대해 보충 설명이 더 필요하다. <환절기>에서 '미경'(배종옥)이 남편과 이혼을 결심하고 아들과 살아갈 것을 결심하는 모습이나 <당신의 부탁>에서 '효진'(임수정)이 과거 죽은 남편의 아들인 16살 '종옥'(윤찬영)과 함께 살기로 결심하는 모습까지. <니나 내나>를 포함한 그의 모든 작품들은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 송해성 감독의 <고령화 가족>과 더불어 가부장 중심의 가족이 해체 이후, 대안가족으로써 다양한 가족을 그려낸다는 점에 있어 상징적인 의미를 나란히 지닌다. 그렇다면 이동은 감독의 가족 이야기는 어떠한 방식으로 '대안적인' 성격을 띠고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방식은 어떠한 의지로 표출되고 있을까.

 

사진 ⓒ 리틀빅픽처스
사진 ⓒ 리틀빅픽처스

이동은이 그리는 가족

진주에 사는 '미정'(장혜진), '경환'(태인호), '재윤'(이가섭) 삼 남매는 불현듯 찾아온 엄마의 편지에 마음이 심란하다. 그 이유는 그들의 엄마가 오래전 몰래 막내 수환의 사망보험금을 가지고 집을 도망쳤기 때문. "보고싶다"라는 덩그러니 적힌 문장과 더불어 보낸 곳이 파주의 한 병원이라 점이 영 마음에 걸린 그들은 엄마를 만나기 위한 여행길에 오른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한 곳은 병원도, 엄마가 운영하는 가게도 아닌 그녀의 장례식장이다. 그곳에서 미정은 미워하던 엄마를 회상하고, 경환은 아내의 출산 소식을 접하며, 재윤은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심지어 돌아가는 길에 돈이 들어 있는 엄마의 유골함이 분실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의 연속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내러티브는 이동은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의 기로에 선 수현의 삶을 중심으로 엄마 미경과 친구이자 애인 용준의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관계를 보여준 <환절기>, 남편이 죽은 뒤 홀로 엄마가 되기로 한 효진이 마주하는 자신의 엄마, 친엄마를 찾는 종욱 등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관계를 그려낸 <당신의 부탁>까지. 그것이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엄연히 타인으로 간주되는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포용하는 미숙과 효진같은 캐릭터를 통해 모성애를 부각하는 한편, 이혼이나 사별로 남성과의 독립을 통해 여성이 독자적으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진 ⓒ 리틀빅픽처스
<환절기> 미경(배종옥), 용준(이원근), 수현(지윤호) / 사진 ⓒ 리틀빅픽처스
효진(임수정), 종옥(윤찬영) / 사진 ⓒ CGV아트하우스
<당신의 부탁> 효진(임수정), 종옥(윤찬영) / 사진 ⓒ CGV아트하우스

<니나 내나>는 전작들이 보여준 가족의 의미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미정을 통해 모성애를 그려내는 동시에 경현과 재윤은 자신들의 실패한 가족을 경험으로 더 나은 가족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이는 아버지 세대에 대한 회의감을 지니며, 반성을 가지는 태도에 가까워 보인다) 아버지의 치매, 어머니와 막내 수완의 죽음을 목도하며 진주에서 파주 사이를 오가는 그들의 여행은, 결국 가족에서 출발해서 다시 가족으로 돌아오는 애도(哀悼)의 여정이다. 그리고 단절되지 않도록 서로를 더욱더 움켜잡는 계기가 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보여준 비(非)장소성에 대한 부분이다. 이동은 감독은 '집'이라는 공간을 의도적으로 잘 활용하지 않는 듯하다. 가족이라는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장소인 집. 역설적으로 그의 모든 작품은 결국 '집'을 떠났을 때, 비로소 가족임을 깨닫는다. 또한, 수환과 엄마를 묘나 납골당이 아닌 장소에 묻어두는 것(수환의 사고 장소) 역시 분명 다른 애도의 방법이다. 이러한 감독의 방식은 장소나 공간이 규정하려는 것으로부터 탈피해 인물들이 각각 '가족'에 대해서 고민하고 진정한 의미를 되찾고자 하는 의미로 읽힌다.

 

사진 ⓒ 리틀빅픽처스
사진 ⓒ 리틀빅픽처스

결국 <니나 내나>가 보여주는 삼 남매의 여행길은 고향인 부산이나 자라온 진주가 아닌 익숙하지 않은 장소들, 도로, 터널, 외곽, 휴게소, 엄마의 장례식장과 가게 등 서로를 응시할 수밖에 없는 과정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또 죽음, 실패, 결핍 등 개인이 직면한 무거운 사연들이 영화 안을 맴돌면서 적응과 부적응, 해체와 재구성을 반복하며 마냥 희망적이거나 밝은 분위기가 아닌 현실적인 균형을 유지해 나아간다. 이로써 이동은의 모든 영화가 '가족이 되기 위한 가족들 구성원들의 이야기'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미정이 꿈속에서 엄마와 화해를 하거나, 상연이 출산한 아내를 끌어안으며 아버지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울거나 또 재윤이 자신의 남자친구를 당당히 가족에게 소개하는 모습을 통해서 이동은 감독은 가족의 의미를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스크린에 비춘다. 그는 <니나 내나>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함께 걷는, 아니 만들어 내는 길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소개한다. 단절하지 않은 채 공존하는 삼 남매의 모습 속에는 그의 이야기가 앞으로 계속 궁금해지고 기다려지는 이유 역시 함께 담겨 있다.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m]

 

사진 ⓒ 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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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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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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