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th BIFF] '글로리아 먼디' 노동자들의 궤적
[24th BIFF] '글로리아 먼디' 노동자들의 궤적
  • 오세준
  • 승인 2019.10.1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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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글로리아 먼디'(Gloria Mundi, France/Italy, 2019, 107분)
감독 '로베르 게디기앙'(Robert GUÉDIGUIAN)
사진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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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글로리아 먼디>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 초청작으로, '로베르 게디기앙'(Robert GUÉDIGUIAN) 감독이 연출했다.

프랑스에서 한 여자아이가 탄생한다. 이름은 글로리아, 그리고 그녀가 엄마의 자궁에서 세상으로 나올 때, 영화는 시작된다. 글로리아의 부모인 '니코'(Robinson Stévenin)와 '마틸다'(Anaïs Demoustier)는 아기를 돌볼 틈도 없이 곧바로 일을 시작한다. 그들의 소중한 아이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또 마틸다의 부모 역시 열심히 일을 한다. 밤에는 '실비'(Ariane Ascaride)가 청소부, 낮에는 '리샤르'(Jean-Pierre Darroussin)가 버스 기사로서. 반면에 마틸다의 동생 부부인 '오로르'(Lola Naymark), '브뤼스'(Grégoire Leprince-Ringuet)는 그리 좋지 않은 방법으로, 중고품을 값싸게 매입하거나 이주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급여를 주지 않고 부리며 돈을 번다. 이어 마틸다의 친아버지 '다니엘'(Gérard Meylan)이 감옥에서 출소한다. 글로리아의 탄생은 모든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게 만들지만, 그것은 찰나일 뿐이다. 우버를 통해 돈을 버는 니코는 택시 기사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마틸다는 인턴 계약이 끝나간다. 설상가상 동료들의 파업으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실비, 정직된 르샤르까지. 이들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막막한 상황에 이른다.

 

사진 ⓒ IMDb
사진 ⓒ IMDb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글로리아'와 '마틸다' /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글로리아 먼디>는 한 가족의 노동을 통해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불균등한 프랑스 사회를 보여준다. 특히, 로베르 게디기앙(Robert GUÉDIGUIAN) 감독은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양가적인 방식을 통해 그려내는데 대표적으로 리샤르와 실비, 그들의 둘째딸 부부 오로르와 브뤼스의 명확한 대비이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이기도 한 그들의 구조는 "노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각각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달이 뜬 밤 높은 건물이나 항구의 배 안을 구석구석 청소하는 실비의 모습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동'이라면 돈이 필요한 사람들의 절박한 심리(이주 노동자 등 사회적인 취약 계층)를 이용해 싼값에 물건을 매입하거나 급여를 제때 주지 않고 일을 시키는 둘째 딸 부부의 모습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노동이다. 그리고 니코와 마틸다 부부는 직장을 잃은,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취약 계층인 동시에 일을 할 수 없는 실패한 부류인 셈이다.

국가를 구성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그 안에 '노동자'의 여러 형상을 세대에 따라 배치함으로써 사회가 가진 문제를 깊이 탐구한다. 또 국가(또는 시스템)에서 배제된 인물 '다니엘'(집이 없어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규칙과 윤리를 담당하는 경찰과 의사 등을 등장 시켜 균형을 맞추는 한편 현실에 대한 사실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결과적으로 다니엘이 출소를 해서도 감옥과 같은 곳에서 주당 100유로를 지불하며 생활하고, 그 어떤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는 결말로 영화를 끝내는 것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결국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정당방위에 대한 살인이 첫 번째, 니코가 저지른 살인을 자신이 떠안는 것이 두 번째) 또 실비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니코가 저지른 잘못을 대신 사죄하는 모습을 통해 부모가 된 자식을 위해서 여전히 '부모 세대'는 쉴 수 없는 현실을 느끼게 한다.

 

사진 ⓒ IMDb
오로르와 브뤼스 / 사진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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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와 피코 / '사진 ⓒ IMDb

 

