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th BIFF] '지구의 끝까지' 소통, 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24th BIFF] '지구의 끝까지' 소통, 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 배명현
  • 승인 2019.10.1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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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 영화제에서 만난 우리 시대의 희망
사진 ⓒ네이버 영화 제공
사진 ⓒ네이버 영화 제공

가끔 영화를 보고 나면 당혹스러운 일이 생기곤 한다. 영화관을 나왔는데 혼자 영화를 좋게 보았을 때, 거꾸로 나 혼자 실망했을 경우 말이다. 둘 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번 기요시의 영화는 전자였다. 이럴 때 선택지는 둘 중 하나이다. 남몰래 반개의 별점을 타협하거나 영화에 대해 변호하는 글을 쓰는 것. 전자는 쉽지만 후자는 어렵다. 영화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온몸으로 막으며 나의 감상을 지켜야 하는 그 막막함이 있다.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은 게임이지만 이 명백한 손해를 감수하는 이유는 그만큼 기요시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비난의 아픔보다 크기 때문이다.

영화는 소통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세계화의 시대라고 일컫는 현재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화’는 가능한가. 다른 인종과 문화와 종교와 철학과 세계관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대화의 날은 도래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포스트모던 세계화의 시대 아닌가. 이 질문에 나는 다시 질문하고 싶다. 미국의 트럼프와 유럽의 보수화, 가까이는 한국의 이주민과 조선족문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10분만 뉴스를 검색해본다면 수도 없이 많은 예를 더 들 수 있지만 이 몇 가지 예시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디를 향해가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는 무너지고 상처받은 세계화의 시대. 그러니까 현재(영화와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 리얼리즘은 힘을 얻는다)에서 시작한다. 1세계 국민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인 주인공은 파키스탄에 놓여있다. 영화는 초반 내내 제 3세계라고 일컬어지는 국가의 ‘야만성’을 보여준다. 그들의 무례함과 문명에서 동떨어진 행위들을 나열한다. 기요시는 과감하게 두 세계의 차이를 보여준다. 극장에서 영화를 즐기는 ‘문명인’들은 주인공인 요코에게 동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 영화의 흐름을 바꾸어줄 인물이 등장한다. 일본인과 파키스탄의 통역사. 그는 두 언어를 번역해 소통 불가능한 두 공동체의 이해를 돕는다. 물론 한계는 명확하다. ‘언어’ 만으로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것.

 

사진 ⓒ네이버 영화 제공
사진 ⓒ네이버 영화 제공

이 보여줌은 ‘바다’라는 단어로 명확해진다. 바다가 없는 파키스탄은 ‘바다’를 자유라고 인식하지만 주인공에게 바다란 죽음이다. 기요시는 영화 후반과 바다의 연결을 원전 폭발로 연결 지으며 <지구의 끝까지>는 명확하게 ‘현재’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려준다. 같은 단어(시니피에)를 가지고도 두 세계는 너무나 다른 연상을 떠올리는 것으로 경계를 명확하게 한다. 이 구획은 ‘경계의 넘어감’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여주지만 기요시는 이 지점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려 한다. 요코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길을 잃고 배회한 날에 발견한 산양을 보고 연민을 느낀다. 우리에 갇혀있던 산양을 풀어주고 산양에게 자유를 주려하지만  마을사람들은 다시 잡아들이려 한다. 이때 요코가 화를 내자 원래 주인이었던 우즈베키스탄인은 말한다. 이건 우리의 ‘관습’이라고. 우즈베키스탄어로 주인공에게 하는 말은 번역되지 않는다. 다만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막으로 번역되는 우즈베키스탄어이다. 이 말은 오로지 ‘관객’만이 알고 있다.

그들과 우리의 경계, 혹은 차이에 집중하다 보면 서로의 다름은 더욱 커 보일 뿐이다. 관습이란 단어도 그렇다. 우리의 관습은 당연하게 인식하지만 그들의 관습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 이상한 베타성을 넘어갈 수 있도록 기요시는 중반부터 후반까지 새로운 이야기를 깔아두었다. 이 모두를 이야기 하고 싶지만 한국에서 정식으로 개봉하기까지 미루어둘 생각이다.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가장 인상 깊은 영화 중 하나였던 <지구의 끝까지>는 일견 너무나 쉽고 당연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될 수 있다. 소통이니 세계화니 같은 추상적인 말과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와 같은 말로 말이다. 하지만 감독은 ‘지금’ 소통이 가장 불가능 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때. 가장 어려운 것을 말하려고 한다. 진정한 대화와 소통이 부재한 이곳에서 영화라는 희망을 믿는 감독의 진심을 바라봐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올 때 소통의 문제에 대해 한번 생각해 주기를 소망한다. 누가 먼저 손을 내밀 것인가. 우리가 먼저? 아니 우리가 ‘먼저’인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이 먼저 손을 내밀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다만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던 것일 뿐.

 

사진 ⓒ네이버 영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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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CoAR 배명현 에디터, rhfemdnjf@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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