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진 집' 정해진 은폐
'비뚤어진 집' 정해진 은폐
  • 오세준
  • 승인 2019.09.18 1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 ⓒ (주)팝엔터테인먼트
사진 ⓒ (주)팝엔터테인먼트

'목숨바쳐 사랑할만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가장 증오하는 사람인 곳' 이 문장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좋은 표현이자 '아디스'(글렌 클로즈)가 이 집은 대체 어떤 곳인지 묻는 '찰스'(맥스 아이언스)에게 설명한 대사다. 집이 '비뚤어졌다는 것'은 결국 형태나 구조가 이상하거나 어긋난 것이 아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뜻하는 것이다.

추리 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의 동명소설 원작인 <비뚤어진 집>은 대부호 '레오니디스'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타살임을 직감한 손녀 '소피아'(스테파니 마르티니)가 사립탐정 '찰스'에게 사건을 의뢰하면서 레오니디스 가족의 실체를 알아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특히, 아가사 크리스티가 직접 자신의 작품인 '비뚤어진 집'에 대해 “한 가문을 파헤치는 일이 흥미롭게 느껴진다”라고 언급할 정도로 그녀의 작품 중에 걸작으로 손꼽힌다.

 

어그러진 것들

<비뚤어진 집>의 원제목인 'Crocked House'에서 'Crocked'는 비뚤어진, 구부러진, 어그러진, 부정직한, 짜증나는 등 이렇게 뉘앙스나 느낌은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의미들을 가지고 있다. 재밌는 건 극 중에 찰스가 조사하며 만나는 레오니디스의 가족들은 실제로 부정직하거나 짜증나는 등 'Crocked'가 지닌 뜻을 다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어그러진', 더 쉽게 표현하면 '사물이 제자리에서 벗어나 맞지 않다', '관계가 깨어지다'라는 의미가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영화는 레오니디스의 전부인 마샤의 여동생 '이디스'를 시작으로 두 번째 부인 '브렌다', 첫째 아들 부부 '필립과 마그다', 둘째 아들 부부 '로저와 클레멘시', 첫째 아들 부부의 자식들로 '소피아, 유스터스, 조세핀'(순서대로), 아이들의 가정교사 브라운 그리고 보모까지. 찰스가 범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주요인물, 즉 레오니디스의 가족은 총 11명이다. 관객 입장에서 인물이 등장하는 시간만 생각하더라도 다소 긴 영화가 될 것 같은 <비뚤어진 집>은 115분 동안 '효율적으로' 인물과 이야기를 그려낸다.

 

사진 ⓒ (주)팝엔터테인먼트
사진 ⓒ (주)팝엔터테인먼트
사진 ⓒ (주)팝엔터테인먼트
사진 ⓒ (주)팝엔터테인먼트
사진 ⓒ (주)팝엔터테인먼트
사진 ⓒ (주)팝엔터테인먼트
사진 ⓒ (주)팝엔터테인먼트
사진 ⓒ (주)팝엔터테인먼트

대부호의 거대한 집, 살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이며, 탐정 찰스가 범인을 찾는 곳. 질스 파겟 브레너 감독은 찰스가 대면할 레오니디스의 가족들의 방을 그 공간에 사는 인물들을 표현하는 장치로 사용한다. 집주인인 레오니디스 본인의 거대한 사진과 전부인 마샤, 이디스 등 여러 인물과 고딕 느낌의 많은 그림이 걸린 홀을 시작으로 복도와 각 인물들의 방은 한 건물에 다 있다고 믿기지 못할 만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영화의 미장센은 짧은 시간 안에 많고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키기 위해 '인물이 머무는 공간'이 곧 그 인물임을 보여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하나의 집에서 많은 대조를 이루기 위해 로우 앵글, 와이드 렌즈, 프레임 속 네거티브 스페이스를 가득 채우고, 용의자로 몰리게 되는 가족들 각자의 공간을 다른 차원을 보는 것 같이 제작해 캐릭터의 성격을 투영했다.

찰스는 장남 '필립'과 대화를 나누던 중 소피아는 갑자기 벽에 걸린 '비뚤어진' 그림을 바로 잡는다. 그 순간 필립은 자신의 아버지인 레오니디스가 이 집에 사는 모든 가족이 절대 나가서 살 수 없도록 했다는 것(룰이자 조건)을 알게된다. 이를테면 필립의 경우, 레오니디스가 도박빛을 갚아주는 계기로 집에 묶여 있던 셈이다. 가족들은 마치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에 메커니즘처럼 '정작 아버지가 왜 집에서 나가서 살지 못하게 했는지' 알지 못한다. 이 영화가 어그러졌다는 것은 하나로 뭉쳐질 수 없는 가족의 형상이면서 끊어낼 수 없는 아버지의 관계를 뜻한다. 그래서인지 가족들에게 아버지가 살해 당했음에도 아무렇지 않거나 슬퍼하지 않고, 바로 집을 떠나려고 하거나 또 누가죽였는지보단 누가 유산을 물려봤는지가 더 중요한 일인 것이다. 마치 그 억압에 대한 값을 치르려는 듯.

 

사진 ⓒ (주)팝엔터테인먼트
사진 ⓒ (주)팝엔터테인먼트

 

살인자는 어떤 사람인지 묻는 이디스의 말에 찰스는

'자만, 비뚤어진 도덕성, 부족한 공감능력 그리고 평범한 인간들의 규칙과 법규는 자신을 가둘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졌다고 말한다.

어그러지지 않고 유일하게 저항하려 한 인물은 누구일까. 레오니디스의 유언과 유산, 소피아와 찰스의 관계, 이디스의 비밀, 조세핀의 공책, 밝혀지지 않은 진실 그리고 두 번째 살인. <비뚤어진 집>은 리듬감 있는 전개, 다양한 캐릭터 그리고 화려한 미장센으로 충분한 몰입감 있는 작품이다. 범인을 정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아가사 크리스티. 영화 역시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을 치닫는 만큼 원작을 읽어보지 못한 관객이라면 분명 책을 사서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흥미로운 재미를 전달한다.

 

사진 ⓒ (주)팝엔터테인먼트
사진 ⓒ (주)팝엔터테인먼트

[코아르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

오세준
오세준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