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th BIFF] '쏠레' 변화를 맞이할 변화
[24th BIFF] '쏠레' 변화를 맞이할 변화
  • 오세준
  • 승인 2019.10.08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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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쏠레'(Sole, Italy/Poland, 2019, 100분)
감독 '카를로 시로니'(Carlo SIRONI)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쏠레>(Sole)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섹션에 초청된 작품으로, '카를로 시로니' (Carlo SIRONI) 감독이 연출했다.

슬롯머신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에르만노'. 어느 날 그의 삼촌은 폴란드에서 이탈리아로 온 임신한 22살 소녀 '소피'를 소개한다. 불임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삼촌 부부는 소피로부터 돈을 주고 자신들이 키울 아이를 얻으려고 한다. 삼촌은 에르만노에게 그녀가 도망가거나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감시자로, 아이가 출산할 때까지 함께 살 것을 부탁한다. 유일한 친척이지만, 친하지 않은 삼촌. 그는 오로지 일의 대가로 받을 '돈'을 위해 수락한다. 한편 얼른 아이를 주고받을 '돈'으로 친구가 있는 독일로 떠나고픈 '소피'. 두 사람의 동거는 이렇게 시작된다.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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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쏠레>는 미니멀한 형식의 영화로,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배경이 되는 공간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주로 집, 병원, 차 안 등에 위치한 인물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러한 방식은 결국 사건 이후와 이전에 대비를 통해 두 주인공의 변화를 도출해낸다. 딱딱하고 경직된 그들의 움직임이나 무표정으로 일관된 그들의 얼굴이 '변화를 맞이할 사건'을 통해서 어떤 식을 다르게 나타내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그것이 일면식도 없는 두 사람이 순간 아기의 부모가 된다는 관계의 설정에 의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공간과 상황에 따른 '인물의 위치'에 대한 영화인 <쏠레>, '에르만노와 소피가 부부로서 산부인과에 있는 모습'은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이미지다. 다른 국적, 낯선 관계, 소년 소녀, 청춘 등 한 생명의 출생과 전혀 무관한 것들로 채워진 두 사람의 관계. 이들이 위치한 '산부인과'라는 공간, 그 안에서 의사와의 면담, 초음파 검사, 각종 검사 그리고 출산까지. 롱테이크를 통해서 영화가 생성하고 뿜어내는 '이질감'은 모든 것이 첫 경험인 어색함과 당황스러움으로 시작해 방황하는 청춘의 우울함을 통해서 극명하게 전달한다.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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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e is good"라는 소피의 말처럼, 예상치 못한 '변화'에 필요한 건 대응할 '변화'뿐. 화면에 비추는 아기의 모습, 아기에게 모유를 주거나 심지어 울음소리에도 오히려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는 '소피'. 비행기가 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는 '소피'는 자유를 갈망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부정하고 저항하려 한다. 동물의 본성인 '모성애'까지도. 반면에 오락실에서 시간과 돈을 허비하던 '에르만노'는 소피에 대해 호감이 생기고, 일을 구하거나 마치 진짜 아이의 아빠가 된 냥 장난감 모빌을 사들고 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다가 보이는 두 사람의 집. 영화는 중간마다 쉴 새 없이 밀려 들어오는 파도를 보여준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닥친 에르만노와 소피의 감정을 표현하는 한편, 마치 두 사람의 변화를 예고하는 듯한 격한 움직임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두 사람은 힘든 상황을 함께 견디며 서로에게 끌리기 시작하고, 출생한 아기를 통해 부모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특히, 감독은 모성애를 밀어내는 '소피'를 대신에 생물학적으로 자신과 연관이 하나도 없는 '에르만노'가 점점 아빠로서 느끼는, 어쩌면 부성애일지 모르는 감정을 표현한다.

아이와 헤어지기 마지막 밤. 아이를 목욕시키려는 그때 정전이 일어난다. 촛불을 켜고 아이를 씻기는 순간 에르만노는 소피에게 아이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처음으로 키스를 하고 첫 관계를 맺는다. 마치 성인이 되는 의식을 치르는 듯 느껴진다. 그러나 에르만노의 용기에도 결국 아기는 삼촌 부부에게 가고 만다. 조그마한 아기가 사라진 집에는 에르만노가 느껴야 할 거대한 공허함만이 가득하다. 이는 소피 역시 마찬가지. 자유로 가득 채워질 그녀의 삶은 고작 슬롯머신 화면뿐이다. 그런 그녀의 돈을 빼앗는 에르만노, 다시 돈을 빼앗으려 하는 소피는 어느새 그에게 안기며 잔뜩 눈물을 흘린다.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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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시로니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영화인 <쏠레>는 1950년대 이탈리아 영화를 보는 듯한 클래식함, 4:3 화면비를 통해 화려하지 않고 굉장히 절제된 작품이다. 시종일관 차갑고 푸른톤을 유지했던 전개와 달리 '부둥켜안은 에르만노와 소피'의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비로소 '따뜻함'으로 채워진다. "공허한 시대, 사랑이 가장 중요했다"라는 그의 말처럼.

[코아르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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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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