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빠져나올 수 없는 가능성
'버티고' 빠져나올 수 없는 가능성
  • 오세준
  • 승인 2019.10.1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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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트리플픽쳐스

꽤 자극적인 영화의 시작, 회사 사무실에서 한 남녀가 몰래 섹스를 즐기고 있다. 호텔 스위트룸의 전망처럼 높은 고층 건물에서 내려다보이는 야경과 함께. 그러나 카메라는 '서영'(천우희)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향하지만 이내 곧 흐릿해지면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전달한다. 계약직 직원 '서영'은 차장인 '진수'(유태오)와 몰래 사내 연애 중이다. 퇴근 후 '버티고' 바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직원들 눈을 피해 멀리서 점심을 같이 먹곤 한다. 그녀는 이런 관계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외로움과 소외된 기분을 느낀다. 이런 고민도 잠시 언젠가부터 귀의 고막에 이상이 생기면서 어지러움을 느끼기 시작하고, 정규직 전환에 대한 압박과 자신을 힘들게 하는 엄마의 연락까지 그녀 혼자 버텨내기 힘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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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천우희), 진수(유태오) / 사진 ⓒ ㈜트리플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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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정재광) / 사진 ⓒ ㈜트리플픽쳐스

고층 건물 유리창 청소부 '관우'(정재광)는 자신의 일하는 위험한 위치를 망각한 채 창문 안쪽 넘어 언젠가부터 위태로워 보이는 '서영'을 몰래 훔쳐보기 시작한다. 섣불리 다가가지 않으면서 어떤 순간에는 꽤 대담하게 행동하는 관우. 그는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으며, 친누나를 잃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서영'이 신경 쓰이는 이유는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는 누나가 떠오르는 이유일지도.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관우의 사정에는 뚜렷이 집중하지 않는다. 그의 힘든 사정이나 더는 군인이 아닌 이유나 누나의 죽음까지. '서영'과 '관우'은 분명 창문의 안과 밖, 빛과 그림자, 여성과 남성 등 대조를 이루지만, 계약직 직원이나 나름의 힘든 사연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는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버티고>가 집중해서 다루고 있는 인물은 '서영'이다. 영화의 제목 버티고는 영어로는 'Vertigo'로 '어지러움, 현기증'을 뜻하며, 한국 제목은 말 그대로 '버틴다' 또는 '버텨낸다'와 같은 의미로 읽어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서영이 느끼는 불안정함은 해소되지 않고 계속해서 억누른 채 말 그대로 버티려 애를 쓴다. 받기 싫은 엄마의 전화를 기어코 받고는 분명 후회하면서 제대로 끊지도 거부하지도 않는 모습이나 꼬투리 하나 잡히지 않기 위해서 참을 수 없는 통증을 참으며 보청기를 끼지 모습 심지어 몰래 연애 중인 '진수'가 자신뿐만 아니라 여성이 아닌 남성과 회사에서 섹스를 나눴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영'이 몰래 눈물을 쏟아낼 곳은 40층이 넘는 건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 ⓒ ㈜트리플픽쳐스

전계수 감독은 <버티고>를 통해서 한 인간의 불안정한 내면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것이 '서영'이라는 인물을 총 17개의 날과 날이 바뀔 때마다 보여주는 날씨를 활용해 그녀의 감정선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한다. 영화는 서영의 하루하루를 보여주는, 또 리듬감을 느끼게 하는 나열된 형식으로 서사에 집중하기보단 그녀가 직면하는 상황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서영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이나 익스트림 롱 샷 또는 천장부터 그녀의 얼굴까지 롱테이크로 보여주거나 핸드헬드로 현장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거리나 앵글, 움직임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그녀를 카메라에 담아낸다. 이러한 감독의 연출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보편적이면서 또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사연들을 가진 서영의 모습을 더욱더 깊게 다가오도록 만든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공포'는 높은 건물이 주는 것 이상으로

감내하기 힘든 사회적인 현실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개인적인 문제까지

더해져 '서영'을 더욱더 심하게 흔든다.

<버티고>는 고층 빌딩의 어느 한층, 숫자로 표기할 수 없는 한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또 타인의 불안정함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한 여성의 인물을 천우희라는 배우의 능숙한 연기를 통해 현실적으로 표현해냈다는 점이 가장 큰 성취이다. 그것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고층 빌딩의 폐쇄적인 공간과 더불어 현실의 부조리함이 맞물려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집중할 수밖에 없는 몰입감을 준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다소 미흡하다 느껴진다. '서영'을 통해서 축적해온 감정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일이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아슬함을 일상 속에 잘 담아온 전개는 '관우'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슬픔, 분노, 무기력함, 우울함 등이 모두 희석되어진다. 왜일까.

 

사진 ⓒ ㈜트리플픽쳐스
사진 ⓒ ㈜트리플픽쳐스

땅으로 떨어지고 싶은, 서영의 자살 충동을 기꺼이 손을 내밀며 잡아준 관우. 표면적으로 이 장면이 분명 남성이 힘든 여성을 구원하는 느낌을 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전계수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손을 내밀고 손을 잡아 구원이 합쳐지는 느낌으로 읽히기 위해서 관우의 슬픈 과거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사관을 그만둔 이유나 왜 누나가 죽었는지 등 관객의 상상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그의 과거사는 둘째 치더라도 혼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빠듯한 형편의 계약직 청소부에게 '구원'이라는 너무 큰 임무를 준 것이 현실감과 동떨어진 판타지를 보여준다. 100분여 가까이 봐온 서영의 처절한 현실감이 자신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사는 한 남성, 심지어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인물과 한순간에 사랑으로 이어지는 다소 미흡한 관계 설정까지.

또 '구원이 합쳐지는 느낌'을 주기에는 관객은 관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두 주인공이 서로 잘 알고 있거나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특히, 단순히 결말의 이미지만 보더라도 떨어지는 여성을 위에서 남성이 잡아주는 모습은 통속 멜로극이 주는 '전형성'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부분이다. 비슷한 시기와 더불어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유은정 감독의<밤의 문이 열린다>, 이옥섭 감독의<메기>나 한가람 감독의<아워바디>와 같은 작품들이 보여주는 '호기'는 감독들이 자신들 나름의 결말을 만들어 갔다는 점에서 상당히 인상적이지만, <버티고>의 경우에는 인물의 내면을 깊숙이 조명한 것을 제외하면 안정적인 결말로 마무리하는 것이 내심 아쉽게 느껴진다.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m]

 

사진 ⓒ ㈜트리플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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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준
오세준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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