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 폰어 타임 인… 헐리우드' 타란티노의 따스함과 자신을 위한 서사
'원스 어 폰어 타임 인… 헐리우드' 타란티노의 따스함과 자신을 위한 서사
  • 배명현
  • 승인 2019.11.08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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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소니픽처스코리아
사진 ⓒ소니픽처스코리아

먼저 아쉽다는 말로 글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헤이트풀 8> 이후 4년 만의 신작이었기에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이번 영화는 타란티노답지 않았다. 아니 그의 영화답지 않았다기 보단 평소보단 조금 싱거웠다. 관객이 그의 영화를 볼 때 바라는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부족했다. 이리저리 튀기는 피 또는 귀를 도려내거나 달려드는 수많은 적을 칼로 베는 신, 그것도 아니라면 적군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는 파괴적이지만 어딘가 유머러스하고 동시에 고어하지만 역겹다고 고개를 돌릴 수는 없는 그런 장면들이 많이 사라졌다.

왜일까. 그가 나이를 먹어 조금 유해지기라도 한 걸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번 영화에는 확실히 폭력과 혈흔이 낭자한 장면이 없긴 하다. 영화는 긴 러닝타임 중 두 번 피를 흘리는데, 더욱이 러닝타임의 중반이나 지나야 등장한다. 지난 8개의 영화가 하나같이 단짠으로 가득했다면 이번 영화는 어딘가 따스함과 감성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그는 69년의 헐리우드를 새로쓰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일까. 과거의 영광을 품고 추락해가는 릭 달튼과 그의 옆에서 함께 일자리를 찾는 클리프 그리고 샤론 테이트. 이 세 명의 이야기로 그는 타란티노 자신과 현실의 잘못 쓰여진 이야기를 영화 안에서라도 수정해 보려 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특히나 릭 달튼을 통해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타란티노는 릭 달튼이란 가상의 인물을 세워 과거에는 잘 나갔으나 현재는 한물간 사람의 심리를 반복해서 묘사한다. 달튼은 인기의 중심에서 밀려났고 일거리도 줄었다. 알콜에 파묻혀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게으르고 푸념이나 읊는 한심한 인물은 아니다. 끊임없이 연기하고 열정과 함께 노력도 불사른다. 연기 도중 대사를 잊어버리자 대기실에 와 자신에 대한 분노를 터트린다. 이후 그는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며 감독에게 인정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러한 모습의 변형을 통해 스스로 퇴물이라며 자학하지만 다른이들은 인정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 반복에서 타란티노는 트릭을 사용했는데 관객이 릭 달튼의 연기가 우리가 보는 <원스 어 폰어…>를 연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영화 속 영화를 연기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감독은 당연히 이에 대한 답을 보여주지만 영화를 두 번 보지 않는 이상 매번 관객은 당할 수밖에 없다. 스크린 속 릭 달튼과 내재적 영화에서 연기하는 릭달튼은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영화 속 영화의 릭 달튼은 무자비하며 승자의 여유를 가지고있다. 하지만 스크린으로 전달되는 릭 달튼은 몰락으로 위태로운 인물이다. 타란티노는 영화와 그 안의 영화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들면서 릭 달튼이라는 인물이 ‘승자의 여유’를 연기하는 데 실패하지 않으면 안되는 인물로 그려넣고 있다.

 

사진 ⓒ소니픽처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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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 폰어…> 영화 안에서 릭 달튼의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우리가 아니라 영화속 관객)은 승자의 여유를 보지만 현실에서 스크린을 통해 릭 달튼을 보는 우리는 그의 눈물을 본다. 8살 어린 아이의 칭찬에 눈물을 흘릴 만큼 약해져있는 인간이다. 나는 이 릭 달튼에게 타란티노 자신을 투영한 건 아닌지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작품과 작가는 언제나 하나가 아니다. 작품 안에서 보여준 생각과 사상이 작가가 추구하는 모든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9번째 작품을 만들면서 시달린 창작의 고통과 압박이 릭 달튼이라는 인물로 표현된 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의 끝에 히피들을 죽이기 위해 쓰인 화염 방사기는 릭 달튼이 잘나가던 시절(영화 속 분위기는 바스터즈의 최후의 장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영화 속 소품이었다.

또한 타란티노는 늘 pc 적 관점과 젠더와 같은 윤리적 관점에서 비판 받아왔다. 그때마다 그는 늘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변론했다. 더욱이나 영화 속 히피는 자신들은 티브이를 끼고 살지만 어렸을 때부터 영화와 배우를 통해 살인을 배웠다는 논리 비약으로 릭 달튼을 죽이려 한다. 감독은 화염방사기에 과거의 영광과 재기의 성공이라는 연료를 넣어 건설적이지 못한 비판을 하는 자들에게 영화적 복수를 성공적으로 마친 건 아닐까. 타란티노는 이를 통해 이전까지의 영화와는 다른 자전적인 혹은 개인적 소품을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닌지 묻고 싶다. 타란티노는 10개의 영화를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여러번 이야기했다. 이번 9번째 영화는 이전까지 만들었던 그의 작품이었다면 이번에는 자신을 ‘헐리우드’에 박아넣고 싶었던 건 아닐까.

오랫동안 타란티노를 사랑해온 팬의 한 명으로 이번 영화는 아쉽다. 그러나 짜릿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타란티노라는 인간으로 무자비한 변태로만 알고 있던 관객 모두에게 새로운 면을 밝혀준 영화이지는 아닐까.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사진 ⓒ소니픽처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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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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