'다니엘과 글로리아' / 사진 ⓒ IMDb
'다니엘과 글로리아' / 사진 ⓒ IMDb

아기(글로리아)와 노인(다니엘), 현재와 과거, 탄생과 새로운 출발로 느껴지는 둘의 관계는 프랑스 마르세유의 옛날 항구와 쇼핑몰에 위치한 신항구, 옛건물과 고층빌딩, 낮과 밤 등 대비되는 이미지들의 반복의 나열을 통해서 완벽하게 이어질 수 없는 '괴리감'을 전달한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알 수 없는 예감과 같은 것처럼. 이와 반대로 '마틸다'가 동생의 남편인 '브뤼스'와 오랫동안 육체적인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과 더불어 브뤼스가 여는 두 번째 가게의 점장이 되기 위해서 성적인 관계로 그를 유혹하는 행위나 모습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오로지 '자본가'라는 사실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이미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어긋난 마틸다의 행동은, 브뤼스가 이주 노동자를 부려먹는 창고에 찾아가 지속해서 성관계를 가지는, 그 장소 안에서 불법적인 노동과 불륜이 동시에 이뤄지고 자본가는 이런 상황을 마치 장난처럼 즐기고 표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니엘의 시선을 통해 한 가족 안에서 이뤄지는 불륜이나 언니의 절박한 상황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모습, <글로리아 먼디>는 '젊은 세대들의 분열'을 그려내고 있다. 기디기앙 감독은 "소속감을 갖지 못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타인과의 연대감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경제적 이익이 늘어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라고 이야기한다. 아내 실비의 전남편인 다니엘에게 선뜻 손을 내밀고, 그에게 미소와 말을 건네는 '리샤르'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띄는 이유도, 어쩌면 이 시대에서 점점 볼 수 없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사진 ⓒ IMDb
다니엘(좌), 리샤르(우) / 사진 ⓒ IMDb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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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먼디>는 인물들이 삶을 영위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망가진 사회 안에서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생존하기 위한 '절박함'을 이야기한다. 특히, '실비'나 '리샤르'처럼 '전형적인 노동자'의 인물들과 '니코'처럼 '직장을 가지지 못 한 실패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모습, 이 모든 인물들을 관찰하고 기교나 큰 움직임 없이 고정된 틀에서 그들을 포착하는 카메라를 통해서. 이에 대해 로베르 게디기앙 감독은 "이전 세대들이 2~3세대에 걸쳐 일궈놓은 노동과 복지의 안정성이 오늘날 유럽의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해체되고 있다"라고 말한다.

"난 준비 됐어!"라는 니코의 말은 '그의 능력과 별개'로 당연한 실패로 이어지는데 이 모습은 마치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적인 장편 소설 <성>에서 곧 성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지만 결코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만 맴도는 측량기사 'K'와 닮았다. 심지어 일을 할 수 있지만, 일을 할 수 없는 '억압'된 모습까지.

 

정직한 노동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영화 속 세계는

비단 스크린 안에 펼쳐진 픽션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다.

영화의 '결말'은 이 작품을 만든 로베르 게디기앙 감독이 가진 '분노'와 '공허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마틸다가 점장으로 정해진 브뤼스의 두 번째 가게의 오픈 파티에서 그는 그녀가 아닌 전혀 다른 인물을 점장으로 발표한다. 그곳에 있던 모든 가족이 느끼는 배신, 슬픔, 허무함 등 온갖 감정은 이러한 사정을 모르고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과 충돌한다. 분노에 가득 찬 마틸다는 동생 우로르에게 불륜 사실을 말하며, 니코는 그 상황을 도망치려는 브뤼스를 죽이고 만다. 그 순간, 아니. 니코가 브뤼스를 좇는 순간부터 카메라는 그들을 찾는 '다니엘'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니코가 브뤼스를 삽으로 가격해 죽이는 순간에 다시 나타나 그의 삽을 빼앗아 움켜쥔다. 이어 수감된 감옥에서 "내 시계의 바늘이 떨어져도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라고 묘한 말을 남기며 '끝'이 난다.

과연 당연한 결말일까. 마틸다가 점장이 될 수는 없었을까. 희망적이지 않지만 브뤼스의 죽임 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걸까. 권선징악의 정형성을 가진 이 마지막 장면, 또 삽을 든 노동에 실패한 자가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만든 자본가를 죽이는 장면으로 볼 수 있는 이야기의 끝. 이것은 최악의 상황마저도 부모 세대가 짊어지려는 모습과 자신 세대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 또 글로리아의 아빠인 '니코'의 실패(그의 의도와 별개로 벌어진)는 과거 실비의 비밀(다니엘이 수감된 이후 몸을 팔며 살았다)과 현재 다니엘과 더불어 모든 가족이 처한 최악의 상황에 대한 키(Key)이며, 반복되는 다니엘의 모습과 함께 빠져나올 수 없는 지독한 현실을 만들어 낸 로베르 게디기앙의 폭로이다.

 

사진 ⓒ IMDb
'실비'(아리안 아스카리드) 사진 ⓒ IMDb
로베르 게디기앙 감독 / 사진 ⓒ IMDb
로베르 게디기앙 감독 / 사진 ⓒ IMDb

[코아르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

오세준
오세준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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