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토마스 벤그리스'(Tomas VENGRIS)
영화 <모국>은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플래시 포워드' 섹션에 초청된 작품으로, '토마스 벤그리스'(Tomas VENGRIS) 감독이 연출했다.
옛 소련 붕괴 직후 1992년, 미국에 사는 '빅토리아'(Severija Janusauskaite)는 남편 데이비드와 이혼한다. 그러나 당장 살 곳도, 심지어 돈도 없는 그녀는 12살 아들 '코바스'(Matas Metlevski)와 함께 자신의 고향인 리투아니아로 떠난다. 엄마와 떠나는 여행을 바랐던 코바스, 정작 엄마는 과거 소련에 빼앗긴 자신의 집과 땅을 되찾기 위해 온 것이며, 심지어 그녀를 돕기 위해 새 애인 '로마스'(Darius Gumauskas)와 그의 딸 '마리야'(Barbora Bareikyte)가 함께 간다. 그러나 엄마의 바람과는 반대로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만큼 그녀의 집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는 그녀는 오랜만에 사촌을 만나 고민을 털어놓지만, 오랫동안 동네에서 함께 지내온 이웃인 그 가족을 옹호할 뿐이다. 이에 '로마스'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부탁해 무력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모국>은 엄마의 땅을 찾은 코바스의 시선과 그를 관찰하는 카메라를 통해 전개해 나아간다. 엄마와 함께 즐겁게 여행할 생각에 가득 찬 코바스는 엄마의 애인 '로마스'가 등장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한다. 자신의 아빠가 될지 모르는 로마스가 그에게 영 달갑지 않다. 특히, 그와 엄마의 애정행각이나 그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면서 그동안 자신이 알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을 알게 된다. 또 로마스와 그의 친구들을 통해 총을 쏘는 법을 배우거나 술을 마시는 등 어른들의 폭력적인 세계에 쉽게 노출됨으로써 사춘기를 겪는 아이의 위태로움을 보여준다. 비슷한 또래의 로마스의 딸 '마리야' 역시 아버지의 명령에 언제나 따라야 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가족 안에 위치해 있으며, “차가운 도시녀가 되고 싶은” 노랫말을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이 자유를 갈망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 코바스의 엄마인 '빅토리아' 역시 상당히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인물이다. <모국>은 변화하는 시대를 감내하고 대응해야 하는 인간의 삶을 '모자 관계'를 통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소련의 해체로 시작해 이혼을 통한 한 가족의 해체, 소련(러시아)으로부터 독립한, 분리된 리투아니아 등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여 '분열'을 일으키고자 한다. <모국>의 아이러니는 빅토리아가 자신의 땅과 집을 되찾기 위해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다른 가족을 밀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맥락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더 스퀘어>가 보여준 설정, 새로운 가치를 위해 기존의 가치를 밀어낸다는 것, 물론 빅토리아는 오히려 기존의 가치를 되찾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명확한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기존의 것을 제거하기 위한 폭력성에 맞닿아 있다.
'토마스 벤그리스'(Tomas VENGRIS) 감독은 영화 속 아이러니를 해결하기 위해서 두 가지 변화를 시도한다. 코바스를 '능동적인 위치'에 오르게 하는 동시에 빅토리아를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게 한다는 점이다. 코바스는 마리야로부터 자동차를 운전하는 방법을 익힌다. 반면에 빅토리아는 '로마스'의 말만 따라 그가 폭력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방관한다.(이 구조는 도시녀가 되고 싶은 '시골 소녀'와 히치콕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전형적인 '금발의 미녀'의 재밌는 대비를 이룬다) 그리고 로마스와 그의 친구가 가족을 총으로 몰살하고, 집을 불태울 때,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불타는 집을 지켜볼 때, 감독의 의도했던 시도가 정확히 빛을 발한다. 빅토리아는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닫고, 코바스는 그런 그녀를 차에 태우고 직접 운전해 그곳을 탈출한다.
빅토리아에게 '집'은 일종의 '희망'이다. 과거 소련을 피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던, 그리고 앞으로 코바스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곳이다. 그런 집이 불탄다는 것은 분명 희망이 파괴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과거'가 아닌 현재, 또 남의 도움이 아닌 자신이 직접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한층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인 셈이다. 더 나아가 '코바스'의 경우에는 어른들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세계를 직접 경험함으로써 그에 따른 결과물로 불에 타는 집을 목도한 것이다. 이는 어른들로 인해 '소년의 순수'가 파괴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엄마를 보호하고 이끄는 모습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성장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마치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서 '어린 종수'로 보이는 꼬마가 불타는 하우스를 보는 장면이 떠오른다)
<모국>, 영어로 'Motherland'인 영화 제목은 되찾을 수 없는 것,
시대의 변화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허무함과 무기력함으로 다가오지만,
영화는 '빅토리아와 코바스의 성장'을 통해서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다.
"한 소녀가 숲속을 헤매며 집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마녀를 만났지" 어머니가 들려주는 옛 동화의 내레이션은 영화 마지막 '과연 소녀가 다시 집을 잘 찾아갔는지'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며 해안가에 나란히 앉은 코바스와 빅토리아를 보여주며 마무리하는 영화를 통해서 동화 속 그 소녀의 결말을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모국>은 소련이라는 큰 국가의 붕괴 직후, 여러 국가들이 맞이할 거대한 변화를 한 가족의 성장을 통해 섬세하고 밀도 있게 풀어낸 작품이다.
[코아르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